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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8화 (8/458)

8화 삶에서 깨어나는 것 (8)

서둘러야 한다. 머릿속에 계획 이하나 떠오른다. 사망기념관에서 2번 슬롯을 선택했다.

[System: 둔기류 물리 저항 플러스40이 적용됩니다!]

단검술이 사라졌으니, 특전은 역시 둔기 저항이 좋겠다.

- 달그락!

무덤 밖으로 뛰다시피 나왔다.

아직 내게 말을 걸기 전의 루비아가 있다.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마, 히익!”

망자여, 라고 하려고 했겠지. 나를 부르지도 못하고 루비아가 넘어진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로브, 단검. 급하다.”

“히, 히잇!”

루비아의 몸은 굳어져 있다.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 접하면 누구나 굳어지기 마련이다.

- 파록!

단검과 로브를 단번에 강탈했다.

비에 젖은 로브가 억지로 벗겨진다.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풍성한 갈색 머리칼이 드러났다.

“아.

비에 젖은 입술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에는 추위와 공포가 섞여 있다. 루비아를 바라봤다. 로브 안에 바보 같은 세미 드레스를 걸치고 있다.

? 쏴아아.

생각해 보면 제정신이 의심되는 여자다. 이런 걸 걸치고 오다니? 드레스는 이미 비에 젖을 대로 젖었다.

정체도 의심된다. 자기가 무슨 계승자라고 한 것 같은데. 어쨌건, 위기를 넘기면 물어볼 시간은 많다.

다시 한 번 여자의 상태창을 확인한다.

- 띠링!

[이름: 레이 루비아]

[사령술사 Lv.l]

[체력-6 근력-5 지력-12 민첩-6]

내 사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근력.

전혀 반항하지 못하고 단검과 로브를 빼앗길 만하다.

상태창을 닫는다.

이 여자만 볼 수 있는 건지,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다른 녀석들도 볼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루비아를 보고 말했다.

“수풀 쪽에 가 있으시오. 절대 따라오지 말고. 목숨이 위험하니.”

믿어 줄지 안 믿어 줄지 모른다.

설명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빠르게 내뱉고는, 가장 길고 굵은 나뭇가지를 주웠다.

단단하고 쓸 만한 나뭇가지였다.

묘지는 새까만 어둠에 뒤덮고 있다. 하지만 이미 나뭇가지의 위치쯤은 다 알고 있다. 줍는 건 쉽다.

- 숙숙.

이번에는 새로운 계획이다.

단검으로 가지 끝을 몇 번 다듬었다. 충분히 날카로워 졌다.

그럭저럭 말뚝이라고 부를 만했다.

날카롭게 깎은 말뚝을 들고 산길로 달려갔다.

‘여기로 올라오지.’

길목 아래로 좀 더 내려갔다.

로브로 덮은 몸을 풀잎과 진흙 속에 묻었다. 깎은 말뚝을 언제든 세울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 철퍽! 철퍽!

소리가 들린다. 두 사냥꾼이 말을 타고 밤길을 달려오고 있다.

놈들은 왜 저 여자를 쫓는 걸까.

누구에게 청부를 받은 걸까.

지금까지는 줄곧 강간하는 것 같았다. 강간한 뒤는 죽일까, 아니면 팔아넘길까. 팔아넘긴다면 어떤 루트로 누구에게?

궁금증은 덮어 둔다. 당장은 저놈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히히 힘!”

말이 가까이 다가온다.

‘석궁은 보낸다.’

놈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으니.

강한 녀석을 먼저 노린다.

-철퍽! 철퍽!

석궁이 지나갔다.

망치가 탄 말이 왔다. 날카롭게 깎은 말뚝을 획 들어 올렸다.

- 푸욱!

말뚝은 정확히 말의 배에 박혀 들어갔다.

“히히 힘!”

고통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의 처절한 고통이 비 젖은 밤을 떨게 만든다.

배를 찔린 말이 발작을 일으켰다.

- 철퍼덕!

말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옆으로 넘어졌다.

말 위에 탄 놈이 뛰어내리고 말고 할 새도 없었다. 놀란 게 아니라 푹 찔려 넘어진 거다.

‘됐다.’

말이 넘어진 방향은 비탈길.

“끄하학!”

- 퍼걱!

망치 잡이가 제대로 굴러 떨어졌다.

부딪히는 소리가 좋다. 어디 하나는 단단히 부러졌을 것 같다.

- 퍼버벅!

놈은 언덕 아래로 계속 굴러 떨어졌다. 얼핏 보았다. 저 비탈길의 경사는 몹시 가파르다.

놈의 몸이 굴러가며 마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뭐, 뭐야?”

- 철픽.

앞서 가던 석궁을 든 놈. 곧바로 말에서 뛰어내린다. 저번 생에서는 저 녀석에게 죽었지.

고투 끝에, 망치잡이를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가온 석궁잡이의 곤봉에 부서졌다.

죽고, 다시 싸우며 죽었다. 이보다 사투라는 말이 어울리기는 어렵다.

이제 벌써 네 번째 조우다.

- 번쩍!

번개가 친다. 나는 석궁을 쥔 놈을 바라봤다.

루비아가 다가왔을 때 놈이 짓던 웃음이 생각난다. 징그럽기 짝이 없는 그 웃음을 떠올린다.

루비아의 단검을 꽉 다잡았다. 한발짝, 한 발짝.

장전한 석궁을 든 녀석이 조심스럽게 이쪽으로 다가온다.

- 피육!

다짜고짜 석궁 살이 날아온다.

녀석은 맹인이 아니다. 번개가 칠 때 나를 보고 노렸다.

뭔가 수상한 게 있다면 화살부터 날리고 보는 게,

나쁜 전략은 아니다.

- 풋!

덮어쓰고 있던 로브에 화살이 박혔다. 하지만 뼈 사이로 지나간다.

타격은 없다.

- 펄럭!

로브를 벗어 던졌다. 자리에서 튕기둣 일어났다.

석궁을 향해 외쳤다.

“내가 프레쳐다!”

얼핏 황당한 짓이다.

소리를 지르면 좀 놀라려나. 녀석을 당황시키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해 보았다.

프레쳐는 망치 잡이의 이름.

아까 날 곤봉으로 부수며 석궁이 이야기했다.

조금은 놀라 주지 않으려나.

“히, 히익! 뭐라고?”

다행히 예상은 적중했다.

녀석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난다.

질린 기색이다. 한순간 머리에 과부하가 온 거다. 동료의 이름을 대며 코앞에서 뛰쳐나오는 해골.

- 달그락.

단순하고 유치한 속임수다.

그러나 이런 방법일수록 효과가 좋다. 오래는 필요 없다. 잠깐 틈을 보일 정도면 된다.

놈의 몸이 잠시 굳어졌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았다. 단검을 그대로 놈의 목에 찔렀다.

- 획!

‘이런.’

빗나갔다. 아까의 몸놀림이 나오지 않는다.

“힉! 이런 씨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듯하다. 놈이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다시단 검을 휘둘렀다.

- 획!

하지만 단검술의 빈자리는 컸다.

저번 생을 생각한다. 망치 잡이에게도 깔끔하게 단검을 박아 넣었다.

한 번에 절명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수준이 한참 낮은 저놈에게도, 단검이 스치지도 못하고 있다.

‘역시 스킬 차이인가.’

하지만 분명 빨라진 느낌. 민첩을 올린 효과는 있다. 달라진 속도가 의식이 될 정도였다.

나는 눈앞의 인간보다 조금 더 빠르다. 간신히 피하던 놈이 경악하며 소리친다.

“뭐, 뭐가 이렇게 빨라!”

놈이 세차게 곤봉을 휘둘렀다.

- 붕!

잠시 전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전의 삶. 녀석이 이 곤봉으로 내 뼈를 부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곤봉을 그대로 맞아 준다.

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 픽!

세차게 휘두른 곤봉. 금속을 덧씌운 게 분명한 강도다. 뼈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타격은 크지 않다.

[둔기 저항 40이 적용됩니다!]

이 특전을 선택했으니까. 곤봉을 맞으며 안으로 뛰어들어,

- 푸슛!

목에 단검을 박는다.

루비아의 단검이 놈의 목에 박혀 들어가는 소리가 상쾌하다.

이것으로 석궁의 목에 단검을 박는 건 두 번째.

“끄, 끄, 끄히.r- 좌르록!

석궁이 목에서 피를 뿌린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다. 곤봉을 그대로 팔로 받았다. 이런 건 생각하지 못한 건가.

하긴, 지금의 내 모습이 전형적인 해골병사는 아니다.

달그락 달그락, 뼈 소리를 내며, 무력하게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의지 없는 망자들.

한 번에 대량으로 부서지거나. 모험자의 사냥감이 되어 주는 것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인간을 사냥할 줄은 몰랐을 거다.

“끅. 이, 이게 무. 끄힉.!”

녀석이 피를 뿜는 목을 손으로 옴켜쥔다. 생명력이 질기다. 아니면 단검이 동맥을 살짝 비껴갔거나. 나는 곤봉을 잡고,- 휘익!

녀석의 머리가 있는 쪽을 향해 세차게 휘둘렀다.

- 빠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축늘어졌다. 출혈과 타격으로 죽어 버린 것이었다.

‘일단 무기부터.’

석궁을 집어 들었다. 집어 든 석궁을 잘 챙기고, 시체의 허리춤에 있는 화살통도 뽑아 들었다.

- 삐그덕. 삐그덕.

석궁에 살을 메겼다.

앞으로 조준해 들었다.

“끼, 끼.!”

음? 아직 살아 있나. 제법이다.

이대로 놓아두어도 죽겠지만.

가능성을 남길 필요는 전혀 없다.

- 툭.

엎어진 놈의 가슴팍에 석궁을 댔다. 루비아를 유린하며 낄낄거리던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통을 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쥔 시위를 그대로 놓아 버린다.

- 퍼걱!

가죽 갑옷을 뚫고, 석궁살이 가슴에 박힌다. 즉사가 아니다.

‘질기군.’

놈이 빗속에서 꺽꺽댄다. 심장이 아니다. 폐인가 보다. 어쨌거나 죽는 건 같다.

버려두고 일어섰다.

- 끼릭. 끼리릭.

화살을 다시 감았다.

- 쏴아아아.!

망치 잡이가 떨어진 비탈.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번쩍!

‘봤다.’

녀석의 모습이 보인다.

- 우르릉! 쾅!

놈은 한 손을 부여잡고, 얼굴에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손가락이라도 부러졌나.’

배를 찔린 말에서 떨어져, 비탈에서 요란하게 굴렀으니까.

어디 하나라도 꺾이고 부러지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굴러멸어졌을 때, 그대로 죽어 주었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과한 욕심인 것 같다.

일단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히 놈은 여기를 보지 못한 상황.

석궁을 겨누고,

- 피릿!

발사했다.

- 퍽!

“끄학!”

신음이 들린다.

‘맞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스친 게 아니다. 제대로 한 발 들어갔다.

- 달그락.

앞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때맞춰 쳐 준 번개.

나는 놈을 보고, 놈을 나를 보지 못한 것.

미리 챙겨서 살을 메긴 석궁.

이런 요소가 모두 모여, 만들어 준한 발이다.

- 끼릭끼릭.

다시 석궁살을 메겼다.

시체에서 가져온 화살통 덕분에 살은 넉넉하다.

‘몇 발이나 더 맞출 수 있을까?’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 철퍽. 철퍽.

적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망치를 잡고 놈이 걸어온다.

누구에게는 별것 아닐 것이다.

제국의 검주劍主들이나, 아쥬라의마법사 같은 자들.

정말 강한 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죽일 수 있는 게.

걸어오는 저 녀석일지도 모른다.

- 철픽. 철퍽.

하지만 나는 해골병사.

녀석과 거리가 좁혀지면, 바스러져 죽을 확률이 높다.

- 쏴아아아.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추정해서 걷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라면 숨거나 도망치는 게 정석일 텐데, 대단한 녀석이다.

‘제대로 쫓아오는 것 같은데.’

- 우르릉! 광!

천둥소리에 섞여, 갑자기 발을 내딛는 소리가 빨라진다.

달려오는 듯하다. 나는 살을 매긴 석궁을 다시 들었다.

“으아 아아아!”

놈이 소리를 질렀다.

- 철퍽! 철픽! 철퍽!

소리를 지른 직후. 발 디디는 소리가 더욱 격렬해 졌다.

‘방향을 속이고 있다.’

소리를 지르고, 다른 방향으로 재빠르게 음직인 것이다. 석궁을 쏜다면 허공에 날리게 될 거다.

살을 매긴 석궁을 잡았다.

주의를 집중했다. 어디냐.

거대한 망치를 손에 쥐고,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놈을 찾는다.

- 번쩍!

왼쪽이다.

- 피릿!

살을 바로 날렸다.

- 퍽!

녀석이 손을 든다. 석궁살이 손바닥을 단번에 꿰뚫었다.

손가락이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부러진 손인가.’

전투에 쓰지 못하는 손을 들어서 석궁을 막아 낸 것이다.

제대로 비탈을 굴렀는지 온몸은 진흙 투성이 였다.

- 우르릉! 쾅!

“크하악!”

놈이 천둥소리와 기합을 맞춘다.

한 손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를 휘두르기에 최적의 거리.

- 붕!

두개골로 망치가 날아든다.

피하면 다가올 거다. 다가가면 물러날 거고. 놈은 간격을 능란하게 조절할 줄 안다.

- 펄쩍!

나는 휘둘러지는 망치를 향해 뛰어올랐다. 망치를 향한 박치기.

- 쿵!

머리가 망치에 부딪혔다.

얼핏 보기에 미친 짓이 분명하다.

어지러웠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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