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21화 (421/458)

505화 신이 원하는 것 (3)

내가 힘의 사용에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

어떻게 달의 힘을 써야 하고,타이 밍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를 슬슬 알아간다.

반년이 훌쩍 넘었으니,슬슬 몸에 밸 만한 시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한층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마치,힘을 빌려주는 달의 존재감

자체가 이 세계에 훨씬 커진 듯하다.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나는 위화감 같은 것을 느꼈다.

‘왜 몰랐지?’

곳곳이 어둡고,움푹 들어간 달의 그림자.

그건 날개 달린 황소처럼 보인다.

직관적인 인상.

하지만 밤마다 뜨는 달을 보며 그런 이미지를 떠올린 건 처음이다.

생각해 보면 나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밤마다 달을 바라보지만.

황소에 대한 전설 따위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적어도 여태까지는.

달은,분명히.

예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인식되고 있다.

둥글게 홀러내리는 달빛이 땅 위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처럼 보인다.

- 달그락.

나는 달을 보고 슬쩍 손짓을 했다.

날개 달린 황소가 히죽 웃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달이 차고 다시 기울고,가까워지고 멀어지도록.

강해진 힘은 계속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괜찮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초승달을 바라봤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왠지 나를 쫓아오는 기분이었다.

폭우라도 쏟아져서 구름에 가려진 날 다음이면.

꼬박 하루 동안 못 봤다고 서운하기 라도 한 건지 한층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쨌건 나쁜 건 없겠지.’

〈그들>과 싸우는 데 어떤 힘이건 강해지면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대륙 곳곳을 누비며 달의 힘을 쓰는 동안〈그들〉의 흔적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나타난 건 다른 녀석들이었다.

- 화르르!

연합군의 행군 경로가 뒤바뀌어, 굳이 지진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졌을 때.

- 콰광! 콰광! 콰과광!

나는 황량한 들판을 지나며 마왕의 제단을 갈아 엎었다.

불꽃의 회오리로 지표를 쓸었고 살짝 충격만 줘서 얕은 지하에 새겨진 문양들을 부숴 버렸다.

‘레라지 에인가.’

활과 부패의 상징.

새를 사냥하는 마왕.

말파스와 적대하는 사이다.

물론 이번 생에 그런 게 의미를 갖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부수는 재미는 나쁘지 않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계획이고,나만 부술 수 있는 음모다.

땅 위와 아래에 새겨진 레라지에의 표식을 모조리 짓이겼을 무렵.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네 번째야! 이번에도 제단이 부서 졌다!”

“역시 절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 었어. 마법사다. 마법사가 있어.”

“지켜라! 제물들이 격돌할 때까지 이곳에서 버텨야 해!”

“이번엔 가볍게 지나갔지만 탑주급

마법사다. 적어도 두 명은 함께 활동하고 있는 것 같군. 지진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하면 훨씬 많을 거다.”

“모두들 마법살해자를 장착해라.”

“여기서 흔적을 추적한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짙은 갈색 피부 위로 은은히 붉은빛이 도는 눈과,길고 뾰족한 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크엘프로군.’

나는 몸을 숨긴 채 녀석들을 구경 했다.

스물일곱.

얼핏 봐도 하나하나가 상당한 실력자들 같았다.

공통적으로 손목에서 팔꿈치 사이에 작은 방패를 차고 있었는데,크기는 버클러 정도로 작았지만 방패 위에 역오망성 형태로 잿빛 기운이 흐르는 게 범상치 않다.

다크엘프라는 종족 전체를 추종자로 가지고 있는 마왕인 만큼,어느 정도 축복도 내릴 수 있는 걸까.

‘저 녀석,어디서 본 것 같은데……

허리에 쌍검을 찬 다크엘프를 바라 보며 고개를 가웃했다. 녀석의 흉갑에

대각선으로 매달린 펜던트. 위는 붉고, 아래는 녹색인 보석이 은색 고리에서 흔들렸다. 그걸 보자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루틱의 인장 아니냐!〉

〈레라지에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최상위 전사들에게 수여되는 문양이다. 이런 녀석도 살해당하다니…….>

〈나는 다크 엘프는 광산 노예로밖에 취급하지 않지만,이 인장을 가진 놈들은 광산 경비대로 쓸 정도는 된다. 너도 쉽게 이기지 못할걸?〉

캐빈 애슈턴의 흔적을 쫓아.

아이작과 함께 레라지에의 성지에 진입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널려 있던 중심부에 쓰러져 있던 녀석이었다.

이제 보니 쌍검을 찬 녀석 말고도 떠오르는 얼굴이 몇 명 더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왔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다.

‘열심히들 사네……

하지만 마왕이 아무런 공양도 받지 못하고.

마계가 지상에 침투하지도 않은 지금.

그들은 전혀 나를 추격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어디 한번 찾을 수 있나 볼까 싶어 가만히 있었지만,내가 숨어 있는 쪽을 보고서도 별 반응이 없었다.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번에도 놓쳤던 말인가? 미리 대기하고 있어도 잡지 못하고,떨어져 있다가 곧바로 달려와도 보지 못한 다니……. 무슨 신이 벌이는 짓이라도 된단 말인가?”

쌍검의 엘프가 읊조리는 말에 옆에 선 궁수가 꾹 주먹을 쥐었다.

레라지에의 성지에서 골반 아래 두 다리가 날아가 버렸던 엘프였다.

“신이 있으면 신을 사냥할 겁니다.” 주위의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패기들은 좋군.’

하긴,저 정도 되지 않으면 마왕 강림을 바라며 아직까지 버티고 살아남기 어려웠겠지만.

“일단 다시 해 보겠습니다.”

땅을 완전히 갈아엎지는 않은 탓일까.

희망을 가지고 제단을 건설하는 녀석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구경할 만큼 구경하다가,그들이 떠난 뒤.

‘베트라스의 힘

- 드드드드드드득!

조금 더 깊이 땅을 밀어 버렸다.

이번에는 ‘흔적’을 얼마나 오래 찾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만 매여 있을 수는 없다.

- 파앗!

나는 일을 벌여 놓고 들판을 떠났다.

땅을 갈아엎으니 인간들의 작물

수확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루비아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인간들의 전쟁을 막은 부작용도 있었다.

산골짜기에 들어서서.

피와 내장으로 얼룩진 자그만 부락을 바라봤다.

마을 곳곳에.

별자리가 움직인 성흔들과 기하학 적인 무늬들이 조잡하게 새겨져 있다.

‘푸르카스……

이 마을은 마왕의 제단.

제물을 바친 의식의 흔적이다.

죽은 인간들은 당연히 병사들이 아니다.

전쟁에 차출도 되지 않는 약자들 이었다.

세금을 피해서 산골에 숨어 살다, 발각되어 수레바퀴보다 키가 큰 남자들은 한 명도 남지 않고 징병당한 공동체.

몇 채도 되지 않는 집.

그런 곳을,푸르카스의 추종자들은 제사에 바치고 있었다.

스물네 명이 죽어 있었다.

시체들을 살폈다.

전쟁이.

무수한 제물이 나와야 할 재앙이 벌어지지 않자.

그들은 자기 스스로가 재앙이 되어 버렸다.

정교하지도 않다.

그저 어설프게 힘만 들어간 조잡한 칼질이 다.

한눈에 봐도 가해자는 약자다.

하지만 강자를 찾자면 언제나 그보다 더한 강자가 나오듯이,약자 역시 마음먹고 자기보다 약한 희생양을 찾자면,그게 무어든 어렵지 않게

찾게 된다. 그리고 손을 뻗는다.

바짝 마른 시체들 위로 구더기들이 서로 얽혀 번들거린다.

인간에 대한 의리 같은 건 없다.

약자인 시절이 생각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죽은 인간은 고작 스물넷.

이 정도의 제물을 받는다고 마왕이 더 빨리 강림하지는 않는다.

어째서 가해자의 흔적을 따라가는지, 잠깐 고민했다.

불쾌감이 었다.

굳이 억누를 필요도 없는 기분.

해 놓은 활약 덕분인지 전쟁은 지지부진했고.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한 달에 걸쳐 틈틈이 푸르 카스의 교단을 지워 갔다.

후발 주자의 조급함인지 민간인 학살은 교단 전체의 방침인 것 같았다.

본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긴가.’

수십 명의 수호자로 겹겹이 둘러 싸여서,제단 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을 바라본다.

마왕이 강림하면 ‘발톱의 푸르카스’를 섬기는 사제들은 말단에 있는 녀석들

조차 장정 스무 명을 맨손으로 찢는다. 그러나 지금은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여기까지 왔지만 아무도 내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칼 한 번만 휘두르면 이곳의 간부는 모두 전멸.

나에게 교단이 부서지면서도, 정체불명의 적에게 저항할 힘을 빨리 얻기 위한 거였는지 민간인 살육은 오히려 더욱 활발히 벌어졌다.

본부 바로 서쪽에서도 인간을 액체로 녹여서 제단에 부은 흔적이 있었다.

소리 없이 투명한 검기를 전개한다.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수십 미터로

길게 늘이는 것도 간단하다.

어차피 이런 건 불합리하다.

내가 가진 힘도,녀석들이 하는 짓도 모두 그렇다.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빨리 끝내는 것뿐이다.

- 좌아악!

조금 긴,한 번의 절단음이 울려 퍼진다.

초조하게 제사를 지내던 교주와 간부들이 모두 잘린다.

약간의 저항감조차도 없다.

반전 같은 건 없었다.

키에 따라 목이 잘리기도,가슴이, 배가 잘리기도 했다.

궤적 안에 수십 명의 뼈가 걸렸지만 모두가 너무 간단하게 잘려 나간다.

살아남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붉은 피를,내장을 철퍽철퍽 바닥에 쏟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잘린 부분에서 피가 흐르고,흐르고, 계속 흐른다.

“ O 으1?”

뭔가 이상하다.

피분수를 넘어 아예 토막 난 몸이 쪼그라들 정도로 피가 쏟아진다.

- 좌르르르르르륵……!

그리고 쏟아진 피가 덩굴처럼 서로 얽히더니,커다란 발톱의 형상을 갖춘다.

‘설마,소환이라도 된 건가?’

〈노예들이…. 모두 죽어 버리다니….〉

거대한 발톱에 뒤이어 만들어진 닭 머리가 이쪽을 바라본다.

〈네 녀석이군…. 제단까지…. 기어 들어와…. 내 노예들을 죽인 게……!>

닭 머리라니.

모르는 얼굴이다.

다행인지 발톱의 푸르카스는 아니 었다.

나는 창백하게 쪼그라든 시체들을 바라보며 슬쩍 뒤로 물러난다.

“넌 누구냐?”

〈알 것 없다…. 이 살육의 흔적…. 상당히…. 강한 녀석이군…. 앞으로 푸르카스 님에게 귀의해서…. 모든

살해를 그분에게 바친다면 받아들여 주마…. 내 이름도 알려 주지….〉

아직 머리와 발톱밖에 없는,피로 만들어진 기괴한 모양의 닭이 경고를 한다.

‘그렇게까지 알고 싶진 않은데.’

푸르카스의 몇 번째 부하 정도 되겠지.

쪼그라든 시체가 발에 걸렸다.

결국 처음으로 마왕의 권속을 소환 했지만.

그게 자기들의 피라니 우스웠다.

어쩌면 정말,나를 잡기 위해 자신들이

죽으면 작동되는 제사를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슬쩍 힘을 가늠한다.

‘충분하겠군.’

어차피 이 교단에서 바친 제물 자체가 적다.

많이 쳐 봐야 오천 명 정도.

때려 부술 준비를 하기 전,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하나 물어보지. 마왕들은 자기가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상에 강림하는 거냐?”

〈무슨… 헛소리냐…….>

“정해진 패배를 알면서도 왜 굳이 기어나오는 건지 궁금한데.”

〈이런…. 건방진…. 16좌 전체를 너 따위가 모욕하는 거냐…. 귀의의 기회를…. 박탈한다!〉

- 좌아악!

곧바로 거대한 발톱이 휘둘러진다.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역시 마왕급과 직접 하는 대화가

아니면 곤란한가.

- 콰광!

순수한 검기로 마주했다. 앞으로 비슷한 녀석들을 많이 만날지도 몰랐다. 힘을 측정해 보고 싶었다.

- 콰광! 콰광!

핏빛 발톱이 폭발하며 날카로운 열기가 퍼져 나왔다. 딛고 있던 땅 근처가 발톱 모양 그대로 수 미터 깊이까지 크게 파였다. 충격으로

건물의 벽이 흔들리며 돌 부스러기들이 마구 떨어졌다. 계속 같은 공격이 이어졌다.

‘이게… 5천 명분의 힘이라……

적당히 막아 주고 있으면 찌릿찌릿한 느낌은 오는 정도였다.

앞을 똑바로 바라봤다. 다시 한번 공격이 날아왔다.

대충 힘의 측정은 끝냈다.

- 휘이잉!

얼음 폭풍이 불었다. 피의 줄기가 얼기설기 얽혀 만들어 낸 발톱을

새하얗게 얼렸다. 멈칫하다가,다시 끓어올라 움직이려는 피의 발톱이一

‘검빙.’

창백한 섬광에 그대로 안쪽까지 얼어붙는다. 피로 만들어진 닭 머리 까지 두껍게 새하얀 얼음이 끼며 움직이지 못한다. 끓어오르는 대로 얼리고,계속 얼린 뒤 부숴 버렸다.

〈크아아아…….>

차근차근 부숴 가자,녀석은 소환되며 피를 잔뜩 빨아냈던 시체들처럼 몸이 작게 움츠러든다.

〈여기서 날 죽이더라도…. 이건 내 편린일 뿐…. 네 녀석은 기억해 뒀다…. 진정한 강림의 날이 오면 그때 나의 주군과 함께 보자꾸나…!〉

‘그날이 오게 할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그냥 보내 주는 건 서운하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한동안 처박아 놓고 있었던 주황색 램프를 꺼냈다.

영기나 마기를 머금고 있는 물건을 부순 다음 빨아들이는 램프다.

- 과직! 콰직! 과직!

얼린 녀석을 부술 때마다,

[램프를 사용합니다.]

계속해서 램프를 들이댄다.

주황색 램프가 부숴져 가는 피얼음 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를 빨아들인다.

〈이,이따위 게…. 으,마,말도… 끄어억……!”

[현재 용량 : 1,550/5,000]

[현재 용량 : 2,150/5,000]

[현재 용량 : 2,650/5,000]

처절한 비명과 함께,꽤 빠른 속도로 수치가 을라간다.

제1좌 바알의 군단장인 이굴쿠를 빨아먹었을 때보다 훌쩍 더 오른다.

‘그 녀석보다 강하지는 않을 텐데.’

실제로 공양을 받아,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로 현신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현재 용량 : 4,185/5,000]

무려 4천을 넘긴 용량을 보며 생각한다.

정작 이 램프를 산 상점 안내나 포인트 같은 건 떠오르지 않고 있지만, 램프의 힘은 꾸준히 먹히는 모양이다.

언제쯤부터 포인트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불안정한 지역이라는 동방으로 진입한 이후였다.

그때부터 뭔가 망가져 버린 건지도 모른다.

‘…상관없지만.’

그런데 의지하는 것에는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교단을 깨끗하게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고,최근 설정해 놓은 상인 연합 포인트로 돌아갔다.

슬슬 넥스몬드의 편지가 올 때다.

포인트의 입구.

“•••읽어 주시죠.”

아무 뜻도 없는 낙서처럼 보이는 종이를 내밀면서,언제나처럼 가드가 요청을 한다.

“고객을 고르는 데는 천천히,고객을 바꾸는 데는 더욱 천천히.”

물론 종이에 그런 글자는 적혀 있지

않다.

상인들의 몇 가지 복잡한 규칙를 해석해야 읽을 수 있는 특수한 종이.

“확인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가드를 통과.

그 뒤에 자기 인증 코드를 대고 사서함을 확인한다.

예상대로 깔끔한 정보 보고서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편지는 두 매.

예상하지 못한 발신자가 한 명 섞여 있다.

‘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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