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기분의 문제 (4)
‘상태창.’
[Lv. 15(149)
[체력: 61]
[힘: 68](new!)
[민첩: 69](new!)
[지혜: 50]
준수한 건 스탯뿐만이 아니다.
각각 고랭크에 이른 검술과 체술이서로를 보조하며 협력 효과를 만들어 낸다.
게다가 잿빛 기사에게서 흡수한 세 가지 스킬은, 특이하게도 모두 별도로 계산되어 공격 효과를 증폭시킨다.
‘은신.’
바위 사이사이에 몸을 숨긴 채 거대한 구덩이 사이로 다가간다.
상대의 반응을 눈치 채기 위해 탐지는 최대로 활성화한 상태다.
[던전 보스: 열두 발의 거미 (진명: 웹슬링거'Webslinger)]
[랭크: D플러스]
[플레이어의 레벨: 15]
[적정 클리어 레벨: 55]
[난이도 판정: 절망]
[난이도 판정으로 용사 포인트가200% 가산됩니다.]
[솔로 플레이로 도전합니다!]
지금 상황은 절망과 거리가 멀다.
절망은커녕, 몸길이 4미터의 거대한 이 거미는 내가 근처에 숨어들어온 것조차 모른다.
은신 Lv.5인데도 이 정도다.
‘Lv.10쯤 되면 가관이겠군.’
그 정도로 레벨을 올리면, 깨어난상태에서 털을 몇 가닥 뽑아 가도무슨 일인지 모를 것 같다.
물론 거미 털 따위에 관심은 없다.
내가 할 일은 녀석을 빠르게 죽여주는 일이다.
칼로 녀석의 급소를 조준한다. 홍옥이 쏟아져 나왔던 부위가 심장 비슷한 곳이다.
‘잘 가라.’
[질주 Lv.4를 발동!]
[발도 Lv.5를 발동!]
[<속성: 산성酸性 Lv.5>를 칼에 덧씌읍니다!]
[일도양단 Lv.l을 발동합니다!]
- 일도양단 Lv.l에 의해 상대의 방어력을 ‘대부분’ 무시합니다.
[참격 Lv.l을 발동합니다!]
- 참격 Lv.l에 의해 칼날이 지나간 자리의 세포가 으스러집니다.
[기습으로 인해 데미지 300%의‘치명타’가 발동합니다!]
- 쩌억!
- 촤아 아앗!
- 철컥!
질주 가속을 실어 칼을 휘둘렀다.
베어 낸 뒤 빠르게 몸을 굴렸다.
터지는 초록색 독액을 한 방울도 맞지 않고 피해 냈다.
웹슬링거는 역설적으로 거미줄을 뿜어내지 못하는 거미다.
녀석이 두려운 것은 열두 개의 다리와 거대한 이빨로 인한 공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초록색 독액.
철로 된 갑옷까지 쉽게 녹일 수 있는 수준의 독액이다.
맞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겠지만,일부러 당해 줄 이유는 전혀 없다.
- 치이이이익!
초록색 독액이 바위에 끼얹어져 요란한 소리를 낸다. 나는 뒤로 빠져다음 일격을 준비했다.
그 순간이었다.
-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뭐야? 이대로 끝이야?’
[클리 어!]
[던전 우두머리를 처치했습니다.]
- 열두 발의 거미 (진명: 웹슬링거Webslinger)
[랭크 판정: D플러스]
[난이도 판정: 절망]
[난이도 판정으로 용사 포인트가200% 가산됩니다.]
[솔로 플레이로 던전을 클리어 했습니다.]
[용사 포인트가 100% 가산됩니다.]
[D플러스 랭크 클리어: 54포인트]
[난이도 가산: 108포인트]
[솔로 플레이 가산: 54포인트]
[216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띠링!
[상점 이용 권한을 산출합니다.]
[하급 견습생 (Apprentice Low)으로 이용 권한이 인정됩니다.]
- 다음 등급까지: 943/1,024용사 포인트. 오랜만에 보는 상태창이 다.
‘슬슬 다음 등급으로 넘어갈 때가됐나.
계속 포인트를 누적해 왔다. 망령의 납골당에서, 거미굴에서, 그리고레나와 함께 돌았던 피 묻은 승마자의 쿼터, 시체 출금소, 맹독 하이에나의 구덩이에서.
[적절한 세 가지 능력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능력 스캔 중.]
[플레이어 스캔 중.]
눈앞에서 파란빛이 피어난다.
1. 거물 사냥꾼 Lv.l- 커다란 녀석을 치명타로 살해했습니다.
- 이 특전을 선택할 경우, 대형 몬스터 공격에 치명타가 들어갈 확률에 플러스5%가 보정됩니다.
치명타 데미지는 검술 레벨에 비례해 결정됩니다.
2. 질주 Lv.5- 당신은 발이 많은 거미를 죽였습니다. 당신이 흡수한 포인트는, 다음 스킬로 변환하기에 효율이 좋습니다.
- 질주 Lv.5: 20분 동안 400%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 쿨타임: 50분.
- 하루 사용 제한: 3회3. 보너스 스탯 플러스5‘으음.
나는 생각에 빠진다.
온몸에 불이 붙어 있던 저번과 다르다. 시간은 넉넉하다.
밤새 고민해도 상관없다.
선택지는 세 가지다.
치명타. 질주. 스탯.
보너스 스탯을 받는 건 깔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스탯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다.
올리는 만큼 분명한 결과로 보여지고, 범용성도 가장 높다.
질주는 자주 활용하는 스킬이다.
이동시에는 물론 전투 시에도 더없이 유용하게 활용된다.
‘치명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전체 확률에서 5%가 올라간다는 건 상당히 크다.
스무 번 공격에 한 번은 꼭 치명타가 박힌다는 이야기다.
기준을 알 수 없는 ‘대형’ 몬스터한정이긴 하다.
하지만 인외人外 가운데.
내가 부담스러울 만큼 강한 녀석들 중에서는 주로 커다란 녀석이 많을 거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특전이기도 하고.
“1번. 거물 사냥꾼.”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거물 사냥꾼 Lv.l 습득.]
[대형 몬스터 공격에 치명타가 들어갈 확률에 플러스5%가 보정됩니다!]
- 데구르르!
이어 탁하게 반짝이는 붉은 보석이, 정확히 내가 반으로 가른 부위에서 굴러 나온다.
[웹슬링거의 홍옥]
웹슬링거는 오랫동안 인간을 주 먹이로.
‘.이거 또 감정해야 되나.’
슬라임을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온몸의 뼈가 슬라임의 뜨거운 점액에 녹아내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감정 스킬을 배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주머니에 흥옥을 넣었다. 대충 무슨 아이템인지는 안다. 마물魔物 전용의 진화 아이템. 사용 방법은 모론다.
이제 메시지는 더 이상 뜨지 않는다. 거미를 내려다보며 잠시 감상에 젖는다.
별짓 다 해 가며 잡던 녀석을 칼질한 번에 간단하게 처리했다.
‘싱거워졌군.’
그 순간이었다.
“.어?”
무언가 아주 작은 위화감이 스쳐지나갔다. 구덩이를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뭐지?’
[탐지 Lv.5]
[활성 상태로 전환합니다!]
[스킬 효율 1,000% 증가!]
[현재 체력 기준, 초당 0.0024%의체력이 소모됩니다.]
탐지를 켜자.
한쪽에 있는 낡은 거미 조각상이 유독 내 주의를 끌었다.
겉만 보면 주위를 둘러싼 다른 조각상과 비슷한, 거미줄투성이의 조각상이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 있다.
- 철컥!
나는 조각상을 힘껏 밀었다.
‘어? 안 밀려?’
- 덥석.
양손으로 잡고 힘차게 밀었다.
- 부스스!
하지만 잡은 부위에서 먼지만 떨어질 뿐 조각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헛짚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스킬은 정확하다.
탐지 스킬을 켰을 때, 이게 수상하게 여겨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는 힘이 부족한가?’
- 철컥! 철컥!
나는 몸 전체를 동원해 조각상을 세차게 밀어붙였다.
그때 였다.
- 쿠르르르르릉.!
제대로 힘을 줘서 밀자 거미 조각상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몸이 앞으로 끌려 들어갔다.
- 달그락!
내가 밀긴 했지만, 나도 놀란 나머지 갑옷 안쪽의 뼈까지 마구 달그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무려 1?미터 정도 동굴 안쪽으로 조각상이 쭉 밀린 자리에는 아래로 향하는 지하 계단이 있었다.
“.이건 대체.?”
나는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 앞에 서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이상하다.
여기는 D플러스급 던전이다.
보스라고 해 봐야 나에게 고작 한칼에 죽는 수준.
그런 내가 안간힘을 써야 겨우 밀리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건 확실히 매우 수상하다.
힘으로 부순 것도 아니고, 그저‘밀었을’ 뿐인데.
하지만 조각을 밀어 놓고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 다시 당겨 놓는 방법도 모르겠다.
‘어쩌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 터벅.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 발을 디뎠다. 발소리가 좁은 통로에 유난히 울렸다.
‘은신.’
[은신 Lv.5를 활성화합니다!]
발걸음에 소리가 사라졌다. 아래로한 발자국씩 내려가자, 희미한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안쪽에도 야광주가 박혀 있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은 조금씩 더 넓고 환해졌다.
‘아무것도. 없어?’
그 흔한 거미줄도, 살아 있는 거미나 벌레 한 마리도 없었다.
안쪽으로 몇 발자국 더 걸어가자 커다란 원형의 공간이 나타났고, 피라미드가 반쯤 잘린 것처럼 생긴 커다란 칠흑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는 조각상이 있었다.
‘거미인가?’
하지만 평범한 거미는 아니었다.
다리에 비해 몸체가 너무 크고 높았다.
게다가 몸 중간이 벌어져 있었다.
조각상에 접근하기 전에 잠시 멈춰주의를 집중했다. 하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희미한야광주 빛 아래 조각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 달그락!
나는 조각상의 모습을 보고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왕관을 쓴 인간의 머리.
아래 달라붙은 커다란 거미의 몸.
서로 다른 여덟 개의 다리는 비스듬히 팔방을 점한다.
그 모습을 익히 알고 있다.
가장 널려 알려졌으며, 가장 익숙한 모습이었다.
마왕.
^111 좌.
번제 포식자.
천사를 도륙하는 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무려 66군단을 이끄는 왕.
‘바알.!,
이곳은, 오랫동안 버려진 바알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바알의 조각상은 커다랗게 입을 쩍벌리고 있었다.
구슬 하나가 박히면 딱 적당할 것처럼 보였다.
‘혹시.,
품을 뒤져 홍옥을 꺼냈다.
‘딱 맞아 보이는데.’
넣으면 바로 딱 들어갈 것 같은 크기. 그걸 확인하자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마왕, 바알의 제단.
홍옥은 인간들의 통곡과 절규를 축적한 붉은 결정結晶이다.
웹슬링거가 인간을 꾸준히 씹어 먹으며 뱃속에서 만들어 낸 홍옥은,
원래 주기적으로 바알의 조각상에 바쳐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홍옥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안 줘.’
과거, 인간 대 마계의 전쟁 시절.
나는 바알의 휘하에 속해 있었다.
녀석은 내 상관이었다.
물론 놈은 마왕이고, 나야 까마득한 말단의 말단이었지만.
그 군단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던 기억은 없다.
아무렇게나 소모해도 되는 공짜 취급을 받았고 최전선에서 부서지는 용도로 쓰였다. 제대로 된 훈련은커녕 쓸 만한 장비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놈의 제단에 공물을 바칠 생각은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입에 흥옥을 물려주면 내가 또 어처구니없는 일에 끌어들여질지 누가 알겠는가? 저번 생의 고생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냥 제단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고요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반쯤 부서진 블랙 유니콘의 조각들이, 제단 주위를 멀찍이서 둘러싸고 있을 뿐.
‘그나저나.’
정말 마왕 부활을 위한 제단은 여기저기 있는 것 같았다.
T&T에서는 푸르손을, 네크론에서는 보티스의 흔적을 찾았다.
가까운 던전에서는 벌써 제1 마왕바알의 제단까지 발견했다.
‘확실히, 마왕 강림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군.
쓸 만한 아티팩트 같은 게 없을까싶어 주위를 좀 더 둘러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바알의 머리통을 괜히 발로 한 번 차 주려다 관뒀다.
‘뭐가 또 잘못 작동할지도.’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간 뒤, 안쪽으로 쑥 밀어 버린 거미 조각상을 보며 고민했다.
‘이거, 원상 복구해야 되나?’
- 달그락.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 인간들이 알아서 하겠지.”
재의 수도회 같은 기사단이 망치를 들고 몰려와 안을 다 부수든.
비프 론이나 예메라의 사제들이 던전 전체에 난리를 피우며 정화 의식을 행하건.
별로 알바는 아니었다.
어차피 바알 놈도 군단 끄트머리해골병사가 무슨 취급을 당하든 알바 아니지 않았는가?
은괴는 챙겼고.
흥옥도 챙겼고.
레벨도 꽤 올랐다.
발걸음도 가볍게 거미굴 밖으로 나와, 레나와 약속한 유블람 여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