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25화
225화 다칼 vs 르켈라 (1)
콰아앙!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가 갈가리 찢긴 채로 대지에 드러누웠다.
잘려진 머리들이 열여덟 개의 머리로 증식을 시도해 보지만, 준석이 사용한 마법의 회복 억제 효과로 인해 재생은커녕 어둠에 침식되고 있었다.
준석은 꿈틀대는 히드라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지팡이를 쳐들었다.
바운딩쇼크.
“캬하아아아오오오!!”
대지를 뒤흔드는 연속 충격파가 히드라의 목숨줄을 조인다.
“키히이이이!”
기어코 머리 하나를 재생한 히드라가 준석에게 독니를 들이밀어 보지만 채 닿기도 전에 몸뚱이가 소멸해 버렸다.
쿵!
고개를 떨군 히드라의 시신이 빠르게 돌로 변해 갔다.
[모포시스의 지배자 사무르를 처치하였습니다!]
[모포시스의 지배자 사무르를 처치하였으므로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드라의 방패가 지급되었습니다.]
준석은 아홉 개의 뱀의 머리가 달린 방패를 흘겨보다가 이어서 뜨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모포시스 둘레길을 완전히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89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미션 기여도에 영향을 끼칩니다.]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순위가 변동되었습니다.]
[변동된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순위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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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9층]
1위) 비공개 – 89층, 300,101점
2위) 천공을 뚫은 자 – 87층, 189,400점
3위) 고귀한 섬멸자 – 90층, 157,002점
4위) 타락귀 – 86층, 138,999점
5위) 두려움이 없는 광전사 – 88층, 132,59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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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에서 1위를 유지합니다!]
30만 점이라는 유례없는 점수를 달성했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애초에 1위를 달성한 순간부터 그다지 점수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있었다.
화면창을 없앤 준석은 뒤로 돌아 다칼을 쳐다봤다.
다칼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준석 씨,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요?”
조용히 있던 오진하가 다가와 한마디 하자 준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건 나도 예상 못했는데.”
히드라는 르켈라가 아끼는 마물이었다.
한데 히드라를 처리하는 동안 르켈라는 얼굴 한번 드러내지 않았다.
“아우우우우!”
다칼은 그녀의 시선을 끌어 보려 울부짖었다.
하지만 효과가 있기는커녕 침묵만이 감돌았다.
“대체 왜 안 나타나는 거지?”
주변은 노을이 진 것처럼 누렇게 변해 있었다.
이는 태양과 달의 기운이 겹쳐 만들어진 현상인데. 르켈라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뿐이다.
“딱 보니 쫄았네요.”
준석이 언급하려던 사실을 오진하가 대신해서 말했다.
“준석 씨가 하데스를 처단한 것을 보고 자기도 죽을까 봐 안 나타나는 게 분명해요.”
오진하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르켈라가 달의 신좌를 밀어내고 더욱 힘이 강대해졌다고는 하지만 하데스에 비견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놈을 직접 찾으러 갈 수도 없고.”
준석이 마법을 사용한다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신좌가 마음먹고 도망치면 영영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럴 땐…….’
준석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르켈라!!”
이름을 부른다고 반응할 리가 없지만 르켈라의 시선을 끌어잡는데는 성공했으리라.
“내게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안 나타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직 청산해야 될 게 남아 있잖아?”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준석은 꿋꿋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설마 신좌씩이나 돼서 신수에게 뒤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신수와의 대결이라면 그녀가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내내 반응이 없던 르켈라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겨우 신수 따위에 겁을 먹을 것 같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입을 연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녀를 응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준석은 씨익 웃으며 입을 뗐다.
“그러니까, 그만 숨어 있고 나와. 우리 신수께서 네놈한테 볼일이 있다네.”
한참이 지나서야 말이 돌아왔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르켈라는 준석이 나서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대답에 오진하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살다살다 신좌가 겁먹을 걸 다 보네요.”
옆에서 그러건 말건 준석은 얘기를 이어 갔다.
“믿고 말고는 네 맘이지. 하지만 알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이 순간을 다른 신좌들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신좌들 사이에 평판이 나빠지면 당연히 계약자들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녀에게 돌아오는 손해가 막대했다.
그리고 개인의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었다.
[힘을 중시하는 자가 저런 겁쟁이는 신좌로서 자격이 없다고 외칩니다!]
[힘을 숭배하는 자가 태양과 달을 지배하는 자를 비겁한 자라고 비난합니다.]
[천공의 주인이 당장 녀석을 끌어내리라 말합니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태양과 달을 지배하는 자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
…….
…….
수많은 신좌들이 르켈라를 욕하고 있었다.
준석의 시야에만 보이는 메시지들이었지만 르켈라도 여론이 시시각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스아아악!
갑작스레 대기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그 일그러짐 속에 빨간색과 파란색이 반씩 섞인 가면을 쓴 여성이 말을 탄 채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쓰지도 않던 가면과 말을 타고 등장한 걸 보면 싸움에 단단히 대비를 한 상태였다.
히이잉!
위용 넘쳐 보이는 말이 두 앞발을 들어 준석의 일행을 위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꿈쩍하지 않았다.
말을 타고 있는 르켈라가 이내 준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도발인 것을 알고 있으나, 도저히 안 받아들일 수가 없더군. 탑을 오르는 재주만 타고난 줄 알았는데. 입재주도 좋구나.”
“뭐, 나랑 싸우자고?”
“쯧…… 언제까지 그렇게 당당할 수 있나 보도록 하지.”
준석에게서 한발 뒤로 물러선 르켈라는 이번엔 다칼을 노려보았다.
“감히 신수 주제에 신좌의 목을 노리다니. 주인을 닮아 건방지구나.”
“크하아아앙!”
-그 입 다물어라! 준석과 나는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하는 동행자!
다칼이 먼저 여태껏 감추고 있던 모든 힘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노을이 져 있던 주변이 시커먼 암흑으로 변할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르켈라의 발밑으로 어둠이 들이닥쳤다.
머리 위에도 뾰족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할 구석이 없어진 르켈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그만 크기의 태양을 소환했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다가오는 어둠을 밀어냈지만 짧은 찰나였다.
어둠이 빛을 삼키고 태양마저 잠식시키고 있었다.
“이 무슨……!”
자신이 밀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르켈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더욱 큰 힘을 불러냈다.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점점 어둠이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크하하하!”
오만한 르켈라가 여유 있게 웃음을 터트렸다.
“캬하윽-!”
한편 다칼에게는 르켈라의 힘이 버거워 보였다.
치이이이…….
어지간한 공격에는 흠집도 가지 않던 다칼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준석 씨, 정말 지켜보기만 할 겁니까?”
오진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금은 지켜보는 게 도와주는 거야.”
“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달의 여신에게 복수를 약속한 건 다칼이야. 그 대가로 힘을 얻었지. 아마 저 녀석도 자신의 힘으로 끝내고 싶을 거야.”
항상 곁에 있어 간혹 까먹을 때도 있지만 다칼은 고귀한 마음을 가진 신수였다.
신수는 약속한 것을 지키는 존재.
준석에게 함께하기로 약속을 했듯이 달의 여신에게 한 약속 또한 반드시 지켜 내리라.
“신수와 겨뤄 본 것은 처음이나, 직접 상대해 보니 하찮은 미물과 다름없구나!”
르켈라가 태양을 들지 않은 나머지 한 손에서 초승달처럼 생긴 검을 꺼내 들었다.
“이만 죽어라!”
후웅, 후웅, 후웅!
그녀는 검을 부메랑처럼 집어 던졌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한 다칼이 온몸에 뼈와 근육을 드러낸 채 날아드는 공격을 주시했다.
“아우우우!”
다칼은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르켈라와 가까워질수록 다칼의 몸은 빠르게 녹아간다.
다칼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벌려 날아드는 검을 낚아챘다.
이빨 여러 개가 뽑힐 정도로 피해를 입었지만 다칼은 고통을 인내한 채 반격을 가했다.
제자리로 다시 돌려보낸 검에서 푸른빛이 빛나더니 곧 보름달의 형태로 변했다.
자신의 검을 받으려던 르켈라는 무언가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뒤늦게 회피했다.
하지만 도중에 스스로 궤도를 틀어 버린 검이 르켈라의 가슴을 관통했다.
“크허억……!”
르켈라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다칼이 가까이 접근해 그녀의 목을 물었다.
“으아아아악!!”
근원의 힘과 신기를 제외하고선 신좌를 해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데 다칼의 공격이 르켈라에게 통하고 있었다.
“네놈이 어떻게…….”
르켈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황당한 눈길로 다칼을 쳐다봤다.
이를 지켜보던 오진하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일반적인 공격은 신좌에겐 안 통할 텐데…….”
“본래라면 그렇겠지. 근데 같은 신좌의 힘이 섞여 있다면 말이 다르지.”
“같은 신좌의 힘이요?”
“그래.”
다칼의 공격에는 달의 여신 페르라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일부라고 할지라도 목숨과 맞바꾼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런 거머리 같은 놈!”
우우우웅!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르켈라가 아니었다.
드디어 자신의 전력을 드러냈다.
그의 목을 옥죄던 다칼이 갑작스레 생겨난 보호막에 저 멀리 튕겨져 나갔다.
“하찮은 미물을 상대로 전력을 드러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만! 그 미물이 페르라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말은 달라지지.”
르켈라가 흉스럽게 웃으며 나지막이 말을 잇는다.
“그년의 행적을 그토록 쫓았는데 여태 찾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설마 미물에게 잡아먹혔을 줄이야.”
-그 입 닥쳐라!
“대신 처리해 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안타깝네. 미물에게 잡아먹힐 줄 알았으면 조금은 잘해 주는 건데.
“캬하아아우웅!!”
분노한 다칼이 고슴도치처럼 털을 곤두세우며 빠르게 순간 이동을 했다.
르켈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두 앞발을 들었다가 내려쳤다.
동작이 커서 피하기 쉬웠지만 순간 다칼의 눈이 번뜩이며 르켈라의 몸이 굳어 버렸다.
당황한 르켈라 앞으로 푸른 형상의 칼날이 그림자처럼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