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5화 (2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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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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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어느 덧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주말이라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학교를 등교하는 월요일. 나는 어김없이 새벽 6시에 방을 나왔다. 새벽 내내 기다렸다. 토요일 새벽에도 일요일 새벽에도..

이제야 그녀에게 말을 할 수 있는용기가 생겼는데..그녀에게 '미안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나의 기다림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식탁에 민정이가 밥 먹을 식사만 챙기고 나는 터벅터벅 학교를 향해 걸었다. 학교까지 가는데 30분. 버스라도 탈 수 있었지만 단지 이 길을 걷는 것이 좋아서 걸어서 학교에 간다.

개학한지 벌써 한 달이다. 이제 새싹이 터오는 봄이 와야되는데, 아직 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겨울날씨에서 목도리를 둘러매고 입김을 후후 불며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쳐간다.

저마다 우리 학교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마다 친구들 한 두명쯤은 대동하거나 아예 커플등교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혼자 길을 걷고 있어 뭔가 눈에 띈다.

아침등교를 할 때마다 정문에 서는 학생부 선생이 오늘도 매를 들고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눈을 가리기 위해서 앞머리를 길게 기른 두발불량자였다. 분명히 내가 들어오고 있으면, 선생이 또 뭐라 한마디 하겠지.

"잠깐 너."

역시나. 태클을 걸어주고 있다.

"너 저번에도 내가 지적하지 않았었나?"

"아닌데요. 처음인데요."

일단 발뺌. 학생부의 선생들이 어떻게 수 많은 얼굴들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존재는 선생들에게 찍혀있어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행여나 기억하고 있을까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기로 하였다.

"아니, 너 벌써 몇 번째인지 알아? 내가 너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이렇게 수 많은 학생중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놈은 너 뿐이니까."

젠장..결국 눈에 띄었단 말인가. 나는 나름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스텔스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저번주에도 머리를 자르고 오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것은 단순히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하는 거짓말. 그것을 믿어주는 선생이 어디있나. 그런데 계속 오리발을 내밀어도 이 선생의 화만 돋울 것 같다.

"사실, 제게는 회색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조용히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다. 흠..어떻게 하지..

"너. 박정우냐?"

참고로 우리학교 교복에는 명찰이 없다. 그래서 옷만 보고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예.."

짝!!!

제대로 따귀를 맞았다. 그 소리에 주위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야이 새꺄. 학교생활 이따구로 보낼래? 너 지금 학생부 블랙리스트 맨 위에 있는 거 알고있어? 지금 0순위야 0순위 즉시 퇴학감. 알아? 맨날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 않나.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고 있지 않나..그리고 '사고'도 치지 않았었나?"

얼굴이 아직도 얼얼하다. 그렇다고해서 아프진 않았지만 갑자기 폭력충동이 일어난다.

"이런 새끼가 우리 학교에 있으니까 욕을 많이 처먹고 있는 거 아냐? 네 누나를 좀 본받아라 응? 어떻게 이런 놈이 그런 착한 학생의 동생일런지 원.."

아아. 또 시작됐다. 이놈의 남매비교. 나는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다. 참자. 또다시 일을 크게 벌이긴 싫다. 참을 인이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참자.

"너 여기 학생들 보는 앞에서 죽을 정도로 맞아볼래? 선생을 뭘로 아는 거야."

아아..팰거면 패보든가. 적응되어있으니까. 맷집 하나는 타고났걸랑.

"…"

나는 잠자코 있었다. 당장에라도 하극상을 벌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주위의 시선들이 너무 많다. '그 때'처럼 갈아엎고 싶었지만, 분노를 억누른다.

"잠깐 잠깐. 선생님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참으세요."

학교로 오던 선생들의 만류에 의해 그 선생은 씩씩 성을 내면서 내가 등교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사건'을 아는 선생들은 나를 조용히 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 소란은 주위의 선생들 덕분에 아무런 일도 없이 무사히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교실. 몇몇 같은 반 애들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냐? 제대로 '짝'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렇게 크게 울리는 건 처음봤어."

"뭐 그딴 이유로 맞았냐? 진짜 어이없다. 고작 머리길렀다고 따귀를 때리는 인간이 어디있냐."

"맞아 머리 너무 길면 그냥 벌점만 주던데.. 그 선생 왜 그래?"

"이번에 새로 들어왔잖아. 그 선생."

심히 머리단속 하는데 뭔가 쌓인 것이 많은 것 같다. 이놈들은. 저마다 나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와 선생의 뒷담화를 신랄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 왜 이렇게 머리 기르고 있어?"

"아..얼굴 화상때문에.."

얼굴에 화상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조금은 애들이 이해해 줄것 같으니까.

"너 화상있었냐? 어쩐지..1학년 때부터 계속 머리를 가리고 있더라.."

"그런데 왜 선생이 때렸냐? 사정이 있어서 머리를 기른건데.."

"다른 선생들은 알고있어. 그 선생이 새로 와서 그래."

확실히. 나는 1학년 때에도 두발단속에 매일 걸리다시피 해서 얼굴에 화상이 있다고 허위진단서를 끊어 온 뒤에야 학생부의 제지에 걸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 1달 간, 그 신입 학생부 선생이 그것도 모르고 나에 대해 심히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고작 머리 기른다고 학생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진짜 생각하면 할 수록 어이가 없다. 어차피 머리 기르다 보면 불편해서 자르게 되잖아?"

"우리가 여자처럼 길게 기르는 것도 아니고.."

두발자유를 심히 외치는 학생들의 울분의 토로가 한동안 나의 주위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누나의 반으로 갔다. 아마..3-A반..여기..5층이던가..

3학년들 사이로 어느 모르는 학년의 머리 긴 학생이 복도를 걷고있자 저마다 쳐다보고 있었다. 3-A반 저기 구석에 있네.

갑자기 뒷문을 드르륵하고 열 수는 없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점심시간이라서 학생들의 일부는 빠져나가고 있었고 수능을 앞두고 있는 형편이라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수였다.

"어..너..지현이 동생아냐..?"

"어 왠일로 왔어? 그러고보니까 어떻게 된거야? 지현이 오지않았는데.."

역시나…오지 않았나…

"지현이가 없으니까 우리가 다 쓸쓸해..ㅠㅠ.."

"그 모범생이 오지 않은게 아직도 안 믿겨져.."

"우리의 여신님이..우오~~~"

이 놈의 지현사랑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고작 하루 학교에서 보지 않았다고 이런 반응.. 정말로 우리 학교의 여신이긴 여신이구나…

"진짜. 어떻게 된거야? 혹시 집에 아파서 누워있었어?"

"맞아. 선생이 지현이 안왔다고하니까 연락도 오지 않았다고 하고. 어떻게 된거야."

"여신님 혹시 아프신건가? 여신님의 쾌차를 위해서 병문안 가자~"

"오!!!"

어느 샌가 내 주위로 몰려온 선배들. 광신도들도 내 주위를 둘러 싸고 있었다. 저마다 누나의 소식이 궁금하다는 듯,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도..혹시 누나가 학교에 있지 않을까 해서 여기 와본거예요. 누나 사실..3일 동안 집에 오지 않았는데.."

"뭐????"

"3일 동안 오지 않았다고?? 무엇 때문에.."

무엇이고 자시고 여기 있잖습니까.. 안 들어오게 만든 원인이 여기..

"어째서??? 설마…여신님이 우리들을…'버리신'건가? "

"흑흑… 어째서 여신님이 이렇게…"

어이 당신들. 누가 버리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당신들 신경쓰지 않았거든요?

3일동안 들어오지 않았다는 소리에 주위의 탄성과 함께 광신도들이 저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다. 아니 이것이 제대로 된 '슬픔'인 지는 모르겠다.

후..일단 이 사람들 한테서도 얘기를 들어볼까..누나에 대한 얘기를..

"저기.."

"응??"

어째 단체로 '응?'해온다. 지현누나와 관련되서라면 하나가 되는 3학년들과 광신도들. 정말로 놀랍다.

"혹시…요새 누나가 뭔가 변한 모습이지 않았나요…그러니까 우울해보인다든가, 멍하니 있다든가.. "

"하긴, 요새 그러기는 했어. 지현이. 우등생답지 않게 수학계산 실수도 하고 영어시간 때에 멍하니 있다가 걸려서 지적받기도 하고…맨날 창가바라보고 있어서 수업도 듣지않고… 그렇게 노트필기를 열심히 하며 수업에 집중했는데… 선생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분위기고…"

"여신님…우리들을 보는 바라보는 눈빛이 많이 달라지셨어 요새..너무나 슬퍼보였어.."

"끄어!!!"

광신도들의 통곡소리. 그렇게도 누나를 신경썼구나..아무리 지현누나와 관련되서라면 바보가 되버리는 광신도들도 이렇게 지극정성이었구나..누나에 대해서..같이 슬퍼할 때면 슬퍼해주고 웃어줄 때면 저마다 행복해 하고..나와는 완전 딴 판이다. 나 같은 '가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팬'이라는 이름아래 뭉친 이 사람들. 뭔가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요새 그렇게 동요한 지현이의 모습을…"

지현누나의 친한 친구로 보이는 선배들이 무언가 안쓰럽다는 듯 한마디씩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지현누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민정이의 말과 같이 말 한마디 한마디 귀에 새겨담으며 그녀의 존재를 절대로 잊혀지게해서는 안되게 해야겠다고 마음 속 굳게 다짐을 하며 그녀를 만나면 반드시 소식을 전해달라는 선배들의 당부와 함께 교실로 나왔다.

이제는 그녀를 반드시 만나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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