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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1화 (21/458)

21화 누구를 책망할 것인가 (8)

“정말 죽으면 어떡하지? 그냥 두들겨 패면 안 됐을까?”

“매번 그랬잖아. 저놈에겐 교육이필요하다고.”

“그래도 죽일 것까지는 없는 거 아니야?”

“한 시간 뒤에 슬쩍 다시 와 보자.”

“멍청아! 한 시간은 너무 짧아! 두 시간은 있어야 해.”

“늑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구! 목이 다 뜯겨 있으면 어떡해?”

“요즘 이 근처에 산짐승 싹 다 없어진 거 몰라?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 다른 지역 사냥꾼들이 싹 다 쓸어 갔다고 다들 난리들이야.”

잠시 아이들을 따라가 이야기를 들었다.

묻힌 녀석에게 돌아가 보았다.

- 드르릉.

어처구니없게도 녀석은 그 사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수풀에 숨어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션.”

“히끅!”

션이 딸꾹질을 하며 놀랐다. 머리를 흔들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션!”

“고윽.!”

‘저러다 토하겠군.’

저 나이에 알콜 중독이라니. 하지만 내가 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을 일 같은 건 없다.

션이 내 쪽을 보려 했다. 하지만 묻혀 있는 탓에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허공을 보고 말했다.

“다, 다시 꺼내 주러 온 거야?”

“그래.”

“우린 치, 친구들이지? 고, 고마워!”

션은 제대로 술에 절어 있었다. 자길 묻은 아이들과 내 목소리를 혼동할 정도다.

어린 나이에 알콜 중독으로 뇌 손상이 온 건 아닌가 싶었다.

“대신 눈을 감아.”

션에게 눈을 감게 시켰다. 내 모습을 보게 할 생각은 없다. 션이 반문한다.

“누, 눈을?”

“응. 눈을 감아. 친구들 몰래 구해주러 온 거니까. 내가 누군지는 비밀이야.”

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풀에서 빠져나갔다. 녀석을 묻힌 땅에서 끄집어내 주었다.

딱딱한 손이 자신을 잡고 꺼내는데도, 녀석은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못하는 것 같다.

션은 꼬부라지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감겨 있는 션의 눈을 천으로 둘렀다. 그리고 며칠 전 유블람에 들어간 여자에 대해 물어보았다.

별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이,

션은 내가 궁금한 사실에 대해 이것저것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정뱅이 꼬마는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핵심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관이라.’

아이는 유블람에 여관이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여관은 특별하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은 그곳에서종종 실종되곤 하기 때문.

“여행객 누나들이 들어가긴 해도,

나오질 않더라고.

그리고, 그 여관 주인은 성 밖에 방앗간을 소유하고 있다.

“방앗간이. 강 근처라고?”

“응, 우리 많이 홈쳐, 히끅! 먹었잖아. 왜 모르는 척해, 히히.

다행히 그놈에게는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앗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대머리 경비대장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션은 갑자기 술이 깬 목소리가 되었다.

“끄흑! 그, 그건 절대 말하면 안되는 거잖아! 너, 너, 왜 그래? 끅!”

아이들에게도 조심스러운 화제인걸까. 녀석이 서서히 술에서 깨는 게 느껴졌다. 일단 여기서는 물러나야겠다.

“그래. 가만히 있어. 천천히 백을 세면서 반성해. 아니면 다시 묻어버리겠어. 이번엔 절대 안 꺼내 줘.”

“으, 으응!”

션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아. 둘. 세엣.

- 스르록.

주정뱅이 꼬마에게 사기를 친 나는, 곧바로 수풀을 타고 강 근처로 향했다.

‘여관 주인이라.’

일단 거기서부터 캐물어 간다.

바람이 수풀 속으로 느릿하게 걸어 들어온다. 나는 엎드린 땅이 점점 딱딱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후 2시.

이글거리는 겨울 해가 계절을 잠시 부정하는 시간.

밤새 얼어붙은 땅도 아침부터 녹아제법 부드럽다. 땅이 딱딱해진다는 느낌은 심리적인 것이리라.

‘비슷한 자세였나.’

성문 근처에서, 사흘 밤낮 루비아를 기다렸던 한 달 전에도.

기다리던 그녀 대신 나오던 경비병들. 덜컹거리던 수레.

- 달그락.

두개골을 흔들었다. 생각을 떨쳐낸다. 앞을 바라봤다.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방아채 끝이 들어 올려지고, 다시 떨어졌다.

- 쿵!

곡식을 찧는 소리가 아니다. 공이는 텅 빈 절구 바닥을 때린다.

‘비었다.,

여관이 소유하고 있는 제분소. 전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다.

- 끼이익.

방앗간에 딸린 집. 문을 열고 남자가 나왔다. 마흔 정도로 보였다.

‘저놈인가.’

여관의 주인이겠지. 다른 사람일 것 같지 않다.

남자는 근처 돌담에 앉았다. 꺼진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남자의 몸은 상해 있다. 얼굴에 심한 멍이 들었다. 귀에서는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린다.

고문의 흔적이다.

하지만 저놈을 누가? 가만히 되짚어 본다.

제대로 된 도시라면.

경비대가 그를 수사할 거다.

여행객이 사라지는 여관이라니.

과도한 수사를 하는 경비대에게 저런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머리 경비대장과 그를 따르던 네 명의 경비대. 놈들은 밤중에 그 여행객의 시체를 싣고 나왔다.

산중에 유기했다. 시간까지 하려는 놈도 있었다. 경비대의 탈을 쓴 극히 흉악한 범죄 집단.

그런 놈들이라면.

여행자를 납치하는 여관 주인과 손발이 아주 잘 맞으면 맞았지 어긋날 것 같지는 않다.

남자는 한참 밖에 나와 있더니 안으로 곧 들어갔다.

혹시나, 누가 나타날까 싶어 이틀을 기다렸다. 엉뚱한 자를 덮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 달그락.

‘오늘이 삼 일째인가.’

- 스르록.

수풀을 통해 조용히 뒤로 돌아갔다. 석궁을 목에 겨누고 남자에게 물었다.

“네가 여관 주인인가?”

남자가 몸을 홈칫 떨었다.

- 퍽!

이 정도면 반응은 충분하다.

돌아보려는 남자를 기절시켰다. 목덜미를 쥐었다. 짐짝처럼 방앗간 옆의 집으로 끌고 갔다.

- 끼이익.

문은 잠기지 않은 채였다.

- 털썩!

기절시킨 남자를 바닥에 던져 놓고내부를 살폈다.

‘엉망이군.’

남자가 사는 집이다.

가구엔 먼지가 두터웠다. 제자리에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이건 뭐지?’

한쪽에, 플레이트 아머가 놓여 있었다. 투구와 장갑까지 세트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 같다.

잠시 둘러보다가, 기절한 남자를 밟아서 깨웠다.

“으, 으으옥.

기절한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일어났다. 그리곤,

“히, 히익!”

몸을 웅크리며 벽에 몸을 붙였다.

놀라는 건 당연하다.

“다, 당신이 해골로 보이는데.

하지만 말이 좀 엉뚱하다. 해골로보인다라. 자기가 뭘 잘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해하고 있다면, 그대로 두자. 굳이 자기소개를 할 생각은 없다.

“그래, 뭘 처먹고 앉았으면 사람이 해골로 보이나?”

대충 얼버무렸다. 어차피 이 남자를 살려 둘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남자가 떨면서 말했다.

“아, 아편 때문인가. 더, 더 뭘 어찌겠다는 거요. 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게꼭 불의의 침입자는 아닌 듯하다.

정말 모른다니, 월 말하는 걸까.

남자에게 물었다.

“뭘 모르는데?”

“에라스트에서 출발한 두 조직원이 어떻게 됐는지도, 경비병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 모른다니까! 내, 내가왜 그들을 해치겠소.!”

손을 떤다. 에라스트에서 출발한 두 조직원이라. 루비아의 삼촌이 보낸 녀석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네크론 신사회의 두 놈을 말하는 건가?”

신분증에 적힌 대로 이야기해 본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조직. 에서 나온 거 아니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몸을 파르르 떤다.

“그럼 누, 누구요!”

“질문은 내가 한다. 갈색 머리. 회색 로브의 여자. 기억나겠지?”

남자가 몸을 흠칫 떨었다. 정직한 반응이다.

“설마. 그 여자의. 일행이오?”

“그래.”

“제, 젠장.!”

- 타닥!

남자가 도망가려고 했다. 제정신은 아니다. 아편인지 뭔지, 마약 물질에 심하게 중독된 듯하다.

해골을 보고도, 그냥 환각을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도망가려 한다.

나는 문 쪽을 막아서고 있다.

도망갈 방법은 없다.

시도는 좋았다고 말해 주고 싶어도, 그런 공허한 칭찬은 무리다.

- 퍽!

무릎으로 가슴을 가격했다. 남자가 가슴을 안고 쓰러졌다.

“끄헉!”

- 푸슛!

바닥에 쓰러진 놈에게 석궁을 발사했다. 코앞이라 조준이 엇나갈 일도 없다. 석궁살은 남자의 왼손을 뚫고마루에 틀어박혔다.

- 파르르!

석궁살 끝부분이 떨린다.

“아아아악!”

“쉿.”

손가락뼈를 입에 가져다 대며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흐, 흐곡, 곡, 끄흐흑.!”

울부짖음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 좀 마음이 가라앉았나?”

“끅. 끄흐으윽.

아닌 듯하다. 손에 화살이 박힌 남자가 고통으로 흐느낀다.

나는 심문을 시작했다.

“왜 그랬지?”

다짜고짜 질문한다.

다 알고 있다는 자세로 몰아치자,

약에 중독 되어 망가진 이 남자는 우습게도 술술 불어 버린다.

“그,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간 여관 문을 닫아야.!”

그들이라면 네크론 신사회라는 놈들을 뜻할 거다. 나는 다시 아는 척질문했다.

“혼자 묵은 여자를 그냥 보냈다고여관 문을 닫게 한다고? 그랬는지는 어떻게 알고? 그들이 무슨 아쥬라의마법사라도 되나?”

손목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손에 박힌 화살을 툭툭 건드렸다.

“끄, 끄흐흑.!”

여관 주인은 갑자기 감정적으로 격해졌다.

흐느끼며 울부짖는다.

급격한 기분 전환.

마약중독의 부작용인 듯하다.

“젠장! 그냥 죽여! 내가, 내가 할 수 없단 말이다.”

“무슨 말이지?”

“난. 가망이 없어! 약을 먹어도 안 돼! 이, 일을 치를 수가 없어. 여자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면서대리 만족이라도, 끅, 느끼는, 흐윽. 거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다리에 힘이 풀렸다.

- 달그락.

남자의 손목을 밟던 발을 반걸음 뒤로 물렸다. 남자는 미친 것처럼 계속 쏟아 낸다.

“이, 이젠 그것도 끝이지만. 회원둘이 실종됐다고 나한테 그 책임을 덮어씌우는 거야! 그냥 내 여관을 빼앗기 위한 명목이겠지만. 고, 고문할 것까지는 없잖아! 귀에, 끅, 귀에그런 괴물을 집어넣었다고. 괴물을. 이제 곧 제분소도 압류할 거야. 난 끝이야. 끝이야.”

남자는 실성해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으며 흐느꼈다.

이런저런 비슷한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었다.

얼마나 이야기를 들었을까.

- 띠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네크론 신사회에 대한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 네크론 신사회는 인신매매 집단입니다.

- 그들은 유블람의 여관 주인을 고문했습니다.

- 그들은 고문에 특별한 벌레를 사용합니다.

- 유블람의 경비대장은 네크론 신사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 유블람의 여관 주인은 더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나는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봤다.

잠깐 잊고 있었다.

이것도 엄연히 퀘스트다.

목록에 가만히 잠들어 있던 탓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은퀘스트 진행 중이라는 거다.

망치잡이의 신분증을 품에 넣는 순간 허공에 뜨던 창. 네크론 신사회에 대해서 알아보세요, 라는 우스꽝스러운 퀘스트.

허공에 뜬 글자들을 한 줄 한 줄 가만히 읽어 내려갔다.

‘여관 주인은 더 알지 못한다고?’

여기서 꼬리가 끊긴다고?

솔직히 웃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껏 저 반투명한 푸른 창이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나는 석궁을 들었다. 천천히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여관 주인이라는 남자.

이자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죽이는 것과 아닌 것, 어느 것이 더고통스러울지 알 수 없었다.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은지, 그저죽이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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