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06화 (306/458)

326화 환영 (6)

그 말에 깜짝 놀란 나냐우가 나를 바라봤다.

“네가. 알 것 같다고?”

전혀 의외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무죄의 탑주, 엘란드에게 흡수한〈독안〉은 계속 발동하고 있었다.

[마도 화학 Lv.3 발동...]

[독안毒眼 Lv.3 발동...]

레벨의 한계인 탓일까.

기계가 성분을 분리했음에도. 구성 요소를 들여다보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절반이 되지 않지만.

나냐우가 모르겠다는 단 하나의 성분은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그녀는 믿어 보겠다는 듯 순순히 옆으로 물러섰다.

분석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까부터 보이던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솔레노이드 #A7D012 (페르미온, 쥬플린,사크힐): 무죄의 탑주, 엘란드의 시그니처 재료. 토오크 변수에 의해 합성형으로 반자강성 결합 상태입니다. 분석기의 압력을 받았지만 분해되지 않았습니다. 각인자 - 엘란드]

엘란드.

돌풍이 실어 나르던 백색 가루가 떠오른다.

작은 마을들을 몰살시키며 연금술 실험을 진행했다던 웃음소리도.

이 장소의 주인은 무죄의 탑주一 엘란드가 틀림없었다.

녀석이야말로 제국군이 궤멸된 뒤 곧바로 수도 성벽을 넘어 날아온 인간이다.

이렇게 비역 아래 머물러 있다가 밖으로 느긋하게 빠져나온 거라면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나냐우가 알아보지 못하는 성분을 나만 파악했다는 건,역시 정수 흡수에 또 다른 기능이 실려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승傳承.

레안드로 후작에게 흡수한 검술을 당사자에게 썼을 때 후작은 깜짝 놀랐 었지.

레일리에게도 후작의 검술이라며 인정받았다.

스킬과 레벨은 별개로 존재하더라도.

거기에는 시스템 메시지로 모두 표현되지 않는,흡수한 상대방의 고유한 정수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아래로 뜨는 제작법을 설명하자 나냐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체 이걸 어떻게 아는 거지?”

비역까지 온 동료다.

숨길 건 없다.

정수 흡수에 대해서도 털어놓으며 그녀도 흡수했다는 사실까지 털어 놓았지만, 조금도 꺼림칙해하지 않고 무척 흥미롭다는 태도로 나를 바라봤다.

“.놀라운데.”

레나 앞에서 사정을 털어놓으며, 나냐우가 있던 걸 생각해 이런 건 말하지 않은 자신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좋아! 시간 아끼자고. 시그니처 말고 또 어떤 재료를 혼자서 찾아낼 수 있지?”

“쐐기풀,요르드,달 기쁨,새벽 파슬리,화산 딘들,엉겅퀴..

식물 채집 Lv.2 스킬 덕분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 중에는 식물성 재료가 많았다.

“그것들 가져다줘. 나머지 내가 챙길게. 빨리 만들고 지나가자고.” 나냐우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시그니쳐 시약의 제조에 참여...] [관련 스킬의 경험치가 모두 크게 상승합니다.]

[마도 화학 Lv.3...]

[독안毒眼 Lv.3...]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도 화학 Lv.3 — Lv.4]

[독안■眼; Lv.3 — Lv.4]

제작한 분량은 무려 1리터. 레벨까지 올랐다.

“좋아,간다!”

그녀가 책상에 놓여 있던 것보다

다섯 배는 큰 용기에 시약을 담고 고리를 향해 흑 뿌렸다.

- 화록!

불의 고리를 완전히 넘어서,고리 크기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거대한 보랏빛 터널이 만들어졌다.

“너무 많이 뿌린 거 아닌가?”

“걱정은. 길이 넓어졌을 뿐이지 가는 곳은 똑같거든. 이런 반응성 포탈은 시약의 양에 따라 좌표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새로운 지식이었다.

“가자!”

포탈과 목적지와의 실제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모른다.

그 공간을 한 발자국 딛는 것으로 단축해 버린다.

마법은 개인의 계몽으로 수많은 인간이 몸으로 쌓아 올린 체계를 짓밟는다.

마법사는 군중과 함께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던 캐빈 애슈턴의 책 내용이 떠올랐다.

시약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잔뜩 뿌린 탓인지,이동은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불꽃의 링이 늘어지며 한순간에 우리를 지났다.

도착한 곳은 안에서 본 보랏빛과 달리 푸른 초원이었다.

“이것도 환술인가..

초원은 평온했다.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 봤던 장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쾌적한 환경이었다. 그때가 생태계였다면 여기는 낙원의 뜰 같았다.

새들은 편안하게 지저귀고 서로 다른 계절의 꽃들이 모두 일제히 절정이었다. 지나가던 흰 사슴이

꽃을 밟아도 꽃은 밟힌 뒤 서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냇가에 얼마든지 따먹을 수 있는 과일들이 지천으로 있었다.

홁과 나무,바람이 모두 따스했다.

무엇보다 곳곳을 황금색 광채가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땅 위의 어떤 곳과도,결계 안의 초원이나 화산,긴 동굴과도 전혀 달랐다. 냇물을 헤엄치는 물고기, 푸른 숲과 아름다운 사슴,호수의 백조,꽃,갖가지 과일나무,목장의 양떼.

물고기는 인간이 잡아먹기 편하게

냇가에 배를 뒤집어 죽고,양떼는 목장에 매어 놓은 칼에 제 스스로 털을 깎아 바친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하지만 그 모두가 일종의 소품.

핵심은 연한 안개처럼 자리 잡은 황금빛 광채다.

은은한 황금빛에 휩싸인 인간들은 하얀 옷 하나만 걸치고 광채 속에서 텅 빈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풀밭을 맨발로 걸어가기도 했고,과일을 따먹기도 했고,꽃밭 속에 누워 천천히 숨을 들이쉬거나 사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평온으로 가득 차서 인간이 가진 번뇌가 비어 보이는 눈빛이었다.

심지어 둘씩 짝을 지어서 성교를 하는 자들마저 그러했다.

사랑에 불타는 애욕과 집념의 눈빛, 분배의 공평하지 않음에 항의하는 험한 눈빛,적을 대하는 얼음 같은 눈빛,연민과 슬픔의 눈빛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항상 부족해서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현세의 삶이라면 이곳의 삶은 풍족해서 흐릿한 것이리라.

마치 구현된 환영 같았다.

그들은 아무 잡념 없는 표정으로

온전히 이 장소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개체 하나하나를 집중적으로 탐지해 보면 생체 반응은 틀림없이 인간이다.

“여기는..

나냐우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 말을 이었다.

“천국인가?”

천국은 신앙으로 구원받은 자들의 거처다.

물론 이곳이 그런 곳일 리 없다.

황실 지하를 네 단계나 내려간 뒤 나오는 장소다.

몇 번을 거듭해 잠금장치를 하는 곳이다.

육체를 가지고 천국에 온다는 건 여신들의 교리와도 맞지 않는다.

나냐우도 진심은 아니었는지 금방 인상을 찡그렸다.

“위쪽은 꽁꽁 막아 놓고 자기들은 이런 데서 지낼 생각이었나. 인식 장애 마법까지 걸어 놓고 말이야.”

“인식 장애 마법?”

“지역 전체에 광역 디버프가 걸려 있어. 잘 들어 봐.”

냇물 소리,바람 소리,새소리...

꽃 피는 소리 사이로,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신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주 작은 소리로 흐르는 연주는 정밀하게 사방으로 퍼졌다. 음악은 풍경이 품은 황금빛 광채와 함께 인식을 흔들었다.

여유롭고 평온했다.

여기서 멈추고 행복해지고 싶다.

정신에 뚫려 있는 빈틈들이 전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들을 만해?” “세뇌인가.”

“신경 써서 억누르지 않으면 홀려 버릴 만큼. 심한 건 아니야. 정신만 잡으면 누구든 무시할 수 있을걸?” “히히힘!”

그걸 증명하듯이,미유도 바닥에 난 후작의 흔적을 쫓으며 눈빛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신전을 뒤에 둔 장소에는 거대한 화강암 비석이 있었다.

〈믿음이 그대를 살게 할 것이다.〉

비석 가운데 있는 복잡한 문양에 빛이 들어왔다. 양옆의 다른 두

문양은 꺼진 상태였다.

“비적秘績의 돌이군. 수도 신전에 모신 것보다 큰 녀석들이야. 여기 있는 문양은 새길 수 있는 아니다.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거지.”

“켜진 건 일리엔의 문양인가?”

초급 교리 수준으로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후작이 지나갔다는 뜻 같았다.

“알아보는군. 이런 건 신앙심이 있어야 되는데,유물로 활성화한 건가? 그 녀석이 신앙심이 있다고 믿을 수는 없거든.”

흔적은 신전으로 이어졌다.

〈모두 나에게 오라.〉

거대한 외신전의 현판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모두 오라는데? 이번에는 별일 없이 지나가게 해 주려나.”

“저기,인간이 있다.”

나는 앞을 가리켰다.

내신전으로 향하는 하나밖에 없는 계단 건너편에 세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깥처럼 하얀 옷 한 겹만 걸친 인간들이었지만,눈에 초점을 잃고 있는 자들과 달리 이들은 우리의 접근을 인식하고 있었다.

가운데 있던 여자가 한 손을 들고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아까 왔던 분을 따라가십니까?”

긴 검은 머리의 여자는 생긋생긋 웃는 얼굴이었다.

양옆의 두 남자도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반쯤 누워 있었다.

그녀를 포함한 세 인간은 매우 태평해 보였다.

심지어 나를 보고도 크게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직접 앞에 나가 물었다.

“당신들은 우릴 막지 않나?”

신관들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안정화 작업을 위한 하인일 뿐입니다. 안에서 누가 뭘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여기까지 오신 이상 막을 이유는 없지요.”

“신관 키녹하프덴,신관 프로키온, 신관 이노네소븐. 각 신전에서 최고 유망주로 뽑히는 세 분께서 이런 곳에 계실 줄은 몰랐군.”

“긍홀함을 구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하인일 뿐이지요.”

“유망주라니요. 일러 주신 뒤에야 알아듣는 가장 우둔한 종입니다.”

나냐우의 말에,세 신관은 나른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의 정체조차 묻지 않았다.

“유명한 자들인가?”

“무척. 저들이 여기 있는 이유가 수상하기 그지없어.”

“.하지만 굳이 여기서 시간을 끌 이유는 없지 않나.”

시약을 제조하며 후작과의 거리가 너무 벌어진 것 같아 불안했다.

나냐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신전 가운데 있는 문으로 바로 걸어 들어가려 했다.

신관들은 막지 않았다.

하지만 문 앞쪽 다섯 걸음 앞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 파앙!

몸이 뒤로 심하게 튕겨졌다.

- 위이이이잉!

일리엔의 문양이 활성화되어 있던 비석 위에서 빛이 솟으며 내신전 문 주위를 원형으로 감쌌다.

“뭐야,모두 내게 오라며?”

나냐우의 투덜거림 뒤로 세 명의 신관도 당황하는 낯빛을 띠었다.

“제 통찰이 부족했나 봅니다.”

“아닙니다,저도 셋 모두를 충분히 살폈습니다만.”

“•••이런 반응은 처음입니다.”

- 슈우응!

황금빛 광채를 뿌리며 돌아다니던 구름이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구름이 빛을 비추는 것과 동시에 허공이 부글부글 끓었다.

평온과 환희를 흩뿌리던 구름이 내 근처에 있는 무언가에 극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떠 있는 작은 점.

3차원의 공간을 압축시킨 저장고.

- 화르르!

황금 광채가 조도를 증폭시켰다.

주위는 온통 새하얀 타일이었기에 증폭 효과는 압도적이었다.

마치 이런 때 사용하기 위해 신전 전체를 새하얗게 발라 놓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 퍼벙! 퍼버병!

새빨갛게 폭발하며 끓는점이 점점 주위로 퍼져 나갔다.

한 점이 감당할 수 있는 열기가 아니었다.

땅으로,허공으로,하늘로...

[당신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가 들어 있습니다.]

[거짓 저울추와 닿아 큰 허물이 생겼습니다.]

[거짓 저울추를 파괴하십시오.] [부정한 저울을 버리십시오.]

[부정한 저울과 연결을 끊으십시오.] [부정한 저울과 적대하십시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히힘! 히히힘!”

나냐우와 미유의 당황한 소리가 들렸다.

한 점에 집중되어 증폭된 조도를 견디지 못했다.

끓어오르는 점은...

인벤토리.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의식’으로 인벤토리를 잡고 멀리

펼쳤다.

점에서 선,선에서 면으로 펼친 인밴토리는 마치 지옥을 한 평에 집중시켜 놓은 것처럼 타올랐다.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상태창.

인벤토리의 특정한 한 부분 위로 기괴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리엔의 영역에서 감지된 상태 입니다.]

[그늘 속에 숨어 도망한다고 네가 발각되지 않겠느냐.]

[거룩한 것과 망령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는 감히 내 안에 거하지

못하리로다.]

[거짓 저울추를 녹여 버리겠다.]

메시지를 띄우는 상태창이 증폭된 조도에 녹아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상태창과 인밴토리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심적 실체만 있지 물리적 실체는 없다.

불탈 수도,얼어붙을 수도 없다. 일그러질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게 굳게 믿었다.

아니,하지만一

[동화울이 내려갑니다.]

[64.97% ᅳ 64.15%...]

[외부 간섭에 의해서 인벤토리의 공간 균일도가 흐트러집니다.]

[밀도분포가 유동화됩니다.]

[공간분포 측정이 부유합니다.] [동화율이 내려갑니다.]

[64.15% - 63.35%...]

[63.35% 62.71%...]

스킬과 ‘결빙’ 스킬은 실제로 적을 태우고 얼린다.

인벤토리는 적을 으깨고 부수는 수많은 무기를 담아낸다.

이 상황은 대체 뭐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나냐우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결빙. 결빙.’

인벤토리와 상태창 위에 황급히 마법을 거듭했지만 집중적인 조도 증폭에 의해 생성된 열은 순식간에 열기를 어그러뜨렸다.

하지만 빛은 그것들에만 비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번쩍! 파르르!

신의 구름은 직선의 황금 광채를 눈앞에 있는 세 신관의 머리 위로 직접 꽂아 넣었다.

- 우우우웅...

세 신관들의 몸은 황금빛 광채에 휩싸인 채 10미터가 넘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오오!”

“주의 길이 보입니다!”

“은총,은총이 내립니다!”

- 우드드득!

황금의 광채가 그들을 감쌌다.

“하. 하하. 저게 뭐야?”

나냐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하늘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미유도 놀란 둣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세 신관의 나른한 육체가 사라진 다음 허공에 나타난 것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존재였다.

一 푸ᄐᄐᄐᄐ.!

긴 더듬이를 머리에 심은 겹눈의 천사가 반투명한 세 쌍의 날개를 연신 팔락거렸다.

손에는 황금빛 광채의 메이스와 두꺼운 방패가 들려 있었다.

새하얀 갑각으로 온몸을 뒤덮고, 머리 위에 광채가 떠올라 천사임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가슴팍에 붙은 앞날개와 머리에 크게 붙은 겹눈은 누가 봐도 파리의 모습이었다.

- 부응.

천사가 가슴팍에 달린 앞날개를 멈췄다. 1초에도 네 번은 왕복하는 등날개만 진동하며 아래로 급격히 내리꽂혔다.

“믿음을 품으니 그 날개가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처럼 빠르니라!”

자유 낙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빠르기지만 바닥에 바싹 붙으며, 완벽하게 자신의 속도를 통제하고 있었다.

평생을 날짐승으로 살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메이스가 정확히 내가 있던 곳에 휘둘러졌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상태창에 몰입하며 시간을 느리게 인식하지 않았다면 피하지 못했을 빠르기 였다.

휘둘러진 황금빛 메이스의 풍압에 대리석 바닥이 움푹 파였다.

그런 풍압이 일어날 만큼 강하게 메이스를 휘두르고도 ‘천사’는 다시 나에게 가로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였고, 칼을 들이댈 시간조차 없었다.

- 철컥,쩌엉!

강렬한 금속음이 일어났다.

메이스가 뿌려대던 황금빛 섬광이 사방으로 뾰족뾰족하게 튀며 하안빛을 두른 전투낫에 튕겨 나갔다.

다시 보니 바닥을 파이게 만든 건 단순한 풍압 따위가 아니었다.

“어휴,안 잘리겠네.”

메이스를 막은 나냐우가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메이스를 막아 내고도 같은 자리에서 단 한 걸음조차도 밀리지

않았다.

기계공학.

프레스 장치를 사용해서 위력을 분출하는 무기는 검기를 쓸 수 있는 수준에서는 흥미와 의외성 외에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고속실린더에 의한 유압증폭 최대화를 넘어,마법회로에 의해 진동과 반동조차도 공격 방향으로 왜곡하는 이 낫에 이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힘에서 밀린 천사는 휘청거리며 십여 미터를 공중에서 튕겨 나가긴 했지만,곧 날개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위로 올라갔다.

“.일 났군.”

나냐우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는 천사 셋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때 였다.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에게 인사하며 손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두 배를 물고기로 가득 채웠도다!”

투명한 막이 사라졌다.

황금빛 광채를 곳곳에 뿌렸다.

한 번 빛이 반짝일 때마다 허공에 천사의 휘광이 솟아올랐다.

텅 빈 눈빛으로 자리에 늘어져 있던 인간들이 하나하나 겹눈의 천사로 변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열. 스물. 이게. 무슨..!”

하늘이 황금빛 휘광을 반짝이는 천사들로 가득해졌던 그때.

- 파드득!

펼쳐 놓은 인밴토리 속에서 검은 까마귀가 솟아올랐다.

들뜬 섬광이 집중 상태로 연거푸 까마귀를 내려찍었다.

마치 빛의 소나기가 한 점을 향해 쏟아붓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빛이 그물을 만들고,공간을 아예 메워 버렸다.

어떻게 막아 줄 새도 없었다. [부정한 것! 녹아 없어져라!]

“아이작!”

그런데,애초에 스스로 바깥으로 나올 수 있던 건가?

일일이 물어볼 시간은 없었다. 기괴한 시스템 메시지를 무시하고 어떻게든 녀석을 감싸 주려는 순간.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평소의 장황한 시구는 없었다.

아이작은 극단적으로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정확하게 뜻을 전달하고, 꼭꼭 씹고,벌어지지 않는 공간의 목구멍에 짓이겨 쑤셔 넣었다.

- 사가각.

빛이 얼어붙었다. 언제부터인가 까마귀는 내 ‘인밴토리’를 제 몸에 두르고 있었다.

인벤토리에 빛이 닿는 순간,빠르게 흔들리며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 빛의 알갱이들이 그 움직임을 잃어 버리는 게 느껴졌다.

- 사가각!

구름이 내리쬐는 황금색 광채는 한 조각도,아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점조차도 아이작이 두른

투명한 망토를 넘지 못했다.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아이작은 계속 말을 강화했다.

짧은 한 글자였지만 거기는 빛의 공격에 대한 뼈저린 이해가 담겨 있었다.

봉인의 세월을 삼켜 온 이해도가 두 글자에서 수축되고,회복되고, 상대에게 인식됐다.

반복냉처리를 통해 빛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빛을 빼앗긴 탓인지

구름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영원처럼 쏟아 내리던 빛의 소나기가 멈췄다.

남아 있던 건 눈앞의 세 천사와 몰려오는 스무 기의 천사뿐이다.

“감히 ‘빛’에게. 너희들이 무슨 모독을 저지른 거냐!”

- 까앙!

나냐우는 흥분해서 달려드는 천사 키녹하프덴을 상대하고 있었다.

남은 두 천사는 동료가 올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는 둣 굳게 문을

지킨 채였다.

“인밴. 토리.”

일그러졌던 인밴토리가 곧 다시 활성화되어 손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이작이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작은 부분은 아직 가져올 수 없었다.

까마귀가 살짝 부리를 들었다. 그러자 ‘내’ 인밴토리로 만들어진 녀석의 망토가 동그란 구체 형태로 허공에 떠올랐다.

“너,도대체 어떻게..

- 딱딱.

까마귀가 부리를 부딪쳤다.

오랫동안 ‘관측 중’이던 까마귀가 두 눈을 붉게 빛내며 낮게 읊조렸다.

〈일단 내 말부터 들어라. 세상을 너를 향해 좀 기울여 볼 테니까.〉

아이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세계를. 기울인다고?”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는지 눈앞의 두 천사가 긴장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외경外經의 부정한 날짐승..!”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 한다.”

흘끗 까마귀를 바라보는 나냐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에게 아이작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나냐우는 달려드는 천사의 연속 공격을 공중에서 가볍게 피했다.

세 쌍의 날개를 단 존재의 공격을 공중에서 밸런스를 잡으며 피하는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아이작이 그녀를 부리를 치켜들고 바라봤다.

“트로핀 나냐우,전투에 집중해라.”

깨끗한〈목소리〉가 울렸다.

지금까지 아이작이 말한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녀석이 두르고 있던 ‘공간’이 뜻에 따라 정확하게 진동

했고, 음원이 되었다.

나냐우는 그런 현상에 놀라지도 않고 눈썹을 찡그렸다.

“뭐래,그러고 있잖아! 이 정체 모를 불길한 까마귀야!”

정말 정체를 모르는지 혼란스러운 반응이었다.

천사는 공중전보다 차라리 땅에 내려앉아 있는 게 낫다고 느꼈는지 두 발을 땅에 댔다.

그리고 거대한 방패로 몸 전체를 막은 상태에서 메이스를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강한 황금빛이 뿜어지며 메이스가

점점 긴 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 위의 휘광이 한층 더 강하게 반짝였다.

온몸의 갑각이 하얀색이 아니라 황금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나냐우는 무기가 변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닥을 박차고 낫을 가로로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달려 나가는 속도가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빨랐다.

- 파앙!

튀며 천사의 강인한 두 팔이 번쩍 위로 들렸다.

앞날개가 달린 천사의 몸 전체가 드러났다. 천사는 튕겨진 자세를 역으로 이용해서 한순간 강하게 바닥을 내리쳤다.

- 콰광!

나냐우는 바닥을 가볍게 구르며 강렬한 내려치기를 피했고,길어진 금빛 철퇴는 대리석 바닥을 부수며 1미터를 넘게 파고 들어갔다.

왼쪽으로 피한 은발의 사신이 즉시 옆에서 낫을 휘둘렀다.

- 까앙!

속도와 방향에서 절대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지만,방패는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각도를 바꿔 공격을 막아 냈다.

방패 각도가 바뀌는 속도는 거의 빛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압증폭이 최대화된 낫의 출력을 막지 못하고 방패는 튕겨 뒤로 젖혀졌고,나냐우는 천사의

멱살을 잡은 채 낫을 낮췄다.

- 철컥.

정밀한 마도회로가 새겨진 총신이 30센티 거리에서 천사의 머리통을 겨눴을 때였다.

- 피이이잉!

빛의 회전이 걸린 거대한 랜스가 날아왔다.

창이 꽂히는 반경 3미터를 파괴해 버릴 것 같은 기세의 투창이었다.

랜스가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터트리기 직전,나냐우는 반걸음 옆으로 향하며 낫을 되돌렸다.

그리고 랜스 손잡이에 정확하게 낫을 걸어 한 바퀴를 돌리고 다시 반대편으로 던져 버렸다.

- 콰광!

날아온 속도보다 더 빨리 돌아간 창은 두 천사가 지키고 있던 문을 그대로 날려 버렸지만,살아 있는 것처럼 저절로 다시 천사의 손으로 들어갔다. 모두 3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사이에도 수십 기의 천사들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뭘 그리 멍하니 보고 있는 거냐? 인벤토리를 펼쳐. 나를 따라 해라.”

다시 허공에 오싹할 만큼 매끈한 〈목소리〉가 울렸다. 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청아한 목소리였다.

소리는 분명 까마귀에게서, 아니 그가 통제하는 진동으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다.

붉고,푸르고,갈색으로,그리고 투명하게 변하며 까마귀의 주위를 구체 형태로 빙빙 돌던 인벤토리가 천사들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넓게

펼쳐졌다.

처음에는 까마귀를 덮을 정도였던 인벤토리가 순식간에 5미터 정도로 넓게 펴졌다.

펼치는 건...

가능하다.

지금 수준에서도 할 수 있었다.

아이작의 말에 따라서 인벤토리를 넓게 늘였다.

인벤토리를 수련할 때.

내게 공간의 양면을 느껴 보라고 했던가.

10미터까지는 크게 신경 써서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네 손에 이미 쥐어진 권능이다! 더 넓게!”

인벤토리를 직경 20미터 정도로 펼쳤다. 끝부분이 점점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더 벌려!”

30미터 정도로 펼치자 정신력이 급격히 흐트러졌다.

인벤토리 곳곳에서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작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인밴토리는 네게 귀속되어 있다. 이걸 구성하는 건 네 정신이야.

네 의지가 인벤토리 구성에 하향적 인과를 가진다. 네가 인밴토리를 통제하고 다스리지.”

“그게. 무슨 말이지?”

“젠장, 물리계의 인과폐쇄성에서 너 혼자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다! 네 정신만으로. 현상 없이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 영역은 어떤 입자도 아니야! 네가 내리는 ‘결정’ 그 자체니까.”

아이작은 펼치고 있던 인벤토리를 내 인밴토리 영역에 길게 늘여서 테두리를 만들었다.

“내가 끌고 간다. 유지에 집중해. 끊기지 않게!”

눈앞의 투명한 막이 좌악,하는 소리를 내며 늘어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이작의 테두리에 붙은 인벤토리 끝부분이 늘어지며,투명한 영역이 무려 직경 백 미터로 넓어졌다.

하지만 워낙 세련된 솜씨인 덕에 우악스럽게 넓혔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순간에 정신이 확장된 것 같은 감각이 생경했다.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압도적으로 넓어졌다.

“좋아. 이제 도약을 해 볼까.”

- 파드득!

천사들은 전방에 투명한 박막이 퍼지자 무언가 이상한 걸 느끼고 손을 뒤로 젖혔다.

나나우가 아슬아슬하게 피한 황금의 창이 무리를 이끄는 천사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일제히 들린 다섯 자루의 창을 보고 까마귀는 비웃듯이 말했다.

“〈투척되는 모든 창을 막는다.〉를 개념해라.”

급박한 상황.

하지만 아이작의 말을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무슨. 소리지?”

내 정신만으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인벤토리가 내가 내리는 결정 그 자체라고?

지잉,하는 느낌과 함께 투명한 박막 테두리에서 아이작의 의지가 전해졌다.

하나하나 쳐낸다는 게 불가능한 속도로 다섯 자루의 창이 날아왔다.

막아 낼 수 없다...

아이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망에 갇힌 상태였다.

- 콰앙!

하지만 빛이 휘감긴 창은 박막에 부딪혀 그대로 뒤로 튕겨 났다. 허공에 떠 있는 천사들은 황당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작이 딱,하고 부리를 살짝 부딪치며 말했다.

〈지금 건 내가 막았다.〉

단순한 의사의 전달.

공기의 진동이 아니었다.

테두리를 두르고 있던 아이작의 ‘영역’은 그 짧은 순간 다섯 점으로 나뉘며 천사의 창을 전부 막아 낸 것이었다.

아이작의 의지라고 느꼈던 것은 한순간 분할된 ‘테두리’의 움직임.

무너져 가는 형태를 다시 이끌어서 복구한 까마귀가 말을 이었다.

〈도약이 어렵다면. 계단 아래서 쉽게 가 보자.〉

창이 튕겨 나자 당황하며 잠시간 머뭇거리던 천사들이 다시 전열을 추스르고 손을 들었다.

〈지금부터...>

위로 내민 그 손에 같은 형태의 황금빛 창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벤토리는 모든 걸 거부한다. 아무것도 ‘담지 않는다.’ 담는 것은

완벽하게 짜여 있는 개념.〉

손을 든 천사의 수는 스물넷. 쫓아온 무리의 대다수였다.

〈단순하다. 그걸 거부해라.〉

‘담지 않는다.’

개념을 완성하자 인벤토리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요란하게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황금, 무기,서적...

‘아무것도 담지 않는다.’

인벤토리 一

아니,결코 아무것도 담지 않는 공간의 밀도가 급등했다.

천사들이 창을 들었다.

“이제. 키워!”

정밀하지 않았다.

모양도 균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구현된’ 한 기능을 거절하며,그걸 ‘확장’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작의 테두리를 따라가면 더더욱 간단했다.

- 우우응!

투과율 제로.

인벤토리에 담기지 못한 공기가 사방으로 강하게 밀려났다.

나냐우와 싸우고 있던 키녹하프덴, 아이작,미유만 안쪽에 두고 반구 형태의 막이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기압이 낮아지며 미유의 긴장한 땀 냄새도,낫과 방패가 부딪치는 금속 냄새도 급격히 옅어진다.

대리석 위에 이슬이 맺혔다. 천사들은 보이지도 않는 기괴한 힘에

밀려 주욱 뒤로 날아갔다.

〈좋아,일단 멈춰! 내 도움 없이 안정화 모델을 구축하는 걸 목표로 삼아 보자고.〉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정신이 어지러웠다. 인밴토리 끝에 닿아 밀려난 천사들이 인식되고 있었다.

천사들 가운데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땅에 칼을 박은 채 버티려는 자들도 있었지만,결국 한순간도

지체되지 않고 모조리 신전 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질량이나 경도의 차원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강제한 ‘담기지 않는다.’

그 개념이 모든 것을 추방했다. 안쪽에서 버티고 있던 두 천사도 하늘로 밀려나 날개를 퍼덕거리는 상태였다.

- 퍼억!

혼자 남은 키녹하프덴의 뒷목을 나냐우가 손목으로 내리쳤다.

일방적인 구타.

하지만 날붙이로 베려 들 때마다 방패가 스스로 빛처럼 막는 데다, 하얀 갑각이 덮고 있어 어지간히 내구성이 단단한 모양이었다.

연거푸 구타당한 천사는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면서도 아직 의식을 잃지 않았다.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바깥으로 도망가려고 했지만,반구에 계속 부딪혀서 나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이판사판이라는 듯 천사는 황금빛

가시가 삐죽삐죽한 철퇴를 띄우며 달려들었지만,나냐우는 슬쩍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천사의 등 뒤를 밟아 짓눌렀다.

그녀는 그 자세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보고 물었다.

“대체. 뭘 한 거야?”

“.모르겠다. 일단 아이작의 말을 따랐을 뿐인데.”

- 콰직!

“끄어어!”

깜짝 놀란 나냐우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자 천사가 이제 죽는다는 듯 버둥거렸다.

나냐우가 살짝 다리에 힘을 빼며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작? 이 까마귀 주술 인형이, 정말 그 ‘세계의 적’ 아이작이라는 얘기야..?”

“그렇다.”

“하,나 참..

그녀는 주머니를 뒤지곤 단풍잎 모양 시럽 병에 빨대를 꽂았다.

고뇌와 걱정이 가득 찬 표정으로 한 모금을 진하게 빨아낸 나냐우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이 난리가 벌어진 건 당연히 우리 잘난 아이작 님 덕분이시고.”

〈건방진 녀석,지하에서 유적이나 뒤지고 다니던 꼬맹이가.〉

“미안하다. 하지만 내 동료니까*••.

나냐우가 한층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동료님 덕에,이제부터 너도 여신의 적이 됐다는 사실은 깨닫고 있는 거지?”

〈사실이긴 하다.〉

이런 식으로 세상이 기울어지는 건 크게 원하지 않았는데.

- 우득!

- 우드드득...

나냐우의 발에 밟힌 천사의 몸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하얀 갑각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부분적으로 탈피하고 있었다.

겹눈이 머리 위쪽으로 모아지며

아래쪽에 새롭게 두 눈이 생겼고, 더듬이가 사라지며 두꺼운 염소의 뿔이 머리 양쪽에 솟아났다.

세 쌍의 투명한 날개가 팔다리에 흡수되며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천사의 몸을 밟고 있던 나냐우가 버티지 못하고 다리를 들었다.

“어쩌지?”

“튀어야지! 몇 번이나 더 변할 줄 알고? 재들 다 변하기 전에 빨리!”

〈쯧쯧. 신이랑 싸운다는 게 원래 이딴 식이었지.〉

“튀자고..?”

〈여길 벗어나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을 거다.〉

“재들 다 변하기 전에 빨리!”

나냐우가 앞을 가리켰다.

투명한 막이 사라진 곳.

날아간 문을 지키던 두 천사들도 하늘에 떠서 비슷한 형태로 천천히 몸이 변형되고 있었다.

“히힘. 히히힝..?”

불안해하던 미유에게 최면을 아이작은 안장 위에 앉은 채 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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