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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34화 (134/458)

135화 패치워크 (15)

“밤톨이?”

“네. 아까 어디로 달려가던데요. 싸우느라 챙기질 못했는데.

방독면 뒤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도 서서히 적응되고 있었다. 그 뒤 레나의 원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상상됐다.

“으음.

하지만 여기저기 둘러볼 것도, 탐지 스킬을 사용할 것조차 없었다.

격렬한 칼 소리가 멈춘 통로.

한편에서 연달아 작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군.”

녀석은 달그락거리며 통로 전체를한 번씩 다 점검한 것 같았다.

- 달각! 달각!

달려온 밤톨이가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양쪽으로 저었다. 짖는 것처럼 고개를 위로 하고 딱딱거렸다.

[뭘. 말하고 싶은 걸까요?]

녀석의 몸짓으로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높은 호감도가 밤톨이의 심리 상태를 자동으로 알려 준다.

- 교감:<밤톨>이 걱정합니다!

- 사방이 막혔습니다!

교감이 녀석의 심리를 알려 준다.

“탈출할 곳을 찾고 있던 것 같은데.”

옆에서 밤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밤톨이는 작고 귀엽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처음 일으켰을 때도.

여기 데려올 때도 녀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도움이 되려 했는지 일행이 서로 싸울 때도 혼자 애써 준 것이다.

‘수고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철컥.

녀석을 꼭 안아 줬다.

수고를 인정받아 기쁘다는 듯 밤톨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레나도 어느새 사방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 끼기긱.

- 철컥! 퍽!

그녀의 가방에서 다양한 모양의 도구들이 하나씩 나왔다.

하지만.

도구들을 하나씩 사용할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으며 주위를 살펴볼 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처지고 있다.

그녀의 곁에 다가가 물었다.

“.막힌 건가?”

[하아.]

레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는요. 가장자리까지 봤는데. 답이 나오질 않네요. 비집고들 어갈 틈도 없고.]

나도 석벽 틈을 발견하지 못했다.

탐지 스킬을 써 봐도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것이나 생명을 가진 것들은 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던전 같은 무생물의 구조 파악에는 취약한 편이다.

‘아직 레벨이 낮은 탓인지도.’

다시 일어나 꿈틀거리는 챈들러와 크리스티나가 보였다.

그들을 보자 더욱 착잡해졌다.

생존은 했지만, 언제 제정신으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다. 레나는 아직도 석벽을 수색하고 있었다.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미안해 괜히 뻔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연기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떤가?”

[. 3시간이에요.]

석벽을 수색하던 레나가 대답했다.

방독면 때문에 둔탁하게 반향되는소리 뒤로, 희미하게 떨리는 감정이 느껴졌다.

‘3시간?”

[3시간 남았어요. 제가 미치기까지.

지금껏 썼으니 2시간 30분 남았네요. 방독면의 유효 시간이요.]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연기는 자욱하다.

사방은 막혀 있다. 빠르게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레나까지 미쳐죽어 가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그녀의 미래는 두 가지다.

미친 채 굶어 죽는 것.

내가 검기로 무리하게 무덤을 부술 동안, 쏟아지는 돌덩어리에 깔려서압사당하는 것.

나는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다 해도. 레나가 나 때문에 또다시 죽게 된다.

두 번째로 통로 전체를 점검한 레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미치면 그냥 목을 잘라서 죽여주세요. 굶어 죽기는 싫어요. 다시 굶는 건 미친 상태에서도 싫을 거예요.]

“.방독면 여분은 없나?”

[없어요. 하나뿐이었어요. 아무래도. 그라스미어의 기술로 만든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요.]

- 철컥.

나는 빈주먹을 꾹 쥐었다.

이번에도 레나는 내게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같다고 경고했다.

세 번 그녀의 감을 무시하고, 세번째로 레나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은 것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무조건 그녀의 말을 들을 거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은 정말 방법이 없을까?

레나가 석벽에 귀를 댄 채, 내가꽉 쥔 주먹을 흘끗 바라봤다.

[여기 주먹으로. 살짝 한 번 때려주실래요?]

- 까앙.!

요청대로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돌아오는 소리로 석벽의 두께를 측정하는 것 같았다.

[.하아. 최소한 1?미터는 넘네요.]

[이제 1시간 남았어요.]

- 털썩.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 주저앉았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르렁거리는, 첸들러와 크리스티나의 성난 목소리가 통로에서 몇 번이고 거듭해서 울렸다.

‘실패. 인가.

어떻게든 구해 주고 싶었다. 도와주고 싶었다. 이번 생에도 레나가내 앞에서 죽는 걸 본다면 그만한 악몽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정신을 무섭게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하핫. 이제 끝인지도 모르겠네요.]

레나가 과장된 소리로 웃었다. 침묵보다 슬픈 웃음이었다. 설마 그녀에게 또 한 번의 빚을 지는 걸까?

지금의<그녀>는 마지막이겠지만.

나는 마지막이 되지 못한다.

설사 죽더라도.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가서 그녀를 보아야 한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너. 내게 호의적인 이유가 뭐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가 내게 호의적인 건 착각이 아니다.

[아하하하.]

레나가 흠칫 당황하며 웃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자 말이 술술 나오는지, 칼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방독면이 얼굴을 숨겨 줘서 좋네요. 하하. 지금 제법 빨개졌는데.]

‘빨개졌다고? 무슨 말이지?’

1 시간.

내게는 끝없이 반복되는 만남이다.

그러나<지금>의 그녀에게는 마지막으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 궁금증을 강요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누군가에게 뭘 받아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어머니 이후로.]

둔탁하게 반향 되는 목소리가 기다란 부리에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숨을 골랐다.

까마귀 부리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숨결에 실린 어떤 기억과 삶의 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목까지 덮은 새까만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뒤의 그녀가 한층 투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전 스승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제게 너무 많은 걸 주셨잖아요.]

[너무, 많은 걸.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고요.]

‘그랬나.’

칼을 약간 가르쳤다. 은괴 몇 개를 넘겼다. 자잘한 정보를 줬다.

“이 정도의 호의가 낯설었나?”

[그럼요. 경계할 정도로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원하는 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 알 수 있었는데. 그 누구와도 다르셨어요.]

마스크의 투명한 유리알 너머로,

잔잔하게 웃는 그녀의 눈이 보였다.

나는 침묵을 이었다.

[아까. 굶어 죽기 싫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랬지.”

레나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항상 굶주려 있었어요.]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의자 위에서 죽은 시체를 버렸다.

동생을 안고 도망쳤다.

매일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상해서 버린 음식을 먹고 죽을 뻔한 뒤로 방법을 바꿨다.

‘왜 나만 죽어야 하는가?’

열 살.

세상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창녀를 가장했다. 육포 한 점에 입을 빌려주고, 동전 몇 닢에 아래를내어주는 학대하기 좋은 여자아이를 흉내 냈다.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고객들이 원하는 짜릿한 첫 경험을 내어주었다. 경동맥이 잘려 온몸의 피가 시원하게 빠져나가는 경험. 그건 당연히 모두에게첫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열 살 아이 앞에서 눈이 게슴츠레하게 풀어진 상대의 목을 긋는 건생각보다 쉬웠다.

무엇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

그럴싸한 이유나 구실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차갑게 굳어 있는 시체에게 남은걸 전부 털어 갔다.

그때부터 굶주림은 없었다.

꼬리가 잡힐 뻔한 적도 있었지만,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할 때마다 직감은 조금씩 더 발달했다.

나는 레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세상을 부수기로 결심했던 열 살 인간 아이가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온통 그녀를 착취하려 했던 세계와, 약간이나마 호의를 베푼 내가다시 한 번 대조되는 효과일지도 모튼다.

[그러다 스승님을 만난 거죠.]

까마귀 가면, 유리알 너머의 레나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를 속이고 있는 기분이 죄책감이 느껴졌다.

뭐라고 끼어들려는 순간, 그녀가문득 이야기를 멈췄다.

[어. 스승님, 연기가 조금 옅어진 것 같은데요?]

주위를 돌아봤다.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던 탓에 의식하지 못했다.

레나의 말대로다. 자욱이 피어올랐던 하얀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 달각! 달각!

발치에 바싹 달라붙어 있던 밤톨이도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돌아봤다.

[걷히네요!]

십 분 정도가 지나자 하얀 연기는 완전히 걷혔다.

“크헉.!”

챈들러와 크리스티나가 쿨럭거리며 작게 신음을 토했다. 새빨갛던 눈 이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부풀어 올랐던 힘줄도 가라앉은 채였다.

“정신이 드나?”

“이상한.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후아아^- 답답했네. 꿈이라고 둘러대면 다예요? 이쪽은 심각했다구요.”

답답했던 방독면을 벗어 던진 레나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얼굴에 붉은 방독면 자국이 나 있었다.

‘오래 쓰면 저렇게 되는 건가.

땀에 살짝 젖은 머리칼이 얼굴과목, 쇄골에 휘감겨 있었다.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다가, 문득챈들러와 눈이 마주쳤다.

“저, 죄송합니다.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다. 이제 연기가 걷혔으니.

좀 더 자세히 찾아보도록 하자.”

“풀어 줄 테니 또 날뛰면 곤란해요. 다들 몸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티를 안 내려고 애쓰는 듯했다.

우리는 각자 구역을 정했다.

어딘가 이음매나 조작 장치 같은건 없나 나눠서 찾아보고 있을 때.

“여길 좀 보십시오!”

앞쪽 통로를 담당한 챈들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칼을 들어 바닥에서 3미터 즈음에 있는 석벽을 가리켰다. 안쪽으로 쑥 들어간 작은 틈새가 있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한번 쑤셔 볼까요?”

레나가 배낭에서 늘릴 수 있는 사다리를 꺼내 들었다.

- 툭!

긴 막대 하나를 들고 안쪽을 계속 두드렸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런데 워낙 깊어서 잘 안 보여요. 어디까지 연결된 건지 모르겠어요.”

그때 였다.

- 달각! 달각!

밤톨이가 사다리에 앞발을 얹었다.

몇 번이고 깡충거리며 위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네가 왜 그래?”

밤톨이를 덥석 안아 들었다.

그때 였다.

[<밤톨>이 희망을 찾았습니다!]

[특성: 예민한 감각이 발휘됩니다.]

[꼭 올라가 보고 싶어 합니다.]

.곤란한데J레나가 밤톨이를 내려다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여기 구멍으로 들어와 보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

“흐응. 괜찮을 것도 같고.”

“위험하지 않나?”

“딱히 함정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송풍구 같은 건데, 갑자기 열렸어요. 연기가 다 여기로 빠져나간 거예요.”

“으음.”

“아까 봤을 때는 없었는데. 이상하네요. 밖에서 조작하는 장치도 전혀 안 보였고. 누른 것도 없어요.”

나는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밤톨이가 끊임없이 달각거리며 나를 보챘다.

[<밤톨>이 올라가고 싶어 합니다!]

보낼 것인가. 이대로 녀석을 안고 있을 것인가. 어려운 문제였다.

- 광!

천장에서 작은 돌덩이가 떨어졌다.

석벽이 움직인 여파 같았다.

’이런 식이면. 여기가? 더 인?전하?

리란 법도 없지. 가 봐라.’

녀석을 잡은 손에서 힘을 렸다.

- 달각! 타다닥!

녀석이 빠르게 몸을 솟구쳐 안으로들어갔다.

갇힌 통로 안에서 고요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챈들러는 침을 삼켰다.

삼 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교감 중인<밤톨>과의 거리가 너무 멈니다.]

[<밤톨>과의 연결이 끊어지기까지3분 남았습니다.]

‘뭐라고.?’

역시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순간.

- 띠링!

눈앞에 연달아 반투명한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밤톨>이 C더블 플러스급 기관장치를해제했습니다!]

[경험치가 몹시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갑니다!]

[레벨이.]

[.올라갑니다!]

- 쿠르르르.!

굉음과 함께 석벽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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