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트로이카 (4)
100프로.
상태창이 떠오른다.
[현재까지 살해한 인간과 마물의 비율을 비교 분석합니다.]
[〈추천〉단계 초과…….]
[〈종용〉단계 초과…….]
[〈강제〉단계 초과…….]
[인간: 마물 살해 비율이 95%를 넘어섰습니다.]
[〈유일한 선택〉임이 확인됩니다.]
[손님께서는 단 1점의 포인트도 얻지 못하는 인간을 마물보다 무려 스무 배는 많이 죽이셨어요.]
[세상에,이건 정말 기괴하네요. 손님에겐 실리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걸까요?]
상태창은 유쾌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간다.
[하지만 일관성이라는 것은 분명 보답받는 법이지요.]
[싫어하실지 모릅니다만, 이제는
제대로 보상을 받으셔야 합니다.]
[포인트 가산 확인…….]
[세계 부정 구매가 재확인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종족 '인간’을 향한 시스템 보정이 삭제됩니다.]
[집단 거주 지역을〈던전〉클래스 다이어그램에 편입…….]
[번들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알아요,그런 기분.〉]
[인간을 살해한 직후 '검술’ 스킬이 3분간 1레벨 증가합니다.]
[인간을 살해한 직후 ‘정밀’ 특성이 마법에 3분간 추가됩니다.]
[이유 없는 파괴: 공격 마법 숙련 속도가 150% 상승합니다.]
[지배종 제거: 인간을 살해할 때 스킬 경험치가 빠르게 늘어납니다.]
“…어이가 없군.”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 중얼거렸다.
당황했지만,메시지를 읽고 나서 〈세계 부정〉을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세계의 견고한 지배자인 인간을, 던전의 마물을 처리하듯이 보상을 주겠다는 이야기다.
다른 건 다 제쳐 놓고.
사냥의 측면으로 보면 간단하다.
용사 포인트가 지급되는 던전이.
용사 포인트를 주는 사냥감이.
‘도대체 몇 배가 늘어난 거야?’
수십 배,어쩌면 수백 배일지도 모른다.
마물도,던전도 숨겨져 있다.
던전의 시작은 탐색으로부터.
그러나.
인간이 지배종으로 군림하는 이상, 내게는 세계 전체가 던전이고.
[단독 허가 완료.]
[즐거운 사냥 되세요!]
오직 나에게만.
시스템이 그걸 보증한다.
‘아에자르가 좋아하겠군.’
지금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왕 푸르손을 추종했던 사슴이
문득 떠오른다.
〈인간은 세계의 병病이 되었어. 증상을 약화시켜야 해. 숫자부터 대폭 줄여야겠지.〉
반대하지는 않는다.
박멸樓減이 아닌 숫자를 줄이는 정도라면 알 바 아니다.
몇몇 개체를 제외한다면.
인간이라는 종족에는 아무 미련도 없으니까.
‘…확인해 봐야겠군.’
- 파앗!
야음을 틈타 가장 가까운 도시인 에라스트로 접근해 들어갔다.
‘루비아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녀가 저 어둠 속의 어느 점을 딛고 있을지.
애초에 저 안에 있을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여기서 찾아볼 수는 없다. 기스-제-라이를 믿는다.
정보 수색이라면 레드 플레이크를 활용한 그녀가 압도적이겠지.
‘일단……
정말 뭐가 달라졌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다.
던전과 비슷한 구조라면 입구만 돌파해도 무언가 나타날 거다.
에라스트의 성문 따위는 간단히 부수고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경비병 둘이 햇불을 들고 성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에라스트]
[던전 랭크: B더블 플러스]
도시 전체가 던전으로 취급된다.
‘역시……
에라스트라는 도시를 지워 버리면 B더블 플러스랭크 던전을 클리어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
에라스트의 영주가 던전 보스로 취급될 확률이 높겠지.
나는 이 상황 앞에서 생각한다.
이건.
누구를 위한 상점인가.
‘용사는……
대체 누구를 위한 존재인가.
자연스레 플라스크를 보고 평하던 아이작의 말을 떠올렸다.
〈아주 완벽한 육체들이다. 아니, 완벽한 개체들이야. 재능도 특성도,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쳐…….>
개성 넘치는 재능과 특성을 가진 플라스크의 예비 용사들.
‘가장 뛰어난 존재들을 남겨서… 인류를 지키려던 게 아닌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용사들이라면.
어째서 이런 항목 따위가 상점에 존재하는가.
인간을 학살하고.
도시를 부수는 선택지 따위가.
‘용사가 대체 인간의 도시를 왜 부순다는 거지?’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 도시를 부수면 용사 포인트가 생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B더블 플러스라.’
물론 여기서 내 손으로 에라스트를 파괴하는 실험을 할 생각은 없다.
루비아가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도시도 지금은 곤란하다.
부작용과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면 역시 무리다.
‘괜찮은 곳이 있겠군……
불현듯 떠오르는 녀석들이 있다.
- 파앗!
레나와 함께 클리어했던 던전은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결심하고 곧장 서북쪽으로 향했다.
- 파앗!
바람에서 모래 먼지가 느껴지며, 사막의 적막이 시작된다.
뜨겁게 달궈진 대류로 만들어져, 모래 알갱이를 감아 이끌고 높이 솟았던 바람은 다시 넓고 평평하게 사막을 쓸어 놓는다.
바람은 위에서 식고.
아래로 내려와 다시 달궈진다.
‘이쯤인가……
사막 한가운데.
〈한때는 대륙에서 제일 번화하고 발전된 곳이었지. 걷는 인간들끼리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번화하고…….>
이곳에 함께 왔던 아이작의 말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메마른 바람이 변함없이 몸에 투두둑 부딪힌다.
〈화려했던 문명을,환락을 예메라가 억지로 참회시켰다. 태양광을 강제로 모아서 다 태워 버렸지.〉
결국,시스템도 신도.
인간의 편은 아니다.
‘용사의 편일 수는 있겠군.’
바람의 변덕으로 만들어진 모래 언덕들 중에 가장 높은 것 위에서 주위를 살펴봤다.
태양에 가장 가까운 모래 언덕은 동쪽,북쪽, 서쪽,남쪽을 한 시간 거리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좌표는 같다.
정기적으로 이 장소를 지나간다면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엎드렸다.
꼬박 하루가 지난 뒤.
一 피잉!
- 피이잉!
필사적으로 낙타를 타고 도망가는 다섯 명을,날아온 화살들이 각각 한 대씩 정확하게 꿰뚫었다.
‘저건가?’
“후! 후! 후……!”
쫓아오는 강도들은 두개골에 살이 꽂혀 죽은 상인들을 바라봤다.
강도들은 기쁨에 찬 얼굴로 낮은 콧소리를 홀렸다.
“내가 제일 가운데 뚫었다!”
“빨리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게 좀 아까운데.”
“두목이 귀찮아했잖아.”
“그럼 노획하자고.”
그들이 시체에서 쓸 만한 물건을 주워 들었을 때였다.
멀리 본대처럼 보이는 녀석들이 다가왔다.
‘스물다섯……
저 정도 규모면 오히려 놓치는 게 어렵다.
몸을 숨길 필요도 없다.
- 파앗!
언덕 위에서 칼을 빼 들고 그대로 모래 위를 달렸다.
“마물이다!”
“뭐야? 하나… 야?”
그들은 도망도 치지 않았다.
화살도 메기지 않고 그대로 칼을 들어 두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위장한 사막 강도단]
[랭크: C플러스]
[상인으로 위장한 악명 높은 사막
강도단입니다.]
[어째서인지 당신은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네요?]
[수색 시 특별한 아이템을 발견할 확률이 늘어납니다.]
- 휘이이잉!
때맞춰 불어온 바람.
모래 알갱이가 몸을 두드린다.
가장 멀리 도망친 상인이 바닥에
떨어트린 망토를 주워 둘렀다.
〈조금만 영역에 겉치레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면,세계의 규칙 밖에 자신을 숨길 수 있게 된다.>
후드의 말을 떠올렸지만.
“으아아앗!”
달려드는 녀석들을 보니 은신은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영역은 모래를 막아 내는 용도로만 사용하며 걸어갔다.
[세계 부정 적용 증!]
[지배종 사냥이 적극 권장됩니다!]
[인간을 살해할 경우 스킬 숙련이 소폭 상승합니다!]
내리치는 칼끝을 손가락으로 잡아 옆에서 다가오는 강도에게 던졌다. 옆에 서 있던 강도는 비명도 내지 못하고 절명했다. 손잡이를 놓치고 바닥에 떨어진 강도를 목을 틀어 죽였다.
[검술 스킬이 1레벨 증가합니다!]
[00:02:59]
‘3분 카운트인가.’
- 휘이잉!
나름대로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창을 잡아챘다.
거꾸로 뒤집지도 않은 채 그대로 집어던졌다.
뭉툭한 나무에 강도 두 명이 뚫려 죽어 버렸다.
네 걸음을 걸어갈 동안 다섯 명이 쓰러졌다.
허공에 떠오른 숫자는 2분 59초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어,어… 어……
“도망……!”
한 명만 남기고 모두 베어 버리자 구불구불한 수염의 강도단 두목은 놀라서 입만 벌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두목을 보며 지시했다.
“불어라.”
상인으로 가장해서 사막을 다니는 두목은 그 자리에서 바들바들 떨다 간신히 대답한다.
“무,무엇을?”
“피리를 불어라.”
“대,대체 그걸 어,어떻게……!”
“그냥 알아. 빨리해.”
어차피 두목에게 선택지는 없다. 몸이 조금만 덜 공포에 굳었어도 녀석은 알아서 피리를 불었겠지.
‘저번처럼.’
이대로 그냥 죽거나.
사막의 신을 소환해 보거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뿌우우우우……
! 뿌우우우
구불구불한 수염이 떨리며 두목이 비명처럼 피리를 불었다.
‘온다.’
멀리서 진동이 전해지는 그 즉시,
一 서걱!
너저분한 수염과 함께 남자의 목을 베어냈다.
[랜덤 인카운터 :〈사막 강도단〉을 처치했습니다!]
[즉각적인 위장 간파로 포인트가 가산됩니다.]
[여신의 뿔피리를 발견했습니다.]
[사용 용도를 간파합니다.]
[포인트가 대폭 가산됩니다.]
[1,035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좌아악!
모래와,
목 없는 두목의 몸과,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가르고 사막의 신이 나타났다.
그사이 낚아챈 뿔피리는 혹시나 쓸데가 있을지 몰라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상태였다.
〈수, 수도사가 우리에게 말했소!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보면 피리를 불라고. 그럼 계약에 따라 ‘신’이 적을 해치워 줄 거라고……!>
이미 들어서.
다시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를 떠을렸다.
‘예메라의 추기경 그레이시엄……
음모가 있다.
하지만 그 녀석은 황실 지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별개의 세력일지도 모른다.
생각과는 별개로,
[‘사막의 신’과 만나셨습니다!]
[스페셜 필드 보스입니다.]
[랭크: B더블 플러스]
‘결빙.’
- 과과과광! 끼이이익!
부딪치고,칼날로 긁어댄다.
사방은 온통 모래지만,
내 영역은 고요하다.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이 상대를
가만히 관찰했다.
‘번성한 문명을 번성했다는 이유로 태운다는 건… 확실히 기괴하군.’
그걸 인간의 여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과광! 과과광……!
수백 번.
부딪치고,부딪치며 녀석은 점점 얌전해진다.
산 채로 타서 죽은 인간의 재로 만들어진 벌레.
- 광… 콰광
얼음의 영역에 부딪쳐 을 때마다 힘도,악의도 조금씩 약해진다.
지극히 기초적인 형태.
서룰고, 폭력적이지만.
이건 어쩌면 위령慰靈.
불타 죽은 재들에 바치는 차가움이 될지도.
- 털썩…….
‘사막의 신’은 내 영역을 빙 둘러
감은 채 쓰러진다.
정말 조금이라도 위령이 된 건지, 아니면 돌진하다 저 스스로 타격을 입은 건지는 모른다.
‘얼어라.’
- 사가가각!
95.5%.
사막의 태양은 더 이상 타 죽은 혼령들을 괴롭히지 못한다.
벌레를 덮을 정도로 영역을 넓혀, ‘열’을 사라지게 하는 것과 동시에.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막의 신’을 처리하셨습니다.]
[랭크: B더블 플러스]
[3,036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상처 하나 없는 시신이 남겨지고, 클리어로 처리되며 전보다 필씬 더 올라간 포인트가 들어온다.
[구매력 4.4%를 달성했습니다.]
[어라? 이상한 상품이 있네요?]
[〈힘의 램프>을 임시로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구매력이 바뀔 경우,구매 권한은 사라집니다.]
‘으음.’
2.5%는 장신구나 소모품.
5%는 무기.
그 사이에,이상한 게 있었다.
[힘의 램프]
[세계 부정 최초 구매자의 특전! 영기나 마기를 머금고 있는 물건을 부순 다음 빨아들이는 램프입니다. 일정량 흡수 이후〈혼의 램프〉로 진화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용량: 0/5,000]
‘진화시키면… 혼까지 빨아낼 수 있다는 건가?’
어떤 힘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지금을 놓치면 사기 힘든 것임은 느껴진다.
현재 구매력은 4.4%.
어차피 5%를 모아서 살 수 있는 품목은 무기들이고,딱히 부족함은 느끼지 않으니까.
세계 전체가 사냥감인 이상.
아낄 것도 없다.
사실 4.4%가 아니라 44%라도
구매했을지도 모른다.
검은 구슬로 빨려들어 간 아이작과 나냐우를 떠올렸다.
사라진 녀석들을 찾는다면.
검은 구슬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감은 잡히지 않지만.
이런 걸로 다시 흡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구매한다.’
[힘의 램프를 획득했습니다!]
손안에 주황색 램프가 반짝이며 쥐어진다.
녀석을 사용하기 좋은 곳이 문득 떠오른다.
* * *
- 끼아:아•아•아•악
[던전 클리어!]
[백일몽 그롯트의 우두머리를…….]
[레벨이 올랐습니다!]
[죽음의 기사 Lv.8(new!)]
[랭크 판정: C더블 플러스]
[1,024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끼기긱…….
단도로 바알의 조각상에 각인을 새겼다.
이굴쿠가 알려 준 대로 조심스레 각인을 새기자 조각에 점점 기운이 짙어졌다.
〈누가 나를 불렀… 네놈은……!>
이제 강림했나.
- 퍼격!
이굴쿠의 일부가 강림한 조각상을 산산이 부숴 버리고,
[램프를 사용합니다.]
주황색 램프가 깨진 조각상에서 나오는 붉은 연기를 빨아들였다.
〈끄,이,이게 뭐야! 아,안 돼!〉
처절한 비명과 저주가 울린다.
바알군 남부 사령관 이굴쿠.
가진 힘의 극미한 일부일 주제에 엄살이 심하다.
‘그래서 홉수도 가능했겠지만……
[현재 용량: 1,200/5,000]
[바알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바알이 당신에게 첫 번째 관심을 보입니다.]
어쩌라는 건지 모를 메시지도.
- 스르륵.
[현재 용량: 1,250/5,000]
남은 붉은 연기가 말끔히 램프에 빨려들어 가며 사라진다.
‘뭐,이런 거 네 번이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