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1화 (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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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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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마음이 무겁기 그지 없다.

하아..나도 조용하게 보내고 싶었는데..벌써 선생들에게 찍혀버렸다.

아니, 정확하게 '노려지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지.

나를 내쫓아보내려고 안달이 난 상태인 인간들이니까.

일단은 학교에서의 행동을 좀 더 주의해야겠지. 졸업장은 따야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나를 구해야되는 문제가 우선이다.

다른 트러블이라도 일으켰다간, 누나의 일을 집중못하니까.

언제, 어디에서 동물들이 깨어날 지, 언제 누나의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

오직 누나의 일만을 생각하자.

그 날 저녁도 여전히 나와 민정이만이 집 안에 있었다.

대체 어디서 있다가 새벽에 늦게 돌아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은

아마 나를 보기 싫어서겠지.

당분간은 미연시 공략도 접어두자. 한 시가 급하다.

일단은 민정이랑 누나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아무래도 친하니까 뭐라도 알겠지.

"민정."

"왠 일로 나를 부르네 오타쿠오빠가."

"어이. 비웃지말고.."

"무슨 일 인데?"

"요새 지현누나가 이상하다고 했지?"

"응.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어?"

"그러니까 뭘."

"요새. 그러니까 일주일 전 쯤부터 소상히 누나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어?"

"왜 오빠가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 건데..?"

실수했다.

민정이가 나와 지현누나의 일에 대해서 알 리가 없다.

게다가 어제는 누나의 일에 관심없다고 단칼에 말했다.

갑자기 관심을 가지니..당연히 이상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아니..그냥..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냉정한 누나가 '미안해…'라고 한다든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일단 얼버무려 보자.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상냥한 사람이야. 오빠가 몰라서 그래."

상냥한 사람..? 그건 또 무슨 뜻일까?

"냉정한데도..?"

"그건 '오빠'한테만 그런거야. 하긴, 이런 오빠를 보면 따뜻하게 대해 줄 리 있겠어? 차라리 비웃고 냉정하게 대하지."

할 말없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대할 때에도 차갑게 느꼇을지 몰라도 알고보면 매우 사려깊고 배려심있어. 오빠가 언니랑 대화를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이나 나나 언니는 '상냥하고 좋은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

"어떤 면에서..?"

"글쎄.. 그러니까 겉으로는 쌀쌀맞고 냉정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알고보면 그것이 모두 그 사람을 배려해주기위해서한 행동 일까? 언니가 냉정하긴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실제로는 안 그래."

"…"

"그리고 언니는, 감정표현 같은 거 왠만해서는 보여주지 않아. 그게 어색한 건지 일부러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자매인 나한테도 딱딱하게 말하는 걸? 그런데 요새 자고있는데 울고있다거나 '미안해…'라고 자꾸만 말하고 있거나 그런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들어."

"그렇군.."

"그리고 기억해?"

"뭘?"

"언니가 예전에는 감정표현을 잘했다는 거."

"뭐?"

"언니, 어렸을 때 정말 잘 웃었어. 내가 어렸을 때여서 그랬지, 그 때 언니 엄청 어린 나한테도 무척이나 잘 대해주었는 걸? 현재처럼 딱딱하게 굴지 않고."

"…"

"그런데, 웃는 것이 갑작스럽게 멈춘 것 같아. 내가 한 6살 때 쯤이었나..그러니까 오빠가 그러니까..'회색빛 눈'으로 된 시기 쯤에..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

"어떻게..?"

"그러니까..쾌활하게 대했던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차갑게 변했어. 그러니까..말 수가 많이 없어지고 혼자있는 걸 좋아하게 되고, 쌀쌀맞는 말투로 대하는 거. 게다가 오빠한테는 너무도 차갑게 말해서 내가 솔직히 놀랬어."

"…?"

"오빠랑 언니, 무척이나 친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바뀔 수가 있는 건지..

오히려 이런 것은 오빠가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나를 대하는 태도랑 오빠랑 대하는 태도랑 극과 극이라는 거. 하여간 둔해가지고는..역시 폐인이고 잠 못자는 오타쿠야."

"…"

"오빠 조금 가족에게 관심이라도 가져봐. 아무리 미연시가 좋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가상'의 것이지 '현실'이 아니잖아? 그리고 언니의 일주일 전부터의 일을 설명해달라고 했지?"

"…그래."

"사실 별 일은 있어 보이지는 않았어.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뭐라고 해야할까..

그래..뭔가 '포기한다'는 분위기였어. 그러니까. '절망'이라고 해야되나 멍하니 있는 일도 잦아졌고, 밤마다 '사진앨범'을 쳐다보다 씁쓸히 웃어보인다든가 어쨋든 굉장히 우울해보였어. 언니는 내가 위로를 해줘도 그냥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기만 하고, 그리고 갑자기 오빠에 대해서 계속 물어봐. 그래서 내가 어제 오빠랑 무슨 관련있냐고 얘기한거야."

"나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고?"

"질문은 뭐..오늘 정우가 뭘 만들었어? 랑 정우랑 뭐 무슨얘기했어? 랑 그리고..."

"계속 얘기해."

"오늘 정우의 기분이 어떠해보여? 랑 혹시 나에 대해서 뭔가 말해주지 않아? 뭐 그런거. 그래서 질문했어. 혹시 오빠랑 무슨 일 있었는지. 그랬더니 언니는 그냥 미소만 짓더라. 그 너무나 어두운 미소. 솔직히 뭔 일인지 모르겠어. 오빠랑 언니가 서로 무슨 일 있는지 하고 이렇게 묻는 거. 솔직히 얘기해줘.오빠랑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얘기해줄까하고 생각했다. 자신과 누나가 싸웠고 자꾸만 누나가 과거의 일에 대해 잠에서 잘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얘기해 줄 수는 없다. 이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혼자서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누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나였으니까.

10년동안의 일에 대해서 누나는 속죄했지만, 나는 그것을 끝까지 속 좁게도 받아들여주지 않아서 누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

다른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시켜서는 안되었다.

오직 혼자서, 이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아니…아무런 일 없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 뿐이야. 그런데 별 일이네..누나가 나에 대해서 물어보다니.."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야..하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기억해줄래?"

뭔가 의심스럽다는 눈길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수긍을 해주었다.

"뭘..?"

"언니랑 오빠가 사이가 안 좋아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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