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63화 (63/458)

64화 인간성의 승리 ⑷

“고블린 던전이라고?”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

놈들을 쓱 돌아봤다.

무기를 쥔 녀석들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뭐, 한꺼번에 덤벼도 다 죽이는 데무리는 없을 것 같다. 자세만 보고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굳이 숨길 건 없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블린 던전.”

“그건. 왜 묻는 거요?”

칼자국의 질문이다.

고블린 던전의 위치를 물었을 뿐,

별로 수상한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놈들은 지나치게 민감해 보인다. 던전과 관련이 있는 놈인 건가? 평범한 산적인 거 같은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하니까 물어보겠지.”

“지금. 우리랑 장난하시오?”

“왜, 대답하기 싫은가?”

나는 얼굴에 칼자국이 난 산적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저분하고 음침한 인상이다. 검은 머리칼이 구불구불하다. 한 가닥씩 닿아 어깨까지 내려가 있다. 볼은 움푹 들어갔다. 턱은 넓고 각져서단단해 보인다.

말하자면 인상파.

얼굴로만 보자면 망치잡이 벤슨 프레쳐 놈이나, 유블람의 대머리 경비대장보다도 강해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대, 대답하기 싫냐니. 왜 묻는지부터 말해 달라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벌써 겁먹었군.’

칼자국의 공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방금 전, 불타는 구덩이에서 훌쩍 뛰쳐나왔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상태고, 풀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했다.

간단히 생각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놈은 정체불명의 기사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거다.

놈의 무기를 흘끗 바라봤다.

흉흉한 가시가 달린 쇠몽둥이다.

피가 묻어 있다.

잡은 자세는 무척이나 형편없다.

잔혹해 보이는 놈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몹시 약하다.

약자에게만 강해 온 기운이 한 번에 느껴진다.

놈들과 나의 거리는 멀지 않다. 서너 발자국만 디디면 된다. 다섯 명을 쉽게 베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곧장 다 죽일 생각은 없다.

그건 좀 곤란하다. 죽여도 길은 물어본 다음에 죽이는 편이 좋다.

“별건 아니고.”

- 툭툭!

건틀랫을 털어 냈다. 새까만 재가바닥으로 떨어진다.

지도가 타고 남은 재다. 건틀렛에얇게 눌러붙어 있던 녀석들이다.

찌꺼기처럼 남았던 마지막 재가 제법 깔끔하게 사라졌다.

“거기 가야 하거든. 해야 할 일이좀 있어서. 아쉽게도 지도는 다 타버렸고.”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해, 해야 할 일이 뭔데? 확실하게 말하라니까?”

놈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놈들이 잡은 무기에 힘이 들어간다. 싸움이라도 각오하는 것 같다.

‘이것들은 던전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평범한 산적들로 보였다.

공격하거나 도망가는 건 납득하기 쉽다. 하지만 꼬치꼬치 던전행의 이유를 캐묻는 건 부자연스럽다.

뭐라고 할까.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 볼까?

“그거야 길드의.

그 순간이었다.

“어, 어어어!”

오른편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흘끗 돌아봤다. 도끼를 든 뚱뚱한 놈이 내는 소리다.

“저, 저건!”

뚱뚱한 놈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더듬거린다.

‘왜 저러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뭔데?”

다른 놈들이 도끼를 돌아본다. 도끼는 더듬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 그 붉은색이. 전에 본 거랑 비슷한데. 자세히 좀 봅시다.”

‘붉은색이 뭐 어쨌다고?’

놈들의 눈이 내 허리춤으로 향한다. 나도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새까맣게 타 버린 행낭이 있다.

그리고.

형상도 거의 안 남은 잔해 바깥으로, 은은한 붉은빛이 비친다.

얼굴에 칼자국 난 놈이 화들짝 놀라서 외친다. 무언가를 뒤늦게 떠올리는 태도다.

“앗! 혹시 회에서 오셨습니까?”

회? 어리둥절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회에서 왔다고?”

“저거 아마.

“그러고 보니 방금 길드라고 말씀을. 우리 회를 말씀하신 게.

남자들은 무기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했다. 아직 긴장감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미, 반쯤은 허리를 굽실굽실 거리는 자세를 취한다.

칼자국이 황급히 묻는다.

“호, 혹시 그거, 정식 회원 신분증 아니십니까? 이번에 오시는. 감독관님이셨던 겁니까?”

‘감독관? 신분증?’

- 덥석.

나는 행낭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

벤슨 프레쳐의 정밀한 초상이 그려져 있다. 신분증 아래에는 [네크론신사회] 라고 적혀 있었다.

네크론 신사회의 신분증이다.

‘아, 이게 여기 있었지.’

돈은 대부분 레나에게 줬지만, 신분증은 내가 소지하고 있었다.

놈들이 말하는 감독관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신분증을 보고 나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알겠다.

회원증이라는 건, 이 신분증을 말하는 거겠지.

‘네크론 신사회와 연관이 있는 놈들인가.’

일단 그냥 오해하게 놔둬야겠다.

놈들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떡, 하고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한 명 한 명에게 붉게 빛나는 신분증을 보여 준다.

“그래, 신분증이다.”

날 둘러싼 다섯 남자.

그들 모두,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천천히 신분증을 확인했다.

“어휴.

직전까지만 해도 긴장감이 약간 남아 있었지만, 신분증을 보여 주자분위기가 아예 확 풀려 버렸다.

놈들은 연달아 허리를 굽실 굽실거렸다. 칼자국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빛난다. 그가 대표로 말했다.

“감독관님께서 오신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요.”

옆의 도끼가 끼어든다.

“오늘 즈음이라고 해서 길을 청소하러 나왔습니다만, 이렇게 딱! 하고 마주칠 줄은 몰랐습죠. 헤헤, 저녁쯤 오신다더니 예정보다 조금 일찍 오셨습니다요?”

“.뭐, 어쩌다 보니.”

나는 투구 안에서 침묵했다.

일단은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같다. 아무 말이나 하다가는 정체가 드러날 확률이 높다. 당연히 알 만한 걸 물어보면 놈들도 의심을 시작할 것이다. 기왕 오해받은 김에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할 말은.

“던전으로 안내해라.”

이거 하나다.

뚱뚱한 놈이 고개를 조아린다.

“예, 물론입죠! 암, 명령대로 하겠습니다요! 저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던전을 관리하는지 보시면 놀랄 겁니다요!”

놈이 굽신거리며 슬쩍 저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던전을. 관리한다고?’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그렇다면.

이놈들이다. 이 남자들이 이번 의뢰의 목적이다. 제대로 만났다.

“저.

뾰족뾰족한 가시 검을 가진 성마른남자가, 어딘가 불안한 얼굴로 한마디 끼어들었다.

“저, 신분증이랑 얼굴 확인을.

- 픽!

“야! 야, 인마!”

아까부터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칼자국이, 가시검의 뒤통수를 강하게 쳤다.

“아아! 형님, 뭐요?”

“뭐긴, 이 자식아. 이분 지금 화상 입으신 거 안 보여?! 투구랑 갑옷이랑 녹아 붙어 있잖어!”

순간 정체가 들통 나나 했다.

- 투둑.

나는 목 주변을 손으로 만져 봤다.

‘그런가?’

연결 부위가 살짝 녹기는 했다. 하지만 투구를 벗으려면 벗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칼자국은 나를 배려해 주는 건가.

안 벗어도 된다는데 굳이 벗을 필요는 없다. 그러면 여기서 길잡이 다섯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다섯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불구덩이에서도 뛰쳐나오시다니,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피와 살점이 튄 무기를 들고 굽실거리는 놈들의 모습은 기괴한 데가 있었다.

‘이 신분증이 이렇게 쓰이다니.’

망치잡이의 신분증이, 엉뚱한 곳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저희 같은 예비 단원들은, 벤슨프레쳐 님 같은 분을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요.”

한 놈이 내가 보여 준 신분증을 흘끗거리며 말한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다. 나는 슬슬 손에 든 신분증을 내렸다.

하지만 다 타 버린 행낭에 넣기도좀 어색하다. 내 멈칫하는 동작을보고, 뚱뚱한 도끼가 재빨리 작은 주머니를 대령한다.

“여, 여기 담으십시오!”

그리곤 알아서 주머니를 뒤집고,

손으로 먼지를 탈탈 털어 낸다.

“됐다.”

거절한다. 신분증은 갑옷에 대충 꽂아 넣는다. 루비아가 샀던 갑옷은 곳곳에 수납공간이 있다.

‘.기능적이지.’

나는 놈들을 바라본다. 다행히 ‘회에서 오기로 한 자’의 이름은 놈들이 모르는 것 같다.

원래 오기로 한 놈은 어디쯤일까.

길이 겹칠지 모른다. 빨리 여기를 뜨는 게 좋겠다.

“프레쳐 님, 존경합니다!”

놈들이 심하게 굽실 굽실거린다.

단순한 정식 회원 따윌 대하는 태도는 아니다. 아무래도 감독관이라는 건, 놈들에게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존경합니다!”

상황을 정리해 본다.

이놈들은 네크론 신사회의 예비 단원이다.

내 의뢰의 목적인 고블린 던전을‘관리’하고 있다.

나를 네크론 신사회에서 올 누군가로 착각했다.

“프레쳐 님, 한창 업무로 바쁘신 와중에 저희를 지도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쁠 건 전혀 없지.”

벤슨 프레쳐는 전혀 바쁘지 않다.

녀석의 인신매매 및 청부 살인 업무는 영구 폐업을 고했다.

내 손으로 무덤 속에 처넣은 지이제 일 년이 다 됐다. 한 놈이 신분증을 보며 말을 걸어온다.

“그나저나, 그냥 종이 하나처럼 보이는데 정말 대단합니다요. 단원의신분증이라는 거 말입니다.”

“그을음 하나 안 묻질 않았습니까?

정말 소문처럼 회에 마법사가 있는 겁니까?”

“임마! 자연히 알게 될 텐데 뭘 묻고 있어!”

칼자국이 제지한다. 놈이 이 가운데 우두머리인 것 같다. 놈이 분위기를 정리하며, 앞장서서 걷는다.

≪ ㅇ , ,

적당히, 있어 보이게 침음을 홀리며 생각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

신분증은 불타지 않았다. 장시간의화염에서도 보호받았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특수한 처리 가된 듯하다. 혹은, 놈들의 말대로 마법일지도 모른다.

‘네크론 신사회에 마법사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앞에서 칼자국이 말을 걸어왔다.

“아까 그것들, 저희가 함부로 건드려서 죄송합니다. 심기가 불편하신 거라면 사죄드립니다!”

나는 대충 손을 내저었다. 너무 침묵하는 것도 안 좋은가.

놈들이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게 만들면 안 된다. 나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 곤란하다. 말을 시키자.

“아. 그건 됐다. 고블린. 양식에 대해 보고해 봐라.”

“예! 알겠습니다요.”

칼자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고블린 던전을 어떻게 점거하고 있는지를 내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저희 예비 단원들은.

네크론 신사회의 예비 단원, 바깥은 놈들이 점령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안쪽으로 사냥을 간다.

종종 내부 부락에 최음탄을 터트린다. 고블린들이 강제로 흥분해 교미를 한다. 그렇게 고블린 숫자를 유지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별로 흥미 없는 태도를 취한다. 정체가 들통날까봐 최대한 입을 다물고 있다.

“.수익은 한 달에 3세이론 정도입니다.”

“3세이론?”

의외로 적은 금액에 의아했다.

그 정도라면, 내가 토너먼트에 나가서 받았던 금액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좀 적군.”

솔직한 감상이었다.

“으, 그, 그게.

그러자 칼자국이 괜히 눈치를 보듯굽실거리며 말했다.

“고블린 혈석 구하는 놈들이라 고해 봐야, 별거 없는 잔챙이 놈들뿐이니까요.”

“으음.

내가 책망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기색이다.

“그게. 돈 있는 놈들이야, 마법사에게 시약 제조를 부탁하지 누가 혈석 가루 따위를 마시겠습니까?”

“뭐, 글쎄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생각에 잠긴 척을 했다.

“헤헤. 가격을 올려 받기가 힘듭니다요. 감독관님께서 다리를 잘 놓아 주십쇼.”

“헤햇, 헤헤햇.”

웃음소리가 불쾌하다. 길은 점점 더 좁아졌다.

“거의 다 왔습니다요.”

칼자국이 고개를 굽실거렸다.

곳곳에 목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에 핏자국이 있었다.

붉은 피는 아니다. 초록색 피가 흙바닥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고블린.’

그들의 피다.

좀 더 걸어갔다. 널브러지고 쌓여있는 시체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머리가 갈리고 심장이 조개져 있다. 혈석만 빼낸 채로 바깥에 버린 듯하다.

칼자국이 옆에서 조잘댄다.

“저것도 판매할 겁니다요. 시체 수거업자가 와서 가져가지요. 고블린이라는 게, 참 하나하나 알뜰하게 돈이 됩니다. 헤햇. 눈알도 연금술의 재료로.

그 때였다.

초록색 피를 홀리며, 죽어 있는 시체와 눈이 마주쳤다. 부릅뜨고 있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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