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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5화 (15/458)

15화 누구를 책망할 것인가 (2)

나는 머리를 슬쩍 들어 상황을 확인했다. 여기를 보고 있는 남자들은 없었다. 덫이 왜 망가졌는지는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 덫에 ‘걸려야 했을’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인간 남자들은 모두, 저 위에서 눈길을 달려오는 거대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키.

키만큼이나 옆으로 벌어진, 근육과 힘줄로 흉악하게 얼기설기 엮어진 어깨. 그리고 인간의 몸통만큼이나 두꺼운 양팔.

인간 같은 건 가볍게 잡아 뜯을 수 있는 설원 트롤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 쿵! 쿵! 쿵!

농담으로라도 무심해 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저 트롤은 포화처럼 이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원한을 샀다면 그건 확실히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에 나와 루비아까지 휘말리게 생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엎드려 덜덜 떠는 루비아의 손을 꼭 잡았다.

“쿠워어어어!”

눈길을 달려오던 트롤은 고함을 지르며 도약했다.

- 쾅!

트롤이 착지한 바닥의 눈이 폭죽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고작 한 번의 도약으로 녀석은 십여 미터를 뛰어넘었다. 미처 투창을 던지지도 못한, 가까이 있는 인간의 목을 잡고 물어뜯었다.

- 과직!

물린 남자의 목이 종이처럼 찢겨지고 너덜너덜해 졌다.

‘도망쳐야 해.’

그 외의 답은 없다.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쿠오오오오!”

트롤이 울부짖었다. 쌓인 눈과 트롤의 털은 새하얗다. 뜯겨 진 인간의 목이 피를 움찔움찔 뿜으며,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나는 사방을 살펴봤다.

‘곤란한데.’

될 곳이 없었다. 일단 산길을 내려가려면, 저들이 싸우는 곳으로 나가야 했다.

“투창!”

인간들이 발작적으로 외친다.

- 슈슈슈슛!

착지한 트롤을 향해, 다섯 개의 작살이 일제히 바람을 갈랐다.

- 퍽!

하지만 트롤은 이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그녀는 목이 너덜너덜한 시체를 잡고 휘두르며 투창을 막아 냈다.

하나의 투창이 허벅지를 스쳤을 뿐이다. 그나마 힘줄을 끊을 만큼 깊지 못했다.

트롤은 온몸이 고밀도의 근육으로 단단히 뭉쳐져 있다. 암컷은 더욱 그렇다.

‘전멸이다.’

인간들은 여기서 다 죽을 것이다.

트롤은 등에 활을 지고 있는 인간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

- 우직!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커다란 트롤의 발에 가슴을 걷어차인 남자는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이야앗!”

트롤이 발을 차는 그 순간, 가죽갑옷을 입은 다른 남자가 손으로 투창을 던졌다.

하지만 트롤은 몸을 움직여 투창을 피해 버렸다.

‘도망갈 타이밍을 제대로 잡아야 하는데.

잘못한다면 양쪽 모두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있다.

나는 바깥을 계속 살폈다.

“크오오오!”

트롤은 그대로, 투창을 던진 남자에게 돌진했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꾸웨에에에엑!”

쇠를 구부리는 악력에 남자의 어깨가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살점이 뭉개지고 하얀 뼈가 마구 부러져 밖으로 튀어나왔다.

트롤은 다른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잡았다. 힘을 주고 얼굴을 짓이겼다.

남자는 바닥에 누런 진액을 흩뿌리며 즉사했다.

- 슈슛!

세 개의 투창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날아왔다.

‘나름대로 분전인데.’

사냥꾼들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투창을 던지고 있었다.

“쿠오오오!”

트롤은 그중 하나의 투창을 맞았다. 투창을 맞은 트롤은 빼내려고 했다. 멍청한 짓이었다. 투창은 갈고리 형태로 되어 있다.

투창을 빼내자,

- 푸슛!

살점과 함께 트롤의 푸른색 피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트롤은 제 허벅지에서 뽑아 낸 투창을 그 남자에게 던졌다.

- 피릿! 퍽!

빛처럼 날아간 투창이 남자의 두개골을 부수고 그 시체를 눈 위에 처박았다.

‘저렇게까지 세던가?’

트롤이 저 정도였나?

트롤을 본 적은 적지 않다. 하지만 저 트롤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것 같았다. 이제 인간은 둘밖에 남지 않았다. 더 지체할 수는 없다.

트롤은 후각이 매우 뛰어나다. 나는 몰라도, 숨어 있는 루비아를 알지 못할 리는 없다. 나는 루비아의 손을 잡고 외쳤다.

“도망가자!”

남은 두 인간이 조금이라도 미끼가 되어 줄 때 도망쳐야 한다.

급박한 상황이다. 루비아를 안고 뛰쳐나갔다.

“히, 히익!”

갑자기 뛰쳐나온 날 보고 인간 하나가 놀라 주저앉았다. 해골이 갑자기 뛰쳐나오니 준비된 사냥꾼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다. 주저앉은 남자에게 트롤이 덮쳐 갔다.

- 퍽!

남자가 방패를 드는 것까지만 봤다. 나는 루비아를 안고 산길을 달려 내려갔다.

- 뽀득! 뽀드득!

워낙 급하게 달려 내려간 덕에, 눈 밟히는 소리가 더 요란한 것 같았다. 물론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은 없다. 남은 인간 하나가 최대한 오래 버려 주기를 빌며 도망갔다.

“끄아아아악!”

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못했을 때, 뒤에서인간의 단말마가 울려 왔다.

대체 저런 실력으로 무슨 트롤 사냥꾼을 한다는 건가? 정말 덫 하나만 믿고 그러는 건가? 끔찍할 정도로 황당한 놈들이었다.

- 쿵! 쿵! 쿵!

뒤에서 발소리가 울려 왔다.

“크워어어어어!”

트롤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걸 적대하는 것 같았다.

- 쿵!

설원 트롤은 날 장난처럼 뛰어넘어 내 앞에 섰다.

“도망가시오.”

루비아에게 말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내 달리기로도 금방 따라 잡혔으니까.

나는 트롤의 앞에 섰다. 손에 쥔건 단검 하나뿐이다.

“아, 안 돼요.!”

루비아를 억지로 밀었다. 하지만 루비아는 도망가지 않았다. 나를 보며 절벽 근처에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이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단검을 쥐고 트롤을 바라봤다. 트롤의 몸에는 투창이 두 개 꽂혀 있었다.

데미지를 입었으니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법 피로한 기색이 기도하고.

- 퍽!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트롤은 손을 휘둘러 내 팔을 잡았다.

트롤의 팔 길이는 2미터. 공격 범위가 너무 길었다.

그리고 힘이 너무 강했다. 힘을 주고 버티려고 했지만,

- 우두둑!

팔이 금세 뜯어져 나갔다. 광기와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트롤의 눈이 보였다. 트롤은 내 두개골을 잡고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의식이 순식간에 캄캄해 졌다.

- 픽!

어디서, 무언가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 메아리쳐 들렸다.

[사망 기록을 저장하시겠습니까?]

[Y/N]

[동화율이 내려갑니다.]

[93.71%->93.54%]

- 번쩍!

번개가 하늘을 깨물듯 친다.

- 우르릉! 광! 콰광!

천둥이 운다.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놀랄 것도 없다. 번개의 잔상이 보인다.

- 똑똑.

양옆을 두드리면 단단한 관이다.

- 쏴아아아.I장대 같은 빗줄기가 미친 둣이 퍼붓는다.

새카만 밤하늘을 바라본다. 조금 있으면 루비아가 나타날 것이다.

죽었다. 그리고 돌아왔다.

좀 벗어나나 했더니, 고작 하룻밤을 더 살고 죽어 버렸다.

이렇게 금방 금방 죽었던 주제에.

‘처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20년을 살아남았던 거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혹시 이렇게 죽는 건, 루비아라는 여자와 관련 있는 걸지도 모른다.

‘치워 버려야 하나.’

- 달그락.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버린다고 해서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면 모를까, 나를 일으킨 사령술사를 매몰차게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손을 들어 두개골을 어루만졌다.

두개골은 그 자리에 여전하다.

분명히 반으로 쪼개졌던 두개골이 잘만 붙어 있었다.

‘네 번을 다시 돌아왔군.’

이번에는 어처구니없게도 트롤에게 죽었다. 인간을 피한다고 일부러 험한 산길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설원 트롤을 만나버린 것이다.

‘새끼 늑대가. 길을 막던 게 덫이 아니라 트롤 때문이었던 거군.’

덫을 발견하고 안심했다.

그것만 해제하면 위협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설원 트롤이 나타나기 좋은 위치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뭔가 좀 달랐다.

트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것 같았다. 얼마나 강해져야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덫을 그대로 놓기도 찜찝했다. 여섯 명의 사냥꾼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덫은 그대로 놓는 편이 맞다.

루비아를 신경 쓰지 않으면 인간 여섯 명은 이길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그 정도로 흉악한 트롤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으니까.

만날 수는 있으려나.

서큐버스님.

가는 길이 이렇게 험해서야.

- 달그락.

나는 내 식대로 한숨을 쉬었다. 척추를 움직여 갈비뼈를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 띠링!

[계승되었습니다.]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l(57)]

[체력-29 힘-30 민첩-32 지혜-9]

그에 맞추듯 상태창이 나타났다.

나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천천히 상태창을 바라봤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해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레벨 1이군.’

16까지 올라갔던 레벨이, 다시 1로되돌아와 있었다.

역시 스탯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스킬도 그대로였다.

모든 스탯과 스킬을 보존한 채 다시 회귀하는 걸 확인한 것이다.

‘음.

이어서 다른 창이 뜨기 시작했다.

[사망기념관]

[계승된 이후 네 번째 죽음을 달성하셨습니다.]

1. 사령술사를 위하여플러스 (new!)

최후의 순간, 당신은 한 사령술사를 위해 목숨을 두 번 연속 바쳤습니다. 사령술사와의 관계에서 기본 호감도 20을 얻고 시작합니다.

원하는 사령술사의 스탯 포인트를10만큼 올릴 수 있습니다.

[잔여 포인트: 10]

‘변했잖아?’

사령술사를 위하여, 라는 특전.

그 특전의 설명이 바뀌었다.

‘기본 호감도 20이라는 것만 있었는데.’

새로운 게 추가됐다. 사령술사의 능력치를 10만큼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 추가로 붙었다.

‘으음.’

이런 게, 정말 되는 걸까?

아직 생각이 흐릿한 채로, 아래로 눈을 내렸다.

사망기념관 특전 목록.

2번과 3번은 동일했다.

둔기 저항과 두개골 저항이다. 쓰면서 몸으로 확인했다. 둔기 저항이 확실히 유용하긴 하다.

하지만 두 번이나 연속해서 선택했다. 역시 다른 걸 한번 해 보고 싶기도 하다.

[이번 회차에 적용할 특전을 선택해 주십시오.]

어둠 속에서, 글자가 홀로 반투명하게 반짝였다.

지금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생각 좀 해 보고 골라도 된다.

- 번쩍!

- 우르릉! 쾅!

이제 루비아가 말을 거는 타이밍을 정확히 잡을 수 있다. 두 번째 천둥이 칠 때다.

무덤 근처에 서 있을,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잘 들려!”

“망자여, 다, 흐웨어이익!”

루비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철픽!

주저앉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덤 위로 간단히 올라갔다.

처음 회귀했을 때보다도 훨씬 몸이 가볍다. 힘이 넘치는 상태.

그래 봐야 트롤에게는 한 번에 붙잡혀, 두개골이 쪼개지는 꼴을 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하고 이 힘은 부족하기만 하다.

“히끅!”

딸꾹질을 하며 나를 보는 루비아가 보인다.

‘또 놀라는군.’

그녀는 나를 처음 보는 거다. 하지만 나는 벌써 다섯 번째 조우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잠시 고민하던 특전 선택을, 충동적으로 결정해 버린다.

‘1번 선택.’

[특전: 사령술사를 위하여플러스 가 적용되었습니다. 모든 사령술사와의호감도가 20 을러 갑니다.]

[원하는 사령술사의 스탯 포인트를10 올릴 수 있습니다.]

스탯 포인트는 글쎄, 모르겠다. 그보다 이제 좀 덜 놀라려나? 그녀에게 정리해서 몇 마디를 해 줬다.

“말 알아듣고, 잘하고, 적당히 지식이 있는 해골이오.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말은 해 두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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