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3화 (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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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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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교시의 종이 울렸다.

의자를 들어올리고 저마다 우리반 놈들은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몇몇은 동아리. 몇 몇은 어느새 친해졌는지 pc방에 가자고 하며 친분을 돈독히 하고 있고..

나는 뭐.. 귀가부지 귀가부. 하지만 자꾸만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싫었다.

"지현누나가 초조해 하고 있었다.."

내가 옥상에서 교실로 돌아온 이후, 반 애들이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낚시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후우..어쩐다..? 집에 돌아가서 민정이 밥은 해놓아야 될테고..청소기도 밀고..걸래도 빨아서 바닥을 닦고.. 완전히 주부아니야 나?

일단은 장을 봐둘까..하교 교실 문 을 나섰다.

늦겨울인데도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입김을 불어서 추운 손을 조금이나마 녹여볼려고 하지만, 역시 내 손은 동상 걸릴 것만 같다.

내가 옥상 에서 자고 있을 때만에도 햇살이 들어와서 따뜻했는데 말이지.

오후 4시. 나는 교실 현관문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오늘 장 봐올 것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어째 왜 교문 앞에 사람이 몰려있다냐?

진로방해야 이거.

나는 꾸역꾸역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가면서 교문에서 탈출하려고 안간 힘을 써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턱하니 내 손을 잡는다. 응?

그리고 왜 주위의 시선이 나한테 쏠려있는거지..헤헤..내가 인기있는 건가?(이러고 있다.)

그러기에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데. 누구야 내 손잡은 사람.. 설마.. 에이 아니곘지..

"정우."

고개를 로보트처럼 끼긱끼기긱하고 천천히 돌려보니까 ....!!!!였다.

검정색의 기나긴 생머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넋 놓고 바라볼만한 외모.

사람 많은 곳에 가면 100%연예사업 종사자의 눈에 들어올만한 사람.

내 손을 잡고 있던 그 사람은 바로 나의 누나. 지현이었다.

아..이래서 사람이 많았구나..지현누나 한 사람 보려고. 그런데 이게 아니잖아!!!

지금 나는 지현누나와 거의 절교상태다. 아무 말도 하지도 않았고(원래부터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나는 누나한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다.(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내 손을 잡고 있는거지..?

이 북적북적한 인파 속에 탈출하기 위해서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건가..

...아님 기다리고 있었나..나를..? 생각한 내가 바보다. 그럴 리 없잖아?

친동생이 손을 잡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주위의 시선들은 이 추위가 금방 따뜻해질정도로 뜨끈뜨끈하다.

이 녀석들. 분명히. 열 내고있다.

"소개시켜준다면서..!!!!"

"그런 거 였어..? 설마..금단의.."

"변태에 오타쿠주제에..감히 나의 여신을..친동생이라는 이유로.."

"언니 빨리 이런 오타쿠 손에서 벗어나세요!!"

"분명히 여신님의 약점을 잡은거야. 이놈..정말로 썩었어..이놈...."

"여신의 손을 잡다니!! 척결!!"

"척결!"

"척결!"

하하..이 놈의 인기는 정말 빌어먹을 이구만. 아주 광신도야. 광신도. 심지어 여자들까지도 내 손 빨리 치우라고 이러고 있다.

나는 뭐..존 댈린저인가? 아니..아니..그게 아니잖아..

어느 덧 만인의 악으로 각인 된 나였다. 그런데..

"가자."

누나는 말 없이 내 손을 계속 꽈악 잡은 채 나를 어디론가 끌고간다.

"어디가요!!! 설마..이 놈의 술수에 걸려서.."

"이 오타쿠자식!! 부러운 자식!!"

"여신님~~돌아와요~~"

몇몇은 계속 따라나서며 "이러시면 안됩니다."하고 옆에서 지껄이고 있다.

"따라오지마."

참다 못한 누나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깨갱하며 결국은 따라오지 않았다.

나의 손을 잡고 끄는 누나의 발걸음은 빨랐다. 뭐 배경이 휙휙 지나가고 있어. 무슨..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어디론가 계속 가고 있었다.

"아니..잠깐..어디로 가는거야."

"..."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내가 가는 방향이 너무 낯이 익다?

갑자기 발걸음이 멈춘다. 집 이잖아? 내가 하인으로 살고 있는 이 집.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살아왔던 있는 정 없는 정 들었던 집.

장 봐야되는데..나..

"누나..나 장 봐야되는데..."

"들어가자."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무표정이었다. 초조하면서 불안해했다고 뭐가 불안해했다는거야... 그리고 이대로 가다간 바로 전치 플러그 직행이다.

일단..분위기 맞춰줘야겠지..내가 아무리 성질부렸어도 맞아서 또 병원가긴 싫으니까..

나는 고분고분 누나의 뒤를 따랐다.

민정이는 집에 없었다. 분명히 이 녀석..친구들이랑 놀러가는 것이 뻔했다.

이 녀석..오빠의 위기에도 없는 타이밍은 또 뭣이다냐..

아니아니..분명히 부추길 게 뻔하지..다행이다..

"잠깐 얘기 좀 했으면 해."

"..."

뭔 얘기.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누나와는.

"장 보고 올게."

"아니. 가지마."

"...?"

"가방 방에다 갖다놓고 거실로 와."

역시 무표정. 누나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표정은 10년 전 그 이후로 한결같다.

"별로..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장 보고..좀 있다가 요리하고..나는 내 방에 들어가있을게."

그 표정보니까 더더욱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왕 사이 뒤틀어진거 더 뒤틀어져서 아예 말 한마디와 얼굴도 아예 완전히 보이지 않게끔 하고 싶었다.

가족 사이에 이런 것이 어디있냐고 묻는다면 나도 묻고 싶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관계가 뒤틀어지게 내버려두었었냐고...

왜..나를...봐주지 않았냐고..

더 이상 누나한테 비굴해 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최대한 차갑게 말했다.

제발 정나미 떨어져서 나를 좀 버려줘. 예전에 그럤던 거처럼...

그 차갑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무시하고 있으란 말이야..챙겨주는 척하지마..

'가식'적이니까..

"아니 얘기했으면 해. 너와는."

"여태까지 안 그럤잖아? 언제부터 나랑 누나가 이렇게 얘기하는 사이가 되었지?"

결국 나는 내 속 안에 꽁꽁 말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고 말았다.

나는 이런 가족.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나를 챙겨주었던 한 사람인 첫째누나의 부탁..

'더 이상..떠나려고도, 죽으려고도 하지마.'

라는 얘기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이렇게 있는다.

언제 깨질 지 모르는 이런 생활. 나는 그 한사람의 부탁때문에 무시를 받고 있어도 생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못 참겠다... 내뱉고 만다. 젠장..이러다간 울분이 쌓여서 미칠 것만 같아.

"..."

"안 그래? 언제부터 나를 챙겨줬어? 언제부터 나를 간호해줬어? 응? 맨날 밥 하라고하고,

내가 잘못헀을 때 병원비 아깝게 전치 6개월 보내버리고, 내가 10년동안 아파하고 있을 때, 정작 누나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봐줬어? 구석지고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퀴퀴한 냄새나는 방에 누가 내몰았어? 누나 아니야? 정신병원에 유폐되어있었을때에도 누가 먼저 병원에 보내버리자고 얘기했지? 누나잖아. 수 많은 자살시도에도 가출에도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변태에 미연시 오타쿠이고 사람들의 무시를 받고 살아와도 항상 내 스스로 손목을 끊고 자살하고 싶더라도, 참았어. 차라리..계속 무시하면 되었잖아. 이제와서 얘기하자고? 내가 어이가 없다. 진짜로..나는 더 이상 누나와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누나와 나는 10년동안 계속 말 안하고도 잘 살아왔잖아? 그러니까 계속하자고."

"..."

"왜 충격적이야? 맨날 말 없이 맞아주었던 동생이 이렇게 쏘아붙이니까 어이가 없어?

화가 나? 때려. 얼마든지 때려. 내가 잘못한 거니까. 이젠 아예 1년 보내버리지? 꼴 보기 싫으니까. 나도 이런 지긋지긋한 관계. 끊고 싶으니까. 나갈게. 항상 쓸모없어 했잖아?

이왕 말한 김에 당장 짐 싸서 나갈게. 둘이서 잘 살아보라고. 서현누나한테는 가출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그럼 갈게. 그동안, 18년 동안 빌어먹게도 신세졌어.

박지현."

하아~ 다 끝났다. 이제는 끝이다. 끝. 이제는 이런 생활도 안녕이고 나는 다시 집을 나가서 세상을 떠돌다 죽을까 한다. 어느 샌가 계획도 세워두었다.

내가 그전에 꼭꼭 숨겨놓았던,하고 싶었던 얘기도 모두 다 내뱉는다. 그 전에 내가 죽겠네. 이렇게 죽어도 뭐..

상관없으니까..나란 놈은 이렇게 죽어도 되니까..

회색의 눈을 얻고난 10년의 세월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으니까...

이제는 홀가분해 지고 싶었다. 맞아죽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되더라도..

나에게는 '죽음'만이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

나는 정말로 맞을 각오로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몇 초가 흘러도 몇 분이 흘러도 무언가가 내 피부를 닿는 느낌이 안 들었다.

눈을 조심스레 떠본다.

내 앞에는 눈물을 조용히 흘리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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