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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222화 (222/230)

회귀한 탑 등반자 222화

222화 적격자

유희를 꼭 끌어안았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잘 몰랐는데 몸이 여윈 게 느껴진다.

하긴 죽다 살아나서 사흘이나 의식을 차리지 못했는데, 되레 안 여위는 게 이상했다.

“야, 숨 막혀!”

“아, 미안.”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나 보다.

“유희 씨, 깨어나서 다행입니다.”

오진하가 밝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캬하아응~.”

다칼 역시 반가움을 표현했다.

유희는 둘에게 환한 미소로 답했다.

“모두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유희 씨,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뭐든 갖다 드릴 테니. 물? 혹시 물 필요하세요?”

오진하가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제가 직접 해도 되는데. 엇!”

그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유희가 몸을 비틀거렸다.

나는 옆에서 유희를 부축하곤 입을 뗐다.

“아직은 무리하지 마.”

“아, 응.”

세이브 스킬이 어느 정도의 성능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데스에게 받은 타격이 아직 후유증으로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유희는 오진하가 가지고 온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이후 자신이 의식을 잃은 뒤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설명을 원했다.

그래서 나는 간략히 얘기를 전해 주었다.

“뭐!? 하데스가 죽어?”

“그래.”

“아무리 해 봐야 내쫓은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네가 하데스를 쓰러트린 거야?”

“그렇다니까.”

유희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오진하가 거들었다.

“말로 해선 안 믿으시겠지만 준석 씨가 하데스를 쓰러트리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어떻게 신좌를…… 애초에 상대하는 것도 미친 짓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었다.

나 역시도 회귀 전에는 신좌에게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지 않았는가.

회귀 후에나 신좌에게 덤빌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은 신좌라는 존재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이미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넘보지 못할 존재.

차원이 다른 존재.

두렵고도 고귀한 존재.

각자 생각하는 이미지는 다를지라도 신좌를 우상화하여 감히 넘어서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도 결국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그걸 유희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다만 그 방식은 그녀에게 크게 와닿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튼. 하데스를 죽인 후에는 신좌에 오르겠냐는 제안을 받았어.”

“뭐!?”

하데스를 죽였다고 말했을 때보다 더욱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신좌가 되겠다고 했어?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사람이 신좌가 될 수 있는 거야? 신좌라면 애초에 우리랑 태생부터가 다르잖아.”

“아니. 크게 다르지 않아.”

“뭐? 크게 다르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신좌의 격을 얻고 나서 신좌가 되겠냐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누구나 신좌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결국에는 자격을 갖춘다면 어떤 등반자가 되었든지 신좌가 될 수 있었다.

자격이란, 격을 올리고 신좌를 끌어내리는 걸 말한다.

아마 여태 존재해 온 신좌들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신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딱히 중요치는 않았다.

‘중요한 건 사람도 신좌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야, 이준석! 듣고 있어?”

“어, 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 그대로야. 어떤 인간이든 자격만 갖추면 신좌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 굳이 태생을 논할 필요가 없어. 너도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신좌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으음…….”

유희가 생각에 잠겼다.

한 1,2분쯤 흘렀을까.

“잠깐.”

무언가를 떠올린 듯 유희는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럼 굳이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잖아. 신좌가 되어서 소원을 빌면 끝이니까!”

“아니.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없어. 신좌가 되길 거부했거든.”

“뭐……?”

“나도 너처럼 생각해 봤지. 신좌가 되면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그럴 수 있었다면 그리했을 거야. 그런데 그건 우리 희망사항일 뿐이고. 실제로 신좌가 되었을 때 어떤 제약이 걸려 있을지 몰라. 어쩌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어.”

“들어 보니 그러네.”

“신좌가 되면 어떤 제약을 받고 어떤 혜택을 보는지 정확한 정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없었거든.”

“후~ 그럼 괜히 좋아했네.”

나는 유희에게 말했다.

“실망할 필요 없어. 오히려 상황을 낙관적으로 봐도 돼.”

“뭐, 당장에 소원을 빌 방법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앞으로 일이 쉽게 풀릴 거야.”

넘어서지 못할 것 같던 신좌를 직접 이 손으로 끌어내렸다.

제국에는 그것을 본 이들로 넘쳐 난다.

등반자인 내가 신좌를 처치했다는 소문이 에툰라 대륙뿐만 아니라, 탑 전체에 빠르게 퍼져 나갈 터.

소문의 힘이란 무섭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도 안 한 채 퍼져 나가,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

한번 자리를 틀어 버린 소문은 망상을 극대화시켜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공포에 더한 공포를.

두려움에 더한 두려움을.

호기심이면 더한 호기심을.

그러한 감정들이 그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혔을 때 비로소 내가 행동에 나선다면 적대 세력을 쉽사리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대륙을 지배하는 시기를 더욱 앞당길 수 있게 되겠지.’

그뿐만 아니라 신좌를 처치하고 신기까지 얻은 마당에 마왕 데카인에게 도저히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귀 전에 비록 그놈을 이기지 못했지만 하데스를 비롯한 다른 신좌보다 강해 보이지는 않았지.’

난이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최상위에 머물던 신좌의 힘을 뛰어넘지는 못할 터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골인 지점에 닿을 수 있었다.

왜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지 유희에게 설명을 하자 곧바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목표를 이루는 건 시간문제네.”

“그래. 시간문제지.”

나는 유희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그런데 길드원들한테 맡긴 일은 어떻게 됐어?”

유희를 제외하고 나머지 화이트 길드원들은 동부 전체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목표는 지역 점령.

“자린이랑 카를로 씨를 제외하곤 점령했다고 연락이 왔어.”

박자린과 카를로만 제외라…….

“둘이 어디 지역을 맡았지?”

“파라크 산맥.”

파라크 산맥이라면 아인족이 지배를 하고 있는 곳이다.

‘그쪽 지배자가 신의 피를 이어받은 거인이었지. 아마.’

신좌의 반쪽짜리에 불과하나, 절대 무시 못 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리 시간이 지났는데도 점령을 하지 못한 거 보면 아무래도 둘로는 힘든 거 같고.’

못해도 한두 명은 더 지원을 보내야 점령을 할 수 있으리라.

“유희야, 혹시 도시에 남아 있는 길드원 있어?”

“아니. 다들 나가 있는 상황이야.”

“돌아올 인원은?”

“다들 점령한 뒤에 수습하느라 바빠. 왜? 카를로 씨가 있는 쪽에 지원이라도 보내려고?”

“어. 아마 둘이서는 힘들 거야.”

“음. 근데 딱히 갈 수 있는 인원이…….”

“제가 갈까요?”

선뜻 오진하가 나섰지만 내가 단칼에 잘라 말했다.

“넌 안 돼.”

그가 파라크 산맥에 가면 쉽사리 점령은 가능하겠지만 그동안 파티에 공백이 생겨나게 된다.

그를 놓아주기엔 파티에 온갖 일을 도맡고 있었다.

‘애초에 공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유희의 물음에 답했다.

“외부에서 찾아 봐야지. 아! 한 사람 있다.”

“누구?”

“너도 아는 사람.”

* * *

왕도 중심지에 있는 길거리 시장.

후루룩!

허리춤에 망치를 차고 있는 안수찬이 흑미 칼국수를 열심히 먹어 댄다.

순식간에 세 그릇을 비운 그는 옆에 놓인 제국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빛의 심판자 김유희 새로운 왕위에 오르다.’

‘십멸을 벌하는 자, 신좌 하데스를 벌하다!’

며칠째 두 제목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안수찬은 신문의 내용을 읽으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나 얼마 가지 않아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드디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멀어져 버리네.”

그는 준석을 언젠가는 따라잡을 라이벌로 생각했다.

“하아~.”

하지만 착각이었다.

“라이벌은 무슨.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은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툭!

“계산이요.”

그는 음식값을 치른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흠칫.

등 뒤에서 마치 괴물처럼 흉포하게 날뛰는 기운은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하네.’

어지간한 강적들도 꿈쩍도 하지 않는 그가 단순히 기운만으로 손끝이 떨려 올 정도였다.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껴서일까?

안수찬은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환희와 흥분.

뒤로 돌자 반가운 얼굴과 마주한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벽에 기댄 채로 서 있는 준석은 안수찬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온다.

“잘 지내고 못 지내고 할 게 있나. 탑에서는 살아 있으면 그게 잘 지낸 거지.”

지근거리까지 붙은 준석이 말을 잇는다.

“이전보다 많이 강해졌네. 그런데 주안나 씨는 어디에 가고 혼자입니까?”

“각자 가고자 하는 길이 달라서 찢어졌습니다.”

“그래요?”

“그보다.”

안수찬은 그에게 신문을 내 보이며 말했다.

“신좌를 잡다니.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뭘 어떻게 하긴. 그냥 때려잡았습니다.”

안수찬은 망치에 손을 올리며 입꼬리도 같이 올라갔다.

“그럼, 그 때려잡은 실력.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나야, 오랜만에 옛 생각나고 좋지.”

우우웅-

마치 싸움을 재촉하듯 망치가 울었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남자라면 그렇게 나와야 한다며 환호를 내지릅니다!]

토르도 이 싸움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건 안수찬이었다.

‘설사 진다고 해도 전력으로 간다!’

파지짓! 파직!

안수찬은 고압의 전기를 내뿜는 망치를 힘껏 휘둘렀다.

그 순간.

딱!

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삽시간에 둘이 서 있는 위치가 바뀌었다.

휘오오-

카밀 제국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황야였다.

안수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라면 안심하고 싸울 수 있다.

파지짓!

‘그동안 얼마나 변화했는지 보여 주지!’

그의 망치가 땅에 닿자마자.

콰가가가가강!

하늘에서는 거대한 벼락이 내려쳤다.

대지를 뒤흔들 정도의 충격이 황야를 뒤덮는다.

먼지가 자욱하게 깔리며 시야를 가렸다.

하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준석과 안수찬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지팡이의 형태로 변한 데스칼로 공격을 받아 낸 준석이 그를 튕겨 내며 말을 꺼냈다.

“역시 적격자로 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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