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화 신이 원하는 것 (18)
8개월 전.
— 끼리릭.
땅 아래 설치된 장치가 움직였다. 야산 부근의 비밀통로 출구로 나온 루비아는, 착잡한 시선으로 에라스트를 바라봤다.
“후우.”
달빛 아래 조그마한 한숨이 울려 퍼졌다. 한숨만큼이나 가벼운 그녀의 머리칼이 밤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저 멀리 성벽에 낮게 걸린 조기가 휘날렸다.
지금쯤 성에서는 가짜로 태워 버린 시체를 이용해 루비아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을 터였다.
머릿속으로 그동안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온 정성을 다해 왔던 반전 활동과, 수많은 암살 시도.
그리고 루비아 자신이 깔끔히 사라지기 위해 해 왔던 준비들.
암살 시도를 끝까지 버틸 수는 없다. 막히다 보면 점점 강한 시도가 올 거였고, 황실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결국 질 게 뻔한 싸움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
아슬아슬할 때까지 버텼다.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남부의 영주 루비아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든 조직이 강하다고 해봤자 황실의 그림자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무력하게 떠나 버린 자신이 씁쓸하고, 전쟁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이 몹시 안타까웠다. 입에서 무언가가 씹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몹시 홀가분하기도 했다. 영주라는 직위, 에라스트, 유블람, 그라스미어에 갇혀 있던, 수많은 사람의 삶을 매달고 있어야 했던 책임에서 그녀는 이제 벗어난 것이다. 루비아는 괜히 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헝클었다. 민들레 꽃씨처럼 바람에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큰 짐을 내려놓자, 머릿속에, 그동안 억지로 억누르던 한 가지 생각밖에 떠돌지 않았다.
‘찾고 싶다……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다. 영주 루비아의 장례식은 치러졌다. 이제부터 뛰는 심장은, 폐로 들이쉬는 공기는, 맡는 향기는, 느끼는 촉감은 덤이다.
덤으로 사는 거다. 하고 싶은 걸 한다면.
역시.
꿈속에 나오던 그 존재를 무척 찾고 싶었다.
자신을 지켜 주던 언데드를 찾고 싶었다.
물론 그전부터 찾고 싶었지만, 영주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그녀를 누르고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 있는 걸까?’
분명히 꿈속에 나오는 무덤도 확인 했는데, 파헤쳐져 있던 걸로 보아 이미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는 게 아닐까? 레이 루비아는 확신이 있었다. 생각하면 숨이 가빠올 정도의 확신 이었다.
‘꿈이었지만……
결코 단순히 꿈 같은 게 아니라는 확신.
함께 하던 모험이, 함께 있던 장소 하나하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 해졌다. 가끔씩 감각에 파문이 일었다.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아 허공에 손을 내젓다가, 자기 손만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쉴 때도 있었다.
온몸에 새겨진 직감만이 그녀의 근거는 아니다.
‘갑옷이 없어졌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영주실의 갑옷.
아무도 그 흔적을 쫓지 못했다.
황실의 장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갑옷은 분명히 꿈속의 그것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거야.’
한번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귓가에서 쿵쿵 크게 울렸다.
하지만 루비아 쪽에서는 찾지 못했다.
영주의 자리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정보망을 가동했으나 꼬리도 잡을 수 없었다. 모험하던 장소들은 정말 루비아의 ‘꿈’대로 그 자리에 존재 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언데드에 대해서는, 모두 그런 것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볼 수 없고,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라고 했다.
생각하면 그립고 아련해지고, 더없이 편안한 기분이었다. 떠올릴 때마다 다른 건 모두 의미 없이 느껴져서 영주 자리에 있을 동안은 일부러 의식을 두지 않으려 항상 애쓸 정도 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영주가 아니니까.’
‘이제 직접 찾아보자.’
혼자 다닐 생각이었다.
그때 였다.
“영주님.”
눈앞에서 검은 망토를 두르고, 검은 복면을 쓴 누군가가 나타났다. 허벅지에는 작은 석궁을 차고 있고, 허리에는 두 자루 칼을, 뒤에는 장궁을 메고 있는 인간이었다. 언뜻 암살자인지 레인저인지 잘 구분하기 어려웠다.
“깜짝이야! 뭐예요?”
루비아는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를 보고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오신 거죠?” 그때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럼, 저희보고 해산해서 자유롭게 살라고 한다고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망토나 복면 따윈 없었고, 길고 날렵하게 뻗은 귀로 봐서 엘프의 피가 섞인 존재로 보였다. 무장은 손에 들고 있는 활이 전부였는데 무척이나 컸으며, 활대에 마법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이가 없네요 정말……. 쐐기풀의 캡틴, 엉겅퀴의 캡틴. 제가 내린 마지막 명령이었잖아요. 이제 저한테 충성할 필요 없다. 자유롭게 살아라. 어길 거예요?”
눈앞의 둘은 그녀가 암암리에 키워낸 레인저들이었다. 영지의 공식 전력 으로서 등재되지 않고 뒤에서 활약 하던 자들이었다.
“그럼 자유롭게 영주님을 따르는 것도 상관없겠지요. 저희의 자유 의사니까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 나타난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팔에 붕대를 감고 기묘하게 휘어진 곡도를 갖고 있는 남자였는데, 얼굴 반쪽이 눈을 포함해서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루비아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고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생각으로 호위도 하나 안 붙이고 다니시려고 한 겁니까?”
나무 위에서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가 지킬 수 있어요.”
- 철컥.
루비아가 소매를 털자, 저절로 소매에서 두 자루의 핸드건이 튀어 나오듯 쥐어졌다. 나무 위에 있던 여자가 말했다.
“거친 녀석을 갖고 다니시는군요. 하지만 저라면 다 피할 자신이 있습니다. 반동 때문에 쏠 수 있는 각도가 한정될 테니까요.”
루비아가 그제야 흘끗 위를 바라봤다. 보이는 것만 일곱 개의 투척 무기를 몸에 장착한 새까만 머리칼의 여자가 보였다.
“공격할 거예요?”
“따라갈겁니다.”
“어휴……. 캡틴 여러분, 설마 부하들 한테까지 말한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주군의 죽음을 전하고 모두 다 해산시키고 저만 왔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아, 당연하죠.”
루비아는 네 명을 차례로 둘러보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러면…… 그녀는 남부에서 중부, 동부로 여행하며 꿈에서 본 언데드를 찾아서 움직였다. 원하는 걸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집중하자 자유로운 해방감은 물론이고 놀라운 고양감마저 느껴졌다. 전혀 찾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언데드를 향해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배도 고프지 않고, 좀처럼 지치지도 않았다. 체력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즐거운 수색의 나날을 보내던 중.
연합과 제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엄마... 너무 힘들어.”
“그래도 가야 돼.” 여행하는 수녀로 분장한 루비아의 눈앞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전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중부, 남부를 떠나서 서쪽 사막지대로 가는 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피난 중에 커다란 무쇠팬을 걸고 밀가루 반죽을 굽고 있었다.
끼니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땔감은 어떻게 봐도 살고 있던 집을 쪼갠 것처럼 보이는 판자와 나뭇조각이었다.
그들의 살림이, 대들보가, 지붕이, 바람을 막아 주던 벽이 피난길의 땔감이 되어 끼니를 짓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쪼개진 집들이 연기가 되어 타오르는 모습이 루비아의 가슴을 그슬렸다. 그녀는 그 풍경을 무시할 수 없었다.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하얗게 갈라졌다.
“주군?”
“곤란하네요. 우리… 이제부터 조금 다르게 활동하죠.”
모든 걸 벗어던졌던 루비아는 다시 그 연기들에 매여 아래로 끌어당겨 졌다.
그녀의 여정은 어쩔 수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 수색은 퇴색하고 구제에 가까웠다. 하지만 전쟁에 괴로워하는 자들을 그냥 놓아둘 수는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시체가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이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레인저의 캡틴들은 꾸준히 상황을 보고했다.
“이상하군요. 싸울 때가 한참 지나지 않았나요?”
원래대로라면 이런 피난민들의 행렬은 간단히 휩쓸릴 확률이 높다. 그래서 루비아와 측근들은 후방을 정찰하며 피난민들을 안전한 길로 향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그게… 이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을 막는 이적의 목격과, 병자를 치료하는 성녀에 대한 이야기는 비슷한 시점에 들려왔다. 피난민들 이나, 곳곳의 마을에서도 달의 신앙을 가지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정말일까?’
성녀라는 단어에 문득 반감부터 솟아올랐다. 전쟁을 이용해서 세를 불리는 사이비라고 생각했다. 기만자는 세상에 가득 차 있지만, 그런 기만자는 특히나 더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가엾은 이들의 무지와 절망을 이용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들의 죄라고 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면 모든 걸 신의 이름으로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기만당한 자들은 죽는 순간 에조차 = 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신도 아직 강림한 적이 없으니, 거짓이라고 해명해 줄 이조차도 없다.
새로운 신흥 종교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것만큼 아무거나 갖다붙이거나, 팔아먹기 쉬운 것도 없다.〈성녀〉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은 훨씬 더한 적개심과 섞여서 루비아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피난민 일행을 서쪽으로 보내고, 그녀는 다시 전선 쪽의 마을들을 돌았다.
“으으으......”
어느 마을에나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의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군대에 차출되어 복무하러 갔기 때문에, 심각한 병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치료조차 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약품을 조달하며 그들을 도왔지만,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이상 역시 한계는 있었다.
“이런 마을이 하나둘이 아닐 겁니다.”
엉겅퀴의 캡틴이 말했다. 루비아가 착잡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며칠 전에…. 근처 마을까지…. 성녀가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곧…. 이곳으로도 오실 겁니다. 귀인께서도….
그분을 만나서 축복받으십시오….” 죽어 가던 노인이 유언처럼 읊조렸다.
“성녀 말입니까?”
하지만 노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축 처져 있었다.
“근처 마을이라면 하나뿐입니다.
가시겠습니까?”
루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라는 존재는 충분히 확인해 볼 가치가 있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얼만큼 끼치고 있는지.
벌이 주어져야 한다면 그녀가 직접 내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노인이 말한 마을로 갔을 때, 그곳은 무척 고요했다.
“사람들은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쐐기풀의 캡틴이 말했다.
루비아도 주위를 둘러봤다. 집안에서 창틈으로 홀끔홀끔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마주치려 하자 그들은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어려운 일이 있나요?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루비아가 말했다.
“성녀는 없소! 우리 마을에 없으니 찾지 마시오!
겁에 질리고 잔뜩 경계한 목소리였다.
“그렇소! 이미 마적 놈들이 죄다 털어 갔소! 성녀도 납치해 갔다오!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마시오!”
어딘가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루비아는 숙연해졌다. 레인저의 캡틴들은 모두 몹시 좋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잘 훈련된 정규군 이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마적들과 똑같이 보였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그들이 동부에서 받아온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루비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집 구석구석에 들어가 있는 농민들이 들리도록 말했다.
“우리는 가진 식량과 약품을 놓고 지금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그동안 모여서 서로를 돕고 치료해 주세요. 여러분의 성녀를 구출하고, 빼앗긴 것들도 되찾아서 돌아오겠습니다.”
- 투둑.
나무집 틈 사이로 흘끗흘끗 보이는 굶주리고, 겁먹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루비아는 한곳에 식량과 약품을 모아 놓고 손수건을 한 장 빼어 묶어, 그곳에 나뭇가지를 꽂았다.
그럼에도 아무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一
작게, 산등성이로 달빛이 비쳤다.
그건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것처럼 은은히 점멸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신경이 쓰였다.
달빛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이건… 뭐죠?”
깜빡이는 달빛은 점점 가까워지다가, 다시 산등성이를 비추며 점멸했다.
“흥미롭군요.” 말과 수레가 움직인 자국과, 산등성이에 비춘 달빛을 바라본 레인저들은 대충 계산을 거친 뒤 묘한 이야기를 했다.
“둘이 가리키는 루트가 좀 다릅니다. 마치 앞지르기 위한 길을 달빛이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마치 달이 길을 안내하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 달의 신이 보여 주는 힘일지도 몰랐다.
따라간다면.
적어도 어떤 실체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 달빛이 무언가와 관련 되어 있는 것 같은 감각이, 루비아의 발걸음을 그리로 옮기게 만들었고.
“정말 놀라운 지름길이었군요.”
“길은 길인데……
“아예 사람의 발이 닿아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허, 참.”
레인저들은 스스두- 말이 안 된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산중턱과 정상 사이에 나 있는 짧은 동굴까지 통과하는 최적의 루트였다.
최단 루트를 개척하는 게 직업인 레인저들마저 황당해할 정도의 완벽한 지름길.
‘이적인가?’
루비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때 뱀딸기의 캡틴이 커다란 활을 천천히 활을 들었다.
“마을에서 이곳까지의 원 거리를 계산해 봤을 때, 한 시간 정도 이후면 도착할 겁니다.”
그녀의 뾰족한 귀가 움찔거렸다. 모두 흩어져 느슨한 매복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한 시간이 지나자, 정말로 앞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열댓 명의 마적이 보였다. 그들은 마을들을 돌며 빼앗은 재물과 소녀를 실은 작은 수레를 둘러싸고 있었다. 루비아의 시선은 수레로 향했다.
‘저 아이가… 성녀?’
소녀는 꾀죄죄하고 바짝 말라 있었다.
열 살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거짓 복음으로 속이고 인생을 빼앗을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발과 목에 달그락거리는 족쇄가 채인 게 불편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몸에 상처는 없었다.
‘치유의 권능.’
이 거리를 저렇게 덜컹거리며 묶여 있었다면 아이의 연약한 살은 짓무 르고 벗겨지는 게 당연하다. 여태까지 했던 생각이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 했다. 묘하게도 달빛은 숨어 있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다가오는 무리만을 환하게 비췄다.
소녀를 비췄고.
그걸 둘러싼 무리를 환할 정도로 잘 비췄다.
기이할 정도였다.
매복으로써 이만한 환경은 없었다.
소녀를 포위하고 있는 이는 대부분 도적떼처럼 보였지만 무장이 튼실했고, 맨 앞에 있는 남자는 제대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약하지만 무기와 갑옷에 마법적인 처리마저도 된 것 같았다.
뱀딸기의 캡틴이 소리 없이 시위에 화살 두 발을 얹었다. 수신호가 오갔다. 둘은 장궁을 겨눴고, 둘은 그라스미어에서 만든 연노를 겨눴다. 루비아도 활을 들었다. 숨이 천천히 들이쉬어졌다. 미는 팔은 완벽하게 고정됐고, 끝까지 당겨진 시위가 튕겨지는 순간, 숨이 풀렸다.
- 파아앙!
- 타닥! 타닥! 타닥!
장궁은 적의 목숨을 확실하게 끊었고, 연발식 쇠뇌는 한 명에게 최소한 두 발씩은 꽂히며 전투력을 상실 시켰다. 10초가 안 되는 동안의 사격으로 적은 모조리 전멸했다. 호송대의 가장 앞에 있는 기사만이 몸에 화살이 박힌 채 부들거렸다.
루비아와 레인저들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기사가 입에 피거품을 물었다.
“감히 누구에게 저걸 호송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이건……
“관심 없어. 궁금하지도 않아.”
“이•…"!”
- 퍼벅!
루비아는 그대로 핸드건을 쐈다. 굉음이 들리더니, 투구째로 기사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정말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런 수준의 기사를 시켜, 이런 수준의 산적들을 이용해서, 소녀를 데리고 가서 치유 기계로 사용할 귀족들이라면 거기서 거기인 찌꺼기 였다.
“와……
“3세대 반동제어장치까지 달려 있는 물건이었습니까.”
“우리한테 말도 안 하시고 언제 그런 걸 구하셨는지……•”
‘다들 나를 너무 대책 없다고 생각 한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것도 없이 혼자 여행을 하려고 했을까.
루비아는 뒤로 뿜어진 압축공기를 툭툭 털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