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4화 (2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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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Regret

작품에 공백이 너무 많다고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셔서 앞으로는 공백을 줄이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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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는 '연년생'인 남매이다.

연년생이라서 그런지 우리 둘은 너무나도 친했다. 그 때 민정이는 너무 어렸고, 언니와는 나이차이가 꽤 났으니까..

우리 둘은 항상 함께였다. 놀이터에서 놀 때에도, 바닷가에 간다거나 산에 간다거나 그럴 때에도 항상 붙어있었다. 항상 손잡고 함께였다.

하지만, 그는 몸이 약했던 탓이었을까, 주위의 있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항상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맨날 얻어맞았다. 오직 나를 비롯한 남매들만이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방글방글 웃었다. 몸에 항상 얻어맞으면서 여기저기에 있는 상처들. 밖에서 펑펑 울고 나서 눈이 퉁퉁 불었음에도 집에 돌아와서 나를 볼 때면 방글방글 웃었다.

나는 너무 안쓰러워서 그럴 때마다 그를 껴안아주었다.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는 아이. 외톨이. 나는 항상 그의 친구이자 부모님이 되어주었다.

그랬던 탓이었을까..나는 어느샌가 그를 자꾸만 챙겨주었다. 온통 그에게만 신경이 쓰여서 아무런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에 대한 나의 감정도 차차 바뀌어갔다.

그래..나는 그를 어느샌가 '좋아하게'된 것이다.

가족으로써의 '좋아함'이었는지 모른다. 당시엔 너무나도 어렸으니까.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웃어줄 때마다 나도 덩달아 너무나도 행복해서 세상 그 모든 것을 얻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깨닫고말았다. 나는 그를 '이성'으로써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렸다. 우리는 너무나도 어렸다. 그래서 이것이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단순히 어렸을 때의 순수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진지'했었다.

진심이었다. 그를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 오래 전부터 내려온 '금기'라는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매간의 사랑, '근친애'는 금기중의 금기라는 것을 교육을 받으면서 알고 있었다. '머리'는 알고있지만 '가슴'은 따라주지 않는다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그 때는 나이어려서 그랬을 뿐이야..라고 생각하려고 했다.하지만 자꾸만 상처를 받고 있는 그를 볼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이 아파서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반면에 그는 나를 '많이 챙겨주는 누나'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언제나 함께 있었음에도,그는 나를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오직 '서현'언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방글방글 웃기만 하였지만, 서현언니를 볼 때마다 해맑게 웃으며 쪼르르 달려와서 안기곤 하였다.

"나는 서현누나를 매우 좋아해."

그가 나랑 놀면서 말했던 그 한마디는 어렸던 나에게, 좋아하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도 크나큰 상처를 준 말이었다.

그는 서현언니를 보면서 부모님처럼 따뜻함을 느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나와 그는 어렸지만, 서현언니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이에게 나이차이가 나는 언니에게 기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째서..서현언니만을 바라보는거야..내가 있잖아..곁에는 내가 있잖아..너를 좋아하고 있는 내가 있잖아..왜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거야..? 왜..

그녀에게 '질투심'이 생겼다. 비록 친언니였어도 나에게 전부인 그 사람을 빼앗아간 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는 그도 미워지기 시작했다.

항상 햇살이 비추던 나의 마음도, 어느 덧 밤이 되고 시린 겨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회색의 눈을 얻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더 이상 나에게 방글방글 웃어주던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의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볼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그리고 '나의 마음'도 서서히 접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더 그에게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금지된 사랑은 더 이상 하진 않을 것이라고.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그를 사랑하고 있는 마음은..

어렸을 때부터 외면받던 그는 외로워서. 고통스러워서 이 삶을 끝내버리기 위해 수 많은 가출시도와 자살시도를 할 때마다, 그가 눈을 찌르며 자학해서 부모님이 병원에 유폐시켜버릴 때마다, 당장에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한없이 꽉 껴안아서 나만을 바라볼 수 있게, 오직 나만이 그에게 '빛'이 되어줄 수 있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더 이상 '감정의 선'을 넘을 수 없었다.

더욱 더 냉정히, 더욱 더 차갑게.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솟아오를 것 같은 이런 마음을 처절하게 억누르면서..나는 그러한 그를 바라만 보았다.

인간은 쉽게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말했던가. 나는 이런 냉정함에 더욱 더 익숙해졌다. 어느 덧 이러한 마음도 가라앉힌 채 그에게 하염없이 차갑게 대화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10년 동안 줄곧, 나는 그를 그렇게 대할 수 있었다.

그가 무언가에 패닉상태가 되어서 구토를 할 때에도 구석지고 어두운 창고같은 방에 내몰때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는 나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방에 맨날 갇혀살면서 게임에 빠지고 나와 어느 새 나의 이러한 태도를 배운 민정이도 모두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한 그는 더욱 더 외톨이이자 혼자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은..나의 비뚤어진 '애정'에서 부터 시작했다.

모른 척했다. 그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계속 냉정하게 대하기 위해서 그를 내몰고 나 몰라라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렇지않게 청소하고 밥 하고 빨래하고 우리들을 위해서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새 쌓여왔던 자책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후회'하게 되었다.

그가 등교했는데 구토를 했다면서 돌아온 것을 보면서 나는 더욱 더 자기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다. 어째서 이 지경으로 아픈데도 나는 그를 몰아세웠을까. 그는 이런 생활을 10년동안 계속해왔다. 나에 대한 원망. 민정이에 대한 원망. 모든 것이 폭발할 것만도 같은데... 그럼에도 그는 "구토를 했어."라는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지?

그것이 나의 결심을 흔들게 만들어놓았다. 냉정해지자고. 차가워져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하자고. 이러한 결심을 했고, 또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러한 것을 느꼇을 때, 자연스레 그의 방에서 간호를 해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도 슬퍼지고 있었다. 그가 이러한 고통을 계속 겪고 있었다는 생각에.

나는 계속 그가 식도를 아파하면서까지 구토를 하는 것을 보았고, 그의 몸에는 수없이 많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방에서 그는 잠을 억지로라도 청하면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참을 수 없다. 더 이상 냉정해질 수 없다. 그의 얼굴을 만지면서 그 동안 마음 속 깊이 숨겨놓았던 '그를 계속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10년의 시간을,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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