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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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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정이의 말을 가슴깊이 새겨들었다.
이 녀석.. 밥만 먹는 식충이 인것 같지만 가끔씩 핵심이 되는 말을 찌른단 말이야.
민정이의 말대로 나와 그녀는 '가족'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더욱 나는 그녀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만약에 구해준다고해서 나와 그녀의 관계가 다시 이어질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말해두고 싶었다.
'미안해' 단 세글자인 말 뿐이라도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녀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비록 그녀가 용서하지 않을 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 나는 민정이에게 누나에대해 말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얘기한 뒤에 방을 나왔다.
이제 누나의 일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녀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10년동안, 그녀에게 너무 '무관심'했었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그녀에게 알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차가웠다는 것.
나는 그것만을 느꼈다.
다행이다. 그녀가 조금은 상냥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의 누나라는 사람은 차가운 인형이 아니라서.
이제는 내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
'나'로 인해 닫혀버린 그녀의 마음을.
이제 시작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더욱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진다.
새벽, 누나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갈 수록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새벽에도 자지 않고 있음을 알면서..
민정이도 언니를 걱정하고 있다.
벌써 새벽 4시.. 그녀는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계속 기다렸지만 현관문이 열리는 적은 없었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를 안 가도 되는 날.
그래서 들어오지 않았던 건가.. 내 얼굴 보기도 싫커니와 주말이었으니까..
친구네 집에서 외박이라도 하는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은 좀 위험한 사람들한테 잡혔다든가.. 그럴리는 없겠지..
합기도 유단자니까..
민정이는 아침 일찍 친구들과 놀러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누나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오타쿠 오빠 때문에 들어오지 않은 거지, 나 때문에 들어오지 않은 건 아니잖아?"하고 쌈박하게 나가준다.
물론, 그런 말을 하면서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나는 집을 나가는 기회가 없다. 학교를 나가는 것과 장을 봐오는 것 아주 가끔씩 옷을 사러간다거나 책 등 필요한 물품등을 사러 간다는 것.
그 세가지를 빼고는 내가 나가는 것은 거의 없다.
'친구'라는 것도 없는 거지만, 무엇보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서 미연시만 줄창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가는 일도 없다.
나는 어제 말했던 민정이의 말을 생각해낸다.
'포기' '눈물' '사진앨범.' '씁쓸한 미소.'
나는 뭔가 핵심이 되는 말들을 유추해보았다.
그녀는 나와 싸운 이후, 계속 슬퍼했고 절망했다.
.
그 10년 동안의 과거의 시간을 이제서야 후회한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이제와서 후회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길었는데..얼마든지 사과할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을 알아내야한다. 왜 지금에야 후회를 하는 것인지.
나에게 '눈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는지.
그리고.. '미안해…'를 꿈에서 조차도 줄곧 말했는지..
'사진 앨범'
그녀는 사진앨범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고 했다.
사진앨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지나간 시간을 잊지않고 '추억'으로 삼기위해 남겨둔 것.
나와 그녀와의 시간은 10년동안 평행이었다.
그 10년동안의 시간이 이 사진앨범 속에 남겨져 있는 지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시간. 그것이..
마침 아무도 없다. 같은 방을 쓰는 민정이도 친구들 만나러 갔다.
나는 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가본 것이었다. 언제 들어갔는지도 이젠 기억이 안 날정도였다.
한 지붕아래에 있으면서 동시에 격리되었던 세계였다. 나에게는.
문을 열어보니 나의 기억에 존재하는 방과 차원을 달리했다.
사실 두번째로 들어가보는 것이지만 어제 밤에는 몰래 들어가는 것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여자아이답게 꾸며져있는 방. 상당히 넓다. 구석진 창고같은 좁아터진 내 방과는 다르게.
지현누나가 윗 침대를, 민정이가 아래침대를 쓰고.
방이 상당히 넓어서 책상 2개가 들어가있다.
큼지막한 옷장이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여자라서 입을 옷이 많은가 보다.
개인 컴퓨터는 물론이요 화장대에는 화장품이 나란히 진열.
역시 여자의 방이라는 것은 별 세계구나..
아니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잖아. 사진 앨범 사진앨범..
일단 책상과 붙어있는 책꽂이에 사진앨범을 찾아보았다.
사진앨범은 없고 우등생답게 공부할 교과서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취미가 독서라서 여러 소설들과 뭔가 어려워보이는 전문적인 책들이 있었다.
책꽂이에는 없다.
혹시나해서 옷장도 뒤져보았다. 옷걸이로 걸려있는 옷들이 줄줄이 있을 뿐.
무엇보다 내가 왜 뒤져본거야. 궁금하기야 하다. 여자의 옷장은 어떤 것인지.
2D 미연시 세계를 떠도는 나에게 현실의 여자라는 것은 바라지도 못하는 것이지만.
하여튼 옷장도 패스.
침대 밑에도, 책상 밑에도 다 뒤져보았지만 없다.
어디에 있는 거지..사진앨범..
침대 위에 올라가보았다. 이불과 베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두꺼운 제목이 없는 책이 있었다.
찾았다. 앨범. 침대 위에 있었네..누나는 계속 침대 위에서 보았던 걸까..
나는 조심스레 앨범의 첫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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