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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215화 (215/230)

회귀한 탑 등반자 215화

215화 뭐든지 한다는 말, 진심입니까?

정령왕을 계획에 끌어들인 이후.

나는 다칼과 오진하를 데리고서 세포네가 주로 돌아다니는 지역을 위주로 사냥을 다녔다.

물론 굳이 정령들을 사냥할 필요는 없었지만 전부 세포네를 꼬여 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듯 그녀와 자주 마주쳤지만, 우리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없었다.

일부러 그리 룰을 정해 둔 것이다.

‘먼저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해.’

자고로 뭐든지 급하게 진행하면 일이 어그러지는 법이다.

다만 어떠한 확신도 없이 무작정 행동하는 것은 미끼를 물지도 않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미끼는 이미 던져 뒀지.’

세포네는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하루도 쉼 없이 던전을 찾아오는 것이고 말이다.

한데 파티 사냥은 고사하고 뭐든지 혼자서 극복해 내야 하다 보니 시간은 오래 걸리고 성장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쥐어 주었던 치료약은 단순히 상처를 치유하는 것만이 아닌 잠재능력을 끌어올려 주는 효과도 있었다.

복용한 사람이 잠재능력이 없다면 그저 상처만 치유하겠지만 잠재능력이 있다면 단시간 안에 강해질 수 있다.

‘설마, 그리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힘의 천칭저울 스킬이 20레벨을 넘어서며 상대의 잠재력까지 파악이 가능했다

스킬로 세포네의 잠재력을 처음 확인했을 때는 머리가 띵할 정도로 놀랐다.

잠재력 수치로만 따졌을 때 감히 신좌급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하데스가 선택한 여인이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 우연일 리 없어. 세포네가 가진 거대한 잠재력 때문에 하데스가 끌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고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면 그만이었다.

잠시 후, 클로드를 처치하고 돌아온 오진하가 귀찮은 얼굴로 귀를 후비적대며 말했다.

“하~ 언제까지 때려잡아야 하는지, 준석 씨. 오늘은 그냥 빨리 돌아가면 안 됩니까?”

“왜? 또 물건이나 만들려고?”

“또라뇨. 벌써 망치를 손에서 놓은 지 반나절씩이나 흘렀는데!”

“그 정도면 중증이야. 가끔은 머리도 식히고 다른 일도 해야지.”

“중증이라니. 열정이라고 표현해 주십시오.”

“열정은 얼어 죽을.”

“……뭐? 자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준석 씨 말대로 적당히 좀 하라고? 아니. 지금도 충분히 적당히 하고 있는 건데.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그의 아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진하가 아내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눈앞에서 세포네와 마주쳤지만 평소대로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저기요!”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그녀가 우릴 불러 세웠다.

드디어 입질이 온 건가 생각하는 순간.

“같이 파티 맺으실래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속으로 속삭였다.

‘걸려들었다.’

오진하도 다른 의미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분보다는 실력이 부족할 수 있지만 이 던전에 대해서 누구보다 빠삭하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파티요? 으음…….”

나는 고민하는 척하며 턱을 쓸어내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수락을 해 버리면 수상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에 심사숙고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돼요. 보기보다 그런 거에 익숙하거든요.”

내가 거절할 거라 여겼는지 그녀는 애써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했다.

그런 모습이 되레 서글퍼 보였다.

어쩌면 곧바로 수락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준석 씨, 안 그래도 일행 한 명 더 구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때 오진하가 자연스럽게 화두를 던졌다.

“그랬지.”

“전 이분과 파티 맺는 거 찬성합니다. 종종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움직임이 좋으시더라고요.”

“아니에요. 겨우 제 한 몸 지키는 정도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것이 은근히 칭찬에 약한 타입 같았다.

이후에도 자연스레 말을 이어 나가는데 둘이 죽이 잘 맞아 보였다.

“크흠!”

일부러 기침 소리를 내어 그녀의 주목을 끌었다.

“좋습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좋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둘보다는 셋이 낫겠죠.”

“정말인가요? 정말, 받아 주는 건가요?”

“어디서 속고만 살았습니까?”

“됐다!”

세포네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파티를 맺은 것 가지고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세포네는 뒤늦게 주변의 어색한 기류를 눈치채고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너무 기뻐서 그만. 누군가랑 파티를 맺는 게 엄청 오랜만이거든요.”

“하하, 오랜만이면 그럴 수 있죠.”

오진하가 그녀의 말에 응답하는 사이에 나는 파티를 맺는 대신 지켜야 할 룰에 대해서 설명했다.

“첫째. 내 명령은 반드시 따른다.”

“그런 거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부당한 요구만 아니면 전부 수용할 수 있어요.”

“둘째. 약속 시간은 반드시 지킨다.”

“보통 정해진 시간보다 미리 나와 있는 편이에요.”

“셋째.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다시 각자의 길을 간다.”

“저도 도움만 받을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스스로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자발적으로 떠날게요.”

결국에는 그녀를 꼬드기기 위해서 파티를 꾸린 것이지만 그럴싸한 룰을 만들어 둬야 했다.

혹시나 룰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할까 우려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화사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다.

하긴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편이 백배는 나았다.

“그럼 다시 자기소개를 할게요. 포네라고 해요.”

그녀는 우아하게 가슴에 손을 올리며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오진하입니다!”

“이준석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악수를 청하며 말을 내뱉었다.

“포네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

“캬앙! 캬아아앙!”

스무 마리가 넘는 클로드가 세 남녀를 추격한다.

그중 선두에 서 있는 준석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이야!”

양옆에 있던 오진하와 세포네가 빛으로 촘촘하게 형성된 그물망을 펼쳐 뒤로 달렸다.

“케에엥! 케엥!”

“끼잉!”

그물망에 걸려든 클로드 무리의 몸이 서로 뒤엉킨다.

뒤늦게 그물망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써 대지만 소용이 없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그물망의 크기는 좁아져 갔다.

“하아아!”

클로드 무리가 무력화되자, 세포네가 먼저 검을 내질렀다.

“으압!”

이어서 오진하가 할버드를 힘차게 휘둘렀다.

다크스피어.

마지막으로 준석이 칠흑의 창 여덟 개를 소환해 날려 보냈다.

셋이 협공하자 그물망에 있던 클로드 무리는 순식간에 도륙되었다.

“후우~.”

세포네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자신이 죽인 클로드 무리의 불의 기운을 흡수했다.

이내 그녀의 곁으로 준석과 오진하가 모여들었다.

“오늘 사냥은 이쯤 하죠.”

세포네는 준석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손에 쥔 검을 갈무리했다.

그녀는 먼저 앞서 가는 둘을 보며 처음 파티를 맺었던 날을 떠올렸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네.’

그들과 파티를 맺은 이후로 사냥의 효율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계속 더뎠던 성장은 매번 달라지고 있었다.

이전에 그녀였다면 클로드 열 마리와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가뿐히 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세포네는 항상 둘에게 빚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빚을 갚지?’

걸으면서도 고민을 하던 그녀는 이내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그럼, 포네 씨. 내일 봐요~”

“아, 네.”

오진하가 세포네에게 인사를 하곤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 역시 더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기에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잠깐만.”

그런데 준석이 둘을 멈춰 세웠다.

“오늘은 일찍 사냥도 끝냈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지.”

항상 사냥을 끝마치면 각자 길을 갔던 그들이기에 밥을 먹자는 제안은 세포네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낯설음이 좋았다.

“그럼, 음식은 제가 살게요!”

뭐라고 해 주고 싶었던 그녀는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하고자 했다.

“따라와요. 카락 최고의 맛집을 알고 있으니까.”

가끔 지치고 힘들 때면 찾아가는 음식점이 있었다.

준석과 오진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세포네는 지하통로를 벗어나 지상으로 향했다.

곧 카락의 중앙에 위치한 강가 주변에 이르렀다.

강가 앞에는 커다란 나무로 그늘이 져 있는 마당과 조촐하게 차려진 간이식당이 눈에 띄었다.

남은 좌석에 착석하자, 식당주인이 세포네를 보며 아는 체를 한다.

“아가씨, 오늘은 친구들이랑 같이 왔네? 있으면 진작에 데려오지 그랬어.”

“최근에 알게 된 분들이에요. 이쪽은 이준석. 그리고 이쪽은 오진하.”

식당 주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둘에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준석과 오진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뭐 줄까.”

“저는 항상 먹던 대로 사막 국수요. 두 분은 뭐 드실래요?”

메뉴판에는 사막 국수와 사막 주먹밥뿐이었다.

“나도 국수.”

“저도 국수 하나요.”

결국에는 국수 세 개로 통일됐다.

“자! 사막 국수 세 개~.”

채 5분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맛있겠다.”

입맛을 다신 세포네가 먼저 국수를 시식했다. 이후 준석과 오진하도 따라서 국수를 먹었다.

“어때요? 맛있죠?”

그녀의 질문에 준석이 먼저 답했다.

“고소한 것이 먹을 만하군.”

“더 먹고 싶으면 주문해요. 많이 시켜도 괜찮으니까.”

카락에서는 음식이 금값보다 비쌌다.

때문에 한 번 포식하고 나면 주머니가 거덜 나기 일쑤였다.

세포네는 일국의 공주이나 왕실에서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에 돈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둘에게 빚을 갚기 위해 꿍쳐 두었던 돈을 사용했다.

한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후루룩!

“캬압, 카압!”

평소에는 고개도 내밀지 않던 새끼 늑대 한 마리가 튀어나와 국수를 흡입하는 것이 아닌가?

‘준석 씨의 소환수라고 했지.’

식성이 장난 아니었는지, 눈 깜짝할 새에 열 그릇을 해치웠다.

준석은 미안했는지 이 녀석이 먹은 건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이왕 쏘기로 했는데. 전부 다 계산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타들어 갔다.

‘일주일 동안은 덜 먹어야겠네.’

다들 배가 불러서 더 이상 젓가락 소리가 안 들려올 때쯤. 세포네는 눈물을 머금으며 피 같은 돈을 지불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둘에게 빚을 갚은 것 같아 내심 무거웠던 어깨가 가벼워졌다.

‘이왕 산 김에 디저트도 사자.’

말을 꺼내려던 그때.

세포네는 뜻하지 않은 광경과 마주하며 점차 낯빛이 어두워졌다.

달그락, 달그락.

길거리 한가운데 감옥 마차 안에 갇혀 끌려가는 서너 명의 사람들을 보며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죄를 짓은 것도 아닌데, 죄인처럼 취급을 당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입술에 피가 흘러내렸다.

‘사막의 인도자……!’

저들은 놈에게 바쳐질 재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광경을 애써 외면했지만, 세포네는 참을 수 없었다.

그저 상대가 신과 같은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무조건 불합리함에 승복을 해야 한다니.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이 지긋지긋함 악습을 끊어 내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수에 대항할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스윽.

어느새 그녀의 곁에 선 준석이 입을 열었다.

“분합니까?”

세포네는 그를 흘겨봤다.

외부인이 무엇을 알고나 말하는 것일까?

하나, 그런 것 따윈 별로 중요치 않았다.

“분해요.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부디 이 빌어먹을 악습을 끊어 낼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입술이 너무 꽉 깨물어 다 불어 터져 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뭐든지 할 텐데.”

하지만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그 괴물 같은 신수에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나 역시 안 되면서도 발버둥을 치는 나약해 빠진 생명에 불과하겠지. 결국 그놈을 죽이지는 못해.’

그러한 진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대항하고자 했다.

점점 스스로가 강해질수록 사막의 인도자와의 격차가 얼마나 나는지 실감을 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준석은 미묘한 말을 던졌다.

“뭐든지 한다는 말, 진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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