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57화 (357/458)

400화 트로이카 (22)

지독한 농도였다.

그건 빛이 아니라 끈적한 입자를 가진 액체처럼 시체에서 흘러나와 맴돌았다.

후작의 입에서,코에서, 피부에서 녹색이 흘러나온다.

그대로 두면 사방으로 풀려나서 내가 잠길 것 같았다.

“흡수해야지?”

“o으..”

재촉하는 그녀를 바라본다.

“이런 것까지… 할 수 있었나?”

“제약도 대가도 만만치 않지만, 20년에 한 번 정도라면 괜찮아.”

돌이켜보면.

대충 주운 칼을 지팡이처럼 써서, 아쥬라의 마법사들을 농락하고.

마계 침식 지역에서는 바싸고의 전 제사장을 오직 두 주먹만으로 곤죽이 될 때까지 때려눕혔다.

그것 전부가 타고난 게 아니라면.

이런 증폭된 홉수를 통해 권능을 더해 왔으리라.

하지만.

“20년에 한 번이라니… 그런 걸 본인이 홉수하지 않는 건가?”

“크크크큭……

네크로멘서가 경쾌하게 웃었다.

“당연히 〈다음〉이 보장된 녀석이 힘을 더 가져야겠지. 무엇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 그릇은 이미 꽉 찬 지 오래야. 흡수하려고 해도 더 할 수도 없어. 이건 오로지 너를 위한 거다.”

과연.

아이작은 흡수 스킬의 주의점은 계획성 없이 운용하면 곧 ‘그릇’이 전부 차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기스-제-라이 역시 예전에 자신이 가진 ‘그릇’을 전부 채웠다는 말을 했었고.

‘나만 예외라는 건가.’

정수흡수도 그렇고.

끝도 없이 가능했던 루-륨 홉수도 마찬가지다.

나도 언젠가 차오를지 모르지만, 앞으로 하나밖에 못 흡수한다 해도 녀석은 반드시 먹는다.

‘정수 흡수.’

- 우우우우웅!

진득한 녹색 빛이 젖은 풀잎처럼 달라붙었다.

황실 비역에서 〈진흙>이 내 뼈에 달라붙던 때가 떠오를 정도의 진한 실체감.

[히어로 스킬의 흡수가 완전하게 허가됩니다.]

[에픽 스킬의 흡수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허가됩니다.]

부서진 갑옷을 넘어,녹색 물길이 뼈 사이로 스멀거린다.

- 스아아아아앗!

[검술 레벨 15를 홉수했습니다!]

[영웅급 검술을 달성했습니다.]

[특전: 검주劍主를 획득!]

[당신은 검의 주인입니다.]

처음부터 강렬하다.

‘검주劍主……

결국 여기까지 왔다.

제국에 오직 넷.

지금은 셋밖에 없을 경지에.

검주 본인을 홉수하면서 닿았다는

사실에 오싹한 쾌감이 느껴졌다.

[검의 성능을 최고로 끌어을릴 수 있습니다.]

[치명타 확률이 25% 상승합니다.]

[투사 공격을 막을 확률이 75% 상승합니다.]

[공격 속도가 25% 상승합니다.]

[자아를 가진 유물급 에고 소드와 소통이 원활해집니다.]

[자의식이 강한 무기도 당신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취할 확률이 크게 높아집니다.]

‘에고… 소드?’

손에 쥔 칼을 흔들어 본다.

나름대로 황실 비역에서 아이작이 골라 줬던 장검.

하지만 대답은 없다.

이 녀석은 아닌가.

애초에 자아를 가진 에고 소드가 백 개씩 쌓여 있을 리 없겠지.

나중에 하나씩 확인하면 된다.

에고를 가진 유물급 아티팩트라면 잠재되어 있는 힘도 엄청날 거고.

그 성능을 최고로 끌어을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미묘한 기대감 속에서 상태창은 연달아 떠오른다.

이번에는 확실한 보상이다.

[검술 레벨을 만족합니다!]

[특전: 잿더미의 무덤 활성화.]

- 무기에 업화를 담아,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불타게 만듭니다.

- 불이 태우는 것은 상대의 과보 果報이기에,충분한 죄업을 가진 상대에게만 가능합니다.

죽음의 기사 특전이 개방된다.

상대의 생명이나 죄업.

둘 중 하나를 모두 태울 때까지 꺼지지 않는 업화.

- 화르르!

잠재되어 있던 푸른 불꽃이 몸을 감싸며 솟아오른다.

이걸 썼다면 어땠을까?

‘그놈은 죄업 투성이지.’

유블람에서 영주를 비롯한 타락한 인간들을 모기처럼 죽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돈 받고 별빛청여우와 나를 배에 태워 준 선량한 선장도 잔인하게 살해했다.

하지만.

스킬이 말하는 과보果報라는 게 어떤 기준인지도 모르고.

혹시나 녀석과 비슷한 기준이라면 굉장히 곤란했을 거다.

‘무조건 의지하지는 말아야겠군.’

- 우우우우옹……!

홉수를 계속 이어갔다.

[검기劍氣 Lv.3을 홉수합니다!]

처음에 후작과 대등하게 싸웠다고 생각했다.

[검기劍氣 Lv.4를 홉수합니다!]

영역을 뚫고 들어온 녀석과 서로 비슷한 수준에서 칼을 맞댔다고.

[검기劍氣 Lv.5를 흡수합니다!]

아직 차가운 진녹색 빛이 제대로 줄어들지도 않은 시점에서.

[천변券述의 장에 진입합니다.]

[검기의 농도와 압력이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그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이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검기劍氣 Lv.5?

이미 후작은 이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검기劍氣 Lv.5에 도달했습니다!]

[죽음의 기사: 잿더미의 무덤이 적용됩니다.]

[무기가 아닌 검기劍氣 그 자체에 업화를 담을 수 있게 됩니다.]

어쨌건.

[특전: 검염劍炎을 획득합니다.]

‘•••검염.’

- 쿠콰콰콰콰!

검기 자체가 불타오른다.

수 미터에 달하는 검기의 불길.

화염 속성을 인첸트한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이다.

‘수십… 어쩌면 수백 배……

화염과는 물론.

검기와도 다르다.

태울 수 없는 것도 태워 버리고, 부술 수 없는 것도 부숴 버린다.

- 쿠과과! 쿠콰콰과!

칼을 좌우로 휘둘러 본다.

공기를 부수며 울리는 폭발음에

네크로멘서가 경탄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 꾸르르르..!

[검술 레벨 16를 흡수했습니다!]

몸이 마모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수가 격렬하게 스며든다.

[검술 레벨 17를 홉수했습니다!]

달려오기 전 이미 닿은 경지인지.

아니면 나와 싸우는 도중 을라온 경지인지는 모른다.

[검술 레벨 18을 흡수했습니다!]

[백연白范의 진眞에 도달합니다.]

[신검합일이 완전해집니다.]

분명한 것은.

[검술 레벨 19을 홉수했습니다!]

[청매靑牧의 정定에 도달합니다.]

[어검의 기초가 완전해집니다.]

기스-제-라이가 용의 힘까지 써서 기습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훌러갔을지 모른다는 사실.

[탐지 Lv.2를 홉수했습니다!]

[탐지 Lv.3…….]

[탐지 Lv.ll을 흡수했습니다!]

[탐지 Lv.15를 홉수했습니다!]

[심안心眼(A플러스)을 홉수합니다!]

[어떤 감정 상태라도 그에 맞춰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발동됩니다.]

[약점 포착 Lv.2를 홉수했습니다!]

[약점 포착 Lv.12을…….]

[약점 포착 Lv.15를 흡수했습니다!]

[회피나 방어가 없을 경우 근거리

명중률이 100%로 고정됩니다.]

[적의 방어를 75% 확률로 무효화 시깁니다.]

[적의 회피를 75% 확률로 끝까지 추적합니다.]

이런 녀석과 싸웠다니.

몇 번이고 걸려들었던 입장에서 묘한 기분이었다.

[위압 Lv.l를 흡수합니다!]

[위압 Lv.7을 흡수합니다!]

[추적 Lv.l을 홉수합니다!]

[Lv.2....]

[추적 Lv.15를 홉수합니다!]

[특전을…….1

[•••를 홉수합니다…….1

끝없는 흡수의 향연.

- 스아아아아아!

땅거미에 얽힌 녹색 심장이 빛을 뿜어낸다.

[히어로 스킬: 호신강기護身剛氣를 흡수합니다.]

[히어로 스킬: 망아지경忘我之境-뇌雷를 흡수합니다.]

[히어로 스킬: 섬예적총的宅的友을 흡수합니다.]

- 쿠우우우우우우!

진녹색 정수가 흘러나와 나에게 스며든다.

하나하나와 동화되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이제,벽 너머의 세상.

번번이 가로막혔던 흡수 스킬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에 픽 스킬: 템페스트 Tempest 가

잠재적으로 흡수됩니다!]

[최소한의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스스스슷

[에픽 스킬: ‘세 걸음의 간격’이 잠재적으로 홉수됩니다!]

[최소한의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건 좀 걸리려나.

마지막으로 두 스킬을 흡수하자, 시체에서 서서히 녹색 빛이 사라져 가기 시작한다.

남은 건 용화龍火에 반쯤 타 버린 남자의 시체뿐.

‘마무리인가.’

그때 였다.

-위이이이이이잉…….

엉뚱한 곳에서 들리는 소리.

[시작값 연산 완료.]

[인벤토리 작동…….]

[영자 연산 개시.]

‘무슨… 일이지?’

- 파직. 파지지지직.

인밴토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호신강기護身剛氣 습득 보류.]

[섬예적총的宅的究… 보류.]

[망아지경忘我之境… 보류.]

[보류,보류,보류.]

후작에게 흡수했던 소중한 스킬이 하나둘 다시 뱉어지고 있다.

기스-제-라이가 마련해 준 홉수.

귀중한 스킬들이 보류된다는 것에

놀라서 손을 뻗었다가.

‘아니야.’

다시 거둬들인다.

녹색 정수는 내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흡수하려 해도 〈내 것〉인 이상 그럴 수도 없는 상태.

[서브 섹션 측정.]

[가상 공간 매핑 중.]

[과부하 가속.]

- 파지직! 파직!

[영자 손실 감수.]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아이작이 뭔가 하고 있는 걸까?

‘연산’이라면 녀석이 인벤토리에 남겼던 의지밖에 없으니.

‘의지’는 습득 스킬을 판독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작동해서 스킬을 최적의 것으로 변환했다.

[〈영역〉블록 최대화…….]

[사분을 과부하 중.]

[블록 영구 스킬화 진행…….]

하지만.

레안드로 폰 바티엔느의 검술보다 강한 게 있을까?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에픽 스킬 두 가지는 아직 활용이 불가능한 상태.

‘깨달음이 필요하댔나.’

다운그레이드가 될지도 모른다.

[전 영역에서 깨달음을 인벤토리 연산으로 대체.]

[초숭超承의 공空 연산 중…….]

[요락7语의 염染 연산 중…….]

‘뭐?’

一 끼긱! 끼기기긱……!

[가상 주파수 과부하…….]

[허용 범위를 초과합니다.]

[비가역적 손실 확장.]

‘손실… 이라고?’

이럴 필요는 없는데.

- 고오오오....

인벤토리가 계속해서 뜨거워지고, 갈라지는 느낌을 주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인벤토리 안의 ‘의지’는 전에 없이 진지한 작업 중이었다.

방해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작!”

그 안에 있는 게 온전한 녀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황당한 짓 하지 마라!”

- 콰직. 과직. 콰직. 콰직. 과직…….

달궈진〈껍질〉이 부서진다.

갈라지고,벗겨지고,온통 조각나 부서져 내린다.

투명한 허공일 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밴토리의 주인이기에 도리 없이

알아차렸다.

안쪽에 있는 건.

무리하고,달궈져서.

바스락거리며 스러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검無劍의 묘妙를 습득합니다.]

[검술 레벨이 사라집니다.]

[검기 레벨이 사라집니다.]

[단,해당 스킬로 얻었던 특전은 모두 유지됩니다.]

[무형검無形劍에 필요한 모든 하위 스킬을 자동으로 습득합니다.]

[깨달음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무형검이 완전한 심검의 단계에 이르지 못합니다.]

[운용이 제한됩니다.]

[신검합일, 검신일체의 수준에서 권능을 소화합니다.]

[무형검의 위력이 사용자의 스탯과 비례합니다.]

[사용 반경은 지혜에 비례합니다.]

[속도는 민첩에 비례합니다.]

[크기는 체력에 비례합니다.]

[폭발력은 힘에 비례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메시지가 계속 떠오른다.

[번개,얼음에 대한 활용도가 높은 수준입니다.]

[결빙 Lv.5 가 소멸됩니다.]

[특전: 검빙劍水을 획득합니다.]

‘검… 빙?’

일단 손에 든 칼을 수납했다.

무형검이라니.

월 어떻게 만든다는 하는 걸까?

나와 닿지도 않은 허공에 검기를 떠오르게 만드는 게 가능할까?

도저히…….

[연산 대체된 ‘초숭超承의 공空’이 영구히 스킬을 보조합니다.]

‘아니… 이건 인벤토리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어려울 건 전혀 없다.

어차피 예전과 같이〈영역〉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하다.

‘그게 좀 더 넓어지고.’

‘정확해지고.’

〈인벤토리〉는.

내가 사용하기 쉬운 쪽.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 왔을 뿐이다.

서른 걸음 앞.

검염劍炎을 오래 시전했던 곳에 하얀 서리가 맺힌다.

- 따르릉.

‘이건……

아직까지도 용암이 흐르듯 아예

녹아내리던 공기, 아니,화기火氣가 검을 중심으로 한 섬뜩한 냉기와 부딪쳤다.

그러나.

〈폭발〉도 없고.

〈파괴〉도 없다.

열도,소리도 휘젓는 서리 아래 일순간 사라진다.

주변뿐만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검기劍氣란 세계의 어떤 재료보다 농밀하여.

- 사륵.

그것에 깃들어.

- 사르륵.

휘저어지는 검빙劍水은 저 높은 허공을 얼리고,하늘에 제멋대로 얼 어붙은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칼을 휘두르며 걷고,다시 걸으면.

하늘에 얼어붙은 무늬가 부서져 눈처럼 내려서,세상에서 이곳만이 겨울이었다.

살의殺意를 담으려면.

허공에 얼어붙는 저 모든 무늬에 담을 수 있다.

스무 걸음,서른 걸음…….

아래를 향해 휘둘러도,지표면이 얼어붙을 뿐 반응이 없는 듯하나.

- 톡

살짝 두드리자.

스르륵,먼지처럼 무너져 내린다.

그건 더 이상 흙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엇이었다.

땅이.

넉넉한 대지가.

사람이 꽃을 뽑고,나무를 베고,

광맥을 파헤치고,논밭을 경작하고, 그 위를 걷다 묻히는 곳아

지표와 그 아래까지도.

동사凍死했다.

네크로멘서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멍하니 바라다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뇌전 Lv.5 가 소멸됩니다.]

[특전: 검뢰劍雷을 획득합니다.]

‘검뢰.’

- 지이이잉… 콰르르르……!

방식은 비슷하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칼날 위를 흐르듯 번개가 서린다.

번개가,뭉쳐진다.

뻗을 수밖에 없는 번개를 솟아난 검기가 가두고 있다.

허공에 맺힌 수많은 물방울.

동사凍死한 대지 위로.

1초에서 열 번, 백 번,아니…….

천 번을 친다.

번개를 가두는 검기.

번개와 함께하는 검기.

인밴토리가 나에게 남겨 주려 했던 핵심은 아니지만.

나에게 맞춰 멸어진.

아주 부스러기 같은 힘.

하지만.

칼을,번개를 빼어 들었다.

구름에서 떨어져야 할 번개가.

검빙劍水이 만들어낸 얼음 구름에 거꾸로 향한다.

이런 힘을 쥐고 있다면,땅에서 하늘을 응징할 수 있을 법한 것이

허공에 이글거린다.

- 번쩍!

폭爆.

하늘을 향해 쏘아낸 검뢰劍雷는 직경 수십 미터에 걸쳐 만들어진 얼음 구름을 소리도 없이 부수고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가.

- 파직! 파지직!

솟아오른 검뢰가 허공에 전압을 남겼는지.

이리저리 갈라진 번개들이 다시 하늘에서 땅으로 친다.

- 쿠릉! 쿠르릉! 쿠르르릉!

에라스트 관문 도로.

어느새 지상으로 올라온 수많은 언데드 군대들과.

관문 위의 인간 몇 명이 홀린 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가만히 서서 말문을 잇지 못하던 네크로멘서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남부 세 도시에서는 다 봤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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