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5화 (5/318)

0005 / 0318 ----------------------------------------------

Part 1.

===========================================================================

그런 사건이 생긴 뒤, 나는 며칠동안 집을 나오지 못했다.

집을 나가면, 거리로 나가다보면 언제든지 사람들의 몸 안에서 동물들이 뛰쳐나오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잔인하고 충격적인 광경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가족들도 이런 나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정신적공황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더 이상 내 주위의 사람이 터져나가는 꼴을 보기 싫었다.

이런 눈을 가지게 되면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 거지..

나는 책상에 있던 샤프로 내 눈을 찌르기까지 했다. 차라리 실명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면서...

고통스럽다. 내 눈에 피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가족들이 나의 자학하는 것을 보자, 바로 병원으로 후송되고 사지가 묶인 채로 아무 것도 행동 할 수 없었다.

정신병원에 유폐되어 몇 개월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그 날의 광경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구토를 하고 난 뒤,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돼지를 바라보았다.

그 돼지는 천천히 나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렵다. 이 돼지 설마 나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오지마...오지마...하며 슬금슬금 뒤로 한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더 이상 뒤로 빠질 수 없게되자, 나는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나의 비참하고도 쓸쓸했던 인생..이제야 죽는 구나..하고..

그 돼지는 그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나선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왜 그러는 거야?

아무 말도 없었다. 하기야..동물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리가 있겠는가..

그저 그 돼지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어떡해했으면 좋겠냐고..오지 말라고..얘기를 해봤다.

두렵다.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이런 동물이 이렇게나 무서울 줄은...

돼지의 눈동자는 무심했다. 검디검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눈동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손을 천천히..아주 천천히..돼지의 곁으로 갔다.

천천히 만졌다. 살살..하면서 행여나 돼지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돼지는 나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돼지는 어느 순간에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돼지는 쓸쓸히 걷고 있었다. 인간들이 앞에 있는 데도 투명화라도 된 듯 그들의 몸을 통과해가면서..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을 보고 만 거다.

정신병원에 머물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나'만이 볼 수 있는 그런 존재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했다.

이 '회색의 눈'은 나에게 이 세계 뒷면에 숨겨져 있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런 것이 왜 탄생하는 것일까? 왜 인간 모두에게 생겨나지 않고 일부의 인간들에게만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일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러한 광경을. 나는 보고있었다.

나는 다시 그 가게가 있는 곳을 가보았다.

어느샌가 그 곳에는 전당포가 세워져있었고 주위에 있던 길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마음을 먹고 전당포의 주인에게 구멍가게가 언제 없어졌는지 물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시체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전당포의 주인은 의아해하며, 구멍가게가 언제 있었냐고 물었다.

5개월 전이라고 얘기해주자, 그 때는 구멍가게가 없었다고한다.

단지 이 장소는 '공터'였으며, 아무도 주인이 없게 되자 자신이 이 땅을 사서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게다가 할머니의 시체는 무슨소리냐며 딴 소리하지말고 어서 가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인근 주위에 있는 동네를 돌며 그 조그만 구멍가게의 할머니에 행방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아무도, 그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았다. 그곳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는 것을..

혹시 그 날, 어느 흑돼지가 이 동네를 지나가지 않았냐고 묻자, 별 이상한 소리를 하는 꼬마라는 듯, 뭔 소리냐며 말해주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잊혀져버린 존재가 되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는...그 장소는..

아무 소득없이 동네를 돌다가 나를 찾으러온 지현누나가 나를 발견하고 내 손을 끌고 집으로 갔다.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것이라며 나는 구석진 방에서 몇 일동안이나 강제로 누워있어야 했다.

오직 나만이 알고있었다. 이런 세계와 이 세계 뒷편에서 유유히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검은동물들의 존재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