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28화
228화 마지막 전쟁 (2)
흑백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은 오큘러스 거울이 만들어 낸 분신이었다.
비록 본체의 전력을 반밖에 내지 못하지만 잔챙이들을 잡아내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리라.
쿵! 콰광!
오큘러스 군단이 북부의 군단과 격전을 벌였다.
“아우우우-!”
다칼은 적진을 어둡게 만들어 혼선을 초래했다.
“이런 게 있으면 진작에 꺼내 주시지.”
오진하가 오큘러스 군단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할버드를 앞으로 치켜세우고 달려 나갔다.
타앗!
수십 미터 높이를 뛰어오른 그가 할버드에 힘을 집중시켰다.
크롸라아아아!
일격을 내지른 순간 나타난 드래곤의 형상은 수백 명의 적들을 휩쓸고 유유히 모습을 감추었다.
오진하는 연달아 공격을 하며 의외의 맹활약을 펼쳤다.
이를 지켜보던 준석은 흡족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새 성장했네.”
전력으로 불리하던 오큘러스 군단이 다칼과 오진하의 합세로 단숨에 승세를 휘어잡았다.
판도가 이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자 상황을 주시하던 준석도 눈앞에 빛의 서를 띄운 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우웅-
곧 발밑에 생겨난 거대한 마법진이 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머리 위로 또 하나의 마법진이 생겨나며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fkgl, rodl…….”
준석은 체내의 상당량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탐욕의 반지 효과가 발동합니다!]
[빛의 서에 각인된 ‘레이 버스트’ 마법에 탐욕의 힘을 불어넣습니다.]
두 마법진 사이로 빛의 입자들이 오가며 그를 감싸더니 이윽고 모든 입자가 데스칼 지팡이에 모여들었다.
신성하게 빛나는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리자.
지이이이잉!
어두침침한 하늘을 밝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빛줄기가 치솟았다.
구름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빛줄기는 이내 형태를 바꾸어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 수만에 이르는 빛의 광선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준석은 오큘러스 거울에 손을 대며 군단에 명령을 내렸다.
쿠구구구구-
격렬히 싸우던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이를 뒤쫓는 북부의 병사들.
“폭격이다! 다들 피해!”
적 수장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후퇴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온 상태였다.
쾅! 콰가가가가강!
결국 그대로 폭격에 노출되고 말았다.
온갖 비명과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연이은 폭격 소리에 무참히 묻혀 버렸다.
폭격이 휩쓸고 간 지역에는 살아 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분노한 적 수장이 피가 끓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머저리 녀석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할까!”
수장이 준석에게 검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도륙하라!”
수장이 자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었지만 검을 겨눈 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준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마법을 시전했다.
다크 핸드.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수장의 목에 검은 손이 생겨났다.
“커억!”
준석은 수장을 이쪽으로 끌어당긴 후 어둠을 불어넣은 지팡이로 심장을 찔렀다.
“쿠웨에엑…….”
그는 피를 토하는 수장에게 한마디 했다.
“도발해 놓고, 겨우 이게 다야?”
“네까짓 놈은 내 한 손으로도!”
서걱! 툭.
“말만 번지르르한 놈.”
준석은 십만 대군을 이끌던 수장의 목을 베고 곧바로 전장의 중심지로 순간 이동했다.
털썩!
적들이 한눈에 볼 수 있게 꼬챙이에 끼어 있던 수장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집어 던졌다.
보통 수장의 목을 따면 진열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지만 복부의 군단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리 쉽게 해결될 일이었으면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석이 수장의 몸뚱이를 대놓고 집어 던진 이유는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함이었다.
진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해도 사기까지 안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네놈들의 수장은 죽었다! 뭐. 솔직히 수장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실력이었지만.”
준석의 간단한 도발에 적들이 발끈했다.
“감히 니른 님을 모욕하다니!”
“녀석부터 죽여라!”
십멸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의 실력자들이 한꺼번에 준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준석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격을 개방했다.
쿠웅!
격을 개방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전장을 뒤덮었다.
“크흐으!”
“으윽.”
충격파에 노출된 적들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가거나 버티다 못해 기어코 무릎을 꿇었다.
준석은 전력을 상실한 악마들을 훑어보며 말을 꺼냈다.
“역시 입만 번지르르한 놈들뿐이구나. 북부의 소문을 듣고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인상을 구기며 말을 잇는다.
“실망이군.”
준석이 코앞에 있는 적에게 다가갔으나, 적들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크흐으으…… 왜 몸이…….”
누구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짓눌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얽매고 있는 힘은 물리적인 현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격의 차이가 만들어 낸 공포.
공포가 몸을 지배하며 무언가에 짓눌리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크소드.
준석이 마법을 시전하자 한순간에 천여 개의 검이 생겨났다.
그의 손짓 하나에 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걱! 서걱!
무참히 적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한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십, 십멸을 벌하는 자…….”
그의 명성은 이미 북부에서도 자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시답잖은 얘기라고 치부했던 그들 중 하나가 직접 눈으로 목격하곤 입을 뗐다.
“저걸 어떻게 이겨…… 신좌를 죽인 놈이라고……!”
압도적인 무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정말로 신좌를 죽였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
그러나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공격을 해 오는 이도 있었다.
격의 차이로 인한 공포를 극복해 낸 일부가 준석에게 접근했다.
하나 준석의 눈에는 그저 수장보다 못한 놈들로 보일 뿐이었다.
십수 명에 이르는 최상급 악마를 처치하고 준석은 다시 오큘러스 군단을 불러들여 적들을 밀어붙였다.
본래라면 오큘러스 군단이 북부의 군단에게 밀려야 정상이지만 준석이 만들어 놓은 상황으로 인해 단숨에 역전되었다.
몇 시간에 걸친 사투.
끝내 오큘러스 군단이 복부의 군단을 밀어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수천 명 정도가 도망을 치긴 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그 숫자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빠직!
쓸모를 다한 오큘러스 거울에 금이 가 버렸다.
아쉽지만 일회용이기에 다시 고쳐 쓸 수는 없었다.
준석은 금이 간 거울을 바닥에 버리고 숨을 크게 몰아쉬며 돌아오는 오진하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더 잘 싸우던데. 언제 그렇게 힘을 키웠대? 매번 틈날 때마다 물건이나 만드는 줄 알았더니. 몰래 수련이라고 한 거야?”
“하하. 뭐, 언제까지 뒤처져 있을 순 없으니까요. 준석 씨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노력해야죠.”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준석은 갈수록 오진하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노력할 줄도 아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크릉.”
어느새 다칼이 다가와 준석의 다리를 머리로 문질러 댔다.
자신의 활약도 아는 체를 좀 해 달라는 것이다.
“다칼도 고생했어.”
잠시 후, 오진하가 궁금함에 물어본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이쪽은 대군도 해치웠고 더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 남은 건 중부 쪽 싸움뿐이지.”
“곧바로 거기에 합류하실 거예요?”
“아니. 혹시 모르니 여기에 조금 머물러 있을 생각이야.”
혹시나 상대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넌 이만 돌아가서 쉬어.”
“예?”
“그 상태로 뭘 하겠다고? 이번에 너무 무리했어.”
티를 내진 않았지만 오진하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상태였다.
전장에서 그리 날뛰었으니 오히려 무리가 안 오는 게 이상했다.
“전 괜찮습니다.”
“아니야. 몇 시간만 쉬었다가 와.”
“으음. 준석 씨가 그렇게까지 얘기하신다면야…….”
내심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오진하는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쉰다는 반응을 보이며 왕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준석은 다칼과 함께 자리에 남아 왕성의 주변을 정탐했다.
* * *
준석은 지루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황량한 대지를 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쯤하면 됐어.”
꼬박 반나절이 흘렀지만 수상한 행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크하아아암~.”
-중부로 합류할 건가?
“그래야지.”
-그럼 오진하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으음…….”
굳이 데려가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그렇게 하면 오진하가 일부러 자신을 뺏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물건 만드는 걸 좋아하는 양반이 따로 수련까지 했어. 아무래도 초조함이 든 거겠지.’
더 이상 파티에 자신이 필요 없어져 버려질 수도 있다는 그런 초조함 말이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는 제작과 인챈트 장인으로 섭외를 한 것이지 전투에 참여시키려고 합류시킨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사자가 그리 생각을 한다면 파티장으로서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필요는 있었다.
“데려가자고.”
준석은 제국에서 쉬고 있던 오진하를 데리고서 중부로 이동했다.
정확하게는 중부와 북부 사이에 있는 미란 산맥 근처였다.
미란 산맥은 화산 활동이 잦은 곳으로 마그마 분출에 유의해야 했다.
준석은 주위를 살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주 난리도 아니군.”
하늘은 연기와 재로 뒤덮여 있고 여기저기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 수십만이 넘는 군대가 한데 뒤섞여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저희가 싸우던데는 편한 거였네요.”
오진하가 질색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하며 준석의 오더를 기다렸다.
‘유희의 일행이 이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그냥 이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우리가 낄 필요도 없겠는데?”
“그러게요.”
“그래도 온 김에 도와줘야지. 오진하, 넌 다칼이랑 같이 후방으로 이동해서 주의를 끌어.”
“네!”
“캬항!”
-알았다.
준석은 유희의 일행을 도와 북부의 지배자 가일을 잡을 생각이었다.
이미 유희의 일행은 북부의 지배자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역시 유희와 안수찬이 상대하고 있군.’
다른 일행은 보조만 하고 있을 뿐.
가일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안수찬이 근거리에서 주의를 끌면 유희가 기습을 하는 형태의 전투가 이뤄졌다.
‘둘이 은근히 콤비가 잘 맞네.’
상황을 보아하니 둘에게 맡겨 놔도 가일을 처리할 듯 보였다.
준석은 원래 싸움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괜히 끼어들었다가 막타를 쳤다고 욕을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콰아앙!
“뭐야? 고민하는 사이에 죽여 버렸네.”
유희가 가일을 경직시키고 그 틈에 안수찬이 자신의 주특기인 라스트헤드를 사용하여 가일의 뚝배기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다칼과 오진하가 후방 진영에서 제대로 훼방을 놓으며 이미 기울어져 있는 승기를 확정시켰다.
삼천 명도 남지 않은 북부의 병사들이 도망을 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준석은 이내 파도처럼 몰아치는 메시지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