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64화 (64/458)

65화 인간성의 승리 (5)

시체는 나무에 기대어 있다. 나무도 시체도 침울하게 시들었다.

“크군.”

나는 지나가듯 중얼거린다.

인간 정도의 크기다. 다만, 다른 고블린보다 크다. 덩치도 키도 눈에될 정도.

턱뼈가 튀어나왔고, 상체 근육이 제법 발달해 있었다. 평범한 녀석은 아니다.

“예, 큰 놈입니다. 뛰쳐나오길래,

멀리서 제압했습니다. 헤헤햇.

“저 정도면. 전사 고블린인가.”

전사 중에서도 베테랑일 터다.

고블린의 강약은 외모로 쉽게 알수 있다. 그들을 접한 경험은 많다.

가장 흔한 마물 중 하나다.

인간이 완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도, 특유의 번식력과 집착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역시 감독관님이십니다!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놈들이 옆에서 손을 비빈다.

고블린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시체는 온몸에 화살이 빼곡하다.

몸을 관통한 화살은 뒤쪽의 나무에 깊숙이 박혀 있다. 화살 탓에 쓰러지지 못한다.

부릅뜬 두 눈에 손을 뻗었다. 쓸어내리듯 스르르 감겨 주었다.

“감독관님, 어. 지금. 뭐. 하시- 픽!

질문을 하려는 놈의 뒤통수를 칼자국이 친다.

“쉿! 뭘 묻고 있어? 얌전히 안내해드려야지.”

“아, 예.

남자들과 나는 길을 걸어갔다. 고블린 던전 앞이었다. 꽤 많은 인원이 사는 듯 던전 입구는 커다랬다.

“정지! 아, 오셨습니까? 그 사람은 누굽니까?”

입구 언덕 근처에, 몸을 가릴 방패를 세워 놓은 몇 명의 석궁수가 있었다.

“감독관님,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자국은입구를 지키는 궁수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닥거렸다.

석궁 무리의 대장은 그럴듯한 사슬모자를 쓴 놈이었다. 그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끄덕거리며무언가 수긍했다.

무리에 돌아온 칼자국은, 함께 온네 명을 던전 밖에 대기시켰다.

“너희들은 이곳에 머물러라. 나 혼자 감독관님을 던전 안으로 데리고 가마.”

“감독관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놈의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던전 입구에 서자 허공에 메시지가 떴다.

[핏빛 사슴 고블린 부락(점거됨)]

[던전 랭크: E마이너]

[적정 레벨: 10-20]

[현재 레벨에서 쉬운 던전입니다.]

[대규모 던전입니다.]

[적정 클리어 인원: 15?20인]

적정 공략 레벨은 낮지만, 적정 인원은 많다.

‘넓은 곳이라는 건가.’

나는 허공을 바라본다. 허공의 기괴한 메시지들. 다른 놈들에게는 이런 창이 뜨지 않는다.

놈이 나를 흘끗거린다.

“뭐. 보시고 계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던전 문이 그럴듯하죠?”

“아니다. 들어가지.”

나는 던전 안으로 들어간다.

[던전에 입장합니다.]

천장이 높은 동굴이 나타났다.

곳곳에 활을 든 인간들 몇몇이 버티고 있다. 원래 있던 건지, 인간들이 설치한 건지는 몰라도 곳곳에 환한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선반 위에는 추출한혈석이 쌓여 있었다.

쌓여 있는 혈석만 계산해도, 백여마리는 훌쩍 넘는 숫자를 죽인 것같았다.

무언가 장부를 열심히 기록하는 놈들도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칼자국은 동굴을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나는 별말 없이 따라가다, 한마디를 건넸다.

“날 감독관으로 생각지 않는군.”

놈의 태도는 동굴 밖에 있을 때와 달랐다. 날 전혀 감독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앞에서 안내하던 칼자국이 피식 웃었다.

“아, 그거야 당연히.

그 말과 동시에 좁은 동굴이 탁 트였다. 넓고 커다란 홀이 나왔다.

사방에 횃불 걸이가 있었다. 천장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높았다.

- 구구구구! 쿵!

지금까지 걸어온 좁은 통로에서,

석벽이 튀어나와 퇴로를 차단했다.

‘기관 장치다.’

- 끼릭. 끼리릭.

석궁 장전되는 소리가 요란했다.

빠르게 주위를 돌아봤다.

열 명이 훌쩍 넘는 남자들이 석궁을 들고 있었다.

대부분은 장전을 마쳐 놓은 둣, 나를 가만히 겨냥하고 있었다.

얼굴에 다들 비웃음이 가득하다.

칼자국은 나에게서 빠르게 벗어났다. 석궁을 들고, 그럴듯한 사슬 모자를 쓴 녀석 옆에 섰다.

던전으로 향하는 골목을 지키고 있던, 아까 봤던 녀석이었다.

칼자국이 말을 이어 갔다.

“.그거야 당연히, 네가 감독관이 아니니까 그렇지.”

“신분증을 안 믿는 건가?”

그러자 칼자국이 키득거렸다.

“이봐, 이봐, 벤슨 플레 쳐는 내 직속 상사였거든? 그리고 그놈은 일년 전에 뒈졌어.”

석궁을 든 남자들이 함께 킥킥거렸다. 칼자국이 말을 이었다.

“넌 대체 누구냐? 자칭 플레쳐 나으리? 무덤에서 돌아왔냐?”

- 터벅.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

칼자국 옆에 선 녀석이 외쳤다.

“꼼짝하지 마! 철판도 종이처럼 꿰뚫는 삼각촉이다!”

어깨를 으쪽했다.

- 철컥. 철컥. 철컥.

건틀렛을 낀 손으로 박수를 쳤다.

처음부터 알았다는 거다. 그런데도 내색하지 않았다. 놈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연기가 훌륭하군.”

“누구냐니까? 개 같은 플레쳐 놈을 죽여 준 걸 봐서, 고문은 안 하고그냥 죽여 줄 수도 있거든.”

칼자국이 이죽거렸다.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다. 어차피 녀석에게 결정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주위에는, 아까 보았던 놈들까지 함께 있었다.

가시 검이나 몽둥이 같은 저들의 무기를 버리고 다들 석궁을 들고 있다. 숫자는 도합 스물. 엄폐할 공간은 전혀 없고 퇴로는 막혔다.

결론은 간단하다.

‘질주.’

네크론 신사회 예비 단원 질 러지스는 곤혹스러웠다. 러지스는 얼굴에 난 칼자국을 어루만졌다.

프레쳐를 사칭하는 놈을 잡았다.

길가에서 싸우면 도망가거나 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연기를 하고 계략을 짜내어, 놈을 여기까지 끌어들였다.

스무 개의 석궁이 놈을 겨누고 있다.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아무것도 없다.

압도적인 상황이다.

궁수들이 시위만 놓으면 단번에 벌집이 된다.

수십 발의 삼각 철촉이 온몸을 꿰뚫는다.

심장과 폐를 뚫으면 신음도 못 뱉고 단번에 즉사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놈의 자세는 지나치게 태연하다.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이 수많은 석궁을 피할 자신이 있는 건가?

그 순간,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쏴! 쏴라!"

질 러지스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스무 발의 석궁살이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 푸슛!

- 푸슈슛!

한 발 한 발이 철판을 충분히 꿰뚫을 수 있는 삼각 철촉이었다.

- 퍼버버벅!

겨냥하고 있었고, 준비된 사격이었다. 움직이는 대상이었지만 반 정도는 적중했다.

화살이 연달아 갑옷에 박혔다. 맞았다. 이제 놈이 쓰러지면, 투구를 벗겨서 시체를 확인해 보면.

- 서걱!

- 데구르르!

- 서걱!

- 으아 아아아!

눈앞에 보이는 것은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부조리했다.

화살은 갑옷을 관통했다.

한두 발이 아니다. 심장과 폐가 있는 곳에 몇 발이나, 깊숙이 화살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기사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움직였다.

심장과 폐, 배에 화살이 박힌 채로 뛰어와 궁수들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저런 일은 불가능하다.’

팔다리에 화살이 박히면 운신이 어려워진다. 심장이나 폐에 박히면 두말할 것 없이 즉사다.

그런데도 기사는, 급소 곳곳에 화살을 박고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갑옷 밖으로는,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가슴.

허벅지.

머리까지.

- 쩍!

또 한 명, 예비 단원의 머리가 수박처럼 쩍, 조개졌다.

고블린과 달리 인간의 뇌에서 혈석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진 궁수들은 석궁을 놓고 뒤로 자빠졌다.

- 팅!

- 티딩!

재장전되어, 막 쏘아 내려던 화살들이 천장에 마구 부딪힌다.

”쏴, 쏴! 계, 계속 쏴!“

얼굴에 칼자국이 난 남자, 질 러지스는 눈을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발작적으로 사격을 외쳤다.

눈앞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없으면서도, 기적적으로 다음 장전에 성공한 궁수들이 몇 발을 더 박는 데 성공했다.

- 푸슛! 푸슈슛!

- 픽! 퍼벅! 퍼버벅!

등.

목허벅지.

골반.

하나같이 치명적인 곳에 화살이 박힌다. 석궁이 박히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곳에 살이 박힌다.

그런데도 기사는 쾌적하다는 둣,

옆으로 음직이며 궁수들의 목을 베어 넘겼다.

- 퍼걱!

또 한 명의 네크론 예비 단원이 이승에서 하직한다.

이제 슬슬, 단원들은 조건반사적인전의조차 상실해 가고 있었다.

“아, 아, 안 쓰러져?”

“부, 분명히 맞았는데! 끄하악!”

‘그거야, 뭐.’

대부분의 화살은 텅 빈 공간을 지나가는 데다가.

『랭크 이하의 관통 공격!]

[받는 데미지가 40% 감소합니다!]

<특전: 가시 미로의 정복자>

시들어 버린 미로.

독 묻은 가시로 가득한 그곳의 공략 보상으로 얻은 특전이 제법 유용하게 발동되고 있다.

꼬박 열흘 동안 공략한 미로.

미로 전체가 움직이는 독 가시로이루어져, 찔리면 곧바로 피가 독이 되어 버리는 미로다. 바닥, 천장, 양옆에 독 가시가 가득하다.

인간이 공략한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난관.

미쳐 버릴 만한 난이도지만, 나에게는 그냥 길만 찾으면 되는 미로에 불과했다.

추적 스킬이 있는 레나와 함께 들어갔으면 열홀이 아니라 하루 만에 공략했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들어갔다면 가시 때문에 곧장 죽어 버렸겠지.

어쨌거나.

[데미지가 40%.]

갑옷을 뚫고 들어와, 어쩌다 ‘뼈’에 적중한 화살들도 데미지는 대폭 감소되고 있다.

“으, 으, 으아아!!”

열 명쯤 베어 넘겼다. 몇몇은 그제야 석궁을 버리고, 근접 무기를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싸움은 기세가 중요하다. 레나에 게들은 말이다. 그 말에 따르자면, 놈들은 완전히 제압당했다.

한껏 준비한 공격이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무효화되자, 완전히 공황에 빠져 버린다.

“서, 석벽! 석벽 열어!”

사기를 책임져야 할 우두머리는 없었다. 칼자국은 기관 장치를 움직여 도망가려고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입구 쪽은 나에게 더 가깝다.

- 팟!

강하게 땅을 박찼다.

- 서걱!

도망가는 사슬 모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 사슬 모자는 신음 소리를 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칼집에서 뽑는 것처럼, 놈의 등에서 곧바로 칼을 빼냈다.

옆에 도끼를 든 놈을 향해 휘둘렀다. 놈은 피가 엉겨 붙은 도끼를 간신히 들었다.

도끼로 고블린 머리를 얼마나 조개댔는지, 초록색 피가 도끼날에 엉겨 붙어 있었다.

一 퍼걱!

칼은 도끼 자루와 놈의 목을 동시에 치고 지나갔다. 잘려진 목이 피를 뿜었다.

남은 놈은 셋이었다.

“아, 아아, 사, 살려 주십시오!”

- 털썩! 털썩! 털썩!

셋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공포에 몸이 굳었는지 도망조차 포기한 것 같았다.

“일어나라.”

나는 손가락을 위로 움직였다.

“히, 히곡!”

칼자국이 딸꾹질을 했다. 인상파인외모에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죽인다고 한 적도 없는데?”

, , 그, 그렇습니까?“

“공격은 너희가 먼저 했잖아? 그렇지?”

“예! 예.!”

세 남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민했다.

일단 자기 방위는 했지만, 여기서놈들을 전부 죽이는 건 좀 아쉽다.

놈들은 내게 살려 달라고 한다.

굳이 죽여야 할까?

아까처럼, 다시 긍정적인 관계 설정을 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잠시만.”

갑옷을 뒤졌다.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신분증을 꺼냈다.

무덤에서 만났던 석궁의 신분 중이었다. 역시 붉은색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석궁의 신분증을 놈들에게 내밀었다. 한 명 한 명에게 보여 주며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이 신분증으로 하자고.

어때, 괜찮겠지?”

세 놈이 거의 훌쩍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괘, 괜찮습니다!”

“그럼 안내해 봐. 고블린이 있는 쪽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