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1)
사냥당하고 짓밟히고.
하나 둘 셋으로.
약간의 경험 치로 카운트되는.
언제나 타자의 입장에 놓여 있는 해골에 불과했다. 아무도 해골들의 마음이나 처지 같은 건 신경 써 주지 않았다.
- 달그락.
고개를 흔들어 씁쓸한 감상에서 벗어난다.
동굴 벽 한쪽.
공지처럼 적힌 커다란 글자들을 발견했다.
이 즈음에 도달했다면, 보지 않고지나치기는 어려운 글자들.
인간이 쓴 문구였다.
<초보자 놀이터>
<두개골은 깨지 마시오>
저 문장을 쓴 인간들의 의도에, 문득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해골은 두개골을 부수면 더 이상일어나지 못한다.
<두개골은 깨지 마시오>라는 말.
혼자서만 가지고 놀지 말고, 다음사람이 쓸 수 있도록 재활용을 거듭해 달라는 이야기다.
이 던전의 해골들은 인간에게, 유흥을 위한 공공재로 사용되고 있는것이다.
문구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천천히 달그락거리며 걸어오는 문지기 해골을 바라본다.
그의 시간은 느리다. 이 문지기는꽤 키가 작다. 여기에서 얼마나 낡아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건,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도 있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오래된 셈이다.
문지기 해골은 한 손에 녹슨 칼을 들고 있다. 곳곳에 균열이 일어나고,
부스러진 쇠붙이다.
귀를 가져다 대면, 무척 오랜 세월을 들려줄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저 녹슨 칼엔 날붙이로서의 어떤 효용도 없다.
가엾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민과동정은 건방진 일이다. 내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 달그락!
문지기 해골은 웅크리지 않는다.
침입자를 향해 계속 걸어온다.
쓰러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덤비는 게 녀석.
인간의 첫 유희거리가 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 달그락!
어느새 다섯 걸음 안이다.
“우어. 우어어.
녀석이 괴상한 소리를 낸다. 칼을 치켜든다. 나에게 돌진한다.
투구를 벗었다. 하얀 내 해골이 드러난다.
정체를 밝힌다.
나는 여기에 인간들을 살해하러 왔다. 닥치는 대로 해골들을 부수러온 건 아니다.
다만.
이곳을 ‘도우러’ 왔다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던전의 마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같은 해골에게조차 그 리큰 선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굳이 그들과 싸워야 한다면 그렇게못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단은 한번 설득해 본다.
“진정하라고, 친구.”
“우어 어?”
내 새하얀 두개골을 본 녀석이 조금 머뭇거린다. 하지만,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내게 다가온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건가.’
혹은 그냥 둔한 건지도.
던전의 해골들은 모두 말을 하지 못했다. 이곳에 있을 때의 나 역시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고도 모르나.’
고개를 갸웃했다. 종종 같은 해골끼리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녀석까지? 문지기가 나를 공격한 적은 없었는데.
- 획!
녹슨 칼이 허공을 가른다. 녀석이 제법 열심이다. 목표는 나.
‘제대로 휘두르는군.’
제법 살기를 띠고 있다.
텅 빈 동공 안쪽에서 미약하게, 파란 불빛이 빛나는 듯하다.
- 휘익!
하지만 느리다.
녀석의 걸음만큼이나 느리다. 리치는 짧다. 위력은 약하다.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녀석과 나의 민첩은 세 배 넘게 차이가 날 거다. 어떤 무기를 써도, 어떤 전략을 써도 이 녀석은 나를 이길 수 없다.
납골당에 있을 때.
나와 비슷한 수준이던 이 녀석은.
이젠 나를 단 한 대도 때릴 수가 없다.
녀석과 나 사이에는.
이제 도저히 남을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이런 녀석이 다섯, 열이 덤벼든다고 해도 처리하는 건 간단하다.
녀석과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는 게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조금, 들떴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하자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나를 보호하며 키워 준 서큐버스님의 죽음을 보고.
나를 깨워 준 인간 여자를 눈앞에서 벌써 몇 번이나 잃어 가며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고작, 이 정도에.
- 획!
- 획!
몇 번 칼을 피하며 말을 걸어 보았다. 투구를 벗어, 나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다고 말해 보았다. 하지만 말을 전혀 들어 먹지 않는다.
“우어.! 우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덤벼들 뿐.
‘어쩔 수 없나.’
내 몸을 내려다본다.
녀석이 보이는 저런 적대가 합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입고 있는 것은 인간과 같은 풀 플레이트 메일.
손에 든 것은 녹슬고 무딘 칼이 아니라 반짝거리는 인간의 무기.
게다가 녀석은 나를 처음 본다.
내 반가움은 기억에 의한 것.
이 문지기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거리가 있는 게 자연스럽긴 하다.
녀석이 다시 칼을 치켜든다.
“우어어.!”
험하게 다루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런 녀석과 싸우지 않고 싶었다. 갑옷을 벗으면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
몸까지 같은 해골인 걸 알아보고 공격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루비아가 나에게 사 준 갑옷이다. 도시에 들어가서 갑옷부터 산 뒤 살해당한, 그 갑옷이다.
벗고 싶지 않았다.
문지기가 싸우고 싶어 한다면, 맞서 주는 편이 예의일지도 모른다.
- 덥석.
칼을 휘두르는 팔을 잡았다. 녀석이 마구 발버둥치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약하다.’
가여운 수준이다.
녀석을 가지고 장난을 칠 생각은 없다. 그런 짓은 부끄럽다.
함께 박해받던 녀석들이다.
하지만 방해받고 싶지도 않았다.
손을 들었다. 문지기 해골의 녹슨 칼을 빼앗았다. 빼앗은 칼을 멀리 던져 버렸다.
- 쨍!
녹슨 칼이 돌바닥에 부딪힌다.
녀석을 뒤로 밀쳐서 넘어뜨렸다.
- 달그락!
뼈 무더기로 사이로 넘어진다.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내게 달려든다.
녹슨 칼을 잡는다.
칼이 무뎌지면 차라리 몽둥이를 드는 편이 좋다. 타격에 적합하게라도 되어 있으니까.
계속 덤벼든다.
‘어찐다.’
귀찮아진다. 자꾸 칼을 휘둘러 오는 녀석의 한쪽 어깨뼈를 잡고 그대로 탈골시켰다. 팔을 뼈 잔해에 던졌다. 다리를 랬다.
- 털썩.
그제야 녀석이 바닥에 쓰러진다.
쓰러진다기보다, 빠진 제 팔과 다리를 주워 몸에 가져다 대려 한다.
한동안 저 상태일 것이다. 쉽게 결합되는 건 아니다. 한 번 분리되면,
합쳐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한동안 무력화에 성공한 것이다.
상대하며 다시 느꼈다. 해골병사는정말 약하기 그지없다.
나는 무기도 쓰지 않았다. 그냥 느긋하게 몇 번 피했다. 그리곤 팔을잡아서 빼고, 다리를 랬다.
쓰러진 문지기를 지나,
한 걸음을 걷는 순간.
- 띠링!
[경험치가 34 올랐습니다.]
[던전 공략을 시작합니다!]
‘던전 공략?’
당황스러운 메시지.
그런 단어는 인간에게 어울린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지키기 위해서 왔다.
문지기를 무력화하자 던전 공략을 시작한다는 말이 떴다.
마치 내가 던전을 공략해야 자연스러운 무언가가 된 것 같은 느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던전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속옷만 입은 인간의 시체 여러 구를 발견했다. 피가 제법 낭자하다.
아직 완전히 말라붙지 않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
인간들에게는, 방금 쓰러뜨린 문지기 같은 느려 터진 해골보다 이 광경이 훨씬 위협적일 거다.
‘서로 싸웠나?’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곤, 죽인 뒤가죽 갑옷까지 벗겨 간 것 같다.
납골당의 해골병사들은 인간을 벗기지 않는다.
유품을 가져가지 않는다. 이 던전에 있을 때는 나 역시 그랬다.
이건 인간의 소행이었다. 칼로 툭툭 시체를 뒤적였다. 품에는 위젯한 푼도 남아 있지 않다.
‘살해한 놈이 다 털어 갔군.’
이런 짓을 벌였으니 아마 밖으로 도망쳤을 거다.
던전은 은폐되어 있다. 그런 만큼 던전을 분쟁의 장소로 쓰는 인간들도 있다.
아이템이 탐나는 동료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위험한 순간에, 마물과 맞닥뜨린파티원의 뒤를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런 식으로 죽은 자들은 아닐 거다.
F급 던전은.
뒤통수를 치기에도 별로 적합하지 않은 던전이니까.
애초에 살해가 목적이었거나, 그냥서로 싸우다 이런 꼴을 당한 거라고 생각된다. 던전 안에서 죽은 자들의 시체는 풍화된다.
나중에는 이 던전의 일부가 된다.
걸어 다니는 해골이 된다.
내가 여기에서 죽일 인간들도 그렇게 될 거다.
시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곳곳에 관이 세워져 있거나 눕혀져있다. 물론 관 안에서 제대로 안식을 취하는 해골은 없다.
해골들은 모두 이 던전의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있다.
침략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린다.
관 근처에서, 멍하니 돌아다니던 해골들이 이쪽을 바라본다.
잘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녹슨 검을 든 다섯 해골.
방금 눕혀 준 문지기 해골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녀석들이다.
“딱딱딱.
- 달그락- 달그락 놈들이 이를 부딪치며 어기적어기적 걸어온다.
내가 왜 그렇게 적대적으로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전혀 싸우고 싶지 않은 놈들이다.
게다가, 이런 녀석들을 처리해 봐야보람도 보상도 없다.
하필 인간이 없는 시간에 들어온 것 같다. 시간대가 나쁘다.
인간 모험가들이 한창 진입하고 있었다면, 뒤를 멋지게 쳐 줄 수 있었을 텐데.
- 탈칵.
투구를 벗은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가 같은 해골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아직도 나를 적대하는 눈빛이다.
이거 피곤한데.
“우어어.!”
놈들이 달그락거리며 돌진해 들어온다.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런 건 어떻게 받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공격하다니.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해골이라니까.”
“우어어.! 우어.!”
숫자가 다섯인 만큼 제대로 포위라도 하고 덤벼들면 좋으련만, 일렬로달려드는 모습이 안타깝다.
- 휙!
휘두르는 검은 가볍게 피했다.
하나씩 밀어 던져 버렸다. 서로에게 겹쳐지며 녀석들이 허무하게 무너진다. 느리고 약하다.
- 달그락! 달그락!
- 우지끈! 투컥!
달려드는 놈들은 하나씩 무력화했다. 탈골시켜 잔해에 던져 놓았다.
나는 단순히 스탯만 높은 게 아니다.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섯 녀석을 전부 눕히자 무려 레벨까지 하나 올랐다.
워낙 낮은 레벨이라 그런 듯하다.
전혀 반갑지는 않다. 인간을 잡을 생각으로 들어왔지, 이런 녀석들과투닥거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길을 찾는 건 쉬웠다. 낡은 덩굴들과 물웅덩이들을 지났다. 모두 눈에 익었다.
몇 년을 달그락거렸던 공간이다.
길을 잃으려 해도 그럴 수도 없다.
허름한 상자와, 곳곳이 부서진 돌로 된 탁자 같은 게 드문드문 발견된다.
하지만 모두 다 쓸어 가 버린 걸까. 삐걱거리며 열리는 상자들 안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던전을 지키는 녀석들이 자꾸 다가왔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다. 안쓰러울 정도로 약한 녀석들뿐.
어렵지 않게 던전을 걸어, 원하는위치에 도착했다.
‘이쯤에 석벽이 있을 텐데.’
다음으로, 구석구석에 숨겨진 기관 장치를 차례로 작동시켜야 한다.
‘뱀, 부엉이, 말.
표식을 찾아간다. 나뭇가지와 돌덩이를 치우자 금방 표식이 보였다.
기관 장치를 하나씩 작동시켰다.
기계 함정도 마법 함정도 없는 이 던전. 뭔가 제대로 된 장치라고 해봐야 이것 하나밖에 없다. 기억하기 어렵지는 않다.
- 구구구궁-
생각했던 대로 석벽이 열린다.
딱히 어려운 기관 장치도 아니다.
실패해도 바닥이 꺼진다거나, 돌이굴러온다거나 하는 일조차 없으니.
- 쿵!
석벽이 끝까지 위로 올라갔다.
- 띠링!
[F 급 기관 장치를 해제하셨습니다.]
[경험치 350이 주어집니다.]
약간의 경험치를 받는다.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방금 전에 레벨 업을 해서인 걸까.
그때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