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39화 (439/458)

523화 신이 원하는 것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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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반투명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그동안 일부러 무시하고 지내기는 했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 만한 일은 별로 하지 않아서인지, 애초에 이렇게 메시지가 떠오른 적 자체가 없었다. 길이 자체가 단순히 주교들을 죽인 걸로 인한 레벨업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스탯과 직업 레벨이 나타나고, 그 아래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라 있다.

[스탯 총합 666을 달성했습니다!]

‘어느새 그렇게 쌓여 버린 건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유치린의 후회 2차 개방.]

[추가 특전 :〈파동〉을 획득합니다.]

- 놀랍군요. 당신이 지금까지 쌓은 힘은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릴 정도 입니다! 공간을 수축시키고, 폭발 시키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수축과 팽창! 리듬에 맞춰서 그 파동을 활용해 보세요!

‘ 으음.’

기이한 메시지에 조금 당황한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 특전.

베트라스의 차가운 달과 나란히 있는 녀석이었다.

‘베트라스가 달의 신이었으니까••…

유치린은 어떤 존재일까.

동급의 잊힌 신격일 가능성이 높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메시지를 보고 살짝 긴장했지만.

기다려 봐도 딱히 말을 걸어오는 건 없었다.

‘하긴, 베트라스도 한참 힘을 쓰고 나서야 튀어나왔고.’

괜히 주위를 돌아보다가 다시 상태창을 확인했다.

〈파동〉이라는 글자에 집중한다. 허공에 무언가 생겨난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어떤 중심이다.

‘무슨 추… 같은데?’

추를 감각하며 살짝 들어 올린다.

‘이런.’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마력이 소모된다. 웬만큼 강한 녀석이라도 몇 초를 감당하지 못할 마력이다. 높은 스탯 총합을 요구하는 게 자연스러울 법하다. 오히려 666이라는 스텟 총합조차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중심을 들어 올리며 생각한다.

‘연결되어 있군.’

새로 느껴진 추는 주위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모든 것은 떨리며.

떨릴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어진 상태였다.

‘땅도, 바람도, 소리도… 빛도.’

하지만 모든 것과 엮인 상태로 추를 들고 있는 건 몹시 어려웠다.

- 우우웅…….

검기를 전개하고, 그것과 보이지 않는 추를 연결시켰다. 딱히 깨달음이 필요한 응용은 아니었다. 그저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것까지 모두 특전의 범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살짝 눌렀다가.’

검기가 움직인다.

‘푼다.’

수면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처럼, 푸른 검기가 추를 중심으로 일렁이며 방사형으로 퍼져 나갔다.

- 토토톡톡!

평범한 인간들보다 수십 배의 강도를 지니고 있었던 주교들의 시체가 마치 부푼 방울들처럼 터지며 아예 소멸되어 버렸다. 푸른 검기는 출렁 이며 계속 사방으로 뻗어 갔고, 찰나에 신전을 절반쯤 부쉈을 때 나는 서둘러 검기의 파동을 회수했다. 제어하지 못해서 와들루스를 깨운다면 몹시 곤란해진다.

‘그나저나… 엄청 강하잖아?’

범위가 넓어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속도와 파괴력이 급증했다. 게다가 파동이 지나가는 곳을 내가 마치 촉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예전에도 인벤토리를 이런 식으로 조종하려면 할 수야 있었겠지만, 훨씬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움직였던 〈추〉를 조금 더 감각하다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졌다.

‘수도.’

먼저 쳐야 할 녀석들은 그곳에 있다.

신흥 종교를 이끄는 루비아에게 가장 위험한 건 그레이시엄과 주교들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세계는 반복되고 있다. 미래는 확정되지 않은 것이어서, 끊임없이 변동되면서 , 비틀어지면서도.

어쩔 때는 수많은 이벤트가 어떤 한 점을 향해서 수렴되기로 한다.

이를테면.

네크론 신사회가 루비아를 죽인다는 것. 그건 몇 번씩 반복되어 왔던 세계다. 몇 번의 회귀를 거듭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하고 변주되었던 이야기.

루비아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 가능성을, 이번 세계선에서 종식시킨다.’

황야를 넘고 모래폭풍을 지나쳤다. 사막의 가장자리에서 품속이 작게 진동했다.

〈예메라의 주교들이 수도에서 사라졌다. 가능하다면 그들을 추적해라. 사라진 회색 추기경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조사해 보고하도록 해라.〉

바람에 부서지는 흙덩이들이 내는 푸석푸석한 소리가 비웃음처럼 들렸다.

‘조금 느리군.’

네크론의 지부를 이미 모조리 파괴한 탓인지, 비브리오에게 들어오는 정보에 약간 지연이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믿을 건 나뿐이라는 건가.’

- 파앗!

노을이 질 때쯤 수도의 성벽을 넘어섰다. 전쟁 중이라도 수도는 멀쩡한지,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여기저기 불이 켜지고 있었다. 예전에 비브리오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정신오염에 당했던 시절 소개 받았던 네크론의 본부로 곧장 날아 갔다. 혹시나 했지만 비브리오는 없었다.

‘일이 쉬워지겠군.’

학대당하는 포로들이 갇힌 곳과 상태를 확인했다. 괜히 쇠약한 자들 앞에서 피를 뿌렸다가 휘말리게 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일단 전당으로 걸어갔다.

- 딩딩딩!

소집종이 매달린 줄을 당겼다. 애초에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고, 나름대로 삼엄한 경비로 지켜지고 있는 소집종이다. 네크론의 최고위 서열이라고 해도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브리오 정도는 되거나, 정말 비상한 이유가 있을 때나 당길 수 있다.

물론 그런 것들에 방해받을 리는 없다.

- 땡땡땡땡!

소집종 줄이 끊어지도록 연거푸 당기고, 정해진 장소로 향한다. 넓고 사치스러운 전당에 곧장 불이 켜진다. 나는 다가오는 녀석들을 바라본다. 서서히 전당이 채워진다. 소집에 응하는 건 비브리오가 정한 의무였다. 거기 빠질 만큼 간 큰 녀석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종을 울린 건데?”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들을 한곳에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죽이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다.

[참회 lv.1 을 사용합니다.]

[대상 : 171 개체.]

[강제 회개에 진입합니다…….]

마력이 쑥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으어어어… 으이히히히히히… 히히… 우히 히히……

“요, 요, 히히, 히히히   끄흑! 끄히히힉! 끼히익!”

웃음도 절규도 비명도 모두 부서진 채 사방에 흘러내렸다. 그들은 부서지고, 다시 부서지고, 도망칠 곳도 없이 부서졌다. 다친 곳 하나 없는데 입에서, 코에서, 눈에서, 귀에서 줄줄 핏물이 스며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소스라치며 몸속의 시간들을 빼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이 몸속의 조각칼이 되어 춤을 추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 투두둑!

대부분은 두 눈이 삐뚤삐뚤 돌아 가더니 핏줄이 터져 붉게 변해 버렸다. 자기 혀를 잡고 내밀더니 마구 뽑으려다, 안 되자 단검으로 찍어 당기려는 녀석도 있었다. 입을 잡고 턱관절을 분리하더니 내장을 통째로 토해내듯 바닥에 머리를 비비는 놈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지금까지 평생 들여다보길 거부했던 죄의식을 한 번에 목격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 가운데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첫 번째 생에서부터 루비아를 쫓아 왔던 석궁이었다. 두 눈에서 피를 흘리는 그는 이미 제 몸 전체에 열 발이 넘는 볼트를 꽂아 넣고 있었다. 발등에, 손가락 하나하나에 볼트를 꽂아 넣은 그는 하나 남은 손을 어떻게 하지 못하다 이제 씹어 먹고 있었다. 모두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미사 같았다.

‘이건 곤란한데.’

아예 정신 나가 버린다면 고문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했다.

‘힘을 조절해야 되는 건가?’

고민에 빠져 녀석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도중이 었다.

- 쉬시시싯.......

회개하던 녀석들 가운데 여섯 명의 동공이 샛노랗게 곤두섰다. 붉게 터진 눈 속에서 뾰족하게 선 노란 불은 기묘하게 보였다.

‘ 으음?’

— w •

“%#*%#*%#9……

- 우득! 우드득! 잔뜩 등을 구부리고 킥킥대던 자들의 척추가 문득 물렁해졌다. 피부에서 무언가가 빼곡하게 서는 듯 의복이 펄럭펄럭했다. 의복이 덮지 못하는 부분에 뾰족뾰족 일어난 비늘이 보였다. 그들은 배를 땅에 대고 쉬시식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였다.

‘이런?’

아예 머리까지 세모꼴로 매끈하게 변한 녀석들은 그대로 바깥으로 도망치려 했다.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처음 이 장소에 들어섰을 때보다 놈들의 신체 능력이 최소한 몇 배는 증폭된 게 느껴졌다.

‘검빙.’

여섯 마리 뱀은 한순간에 얼어붙어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 얼어붙은 녀석들을 툭 치자 그 상태로 반으로 갈라졌고, 몸 안쪽은 정말로 거대한 척추 하나에 무수한 얇은 골격들이 둥그렇게 붙어 있었다. 폐마저 뱀처럼 하나로 붙어 버린 상태였다.

‘참회는 종족이 인간이어야 하는 건가……

뇌까지 완전히 대체되어 버린 이들 에게는 무효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 시점이라면, 비브리오가 고위 서열들에게는 힘을 나눠 주는군.’ 예전에 이들을 소개받을 때는 아직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이 정도 변화가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뱀 인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데서리와 함께하는 루비아가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이것들을 없애러 온 건 현명한 결정인 것 같았다.

“슬슬 가 봐야겠군. 이제 너희도 죽어라.”

- 화르르!

[특전 : 잿더미의 무덤을 발동합니다.]

가볍게 쏟아낸 업화가 전당에 모인 참회자들을 태웠다. 자학이 닿지 못하는 부분까지 꼼꼼히 태운 업화는 차가운 돌에 닿아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마지막을 확인하고, 곧장 수도 외곽의 산으로 날아갔다.

결코 놓치지 않고 처리해야 하는 곳이 있었다.

새까맣게 나무들이 죽어 있는 지역이 보였다.

위에서 보자, 구조가 한층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애벌레 사육장.

비브리오가 직접 관리하고 종종 순찰까지 하곤 하는 장소.

마력을 느끼며 천천히 내려갔다.

좀처럼 서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풍경이 보였다.

애벌레들이 언제나처럼 인간을 꼭꼭 씹어먹고 있다. 동부산맥에서 보아온 것 같은 인간들, 수도의 부랑자들, 전사한 병사들, 너무 많은 걸 알게 된 황궁의 시녀, 시종들, 황실에 반기를 들어 멸문당한 귀족들. 그들은 모두 평등하게 쌓여서, 연녹색 점액이 피부에 흘려지며 씹어먹히고 있었다. 나는 좀 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빨이 완성되지 않은 어떤 어린 애벌레들은 두개골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축축한 내장을 힘차게 씹어 먹다가도 뾰족한 늑골은 발라내어 툭툭 뱉어내곤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먹을 만큼 먹는다는 개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쉴 새 없이 핥고, 씹고, 삼켰다.

‘ 으음.’

이들의 제작은 어쨌건 분명 인간이었던 황실의 수뇌부들도 알고 있었다.

‘태부, 광록훈, 대사농, 종사중랑….’ 그들은 이런 것까지 만드는 데 협조하면서 무엇을 그토록 원했던 것일까?

‘인류를 팔았다고 했는데.’

대가로 뭘 받기 위해서였을까?

조금 더 가까이 내려가자, 보티스의 결계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파괴해 온 다른 사육장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하게 차려진 제단이었다.

사육장의 범위를 파악하고 결계의 중심을 찾았다. 중심에는 다른 곳보다 훨씬 거대하고 거무튀튀한 뱀의 석상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비늘은 다른 곳보다 몇 배는 더 컸다.

기묘하게도 석상은 억제되듯 새까만 쇠사슬로 몇 겹이나 둘러싸인 상태였고、 슬쩍 봐도 보티스의 기호는 아닌 수많은 부적이 표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그 순간이었다.

[내가 시킨 일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 중간보고를 잊지 말거라.]

가지고 있는 비늘에서 글자가 올라 왔다.

‘보채긴.’ 방금 본부가 다 멸망당했다는 건 알고 있을까?

- 투두둑!

나는 비늘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은 부적들을 전부 다 떼어내고, 검게 물든 쇠사슬까지 하나씩 끊어 버렸다. 그리고 확보된 공간에 글자를 새겼다.

[모든 게 원활. 예메라 조사 완료. 마지막 비늘 회수 중. 곧 직접 보고 하겠음.]

그때 였다.

[조사 완료라고? 누가 멋대로 그곳 에서까지 회수를 하라고 했느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하거라!]

‘불만이 많은 녀석이군. 직접 오겠다는 건가?’

녀석의 말 따윈 무시하고 마지막 비늘을 회수한 뒤, 뜯어낸 비늘을 내려다봤다. 옅게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뿜어지는 검은 기운은, 짙어지는 노을을 발라낼 것처럼 날카롭고 음침했다.

‘지금 오고 있겠지.’

그 전에 상황을 정리해 두자.

- 우우웅…….

‘ 인벤토리.’

거대한 파괴의 영역을 상정하고.

추를 움직인다.

발끝에서, 손끝에서, 나를 중심으로 주위의 공간이 서서히 진동을 준비 하기 시작한다.

‘누르고, 누르고, 누르고……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에서 성문 밖으로 걸어 나왔던, 레안드로를 어설프게 흉내 내던 수많은 애벌레, 챈들러를 와그작와그작 잡아먹으며 그의 목소리로 말하던 애벌레들이 떠올랐다. 지금도 제국의 어떤 지휘관들은 애벌레로 교체되고 있는 중이리라. 여길 부수는 건 반드시 루비아를 위해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 방출.’

인벤토리가 출렁이며 퍼져 나간다. 가까이 있던 녹색 점액괴물과 시체들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터져 나갔다. 무언가 잘못되는 걸 감지한 건지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흠칫한 애벌레들도 있었지만,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모두 터져 버렸다. 인벤토리를 활용한다고 해도, 뇌전처럼 특정 영역에서 소모성의 힘을 일으키는 게 아니었다. 돌이 던져진 잔잔한 수면처럼, 일어나는 한 번의 진동마다 인벤토리가 쓸어가는 범위가 넓어진다.

- 콰과과광…….

파동은 사방을 모조리 잠식하며 터트려 갔다. 내가 추를 잡은 파동은 촉각이 되었다. 휩쓸어 가는 현장이 그대로 내게 인식된다. 내부 순찰을 도는 인간의 형상은 모두, 그리고 바깥에 경비를 서는 자들의 1/3 정도는 이미 애벌레였다. 비밀을 누설하거나 불만을 터트린다면 옆의 동료가 상반신을 활짝 열어 바로 잡아먹을 것이었다.

- 파밧… 파밧.......

파동은 외곽 경비들과 바닥을 쓸던 뱀들까지 모조리 소멸시켰다. 산 전체를 휩쓴 뒤 천천히 사라져 갔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것이냐?”

멀리 떨어진 아래쪽에서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백여 미터 정도 되었을 때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비브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 움직이기 위함인 듯 하반신은 굵고 거대한 꼬리로 늘어져 있고, 목도 길게 뽑아 솟아올라 있었다. 오직 중간의 인간 옷만이 어색하게 남았다.

“이게… 다 무엇이지?”

길게 뽑은 목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아직도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도의 지하 광장을 보여 주며, 여유롭고 자애롭게 짓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성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겠지만. 내가 했다고 은연중에 느끼기라도 하는 걸까.

비브리오는 무언가에 단단히 짓눌린 듯 더 이상 내 쪽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나는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조금씩 앞뒤로 길어지는 몸을.

아직 인간의 옷을 걸친 녀석의 가슴팍을 보고 중얼거렸다.

“깜빡했군. 회수할 보티스의 비늘, 여기 있던 게 마지막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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