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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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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르르릉..삐르르르릉...
벌써.. 6시인가..
자명종시계를 끄며 마저 하고있던 나는 미연시 히로인공략을 잠시 멈췄다.
아..그래.. 같이 살고있는 식충이들의 식사를 챙겨줘야했기 때문이었다. 아 젠장...다 끝나갔는데..구석지고 퀴퀴한 냄새나고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창고같은 내 방에서 벗어나 부엌으로 갔다.
보글보글보글..
군침도는 소리와 함께 어제 저녁에 먹었던 김치찌개 사이사이에 공기방울이 생기고 터지고의 과정을 반복하고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낸다.
콩나물무침.김 등 간단하게 식탁에 올려놓고.. 아 맞다.. 민정녀석..계란프라이 만들라고 바득바득 얘기해놨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꺼내 톡하고 모서리에 찍어주신 후,
수타면 면발 늘리듯이 계란껍질 속에 내용물들을 투하해준다. 흠..노른자가 손에 안묻었어. 이 정도면 클리어.. 재빨리 음식물쓰레기통에 휙하고 던져주시고..
"아...오빠 일어났어?"
참 완벽한 타이밍에 파자마차림으로 부스스한 단발 검정색머리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부엌에 왔다. 우리 식구 식충이 중 한명, 내 동생인 민정.
"의자에 앉아. 다 되어가니까."
"나 별로 안먹는 거 알지?"
"예..예.."
"그리고 계란프라이는 반숙으로, 김치찌개는 많이 졸여주고..콩나물무침은 안먹어."
"예..예..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지는 손끝 까딱안하면서 이래라 저래라야..니 나이가 벌써 중3이다. 이 나이면 보통 혼자서 요리해서 먹어야되는거 아닌가? 불쌍한 오빠는 생각 안해주냐..
그나마 단 둘이서 먹는게 망정이지, 지현 누나도 강림하면 나는 뭐..
"여기. 먹어라."
"오빠."
"앙?"
"오빠 머리 좀 잘라. 무슨 폐인도 아니고..몇 년째야? 벌써 오빠 얼굴 본지 몇 년 된 거 같애."
"안 잘라."
"쳇. '변태폐인미연시오타쿠'주제에.. 그렇게 폐인같이 있다가는 여자친구 평생 못만난다?"
"아..나란 인간은 원래 평생 여자친구 못만들어."
"왜, 불면증인간폐인에 변태에 오타쿠라서? 스스로 인정하네?"
"어이어이..하나뿐인 오빠한테..오타쿠가 아니고 '미연시 매니아'라는 순화된 언어를 사용해주면 어디 덧나냐?"
"그거나 그거나. 마니아라고 하기엔 오빠 꼴이 딱 아키하바라 돌아다니는 오타쿠 꼴이라서.."
"에휴...내가 말을 말지.."
그 후로 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식사가 끝난 후, 아침부터 나에게 언어의 화살을 날려준 동생은 학교로 가고 나도
학교 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지현누나는 안일어나나? 고3 수능생이 되시는 분이 이렇게
띵가띵가 잠만 퍼자고..누나의 방에가서 깨우려고 했다가는 어느 순간에 생명의 위험이 가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냥 '뭐..알아서 하겠지...'하고 출입문 현관을 나섰다.
학교로 가는 길. 벌써 3월..나도 이제 고2인가..
나는 수업 첫날부터 빠질까하는 유혹이 몹시들었다. 어차피 학교에 가봐야 친구라곤 없는 외톨이생활..학교에서도 폐인오타쿠라고 각인되어서 학교가봤자 어느 길가에 버려져있는 쓰레기를 보듯이 나를 멸시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들..
내가 항상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뭐..취미가 취미이다보니 외톨이신세를 면치못하는 것이겠지만...그것은 내 스스로 인정하는 바였다.
길가를 걷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나를 휙하니 지나가고
지나가는 버스마다 버스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학생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몇몇, 일부의 사람들의 안 속에 있는 '알'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한명에게는 작은 새끼동물이 보였다.(그 동물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 또.. 속에서 메스꺼움이 밀려오고 있다. 우욱! 하고 길가에 토를 해버리면 안되었기에 재빨리 인근에 있는 지하철역 화장실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헉헉..
결국 변기에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안정이 되었다.
어느덧 이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맨날 길가에 사람들의 안에 있는 '알'을 볼때마다..
특히나 몇몇 사람들의 안에 있는 '동물'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 속에 그런 것들이 있는지 모르고 편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는데,
나는 빌어먹게도 그 '알'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얼굴을 씻으며 화장실 거울에 머리를 잠시 걷어보인다. 피로가 겹겹이 쌓인 얼굴에 눈가에는 불면증으로 인한 짙은 다크서클...
마지막으로..나의 눈동자는 대한민국에서 보이는 여느 평범한 검정색이나 갈색이 아닌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무한 '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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