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18화
218화 하데스와의 대격돌 (1)
[칭호 ‘십멸을 벌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군중억제 효과가 발휘됩니다.]
[미완성된 십멸장의 ‘압도하는 기운’이 발동합니다!]
[군중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빠드립니다!]
[미완성된 십멸장의 영향으로 인해 근방에 있던 악마들이 당신의 지배하에 놓입니다.]
경기장에 등장한 준석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공포 그 자체였다.
악마들은 두 말을 할 것없고 다크 엘프와 인간도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십멸을 벌하는 자다……!”
“최근에 단신으로 악마의 성을 무너뜨렸다는 인간!”
일부 몇몇이 영향권에서 벗어나 그의 정체에 대해서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가뜩이나 깊숙하게 퍼진 공포를 키우는 꼴이 되었다.
반면 유희는 해맑은 표정으로 준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야, 여기엔 언제 온 거야?”
“방금 막.”
“볼일이 있다는 건 해결했어?”
“해결했으니 이곳에 왔지. 그보다 정말 열심히 했나 보네. 못해도 한두 달은 더 지나야 왕이 될 줄 알았는데. 예상한 것보다 빨라.”
유희가 은근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이 정도쯤이야.”
준석은 더 말을 이어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 유희가 즉위식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영광의 전당을 가리켰다.
“대화는 나중에 하고, 이만 올라가 봐.”
“아, 응. 금방 갔다 올게.”
유희가 영광의 전당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준석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자리를 비켜 줘야겠군.’
군중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이동해 유희가 즉위식을 치르는 걸 지켜보았다.
위풍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준석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후아~ 한참 찾았네.”
뒤늦게 그를 쫓아 온 오진하가 다칼을 머리에 짊어진 채로 나타났다.
“같이 가자니까, 뭘 그리 급하게 가고 그래요. 어? 유희 씨네.”
오진하가 영광의 전당을 쳐다보자 만사 귀찮은 눈빛을 띠던 다칼도 관심을 가졌다.
“크하암.”
-친구 하나는 잘 뒀군.
그 말에 준석도 공감했다.
즉위식이 끝난 뒤.
유희는 구석에 있던 준석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같이 손을 흔들어 주려던 그는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어둡고 이질적인 기운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준석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름을 언급했다.
“하데스.”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신좌가 자신의 영향력이 적은 곳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셈이었다.
또한 이곳을 영역으로 삼은 신좌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했다.
영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신좌인 만큼 자칫 적대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스아아아아-
그러나 하데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로 경기장에 나타났다.
준석의 낯빛이 어둡다.
저층부에서 마주하고 이번이 두 번째지만 여전히 그는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성장했기 때문에 하데스가 가진 힘이 뚜렷하게 보였다.
하데스는 공중에 뜬 채 오만한 눈으로 준석을 내려다봤다.
“흐음, 표정이 왜 그렇지?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얼굴이군.”
“피차 얼굴을 봐서 좋을 게 있나?”
“크하하하! 건방진 것은 여전하구나.”
“그쪽도 시답잖은 얘기를 지껄이는 건 여전하네. 그보다 무슨 볼일이지? 내가 약조한 것은 분명 지켰을 텐데.”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만나러 온 것이다.”
준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문제? 설마 나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건 아니겠지? 그럴 생각이면 접는 게 좋아.”
“말을 잘못했군. 문제가 아니라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
“감사 인사?”
준석은 그를 수상하게 쳐다봤다.
하데스는 이런 것으로 감사 인사를 해 올 인물이 아니었다.
신약을 맺었으니 당연히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미묘한 표정을 짓는 하데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감사 인사. 덕분에 세포네를 나의 세계로 불러들일 수 있었지. 그래서 그대에게 선물을 줄까 하는데.”
그는 어깨 위로 팔을 올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죽음이자 어둠을 그늘에 진 자가 신약을 끊어버립니다.]
[반지에 하데스의 힘이 빠져나갑니다.]
[반지의 성능이 하락합니다.]
[반지에 각인된 상당수 스킬들이 소멸합니다.]
[소멸한 스킬들이 상태창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다크웨스트림(Lv30)을 잃었습니다.]
[다크소울(Lv18)을 잃었습니다.]
[다크싱어(Lv16)을 잃었습니다.]
[다크레인(Lv27)을 잃었습니다.]
…….
…….
…….
…….
여태껏 쌓아 둔 스킬들이 차례대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하데스는 준석을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계약을 맺을 때 그런 건방을 떨어 놓고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 여겼는가! 감히 신좌를 농락한 것도 모자라 협박을 해 대다니. 네놈의 건방진 태도도 이 자리서 끝이다!”
하데스가 자신의 신기 데스칼을 꺼내 들었다.
모든 것을 어둠으로 잠식시켜 버릴 듯한 검이 그의 손에서 날뛰고 있었다.
“탑의 보호도 사라진 지금. 네놈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망설임 없이 데스칼을 휘둘렀다.
검기가 방출되자 경기장 주변이 시커멓게 변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사람, 물건 가리지 않고 침식이 시작됐다.
준석은 빠르게 접근해 오는 검기를 보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어떻게 너는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냐.”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중층부로 이후로는 딱히 둘의 사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꿰놓은 상태였다.
서로에게 악감정을 품은 채, 서로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시점부터 하데스의 배신은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 거라 여겼건만.
‘사람이나 신좌나 본질이 안 바뀌는 건 똑같군.’
“아우우우우우!”
준석이 나서기 전에 다칼이 먼저 움직였다.
크과가가가가!!
어둠과 어둠이 충돌해 이질적인 충격파를 형성했다.
충격파의 영향으로 주변의 침식이 빨라졌다.
둘의 공격은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경기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씨이잉-
신성한 빛줄기가 두 어둠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빛줄기가 날아든 곳에서 새하얀 깃털이 휘날렸다.
대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유희가 다시금 빛줄기를 날려 보냈다.
쉬시시싱!
하나의 빛줄기가 곧 수천 갈래로 나뉘어 하데스를 폭격했다.
‘나도 질 수 없지.’
화개, 염옥!
불의 용 한 마리가 거대한 태양 주위를 겉돌며 타깃을 향해 날아갔다.
콰하아아앙!
경기장 안팎으로 하얗게 빛이 번졌다.
곧 빛의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데스는 방금 전의 타격으로 피해를 입은 듯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등반자들 중 최초로 신좌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등반자의 이명의 격이 크게 오릅니다!]
[일부 신좌들이 당신을 보며 놀라워합니다!]
[일부 신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준석이 신좌의 힘을 이용했다고는 하나, 본래라면 몸에 흠집도 나지 않을 터다.
준석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신약을 끊은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점점 깨닫게 될 거다.’
신약을 강제로 끊는 것은 강력한 페널티가 작용한다.
비록 탑의 개입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신약의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탑의 감시가 사라졌을 뿐, 탑은 건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시스템도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데스는 놀란 눈빛을 하며 입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제법, 쓸만한 공격을 할 줄 알게 됐구나. 그러나. 네놈이 애송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등반자에게 상처를 입은 것이 자존심이 상한 듯 하데스는 데스칼을 이용해 분노를 표출했다.
허공에는 무수한 검기가 생겨났다.
준석의 표정이 어둡다.
첫 번째 공격과는 다르게 검기 안에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닿으면 즉사다.’
다칼이 신좌에게 대항할 정도로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무자비한 공격을 전부 받아 낼 수는 없었다.
‘내가 막아야 돼!’
펄럭!
준석은 타엘의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잊힌 사막의 유산을 꺼내 공간이동을 시켰다.
하데스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무한의 쇠락이 발동합니다.]
통할까 싶어 시도해 본 것인데.
잊힌 사막의 유산의 효과가 제대로 발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신좌를 죽이기 위해서는 따로 무기가 필요했다.
그때.
우우웅! 우우웅!
[어둠의 반지가 본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것만은 줄 수 없어!’
준석은 곧바로 외부에 자신의 모든 마나를 집결시켜 근원의 힘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손끝으로 본연의 어둠을 불러냈다.
‘네놈의 주인은 나다.’
어둠의 반지는 어둠의 주인에게 충성한다.
과연 근원의 힘으로 불러들인 본연의 어둠이 하데스를 찍어누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시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우웅, 우웅!
‘제발. 제발…….’
[어둠의 반지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하아~.”
다행히 반지만은 지켜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준석은 코앞에 다가온 공격을 회피하며 근원의 힘을 이용해 이번엔 본연의 빛을 불러냈다.
씨이이잉!
눈부신 빛이 다가오던 검기들을 집어삼켰다.
‘통한다!’
근원의 힘이라면 하데스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좌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만일 실패하면 나는 죽겠지.’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끝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속으로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이내 준석은 페이크북을 꺼내 들었다.
그간 심심치 않게 사용해 왔던 페이크북은 아이템의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숨겨진 또 다른 힘이 존재한다.
‘조작한 정보를 진짜로 만드는 힘.’
로키가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는 데카인에게 써먹으려고 비장의 수로 남겨 두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하데스에게 죽게 되면 데카인이고 뭐고 끝이 나 버린다.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었다.
‘해 보자. 해 보는 거야.’
준석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페이크북을 사용했다.
이왕 조작하는 김에 어둠이자 죽음의 신인 하데스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능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로키가 말했던 대로.
촤악, 촤악!
페이크북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페이크북이 소멸하였습니다.]
만일 로키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귀중한 아이템 하나를 버린 것이 된다.
그땐 정말로 자신에게 남은 것은 근원의 힘밖에 없었다.
번쩍!
준석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쟁이가 사실을 말할 때가 다 있네.’
찢긴 페이크북 종이 쪼가리가 지팡이에 흡수가 되고 있었다.
[페이크북의 숨겨진 힘이 지팡이에 깃듭니다.]
[조작한 정보가 진실로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