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시작의 끝 (2)
一 띠링!
[계승…….]
[해골병사 Lv.l(l)]
“ 99
상태창을 치우고,
- 달그… 락.
조심스레 상황을 확인했다.
- 휘이이잉〜!
좁은 관 속에 누워 있다.
순식간에 두 번의 죽음.
몸을 확인해 볼 것도 없이 금방 사태를 알아차린다.
‘안 되는 건가……
지금까지 쌓아 온 압도적인 전투 경험을 믿었다.
능력치가 사라졌어도 평범한 병사 따위는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리석었다.
완전히 다른 상황,새로운 몸에 적응하려면 한참은 멀었다는 걸까.
하지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인벤토리의 권능.
게다가,인벤토리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의 물건들까지 모두 다 보존되고 있다.
- 스륵.
뻑뻑한 감각의 인벤토리가 눈앞에 다시 펼쳐진다.
하지만,
'사라… 졌어?’
허공에 집어 던진 다섯 권의 책은 인벤토리에서 모두 사라져 있었다.
〈구출의 희망〉,〈하나의 눈〉같은 책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애슈턴의 귀한 책을 그런 식으로 집어 던지는 게 아니었는데,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백 권 중에 다섯 권이지만 그것도 아깝기 그지없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닌데.
인벤토리 안의 물건이 계승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 •••실수다.’
인벤토리의 물건은 회귀 이후에도 이어지지만.
외부로 던져 버렸다면,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그 사실을 얻어 낸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확이지만,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던진 책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황실의 비역?
아니면 무덤가?
범상치 않아 보이던, 튕겨 날아간
세검도 인벤토리에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이미 지나간 일.
당장 처리해야 할 상대가 셋.
바닥에 구르는 것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 몸이다.
인벤토리 안에는 아직 비역에서 주운 무기가 많다.
멀리 날아가 버린 세검과 비슷한 녀석들도 몇몇 보이고.
하지만 어떤 명검도 휘두를 힘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정상적인 전투는 포기.
인벤토리를 활용해야 한다.
‘일단… 바람부터.’
아이작과 함께할 때는 백 미터에 걸쳐 천사들을 막아 냈다.
책 한 권 제대로 못 자르는 병사 따위는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날려 버리겠지.
날카롭게 세운다면 검기보다 훨씬 살상력이 뛰어날 거고.
이곳에서 무기를 꺼내는 것보다, 인벤토리 자체를 압도적인 무기로 활용하는 게 당연하다.
별다른 이름이 붙지 않은 화려한 레이피어를 하나 눈여겨만 두고, 일단 인벤토리를 전개했다.
1 미터…….
2미터…….
반투명한 아공간이 끈처럼 길게 늘어난다.
여기까지는 안정적.
- 스륵… 스르륵..
인벤토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빙빙 돌아간다.
어떤 각도에서든 무기를 꺼낼 수 있다.
훌륭한 모습이지만,이 정도로는 불안하다.
기습으로 한 명 정도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셋은 절대 무리겠지.
지금의 힘으로는,애초에 공격이 제대로 들어갈지도 의문이고.
그냥 확 날려 버릴까?
- 스으윽!
인벤토리를 넓게 잡아 펼쳤다.
하지만 넓은 아공간의 끝부분을 제대로 감지할 수 없게 되자,금세 통제력이 사라지며 흐물거렸다.
‘직경… 2미터 정도인가.’
이것도 감지 범위에 따라 제한이
걸릴 줄이야.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 인벤토리를
전개할 수는 없는 건가.
안타까웠지만, 스랫이나 스킬로 인지 범위가 늘어나면 금방 해결될 문제겠지.
나는 인벤토리를 조금씩 움직여 보면서 파악한 정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 우우우웅… 스륵.
일단,물건을 뽑는 건 가능하다.
상인 연합의 넥스몬드 선장 같은 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는 있다.
당연히 넣는 것도 가능하고.
인벤토리가 몸을 감싸는 것 같은 기본적인 움직임도 가능하다.
하지만.
- 휘이이잉!
‘…바람도 못 막는 거야?’
물리력의 행사는 어려웠다.
직경 백 미터에 걸쳐서 천사들을 막는 정도는커녕.
바람막이조차 제대로 형성할 수 없었다.
몸이 바뀌었다고 이것조차 제약이 걸리다니.
좁은 관 속에서 바람을 받으며, 아이작과의 대화를 떠을렸다.
〈…응용력 부족이야. 인벤토리에 겉을 씌운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지. 막을 씌우고 확장시켜라.〉
〈그럼 네가 그때처럼 테두리를 만들어 줘.〉
<…….>
〈왜? 해 달라니까?〉
〈…혼자 깨달아야 한다.〉
〈전혀 모르겠어. 그냥 해 주지?〉
〈이런 멍청한……. 급하니 어쩔 수 없나…….>
곤란하다는 듯 흔들리던 녀석의 붉은 눈동자.
도움이 귀찮아서 그렇게 나온 게 아니었다는 건가.
‘내가… 혼자… 깨달은 게 아니라 사용할 수 없는 건가?’
각성의 순간을 떠을렸다.
아무것도 담지 않는 공간.
아무것도 담지 않는 공간…….
‘안 되잖아.’
그것부터 무리였다.
아예 처음부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면, 예전처럼 활용하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릴지 모른다.
당장의 위협을 어떻게 처리할지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순찰을 돌고 있다고 했던가?
내 존재에 놀라는 걸 봐서 나를 찾는 건 아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그냥 지나갈지도 모른다.
‘괜히 움직였어.’
나는 좁은 관 속에 누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죽을 때에는 여유가 없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무덤가에 하얗게 내려앉은 달빛이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책이나 읽을까?’
아예 관 속에 누워 애슈턴의 책을 읽을까도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버틸 생각이라면 최소한의 소음도 조심해야 했다.
바람을 막지 못하는 이상.
종이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를 어떻게 할 자신이 없었다.
늦가을이나 겨울인지, 밤하늘이 맑기는 해도 바람은 꽤 거세니까.
몇 쪽 읽기도 전에 달려와 머리를 부수겠지.
게다가 애슈턴의 책을 한 번 의미 없이 날리고 나니,남은 서적들이 귀중하게 느껴져 함부로 꺼내려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병사들은 누굴까.
에라스트에는 몇 번이고 방문했지만, 저런 느낌의 병사가 있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유블람도 마찬가지다. 그곳의 경비병들도 대충 알고 있다.
물론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정체를 감추고 직접 훈련시켰던 그라스미어 경비병 들은 더욱 잘 안다. 가장 가까운 도시 셋 다 아니라면,대체 어디란 말인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관 속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조용했다.
어차피 병사들이 먼 곳에 있든, 가까이 있건 지금의 나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게 분명했다.
느긋하게 있자.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 보면서.
루비아.
에라스트 무덤으로 오게 됐으니, 루비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예전의 세계선으로 돌려진 거라면.
그리고 지금이 처음으로 루비아와 만난 날 이후라면,그녀는 이미 화살에 뚫리고 전투 망치에 사지가 으깨졌을지도 모른다.
‘혹시… 시나리오.’
나는 조심스럽게 시나리오창을
불러냈다.
눈앞에 없는 상대라도,진행 중인 시나리오 자체는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을까.
- 띠링!
효과음은 그대로였다.
[S급 시나리오,‘레이 루비아’가 진행 중입니다!]
[세부 퀘스트: 영주 루비아]
[루비아를 에라스트 영주로 등극 시키십시오.]
[통치 레벨을 10까지 을리세요.]
레이 루비아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깊은 안도감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모든 스랫과 스킬을 빼앗긴 현재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시나리오창이 당장의 생사까지도
알려 주는 건 건 아니다.
죽은 상태로도 시나리오는 그대로 유지되니까.
그럼 중요한 건一
역시,시점이었다.
처음부터 이게 문제였다.
‘지금이 언제지?’
루비아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시점이 언제인지 알아야 결정할 수 있다.
시점을 모르니,예전처럼 레나가 달리아크에 나를 만나러 오는 일도 발생할지 어떨지 모르고.
‘너무 멀리까지 생각했나.’
당장 이 무덤가를 벗어나는 일이 급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네크로멘서 기스-제-라이.
이번에야말로 ‘린트부름의 태양과 평행하는 꿈을 걸어라.’는 말을 꼭 전해 줘야 한다.
그 말을 전해 준다면 암살 저지로 목숨을 구하고,정수 흡수를 이식받고, 이런저런 도움까지 받아 힘을 키우는 건 금방이겠지.
하지만 이것도 역시 시기의 문제.
황제 암살이 이미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원래의 시점에서 반년만 지나도.
‘린트부름’의 증표는 무의미해진 상태다.
이미 죽었을까?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강해지는 계획에 큰 지장이 생긴다.
그라스미어 지하에 몰래 들어가 아이작을 만나는 일도 요원하겠지.
‘그러니까,대체 언제인 거지.’
- 휘이잉〜!
짐작할 도리가 없다.
나는 아예 해가 뜰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기다렸다.
그게 안전했다.
고작 하룻밤이었지만,레안드로를 피해 동굴에서 숨어 있을 때보다도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어둠이 점점 뿌옇게 걷힌다.
하늘도,나무들도 점점 자기 색을 되찾아 갔다.
순찰이라고 했었지.
병사들도 무덤에 밤새 서 있지는 않으리라.
잠도 자야겠고.
세상은 산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지만, 언데드가 유리한 점도 많다.
그들처럼 수면,익사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외에는… 그냥 그 정도겠군.
밤새도록 누워 있으며 한 가지 더 떠올린 게 있었다.
능력치가 초기화됐다면.
루비아와 함께 걸어갔던 동굴을 다시 한 번 ‘미로’로 산정해 줄지도 모른다.
고작 두 시간 정도 걸어서 익숙한 동굴을 지나가기만 하면,한 번에
레벨을 10이나 올려 준다.
미로를 클리어했다면서.
물론,다 아는 길이고.
약간이나마 힘을 회복할 기회를 무시할 이유는 없다.
생각대로 되든 안 되든,그런 걸 놓치지 않고 생각해 낸 스스로가 뿌듯했다.
서서히 어둠이 트여 왔다.
몸을 간질거리는 희미한 햇빛이 낯설다. 황실 비역에서 보낸 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워낙 충격적인 일이 많이 벌어진 탓에,체감으로는 한 달
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
지금 올라가 버릴까?
아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진다.
여기서 몇 시간 먼저 일어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기다리는 게 상책이었다.
‘기스-제-라이… 살아 있어라.’ 그렇게 기원하는 순간.
- 乂、으
뻥 뚫린 무덤 위로 병사의 얼굴이
갑자기 휙 드리워졌다.
“뭘 들여다보냐?”
“아,느낌이 좀 안 좋아서. 이거 혹시 움직이는 거 아닌가.”
불쾌한 목소리가 얼굴에 닿았다.
느낌이라니.
농담하는 건가?
‘그냥 가라.’
변인이 없다면,결국 같은 미래가 반복된다.
놈의 ‘느낌’도 반복되겠지.
기다려야 한다.
이건 극복해 내야…….
“홈……
병사가 버릇처럼 콧소리를 내며 칼을 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