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4화 (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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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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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따로논다. 확실히 말해서.

아니 사실을 말하긴 말했는데..이건 뭐...선생님한테 친구 잘못을 일러바쳤다가 되려 내 피해만 보게되는.. 뭐 그런 상황? 그러니까..비를 피하려다가 되려 벼락을 맞는 뭐..그런..

아..이놈의 입을 어떻게 꿰매지 않으면, 이런 경솔한 짓따윈 하지 않았을텐데..

에고..후회해봤자 뭔들 소용이 있겠는가? 한번 말을 내뱉은 다음에는 다시 줍지 못하고

되돌리지 못한다는 옛 조상들의 말이 구구절절히 옳다고 느끼는 나였다.

"..."

나를 어떻게 할지 머릿 속에서 판단하고 있는건가.. 일단 이놈을 전치 3주로 할까 2달로 할까 아니면 4개월..아님 예전과 같이 6개월...

지옥의 심판을 이제는 해탈의 경지로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기다린다.

개학식날 부터 학교 땡땡이다. 게다가 아까전에는 '개교기념일'이라고 대놓고 거짓말을 해놓았다.

부모님없어서 자식이 이런 꼴 되었다는 소리를 절대 듣기 싫어하는 지현누나였기에

가족들이(특히 지현누나와 민정이)쓸모없어 하는 나에게도 포기하지 않고 엄히 한 소리한다.

이럴 때 뿐이었지만 말이다.

"...몸이 아팠냐?"

얼래? 이상하다...분명히 판단했다가 이단발차기라도 날려준 다음에 고문(?)을 할 줄 알았는데...아침에는 유독 초예민한 지현누나가..어떻게?

"그...그렇지...뭐...나야..뭐..항상..아프니까.."

"그래...너는..항상 아팠지..쓸모없게도 말이다.."

"..미안.."

"사과는 왜 하냐?"

"아니..그러니까..뭔가..사과를 해야 될 것 같아서..누나는 이런 거 엄청 싫어하잖아?

학교 생활 잘 하고..남 한테 부모없는 자식들이라고 욕 먹는.."

"아프면..그딴 건 상관 없잖아?"

어째 이상하다. 지현 누나 답지 않는 발언..분명히 엄하고..특히 나에게는 너무도 냉정하게 굴었다. 내가 이상한 눈을 가지게 된 10년 전부터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누나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 들어도 완벽히 귀 한쪽으로 흘릴 수 있는 나였다.

"누나.."

이게 가족의 '정'이라는 건가? 라고 순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뭐..특수한 상황인가?

"일단 쉬어.."

"아...응..."

아파서 봐준 거겠지.라고 결론을 지었다.

누나는 수능생이라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조절해서 등교하는 것은 허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에 말없이 내가 아침에 만들었던 식사를 먹고 바로 학교로 갔다.

아무도 없는 집 안..나는 다시 구석지고 냄새가 퀴퀴한 창고같은 내 방에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이런 것에 적응이 되었다. 혼자서 외로이 구석진 방에서 불도 키지않은 채 있는 것.

햇살도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 방은 너무나 어두워서 나에게는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유일한 나의 안식처. 내가 쉴 수 있는 곳. 온갖 고통과 외로움에도, 내가 살아숨쉬게 할 수 있는 이 장소.

이제는 안정이 되었다. 구토를 하면서 뱉어낼 것이 없어서 위액이 올라올 때마다 고통스럽던 식도도 안정이 되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상태가 고요한 홀로 서 있는 나무같았다.

하지만 나는, 적응이 아직도 안되었다. 그 사람의 안에 있는 동물들이 어떻게 나오는 지를.

나는 예전에, 매일 반찬거리를 사러 조그만 구멍가게에 갔다.

대형할인마트라던가 아파트 단지에 있는 슈퍼마켓 그런 것이 아닌

조금이나마 내가 터놓고 지낼 수 있던, 나를 따뜻하게 맞이하던 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

그 할머니의 안에 '알'이 깨지고 작은 동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였지만,

그런 얘기를 믿어줄리 없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매일 들르곤 했다.

그 날도 노을이 진 늦은 오후였다. 저녁반찬을 사러 구멍가게에 들어간 나는...

할머니가 뭔가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새 성장해버린 검정색의 동물,

그래..검정색의 '돼지'가 있었다. 할머니의 안에는.

나는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 광경이 너무나도 충격적이라서.

'알'의 상태였다던가, '조그만 동물'을 수도없이 봐온 나였지만 그런 검은 동물,돼지가 나오려고 하는 것은 처음보았기에 '괜찮으세요?'라는 말 한마디와 구급차를 부를 여력이 없었다.

할머니가 고통스러워하고있다. 막아야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할 지 몰라 갈피를 못 잡았다. 너무나도 돕고 싶은 마음이 필사적이었지만,

허둥지둥 그냥 발만 동동구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할머니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사람들조차 잘 오지않는 곳이었기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그 검은 돼지는 거의 다 나왔다는 듯 열심히 할머니의 안을 두드리고 있었고, 할머니는 너무나 괴로워 보였다.

머지않아, 할머니의 몸이 터졌다.

가게 안에는 폭탄이 안에서 터진 것과 같이 무수히 많은 핏방울들이 가게를 적셨고,

갈 곳없는 뼛조각과 내장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라곤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곳에 있었던 건 핏방울이 튀어서 내 몸과 옷에 사방에 묻었고 '인간을 구성했던 조각'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앞에는 할머니의 안을 두드리고 있던 흑돼지가 서 있었다.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도 자신이 머물던 공간을 제공해주던 할머니의 몸을 깨부셔버린채로 의연히 내 앞에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모든 것이 믿기 힘든 듯, 이런 어떠한 것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이런 광경을 보고있었다.

얼마 되지않아서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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