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06화 (106/458)

107화 벌레들의 무덤 (6)

새파란 기운이 파도처럼 일어나 허공을 휩쓸었다.

수녀는 가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검에서 피어오른 푸른 기운은 이번에도 수녀를 그대로 통과했지만, 돛을 반쯤 날려 버렸다.

- 피리릭!

반쯤 남은 돛이 아무렇게나 풀어졌고, 육중한 돛대가 바닥에 쓰러졌다.

- 쿵!

- 파각!

커다란 소음과 함께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다, 객실 근처의 난간을 잡아 몸을 지탱했다.

쓰러진 돛대는 갑판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배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심하게 뒤뚱거렸다.

그 와중에도.

수녀의 시선은 순간적으로 풍뎅이를 향했다. 동시에 후작이 풍뎅이를 노려봤다.

‘눈치겠어. 저 녀석으로. 바다를 건넌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수녀에게 소리쳤다.

“막으시오!”

- 달그락!

객실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비에 젖은 갑판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균형을 잡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벌기 위해 후작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후작은 새파랗게 빛나는 칼을 풍뎅이에게 겨누고 있었다.

“피고는 범죄자들을 싣고 국경을 넘은 것을 인정하는가?”

그는 풍뎅이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엄숙하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세찬비바람에 후작의 회청색 머리칼이 흩날렸다. 망가진 키가 핑그르르 돌면서 갑판으로 파도가 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다 죽겠다는거냐?”

- 우르릉! 광!

천둥이 수녀의 외침을 묻었다.

후작이 검을 세웠다.

눈을 슬쩍 치떴다.

칼을 들어 갑판 위에 세워진 풍뎅이에 마구 박아 넣기 시작했다.

- 파직! 파지직!

풍뎅이 위에서 작은 번개들이 튀었다. 날개가 박살나고, 몸통이 마구 우그러졌다.

칼을 풍뎅이 깊숙이 박은 상태에서 헤집어 돌리려 할 때 수녀가 갈고리를 휘둘렀다.

후작은 다시 멀찍이 피해 냈다.

수녀는 풍뎅이의 상태를 살폈다.

여우 가면 뒤에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다채로운 욕설들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이제. 끝인가?’

그때 였다.

- 쿵.

갑판 위로 시커먼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과직!

기괴하게 생긴 것들이 갑판 위로무리 지어 올라오며, 갑판에 앞발을 박아 넣고 있었다.

‘인어.?’

몸통은 2미터 정도였다. 상반신은 원숭이에 하반신은 물고기.

이빨은 기형적으로 비죽비죽 튀어나왔고, 손은 낫처럼 날카로웠다.

웬만한 육지 짐승 정도는 산 채로 쉽게 해체할 수 있을 것처럼 생긴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 수십이, 갑판으로 한 번에 올라오고 있었다.

후작 쪽으로.

“미쳐 돌아가는구나. 해골 친구!

미안해.”

“미안할 거 없소! 어떻게 도와 주면되겠소?”

“미안. 도움 안 돼.”

수녀가 내게 소리치고 있을 때.

후작 주위로 스무 마리가 넘는 인어가 몰려들어 낫처럼 생긴 앞발을 마구 휘둘렀다.

- 부응!

파공음이 날 정도의 속도였다.

후작은 칼을 손에 쥐고 올라오는 인어들을 하나씩 찍어 냈다.

“정숙! 정숙!”

- 퍼걱!

칼에 찍힌 부위는 뚫린 게 아니라 그대로 몸이 터져 나갔다.

“방청객들은! 모두 착석!”

- 퍼걱!

“착석하시오! 소란을 피우는 방청객들은 모두 퇴장시키겠소!”

후작 근처로 기어 오는 인어들은 모두 새파랗게 빛나는 칼에 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동료들이 전부 핏물이 되자 인어들은 공포에 질려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더 올라오지 않았다. 후작은 인어들의 피가 묻은 칼로 나와 수녀를 겨누고 외쳤다.

“피고는 1147년 10월 17일 제국황제 엘튼 클레멘스를 살해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가?”

“저 미친 새끼, 저거.

“피고는 반성의 기색이 없다! 자신이 유죄임을 인정하는가!”

다음 순간.

- 쿵! 쿠궁!

선체가 급격하게 흔들리며, 배의속도가 한층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곁에 다가온 수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어들이 배 밑으로 들어갔어. 우릴 바다 깊이 끌고 가는 중이야. 더늦기 전에 도망쳐.”

“도망이라니.!”

“뛰어내려! 해안으로 어떻게든 가!

지금은 이 아래에 인어 정도밖에 없을 거야. 해골 친구는. 살아남을 확률이 있어.”

가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조금씩 여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저 시커먼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살 수 있다고 해도, 이런 목소리로 말하는 상대를 두고 도망칠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 번쩍!

번개가 아니었다.

후작의 검과 검집이 각각 수녀와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수녀는 기다렸다는 듯 두 갈고리로 카운터를 날려 나를 보호했다.

- 광!

후작은 마지막 순간 방향을 틀었다. 결국 부서진 갑판 조각들만 허공으로 치솟았다.

“피고는 제국 황제 엘튼. 좋다!

그 인형 새끼는 알 바 아니다! 피고는 근위대를 죽였는가? 최소 80명!

최소 80명의 인명을 살상했는가?”

후작은 그 이후로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단번에 죽이고 싶지 않은것 같았다.

대신 여우 가면의 수녀를 향해 몇번이고 공격을 날렸다. 공격은 단한 번도 먹히지 않았지만, 수녀는조금씩 지치는 듯한 기색이었다.

후작의 두 눈에서 파란빛이 활활 타올랐다. 제 생명을 태우는 듯한 빛이었다.

- 파드득! 파드득!

어딘가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 :끼이이아?아?아!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울렸다.

‘.하피?’

파란 바다 하피들이 배로 몰려들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먹잇감을 발견해 기쁘다는 듯 요란한 괴성을 내며 앞다뤄 배로 날아들었다.

T&T의 이너 서클에서 신성 모독을 외치던 녀석과는 모습이 꽤나 달랐다. 바다에 살아서 그런지 몸 곳곳에 물갈퀴가 달려 있다.

인간과 물고기. 독수리를 1/3씩 섞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공격은 후작에게 집중됐다.

마왕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명백한 아군이 아니라면, 하피는 인간 남자를 최우선으로 공격한다.

하지만 괴성을 지르는 하피들의 합공도 별 효과는 없었다.

바다 하피 두 마리가 양쪽에서 칼날 발톱을 세우고 날아들었다.

후작은 공격을 받기 직전 뒤로 두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당겼던 칼을 가볍게 휘둘렀다.

- 파각!

하피 두 마리가 겹쳐진 상태로 베어 졌다.

발톱째 몸이 갈라진 두 하피가 질척한 피 보라를 갑판 위로 뿌렸다.

- 철썩!

때마침 높이 친 파도가 갑판을 쓸었다. 갈라진 네 조각 사체가 바다에 삼켜졌다. 막 죽은 자들의 신선한 피 내음이 소금 냄새에 깊숙이 버무려지고 있었다.

- :끼아기아"아?아!

후작은 덮쳐 오는 한 마리의 머리채를 잡았다.

- 서격!

배에 칼을 쑤셨다. 하피는 발톱을 교차해 막으려 했지만 이미 칼날이등까지 뚫은 뒤였다. 발톱은 이미그녀를 관통한 칼만 톡톡 긁었다.

- 끼, 끼이.!

후작은 찌른 칼을 아래로 내렸다.

강철도 찰흙처럼 자르는 칼날이 그대로 발톱을 잘랐다. 하피의 배가 통째로 세로로 갈렸다.

- 후두둑!

잘린 손목과 함께 내장이 아래로 경쾌하게 쏟아졌다.

수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풍뎅이에게 달려갔다. 칼이 박힌 부분을 살폈다. 풍뎅이를 가동시키려는 것 같았다.

- 스롱!

나는 배낭에서 칼을 빼내 들었다.

수녀의 근처에 섰다.

‘하피들이 후작을 단념하면. 다음타깃은 우리야.’

그때 였다.

- 촤아아악!

강한 파도가 왼쪽에서 올라왔다.

회전이 실린 물보라가 갑판을 휩쓸었다.

- 좌르륵!

온몸의 뼈 사이사이를 짠 바닷물이홈백 훌고 지나갔다.

“젠장.! 배 밑에 붙은 놈들이 속력을 더 내고 있어!”

수녀가 풍뎅이를 두드리며 외쳤다.

배는 계속 거칠게 흔들렸다. 바닥은 인어와 하피들의 피로 미끄러웠다.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수녀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 툭.

잘린 하피의 목이 굴러와 발에 걸렸다. 갑판을 바라봤다. 내장과 신체부위들로 만들어 낸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 우르릉! 광!

후작은 피를 뒤집어쓴 채 그 위에혼자 서 있었다.

- 촤아아악!

부서진 배 앞머리로 새까만 파도가 덮쳐 왔다.

잘 정비된 큰 배였지만, 폭풍우에완전히 휘말려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키도 부서진 상태였다.

수녀가 날 보고 말했다.

“아직 도망 안 갔냐? 숨 쉴 필요 없잖아! 빨리 뛰어내려!”

- 달그락.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는 않소.”

칼을 쥔 손이 힘을 줬다.

“하아. 목숨 아까운 줄 모르네.”

수리를 포기한 수녀는 후작을 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 광!

- 콰광!

불꽃이 튀었다. 둘의 격돌에 배가여기저기 부서지고 있었다.

- 투둑! 투둑! 투두두둑!

거칠게 쏟아지는 빗방울이, 부서진자리를 다시 때렸다.

배는 점점 더 위태로워졌다.

여우 가면을 쓴 수녀가 불리했다.

후작은 공격에 거침이 없었지만,

수녀는 갑판이나 풍뎅이 쪽으로 공격이 가지 않게 신경 쓰고 있었다.

속도와 힘에서도 밀렸다. 수녀는 점점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는 칼을 쥐었다.

‘뭐라도 해야 해.’

- 질주.

팟, 하고 몸을 앞으로 튕겼다.

몸에 걸리는 순간 가속이 흑 느껴졌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느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후작의 뒷모습이보였다.

검집을 평행하게 돌리며,  그대로 검을 쭉 빼어 횡으로 베었다.

- 발도.

하지만 필사적으로 휘두른 칼날은 후작의 두 손가락에 간단히 잡혔다.

곧바로 인어들을 으깨던 검집이 손목을 향해 날아왔다. 속도도 힘도 감당할 수 없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 손목이 사라졌다. 후작은 내 목덜미를 잡아허공에 들었다.

- 번쩍!

- 우르릉!

“피고는 제국 중경中更 이사벨 시몬느의 살해를 인정하는가!”

이사벨 시몬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후작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기운에,

내리는 빗줄기가 그의 몸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증발하고 있었다.

“피고는 백작 위를 가진 여성의 사체로부터 갑옷을 벗겨 냈다! 피고는 살해와 사체 훼손, 유품의 강탈을 인정하는가?”

갑옷.

내가 갑옷을 벗겨 낸 기사는 한 명밖에 없었다. 듀라한들에게 몰려 목이 잘린 근위기사단장.

‘.그녀인가?’

나는 무심코 후작에게 물었다.

‘특별한. 사이였나?”

- 달그락! 달그락!

후작이 내 목을 잡고 허공에 흔들었다.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 잠시흠칫했지만, 그걸 숨기려는 둣 기세는 한층 더 강렬해졌다.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피고는 이사벨 시몬느의 살해, 사체 훼손,

유품의 강탈을 인정하는가!”

- 촤아아악!

강한 파도가 뱃전을 넘어왔다.

배가 한차례 크게 흔들리며, 갑판에 널린 하피 시체와 내장이 대부분바다로 쓸려 내려갔다.

- 첨벙!

- 와그작! 와그작!

아래에서 배를 끌고 가는 인어들이 요란하게 하피 시체를 씹어 먹는 소리가 들렸다.

“이 멍청한 해골바가지야. 도움안 된다니까! 도망이나 가라니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수녀의 공격이 이어졌다.

- 달그락!

후작은 나를 객실 쪽에 내던졌다.

수녀의 공격을 피해 낸 뒤, 이번에는 그녀를 집요하게 공격해 갔다.

후작은 두 눈에서 푸른 줄기를 뿜어내며 발작하고 있었다.

“피고는 미유의 살해를 인정하는가! 피고는 죄 없는 말을 터트려 죽였다!”

‘?"말?’

걸레처럼 터져 나간 고기 파편과 곳곳에 널려 있던 핏자국.

한 인간이 그런 걸 남기고는, 결코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것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너무 많았다.

‘말이 후작을 보호하기 위해 뛰어들었다면.,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말이 터져 나간 파편을 보고 착각했다.

완전히 안심하고 있었다.

수녀가 가면 뒤에서 힘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너 이새끼, 바티엔느폰 레안드로 후작 이랬나? 와. 바깥에 알려진 거랑 성격이 왜 이렇게 달라?”

“피고의 발언권을 묵살한다! 피고는 13세 소녀, 미유의 살해를 인정하는가!”

“쿨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말 성애 자에 이런 또라이일 줄이야.

그때 였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 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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