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6화 (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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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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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이 영화관에서 상영되듯 나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보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아직도 구토를 하고 있는 거 보면...

잠깐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씻는다. 머리를 차갑게 만들기 위해서.

얼굴을 씻고나니 개운해진 듯 한 기분이 든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나 만이 존재하고 보이는 이런 세계. 적응해야 될 때였다.

미연시 히로인 공략을 할까..하고 생각을 했지만, 접었다.

조금이나마 잠을 자두어야 했다. 나는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

불면증. 나는 항상 밤을 지새운다.

밤에 잠이 들때마다, 나는 멈추지 않는 악몽에 잠을 잘 수 없으니까.

회색빛 눈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생기게 된 악몽들.

짙은 다크서클과 피로에 젖은 눈. 민정이는 어릴 때 뭐라고 했더라..?

아..'팬더'. 다크서클이 생기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별명.

눈과 다크서클을 가리기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게 되면서 나의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제는, 나의 얼굴조차도 기억 못하겠지...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구석진 방에 내몬 것은 상관없었지만, 나는 그들이 나의 얼굴조차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에 씁쓸해졌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는 사람모양을 한 '하얀 종잇장'에 불과했으니까..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다시 과거의 기억이 상영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신병원을 전전했고, 몸도 약한 데다가 말수도 별로 없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가족들도 이러한 나를 무서워했다. 그들은 나의 '눈'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니까..

외톨이.

그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에게도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조금은 과거의 기억에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물이 줄기가 되어 침대의 이불보를 적시고 있을 때마다..

그렇지..나는 항상 이렇게 쓸쓸히 울고 있었지..하고...

할머니를 잃고나서는 더더욱 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 사람..조금이나마 나의 외로움을 알 수 있었는데...

"왜 울었니?"

"네?"

"눈물자국이 있구나. 무슨 일이 있니?"

"아..아무것도 아니예요.."

"내가 이런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말야..슬픈 일이 있을 때에는 눈물을 흘려도 된단다."

"무슨..말씀..."

"아니..그저 세상을 조금 산 늙은이의 무심코 한 헛소리라고 생각하면 돼.."

"..."

"이 가게를 한 지 어느 덧 몇 십년이 흘렀는지..나는 이 가게를 통해서 사람을 많이 만날수 있었단다. 그래서 조금은 '아 이 사람 조금 화난 상태구나..'라거나 '이 사람 조금 급하구나..'하고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단다. 세월의 힘이 이런 것인지 하고 말야.."

"..."

"그래서 반찬을 사러오는 너를 볼 때마다 너는 항상 억지로 웃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어.."

"..."

"그래서 있지..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보인단다. 너가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

"남자는 일생에서 세 번운다고 하잖니? 하지만 그것은 아니란다...그런 것을 참고 있을 때마다 오히려 마음을 망가뜨려버려서...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게 된단다."

"마음...?"

"그래..마음..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마음.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들을 믿을 수 없게 돼. 자기의 '마음'에 있어서..누구보다도 솔직해져야 되는 자신인데 말이지.."

"..."

"억지로 참고 있지 않아도 돼. 이런 할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도..적어도.."

나는 그런 얘기를 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오는 눈물과 함께...

할머니는 이러한 나를 다가와서 조용히 안고 있었다. '옳지..옳지..'하고..

그렇게 나의 외로움을..나의 슬픔을 달래주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면서 반찬들을 사 갔고 이것이 '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에게도 형제들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

하루의 많은 시간들을 일부러 그 구멍가게에서 보내곤 했는데...

그 때, 생애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러한 곳과 그러한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영혼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상실감.

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의 참담한 현실..

밀려오는 과거의 후회와 외로움과 고통에 얼룩져서 피폐해져버린 내 자신..

그렇게 나는 잊지 못한 채, 혼자 밖에 없는 방에서 나 홀로 이불에 눈물을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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