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9:1 (8)
‘사막의 신’과 내 사이의 거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잠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다시 모래 속으로 몸을 처박았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진동을 피해 왼쪽으로 달렸다.
바로 뒤에서 몸을 솟구친 녀석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사막에서 지형 보정이라도 받는지, 질주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따돌리기 쉽지 않았다.
달리던 중에 대검의 방향을 돌려뒤로 강하게 휘둘렀다.
- 까앙!
달려드는 녀석의 머리 쪽 칼날에 맞아 몸이 거칠게 몇 바퀴 구르며 멀리 튕겨 나갔다.
회귀 전에 있었던 늪의 악령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그 녀석보다 훨씬 강하고, 크고, 빨랐다.
하지만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르다.
자세를 잡고 땅에 발을 디뎠다.
사방이 온통 모래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칼에 바람의 힘을 불어넣고 앞으로 휘둘렀다.
[냉기 폭풍 Lv.l을 발동합니다!]
- 휘이이잉!
얼어붙은 바람이 뿜어졌다.
레라지에의 성지에서 루-륨을 흡수하고 나니, 마력을 발동하는 제한 이 훨씬 높아진 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무리하게 발동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사막의 신’이 일으킨 모래 먼지가 얼어붙으며 아래로 가라앉았다.
순간 모래 아래로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신’이 바닥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놈은 다섯 개의 칼날이 달린 입을 살짝 벌리고, 나를 향해 평행하게 돌진해 왔다.
모래 아래에서 바깥으로 나올 때 속도가 최고조에 달하는 듯했다.
십여 미터 앞에서 애쉬웜이 입을 꽃처럼 쫙 벌렸다.
머리는 세 배 정도 커졌고, 다가오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빨라졌다.
멀리 피할 수는 없었다.
한 치 간격으로 오른쪽으로 구르며 칼을 옆으로 그었다.
‘결빙.’
‘질풍.’
- 화아아악!
검기가 ‘사막의 신’을 십여 미터이상 길게 베고 지나갔다.
상처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새까만 몸통에 난 긴 상처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녀석은 지지 않고 빠르게 꼬리를 휘둘렀다.
공격을 예감하는 순간에 냉기가 흐르는 검을 깊숙히 박았다.
- 콰광!
강한 충격이 온몸을 덮쳤다.
[체력이 15%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칼을 박은 성과는 있었다.
‘사막의 신’의 몸 전체에 걸친 긴상처가 허공으로 튕겨진 내게 훤히 내려다보였다.
대검에 재가 묻어 새까맸다.
끈적하거나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인간을 씹어 먹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녀석은 유기체가 아니다.
- 부응!
칼을 옆으로 휘저었다.
허공에서 검압을 이용하면 원하는 곳으로 떨어지는 게 가능하다.
튕겨지는 힘을 이용해, 녀석에게서 되도록 멀리 자리를 잡아 착지했다.
[냉기 폭풍 Lv.l을 발동합니다!]
나는 칼을 들고 녀석을 겨냥했다.
질주 스킬로 거리를 벌리며 계속마법을 쏘아 냈다.
[냉기 폭풍 Lv.l을.]
다섯 개의 칼날이 달린 입을 쫙벌리고 달려드는 녀석에게 차가운바람을 먹였다.
한 번 마법에 맞을 때마다 놈이 조금씩 움찔한다.
- 쿠구구궁!
거리가 유지되고, 녀석이 다시 아래로 들어갔다.
아예 깊숙이 들어간 건지 기척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탐지 영역을 아래쪽에 집중시켰다.
‘여기다.’
아래에서 비스듬히 솟구치는 기척을 그대로 찍어 내렸다.
- 깡!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졌다.
솟구쳐 오른 녀석은 머리에 달린 다섯 개의 칼날 중 둘을 내 대검에 들이댔다.
칼날의 강도는 비슷했지만 질량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몸이 높이 떠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놈의 움직임에 휘말려 피떡이 된상인들이 내려다보였다.
공포로 다리가 굳어 제대로 도망가 지도 못하고 있던 녀석들이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을 꽁꽁 결박해, 멀리 끌어낸 레나가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저건.!’
레나에게 일단 피하라고 소리치려할 때였다.
- 쉬이익!
그녀의 팔목에서 투명한 줄이 솟아올랐다.
절단이 목적인 날카로운 와이어는 아니었다.
위로 솟구친 그녀는 ‘사막의 신’의 몸통 전체에 빛나는 갈고리를 꽂고 길게 감아 가기 시작했다.
투명한 줄은 레나의 팔목에 부착된기구에서 살아 있는 듯 쏘아 내지며 아름답게 춤을 췄다.
- 좌르록!
감기는 작업이 끝나자 ‘신’의 몸곳곳에는 디디고 잡기 편한 수많은 마디가 생겨났다.
레나가 ‘신’의 몸을 발로 차 디뎌달리면서 하얗게 얼어붙은 상처에 뭔가를 연속적으로 던져 넣었다.
- 콰과과광!
던져 넣은 것들이 몸통 안쪽으로만 방향성을 갖고 터져 나갔다.
마지막 마디를 디디고 비스듬하게 허공으로 몸을 던질 때.
레나가 나와 교차했다.
그녀가 소리쳤다.
“지금 쳐!”
‘신’이 충격에 잠시 움찔하는 사이, 허공에서 칼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다시 내리쳤다.
[지혜가 충분히 높습니다.]
[예메라의 교리 Lv.l 의 숨겨진 기능이 발동됩니다.]
[여신의 저주를 받은 피조물들의 약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참격 Lv.2]
? 칼날이 지나간 자리가 으스러집니다.
[일도양단 Lv.2]
- 상대의 방어력을 대부분 무시합니다.
[냉기 폭풍 Lv.2 발동합니다!]
- 사가가각!
녀석이 레나를 잡아먹기 위해 막입을 벌린 순간.
휘몰아치는 차가운 검기가 새까만 애쉬 월의 배를 머리 끝에서 배까지 갈라냈다.
- 화아악!
배가 갈라지며 붉은 피 대신 까만 저주가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저주가 흩뿌려진 모래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마디. 마디를 써.!”
저 멀리 착지한 레나가 허공에서 싸우는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물론 그럴 생각이다.
그녀가 만들어 낸 ‘손잡이’를 잡고 계속 애쉬웜을 내려쳤다.
[<속성: 산성酸性 Lv.5>를 칼에 덧씩습니다!]
[냉기 폭풍 Lv.2를??????.]
새파랗게 달아오른 검이 상처를 산성으로 녹이고, 엉망이 된 부위를 다시 얼려 버렸다.
“우와.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슬쩍 아래를 봤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바라보며 레나의 모습이 보인다.
사실 내가 고마워야 할 입장이다.
그녀가 만들어 준 ‘손잡이’가 곳곳에 달려 있었다.
살짝 밑으로 내려가 목 즈음에서 가로로 칼을 휘둘렀다.
[일도양단 Lv.2 발동!]
상인들의 시체라도 소화되고 있던 부위인지 새빨간 피가 터져 나간다.
“괜히. 걱정한 건가.
탐지 스킬을 최대로 발동한 탓에, 아래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레나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걱정해줬다니 고맙긴 하다.
눈앞에서 얼굴이 꺼멓게 말라 버린 상인이 상처 밖으로 굴러떨어진다.
레나가 만든 손잡이를 잡고 당기며 몇 번씩 애쉬웜을 베어 냈다.
- 촤아악!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씹어 삼킨상인들의 시체가 굴러떨어진다.
슬슬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
마지막은.
‘발도.’
칼이 꽂힌 애쉬월의 몸통 자체를 칼집처럼 사용하며 강하게 빼서 휘둘렀다.
[스킬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가 당신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숙련도가 30% 추가 상승합니다.]
서번트 시스템.
레나뿐만 아니라, 루비아가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다.
아이작이 데리고 오기라도 한 걸까.
마음이 급해진다.
‘발도.’
- 사가각!
검기가 다시 한 번 애쉬웜의 몸을 가르며, 지나간 자리를 다시 한 번모조리 얼렸다.
움직임이 완연히 둔해진다.
‘발도.’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며 얼어붙은 부위를 다시 한 번 올려쳤다.
장식용이라고 보기에도 터무니없이 무거운, 10킬로에 가까운 쇳덩이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지만 내려치는 것과 위력이 동일했다.
힘 스랫이 90을 넘은 상태에서는 대검 무게나 중력 같은 건 아무런고려 요소도 되지 않았다.
- 과광!
얼어붙은 부위가 부서져 나가면서 놈이 이십 미터가 넘는 몸을 부르르떨어 댄다.
- 쿠궁!
바닥 착지와 동시에, 놈의 긴 몸이 모래 위로 쓰러졌다.
상태창이 연달아 떠오른다.
[’사막의 신’을 처리하셨습니다.]
[랭크: B더블 플러스]
[최후의 일격: 발도]
[숙련도가 50% 추가 상승합니다.]
강한 적을 쓰러트려서인지, 아니면 동화율이라는 게 낮아져서인지.
이제 마지막 일격까지 신경 써 주는 모양이다.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발도 Lv.5-> Lv.6]
[스킬 등급이 ‘희귀’로 조정됩니다.
발도에 속성이 부여됩니다.]
[속성: 대검(최다 사용)]
[힘 스탯이 85 이상입니다.]
[특전: 태도무쌍太刀無雙 획득!]
특전의 자세한 효과를 확인했다.
[1?2인을 기본으로 하는 발도술의 범위가 3?10인까지 증가합니다.
여럿을 상대로 해도 발도의 위력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중형 이상의 적을 상대할 경우, 스킬 위력이 15% 상승합니다.]
나쁘지 않다.
아니, 나쁘기는커녕 한 번에 많은 적과 싸울 일이 갈수록 많아질 내게 꼭 필요한 스킬이다.
거대한 적을 상대할 경우 위력이 상승하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든다.
반투명한 푸른 상태창이 끊임없이 허공에 떠올랐다.
[용사 포인트를 산정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용사 포인트다.
몇 가지 복잡한 계산이 지나간다.
랭크니, 난이도니 하는 것들이다.
물론 마지막 숫자만 보면 된다.
[1, 936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상점 이용 권한을 산출합니다.]
[누적 포인트, 견습 한계 돌파.]
- 띠링!
[’일반(Normal)’으로 상점 권한이 상승했습니다. 더 이상 견습생으로서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포인트 시스템이 표기의 용이성을 위해 퍼센트로 변화합니다.]
[현재 구매력: 1.9% (일반)]
딱히 더 용이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원래의 1,000포인트가 1%로 환산되는 것 같았다.
포인트 아래쪽에 길다란 바 형태가 떠올랐다. 오른쪽 빈 공간에 하얗게
1.94%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이 길다란 바를 다 채울 경우에, 다음 등급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슬슬 끝인가 했더니, 골라야 할 게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거의, 죽고 다시 시작할 만큼이나 상태창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보유하신 구매력의 사용 시점을 결정해 주십시오.]
[상점 이용이 늦어질수록 강력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2.5%]
[5%]
[10%]
[20%]
[100%]
묘하게 분리된 다섯 개의 선택지가 나타난다.
마지막에는 숫자가 20에서 단번에 100으로 된다.
100%까지 구매력을 충전하려면
이런 것들을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 솔직히 상상은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2.5%를 선택한다면 금방 보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모았다 쓸수록 큰 보상을 얻는다는 말이 계속 걸린다.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선택지를 하나씩 계속 바라봤다.
기이하게도 머릿속에 직접 정보가 흘러들었다.
첫 번째, 2.5%.
각종 영약이나 장신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후작이 마셨던 황금빛 엘릭서나, 목에 걸고 있는 것만으로도 귀신을 쫓는 페티쉬, 금화가 꼬이는 팔찌같은 것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열기와 냉기, 전기에 받는 피해를 줄여 주는 것도 있었다.
공통점은 간단했다.
자기 자신에게 쓰는 것들이었다.
시선을 내려 5%를 향한다.
본 적 없던 창이나 검 같은 것이 떠오른다. 이미지는 완전하지 않다.
흐릿한 부분들도 많다.
상처가 없는 적에게 세 배 피해를 주는 단검, 냉기 마법이 걸린 칼과 화염 마법이 걸린 장궁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일단 한 번 찔리면, 상처가 낫지 않게 되는 갈색 창도 보인다.
누군가를 겨냥할 물건들이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10%는.
- 띠링!
요란한 효과음이 울렸다. 허공에 반투명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화울이 너무 높습니다.]
10%나 20%는 뭐가 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중.’
‘명상.’
또렷하지는 않아도 약간의 느낌은 잡을 수 있었다.
흐릿한 안개에 휩싸인 듯.
수많은 군세나 거대한 요새에 대항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100%는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였다.
- 치직.
- 치지직.
100%.
마지막 선택지가 아예 선택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충동이 일어났다.
이걸 선택해야 하나?
어차피 여기에 제대로 된 이해나인지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이런 기괴한, 반투명한 창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직 나 하나밖에 없다.
아이작이나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 치직
마지막 100%는 계속 흐려졌다.
조금 주저했지만, 결국은 충동에 굴복해 ‘100%’를 선택했다.
허공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100%를 선택하셨습니다!]
[구매력 최대치에 도달할 때까지 상점 이용이 불가합니다.]
[선택이 확정되었습니다.]
[구매 가능 품목이 한 종류로 확정됩니다. : 세계부정Anti-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