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7화 (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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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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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울고 있었던 나는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밤에는 악몽만 꾸고 낮에 잠을 자면 아무 꿈도 꾸지 않았던 나에게 모처럼 좋은 기억이 꿈으로 되었다.

그것은 나의 극히도 어렸을 적의 얼마 없었던 행복한 기억.

가족들과 바닷가에서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 놀았었지..

그것조차도 지금은 흐릿흐릿한 단편적인 영상이었는데.. 그 기억이..꿈으로..

날씨가 쌀쌀한데 어째서인지 나와 지현누나가 함께 모래사장을 걷고있었다.

연년생인 우리들은 그 때 무척이나 친했었다. 민정이는 너무 어렸었고 맨 위의 누나와도 나이 차이가 조금 많이 났으니까..

밤 이라 그런지 더욱 추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손을 잡고 모랫사장으로 밀려오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피하면서 서로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랫사장을 걸으며 맞잡았던 누나의 손은 너무나도 따뜻했었다. 계속 잡고 싶을만큼..

그 때 우리가 바라보았던 별이 박힌 검은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때 누나가 나에게 보여주던 미소는..너무나도 다정했다.

"으..음.."

그 미소와 함께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 덧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인 7시..

이런..민정이가 또 저녁 안 할거냐고 성질 부리겠다...일어나야지...

"깻어?"

어...? 이 목소리는...지현누나..?

"....지현누나?"

"아...미안..내가 깨웠나보네.."

어째서...왜 내 방에 있는거지..분명히..'나'를 이 방에 내몬 사람인데..

10년 전, 내가 눈을 얻게된 이후로 한번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누나인데..

분명히..나를..'버린'사람이었는데...어째서...

"왜..여기에.."

"너가..몸이 아프니까.."

....'동정'인가..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동정하는건가...

"난..괜찮으니까..방에 돌아가..여긴 어두침침해서 눈에도 나쁘니까.."

"오늘은 쉬어..민정이한테는 얘기해둘게.."

"괜찮아..얼마든지 밥 해놓을 수 있어..."

더 이상 동정하지마.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셈이야..?

"아니..쉬어..아파서 학교 등교도 제대로 안했다면서.."

"이제는..괜찮으니까..그리고..빨래도 해 놔야돼..누나도 어서 방으로 가.."

"그러니까..쉬..라.."

"괜찮다고!!!!"

"!!!"

누나에게 맞을 각오로 소리를 질렀다. 누나는 나를 버렸어.

왜 이제와서 아프냐고 괜찮냐고 동정하고 위로하고 있지?

언제부터 이랬다고..언제부터 이렇게 챙겨주었다고..

내가 진짜로 아파했을때는 차갑게 돌아섰던 주제에..

10년 동안..나는 홀로 내 방에서 소중했던 사람을 잃은 기억에 눈물을 삼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메스꺼움에 아무도 모르게 구토를 하면서..

10년 동안 보내왔어. 이렇게..

이제야 아프다고 하는게 보이니까 동정심이 생기는거야?

그래..내가 가사일을 다 처리해야 하니까.. '하인'이 아프다고 하니까 이제야 깨달았어?

나를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도 인정하지 않았으면서..가식적이게도 이렇게 위로를 할 수가 있지?

정신병원에 유폐되었을 때에도, 수 많은 가출과 자살시도에도, 혼자서 가사일을 할 때에도, 잠을 잘 수 없다는 고통에 몸부림 칠 때에도, 남과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나에게..

단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어?

단지 허울좋은 '가족'이었잖아..서로를 위하는 척하고 아무렇지않게 내버려뒀잖아..

내가 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나 그리고...

가족들도 언제나 무관심과 멸시된 시선으로 나를 욕했잖아..

왜 이제서야..나를 위하는 '척' 하냐고..

차라리 이대로 계속 나를 '무시'하면 되었잖아...?

"나가."

"...?"

"나가. 괜찮으니까. 밥은 해놓을테니까. 나.가."

차갑게 쏘아붙인다. 나에게 이런 말투가 항상 들려왔듯이, 이번엔 누나에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누나에게 보이지 않을 차가운 시선조차도..

"그래도..."

"나.가."

"..."

화가 날 만도하다. 이렇게 개기는 동생은 처음보니까..

때릴건가..? 그래..나는 얼마든지 누나한테 맞아주었으니까..아무 불만없이..

성질나서 욕하겠지..언제든지 욕을 들었던 나니까..

때려라. 그래야 누나답지. 나를 항상 무시하고 차갑게 굴었던 누나의 모습.

그게 바로 '참모습'이지 않아?

그것은..내가 꾸었던 꿈은.. 단지..'과거'였을테니까..

이제 더 이상..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던 누나가 아니니까..

"역시..원망하고 있었구나..나를.."

원망 안 할리 가 있겠어? 이러고도 내가 좋아해준다면..내가 병신이지..

나는 가족의 틀에 둘러쌓여서 거짓의 가족놀이를 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하인취급이나 다름없잖아? 무시와 능멸 그런 시선들로..나를 보잖아?

특히 누나는 더더욱.

"..."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결국 말할 수 없었다.

"...알았어..잠 자는데..방해해서..미안해.."

누나는 그런 말을 하고 조용히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그런 누나를 보자 나는 속이 조금이나마 후련해져서 얼굴이 조금 풀린 채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나는 보지못했다. 방문을 나선 누나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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