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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61화 (61/458)

62화 인간성의 승리 (2)

그 뒤로도 뭔가가 한참 길어진다.

‘피곤하군.’

여기까지 보고 상태창을 닫았다.

상태창이 모든 대상에게 뜨는 건 아니다. 상태창이 뜨는 건 지금은 그녀밖에 없다.

‘으음.’

레나의 레벨 총합은 33이다.

기본 직업인 도적 외에 사냥꾼과 트릭스터가 생겼다.

모험가와 마물들을 잡으며 레벨 업을 계속 시켜 주자, 별 이벤트도 없이 자연스럽게 직업을 획득했다.

호감도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올랐다.

바닥에 뿌려진 기름이 화르르 폭발하는 기름 함정에서, 그녀를 안고탈출한 뒤로 상한이 한 번 더 깨져60이 되었다.

그 가파른 성장이 뿌듯하기도 하지만, [분리 불안] 같은 걸 보고 있으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나,

싶기도 하다.

나는 손으로 받친 레나의 머리를 놓아 본다.

머리는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진다.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는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상반신 체중을 전부 싣고 있었던 거다.

- 툭!

결국 다른 손을 들어 머리를 받쳐준다. 그녀에게 말을 건다.

“너, 슬슬 수도로 갈 때가 된 거아닌가?”

그녀의 승급 건이다. 길드 간부로 승급하는 거라고, 원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시나리오 클리어>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 대체 어떻게 된다는 걸까?

그게 궁금해서라도, 그녀를 성장시켜 오기도 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시나리오 메시지를 점검한다.

<그녀를 T&T길드 지부장에 앉혀보세요! ‘어둠 속의 조력자’ 시나리오가 활성화됩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으으.”

레나가 침음을 홀린다.

머리가 받쳐진 채 나를 올려다보며, 그녀가 주먹을 꽉 쥔다.

칼을 들고 있어도, 싸우면 이길 자신은 전혀 없다. 물론 그녀는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원장님이 또 쓸데없는 말을 했어요? 정말. 어디 데리고 나가서 확없애 버릴까 봐.”

“네 간부 승급 건이다. 중요한 일 아닌가.”

“알아요. 같이 가요.”

“곤란하다.”

동생을 내려놓고, 그녀가 내 무릎에 볼을 비빈다. 귀를 막는다.

“안 들린다, 안 들리는데. 같이간다구요? 어, 알았어요!”

함께 안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와 너무 오래 붙어 있었다.

따듯한 벽난로 곁에서, 달콤한 꽃향기나 맡으며 지낼 때는 아니다.

이제 같이 던전에 가면, 그녀가 나를 키워 주는 꼴이 된다. 빚이 더해진다. 그런 식으로 이 인간과 깊이 얽힐 이유는 없다.

이제 과하다.

달래는 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지켜 줘야 되는데.”

결국 이런 처지인가.

구태여 밀치지는 않았다. 호감도가오른 데는 내 책임도 크다.

“금방 다시 만날 텐데.”

“그거야 당연하죠! 그런 사망 플래그 같은 말, 하지 말라구요!”

“사망 플래그?”

“됐어요. 금방 봐요.”

그녀를 보낸 뒤.

나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의뢰를 받기 위해서다. 레나가 제국 본부에 가 있는 동안, 놀고 있을 생각은 전혀 없다.

던전을 끊임없이 돌 생각이다.

혼자 찾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아이템과 지도, 정보까지 원장이 제공한다.

내가 의뢰를 해결해 주는 만큼 실적이 쌓이기 때문일까.

호의적이다. 원장의 호감도 역시 조금씩 계속 올랐다. 26이 되었다는 메시지까지 확인했다.

원장이 스크롤을 펼친다.

“조금 난이도 있는 의뢰가 하나 있습니다만. 던전이 무대입니다.”

“얼른 해치울 테니 이야기해 봐.”

원장이 머그잔을 들었다. 커피를한 모금 홀짝였다.

커피의 향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세밀하게 느껴진다.

3개월 전.

그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커피 냄새를 구분하는 스킬은 익힌 적 없다.

레벨이 꽤 올랐다. 동화율이 약간 떨어졌다. 달라진 건 그 둘 정도다.

그가 말을 잇는다.

“던전을 독점하는 모험가 무리가 있습니다.”

“독점?”

“예. 무단 점거입니다. 게다가 근처의 길을 사용하는 데 통행세를 받는다고 하는군요.”

“평범한 산적이군.”

“그렇습니다.”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를 아예 차단하고 있습니다.

의뢰는. ‘문제 해결’입니다.”

“다 죽이라는 얘기군.”

“홁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남부의 치안은 3개월간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분위기가 온통 뒤승승했다. 강제징집과 수탈이 극심했다. 농민들은 종자까지 빼앗겼다. 다들 산으로 도망가 숨었다. 산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사람을 베고재물을 렛는다.

“의뢰자는 누구지?”

“글쎄요. 의뢰자가 자기를 밝히길 원하지 않습니다.”

“원하지 않는다고?”

원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다만 안전한 의뢰입니다. 의뢰자의 악의는 한 톨도 없습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그가 보증한 다라.

나는 잠시 기다린다.

“의뢰자가 그러더군요. 인간들이고블린들을 양식養殖해서 죽이는게, 보기 불편하다고 말입니다.”

“자세히 말해 봐라.”

“이번에 발견된 인간들은 고블린부락을 점거했습니다.”

“그래서?”

“그 인간들은 부락 내의 고블린들을 반쯤 죽입니다. 그리고 다시 번식시키고, 다시 죽이죠. 고블린은.

번식과 성장이 무척 빠르니까요.”

“아이를 죽인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고블린.

그들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몇 번 마주친 적은 있다.

날카로운 이빨과 독기를 가진 작은 녀석들이라는 것 정도를 안다.

인간을 피해서 더 깊은 숲으로, 지하로 파고 들어갔던가.

마왕 강림 이후에, 꽤 적극적으로 행동하던 녀석들인 건 기억난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에게 질문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인간이 하는 짓은 잔혹하고 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무슨 까닭일지 들어나 보고 싶었다. 원장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핏빛 사슴 고블린 부락이 인간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두뇌 가운데에 1/5의 확률로 응고된 혈석血石이 있다더군요. 보통 고블린의 다섯 배가 넘는 확률이죠.”

“그래서?”

“그걸 갈아 마시면, 면역과 정력에좋다고 하는군요.”

고작 그따위 것을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 걸까.

그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런 섬세한 움직임까지 익혔지만 눈앞의 남자는 인간이 아니다.

정작 인간이라면, 이런 일에 눈썹 같은 건 좀처럼 찡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침묵하던 원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 일은. 3개월 동안 보여 주신 활약에 대한 약간의 호의입니다.”

“호의?”

“예. 던전에 가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녀석이 살짝 웃는다.

“뭐, 그러지.”

날 함정에 빠뜨릴 녀석은 아니다.

의뢰자가 누군지 말해 주지 않는 건처음이지만, 어차피 그런 게 크게 궁금한 건 아니었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밤에 서리가 내렸는지 옅게 얼어 있다.

지도에 표시된 던전을 향해서, 한참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도, 도와주세요!”

바람결에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저 높은 곳이다. 나는 그쪽을 홀끗바라봤다. 가는 길이긴 하다.

숲 한쪽에 여자 한 명이 훌쩍이며 서 있었다.

“기,  기사님! 도와주세요. 혹혹.

나는 여자를 바라봤다.

옷이 거칠게 찢어져 곳곳에 맨살이 드러났다. 머리도 마구 헝클어져 있다.

한쪽 신발은 벗겨져 하얀 발을 드러냈고, 날씬한 종아리는 군데군데진흙이 묻어 엉망이었다.

어디선가 급박하게 도망쳐 나온 모습이었다. 여자가 나를 바라봤다.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에 눈빛이 흔들린다.

훌쩍이며 나에게 외친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흑흑. 고블린 세 마리가 친구를 강간하고 있어요! 어서 도와주세요! 제발.!”

- 바스락.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고블린?’

멀지 않은 곳에, 고블린 던전이 있다. 하지만 그 던전은 인간들에게 점령당한 상태다.

거기서 탈출한 녀석들일까.

나는 길에서 벗어나, 여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슨 일인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걸어가며 여자를 훌어봤다.

옷을 찢은 부위는 가슴과 허벅지 쪽이었다. 살에 상처는 없었다.

‘누가 찢었는지 모르겠군.’

고블린의 손톱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손톱은 날카롭고 거칠다. 살은 내버려 두고, 옷만 곱게 찢을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던 순간이었다.

.r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며 땅이 시꺼떻게 입을 벌렸다. 몸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깊게 파 놓은 구덩이 안에는 뾰족뾰족한 죽창들이, 푹신한 짚 더미를 뚫고 박혀 있었다.

- 퍽!

[낙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죽창들은 갑옷을 뚫지는 못한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생명력이 크게 깎이지도 않는다.

갑옷의 무게가 있다고 해도, 나는 살점 하나 없는 해골이다. 중갑에의한 데미지 가산 따위도 없다.

‘한심하군.’

다만 레나와 헤어진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이런 함정에 걸린 게 터무니없다.

역시 그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함정 같은 건 그녀가 전부 해체하고 들어갔으니까.

그래도, 좀 너무하긴 한 것 같다.

스스로에게 진저리가 났다. 멍하니 함정 안에 쓰러져 있었다.

“뭐야? 비명도 안 지르냐?”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맨가슴과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은 인간 여자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높이를 측정했다.

키의 세 배.

수직으로 파진 함정.

뛰어서 나가기도 어렵다. 잡을 만한 것도 없었다.

“뭐, 어차피 이제부터 실컷 지르겠지만. 벗어!”

벗으라고?

인간 여자들은 다 이런 식인가?

대꾸하지 않고 위를 올려다봤다.

그때 였다.

어디서 나타난 걸까. 비쩍 마른 남자 한 명이 더 보였다. 말할 것도 없이 같은 무리다.

옷에는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었다. 땅을 파느라 고생 좀 한 건가.

퀭한 얼굴의 남자가 아래를 보고 소리친다. 목소리에 지친 쇳소리가 섞여 있다.

“안 들려? 갑옷 벗으라니까?”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뭘 하는 거지?”

여자가 낄낄대고 웃었다.

“몰라서 물어? 기사 사냥이지.”

“기사 사냥?”

“먹을 게 없으니까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할 거 아니야. 빨리 갑옷 벗고 자살해.”

어렵지 않다. 치안 악화는 가혹한수탈의 당연한 결과다.

내년에 심을 씨앗조차 군량이라고 빼앗아 간다. 법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묻는다. 사연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한다.

“설명해 봐라.”

하지만 그들은 별로 설명할 의사 가없어 보였다. 대신, 땅에 놓은 무언가를 들었다.

솜과 기름으로 뭉쳐진 횃대였다.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10초 준다. 살에 녹아 붙은 건 우리도 벗기기 어렵거든.”

- 화르르!

여자가 횃대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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