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29화
229화 최종장 (1)
[동부, 서부, 남부, 북부를 모두 점령하였습니다!]
[에툰라 대륙의 지배자가 됩니다!]
[위대한 업적을 세웁니다!]
[미션 기여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94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95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96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
…….
[99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다층의 조건을 한 번에 충족하였습니다.]
[이명의 격이 대폭 오릅니다.]
[이명의 격이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응? 격에도 한계치가 있었나?”
준석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관심을 꺼 버렸다.
한계치에 도달해 봐야 딱히 주어지는 것도 없었다.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에서 최종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누락된 보상이 있습니다.]
[누락된 보상을 지금 당장 지급받으시겠습니까?]
준석은 보상을 받겠냐는 메시지에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보상은 하나로 묶어서.”
[누락된 보상을 하나로 묶습니다.]
[통합 보상이 지급됩니다.]
대체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
하드 난이도에 상층부의 보상을 하나로 묶었으니 분명 대단한 물건이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어?”
허공에 휘황찬란한 무지갯빛이 뿜어져 나왔다.
준석은 한 손으로 빛을 가리며 나머지 한 손으로 보상템을 거머쥐었다.
그러자.
[진리의 눈을 획득합니다.]
[진리의 눈이 당신에게 자격이 있는지 판단합니다.]
“자격?”
아이템에 에고가 존재하는 듯 자격을 논하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물건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에고가 존재할 줄이야.
거기다 이름이 진리의 눈이라니.
진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준석은 진리에 담긴 뜻이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자격이 충족되었습니다.]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뜬금없이 동기화는 뭐야? 크으윽!”
순간 왼쪽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행히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왜 갑자기 고통을 느낀 것인지 의문을 표하던 준석은 손에 들고 있던 진리의 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떴다.
“어?”
세상의 풍경이 바뀌었다.
왼쪽 눈이 바라보는 풍경과 오른쪽 눈이 바라보는 풍경은 확연하게 차이를 보였다.
다른 풍경을 겹친 상태로 동시에 보니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다.
준석은 오른쪽 눈을 가리고 다시 앞을 내다봤다.
모든 것이 선으로 그어진 세계.
선마다 색깔이 존재했다.
특이한 점은 새로운 색깔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치 세상의 본질을 보는 듯했다.
‘설마. 동기화라는 게…… 내 눈에 각인되는 걸 말하는 거였나.’
진리의 눈이 보여 주는 또 다른 세상은 도저히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보상으로 주어진 만큼 분명히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 주리라.
‘근데 계속해서 한쪽 눈은 가리고 있어야 하나?’
두 눈을 다 뜨고 있으면 시야가 방해될 뿐만 아니라 메스껍고 어지럽다.
[진리의 눈이 비활성화됩니다.]
“오 됐다.”
다행히 생각을 통해 활성화 조절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준석은 두 번 정도 진리의 눈을 테스트를 해 본 후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를 보았다.
[100층으로 올라갈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드디어 100층에 도전할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5년밖에 안 걸렸나.”
회귀 전에 비하면 여섯 배나 빠르게 도달했다.
회귀 전에 얻었던 정보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렇게 빨리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동료들 덕분이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동료들의 힘이 추가되어 예상보다 빠르게 도달한 것이다.
준석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이어 유희와 그 일행들을 바라봤다. 다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준석은 웃지 않았다.
아니, 웃지 못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회귀 전에도 99층까지는 무사히 클리어를 했다.
문제는 100층.
그곳을 지키고 있는 마왕 데카인을 처치해야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파즈즈즛! 파즈즈즛!
그때 어디선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야!?”
“저길 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어느 한곳을 향했다.
전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불길함이 가득해 보이는 기운을 내뿜는 균열은 점차 커져 대지를 집어삼켰다.
“당장 물러나!”
다들 긴장한 얼굴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저게 왜…… 여기에…….”
준석은 저 균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저게 뭔지 압니까?”
곁에 서 있던 오진하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게이트야.”
“게이트?”
“그래. 100층으로 향하는 게이트. 본래 중부에 위치한 폴리란드 언덕 아래 생겨나야 하지.”
한데 그 게이트가 마중을 나왔다.
난이도가 달라서일까? 아님, 어떤 문제 때문에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모르겠다.
오히려 코앞에 게이트가 나타난 것은 좋다고 볼 수 있었다.
폴리란드 언덕 아래로 내려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니까 말이다.
‘거긴 마법도 안 통하지.’
공간 이동이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전쟁이 이제 막 끝났는데, 바로 올라가실 겁니까?”
오진하의 물음에 준석은 즉답했다.
“원래는 좀 정비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친절히 눈앞에 나타나 주셨으니 올라가야지.”
게이트가 언제 다시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100층은 다른 층들과는 달리 계단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저 게이트를 지나면 곧장 100층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저야 괜찮지만. 다른 일행들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준석은 유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어? 준석아! 언제 온 거야?”
“방금 전에. 그보다 다들 상태는 어때?”
유희는 일행들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다들 멀쩡해.”
마침 유희는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는 듯이 가까이 붙어 귓속말을 전했다.
“그런데 보스가 튀어나올 것 같이 생긴 저 균열은 뭐야? 저런 게 생길 거라는 얘긴 없었잖아.”
“100층으로 가는 게이트야.”
“뭐? 저게. 통로라고?”
“그래. 그냥 규모만 크지. 포탈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
“안 그래도 저것 때문에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얘기?”
준석이 자신은 바로 올라갈 거라고 얘기하자 유희는 놀라며 소리쳤다.
“전쟁이 끝난 지도 얼마 안됐는데. 바로 올라가겠다고!?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야? 물론 네 마음은 이해가 되긴 하지만…….”
“저 게이트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아무도 모르거든. 만약 닫히게 되면 폴리란드 언덕 아래로 내려가야 돼.”
“거기는…… 위험하다고 알려져서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곳이잖아.”
유희도 폴리란드 언덕에 관해서는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에툰라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구역을 꼽으라면 그것은 폴리란드 언덕일 것이다.
“저 게이트가 닫힌다고 해도 그곳을 통해 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거야. 물론 바로 가자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내 의견은 그렇다는 거지.”
“음…….”
유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걸 놓친다고 해도 100층에 못 올라가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그럼 정비도 좀 하고 푹 쉰 다음에 움직이자. 솔직히 나도 하루라도 빨리 이 탑을 벗어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아. 일, 이주일 늦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온통 머릿속에 데카인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찼던 준석은 유희의 얘기를 듣곤 살짝 감정적으로 변했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래. 급하게 가서 일을 망치는 것보단…… 완벽히 준비하고 가는 게 맞겠지.’
너무 자신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쉬었다가 가자. 네 말 들어 보니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
유희가 잘 생각했다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준석은 피식 웃으며 그녀와 함께 제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슈오오오옹!
게이트 안에서 뼈로 앙상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와 준석을 붙잡았다.
“준석아!”
유희가 손을 뻗어 도우려고 했지만 손에 둘러져 있는 보호막에 가로막혔다.
미처 접근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준석도 뒤늦게 마법으로 대응을 해 보지만.
채애앵!
단숨에 상쇄되어 버린다.
신좌들도 상쇄시키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마법이건만.
‘설마 데카인이!?’
준석은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고개를 저었다.
회귀 전에 데카인에게 당한 기억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과대평가를 하고 있을 뿐.
실제로 그는 하급 신좌 수준에 불과할 터다.
그런 그가 게이트 너머의 마법을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다.
탑이 개입한 것이라면 모를까.
생각할수록 방금 전의 일은 탑이 개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여태껏 신좌들이 난리를 쳐도 침묵을 지키던 탑이 다시 개입을 해 왔다.
그것도 무언가가 정해진 규율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강제로 게이트에 끌어들였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물었다.
‘아니, 어찌 보면 나에 대한 개입은 이미 회귀한 순간부터 시작된 거야. 지금에 와서 개입을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항상 궁금했다.
왜 탑은 자신을 회귀시킨 것일까.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하나 100층을 클리어하게 되면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야, 마지막에 데카인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시 땅끝으로 끌어내려 주지.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그 말을 들은 직후에 회귀를 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어쩌면 데카인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탑과 데카인은 무슨 관계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준석은 우주에 떠도는 것처럼 한참을 공중에 부유했다.
이윽고. 다다른 곳에는 우주의 천체가 떠 있는 드넓은 공간에 이르렀다.
“뭐지.”
회귀 전에 보았던 장소와는 사뭇 달랐다.
주변을 살피던 준석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크르으응.”
“다칼!”
“크응…….”
-머리가 어지럽군.
분명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건 자신뿐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다칼이 함께하고 있었다.
‘동행자라서 자동으로 끌려온 건가.’
어찌 됐든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생겼다.
우웅, 우웅!
그때 근처로 빛 덩어리들이 생성됐다.
“뭐지?”
준석은 경계의 눈빛으로 빛 덩어리들을 바라봤다.
“김유희……?”
빛덩어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희였다.
모습을 드러낸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오진하! 하성태!”
이외에 그의 파티에 속해 있던 일행들이 전부 등장하고 있었다.
“형님, 저희만 두고 가면 섭하죠.”
하성태가 씨익 웃는 얼굴로 준석을 바라봤다.
“너희들…… 어떻게 된 거야?”
“형님이 끌려 간 뒤에 곧바로 게이트를 탔죠.”
이어서 오진하가 말을 꺼냈다.
“휘우~ 게이트가 사라지기 직전에 겨우 들어왔습니다. 하마터면 못 들어올 뻔했어요.”
곧바로 따라 들어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준석은 참으로 괜찮은 동료들을 두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형님, 감동했습니까? 그런 표정인데.”
“감동은 무슨. 정신줄 빼놓지 말고 주변이나 경계해. 데카인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데카인이요?”
하성태는 데카인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말을 해 준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적 말이야. 적.”
“아.”
“이준석!”
잠시 정신을 잃었던 유희가 준석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어. 난 괜찮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곧 준석은 표정을 굳히며 정면을 내다봤다.
‘온다.’
저 멀리서부터 풍겨 오는 이질적이고도 악한 기운.
몇 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하얗고 검은 두 개의 뿔, 심연의 눈동자와 핏빛의 날개, 단단한 검은 비늘을 몸에 두른 마왕.
“데카인!”
모든 것의 원흉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