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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214화 (214/230)

회귀한 탑 등반자 214화

214화 정령왕 살라만드라

지팡이가 푸르스름하게 변하며 응축된 에너지가 허공에 균열을 일으켰다.

고오오-

주변의 빛이 꺼져 가는 것을 느끼며 음영이 드리워졌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보내 버리는 차원의 함정이 눈앞에 드러나자 웨시폭스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나는 사우즈아이를 없애고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웨시폭스를 보다가 봉인석을 흘겨봤다.

스윽.

다시 지팡이 쪽에 마나를 집결시키자.

“안 돼에!”

웨시폭스가 한달음에 달려와 봉인석 앞에 섰다.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 시전을 계속하자 웨시폭스는 다급하게 외쳤다.

“깨우마! 깨울 테니 부디 멈춰다오!”

지팡이의 빛이 사그라들자 저편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나지막이 경고하니 웨시폭스가 서둘러 움직였다.

봉인석 앞에 서서는 입에서 불꽃을 내뿜었다.

언뜻 보기에는 봉인석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단한 돌을 서서히 녹여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쾅! 콰앙!

돌에 금이 생겨 파편들이 하나씩 떨어져나갔다.

이윽고 살라만드라가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며 위용을 과시했다.

“오.”

마치 신이 강림한 듯한 우아스러운 자태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전신은 하얀 불꽃으로 감싸져 있고 윤기가 흐르는 붉은 머릿결과 마름모 형태의 순백색의 두 동공이 빛났다

봉인을 푼 웨시폭스는 어느새 주인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살라만드라와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사방에서는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아, 뜨뜨!”

불꽃에 스친 오진하가 데인 곳을 입으로 부는 동안 다칼이 나서서 어둠으로 보호막을 쳤다.

그러나 보호막이 빠르게 마모되어 간다.

정령왕은 신좌에 준하는 존재.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고는 하나,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 제압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회귀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우웅, 쿠하아아앙-!

[자격을 갖춘 자가 격을 방출합니다!]

“끄윽!”

사방을 불태우던 하얀 불꽃을 사그라들게 만들고 살라만드라의 육신을 격으로 밀쳐 냈다.

격을 이용해서 상처를 주지는 못해도 이런 압박은 가할 수 있었다.

오만하던 살라만드라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진다.

“저기 있는 여우는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다고 쳐도 그쪽은 사리분별을 할 줄 알아야지.”

나는 앞으로 다가서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봉인되어서 감각을 잃어버린 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격의 영향을 받는 살라만드라의 얼굴이 파리해져 갔다.

“사막의 인도자 살라만드라.”

그녀는 기력을 방출해 압박에서 빠져나오더니 검 이그네셔를 소환했다.

“인간이 신좌의 흉내를 내며 건방을 떠는구나!”

이그네셔로 날 찌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움직임이 멎었다.

다칼이 마안을 사용해 그녀의 몸을 경직시키고 주위를 어둠으로 만들어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어느새 오진하는 살라만드라의 목에 할버드를 겨누고 있었다.

나 역시 화개를 시전해 불기둥으로 그녀를 옥죄었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살라만드라가 경악한 눈빛으로 입을 뗐다.

“네놈이 어떻게 헬리오스 님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살라만드라는 자신이 목숨을 위협당했기 때문이 아닌 내가 사용한 힘에 반응하고 있었다.

“헬리오스 님은 분명…… 인간 녀석들과 맺은 계약을 모두 파기했을 터!”

‘오호.’

의도하고 헬리오스의 힘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뜻밖에 정보를 듣게 되었다.

잠적만 탄 줄 알았던 헬리오스가 사실 인간들과의 계약도 모두 파기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쩐지 헬리오스의 계약자들이 안 보인다 했더니. 그런데 왜지? 신좌에게 있어 계약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일 텐데.’

신좌가 스스로 자신의 권위와 힘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처음 들어 보았다.

여태 봐 온 신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었으며, 더욱 드높은 권위와 강력한 힘을 갈구했다.

때문에 선뜻 믿겨지지 않았다.

왜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인지 당장에라도 헬리오스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는 잠적했기 때문에 딱히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말하라! 어떻게 네놈이 헬리오스 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인지!”

해명을 요구하는 그녀.

아무래도 살라만드라는 헬리오스와 가까이 지냈던 사이인 듯하다.

‘정령왕과 신좌의 우정이라.’

미묘한 조합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말해 줄 용의가 있는데.”

그러자 살라만드라는 분노를 표했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헬리오스 님의 계약자가 아니구나! 감히 나와 헬리오스 님을 능멸하다니! 어떤 사기를 친 것인지 모르겠으나 네놈의 눈속임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

“눈속임? 분노에 눈이 멀어서 눈앞에 있는 것도 구분을 못하는 건가?”

“닥쳐라!”

살라만드라가 발버둥을 치려고 하자, 다칼과 오진하가 그녀에게 압박을 가했다.

“크으윽!”

“그렇게 큰소리칠 입장이 아닐 텐데.”

살라만드라는 내 말을 귓등도 듣지 않은 채 전신에 하얀 불꽃을 연소했다.

거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폭발을 일으키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는군.”

처음부터 협조적으로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에 목을 쳐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녀를 조력자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 곁에는 이미 다칼이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력자가 필요 없지만 세포네를 내 계획에 꼬여들게 하기 위해 이용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 전에 정신교육이 조금 필요해 보였다.

“크허어어어!”

나는 폭발하려는 살라만드라에게 등가교환을 시전했다.

피시이익……

커져 가던 불꽃이 맥없이 꺼져 버렸다.

“이게 어찌……!”

나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살라만드라에게 주먹을 들이밀며 말했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맞자.”

* * *

‘음, 좋아.’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고분고분해진 살라만드라를 쳐다봤다.

정령왕에게 정신교육을 해 본 적은 처음이라 다른 한편으론 걱정도 됐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역시 매로 다스리면 안 되는 게 없어.’

기세등등하던 살라만드라는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풀이 죽어 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옆에는 분통스럽게 이 상황을 바라보는 웨시폭스도 같이 무릎을 꿇고 있다.

둘은 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를 반복했다.

“살라만드라.”

“왜…….”

“왜?”

“……부르십니까.”

“왜 일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서로 힘들게 하냐. 진작에 이렇게 말을 잘 들었으면 됐잖아.”

내 말에 살라만드라가 도끼눈으로 흘겨본다.

“아직 교육이 덜 됐나? 눈에 힘 안 풀어?”

“크르르르!”

다칼이 이빨을 드러내자 그제야 눈을 내리깐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으니 말을 좀 해 보자고.”

나는 살라만드라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만약 하라는 대로 움직여 준다면 안 죽이고 풀어 주지. 다시 봉인을 하든 잠을 취하든 다른 딴짓을 하든 신경 안 쓸 테니 마음대로 해.”

그녀가 흥미를 드러냈지만 여전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비단 너한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야.”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녀의 역린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네가 봉인되어 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알고 있나? 널 사칭하는 놈이 있다는 거?”

“뭣이……?”

“반응을 보니 역시 모르나 보군. 봉인되어 있으면서 포탈 문 관리는 했는지 몰라도, 그 내부는 들여다보지 못한 거야.”

“…….”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건 알고 있나? 불의 신수 클리드가 카락에 들어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있습니다.”

“클리드가 네놈의 행세를 하며 인간뿐만 아니라 정령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지.”

“고혈을 빨아먹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인가?”

“입니까…….”

나는 대화를 이어 나가며 클리드가 불의 기운을 흡수한 인간들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감히 내 수족들을!”

화르륵!

살라만드라가 화를 참지 못하고 클리드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해.”

그녀는 날 응시하더니 굳게 마음을 먹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게 무엇이지?”

* * *

“끼헤엑…….”

털썩!

세포네는 넷이 뭉쳐 다니는 클로드 무리의 마지막 놈을 처치하곤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냈다.

‘이제 넷 정도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어.’

그녀는 두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힘이 넘쳐 나는 것이 요 며칠 사이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증명해 주는 듯하다.

여태껏 이렇게 빠르게 성장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는 클로드 무리에게 죽을 뻔한 날에 무언가가 내면에 있는 힘을 각성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그 남자가 줬던 치료약으로 몸을 치유한 이후에 힘이 세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

생각보다 더욱 귀한 것을 준 것이 틀림없었다.

세포네는 어떻게든 감사인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대체 어떤 걸로 보상을 해 주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콰앙!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가가강!

연이어 들려오는 폭발음에 세포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쪽의 상황을 주시했다.

먼지가 휘날리는 바람에 그 안에서 누가 폭발을 일으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감이 잡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곧 먼지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한 세포네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자신을 구해 주었던 준석과 그의 일행인 오진하가 서로 무어라 떠들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대체 어떤 대화를 하길래 저리 즐거워하는 것일까?

그녀도 저기에 같이 껴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까이 다가온 그들은 간단하게 인사만 하곤 지나칠 뿐이었다.

‘오늘도 인사만 하고 가네.’

세포네는 아쉬움에 그들의 뒷모습을 쫓았다.

요 며칠 사이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면 그녀가 돌아다니는 사냥터에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항상 홀로 사냥을 해 왔던 세포네는 그들이 반갑기 그지없었으나 좀체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이전에 남은 치료약을 되돌려주려고 했다가, 이왕 쓴 거 다 쓰란 말만 듣고는 그 이후엔 딱히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

혹시나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서 대화를 피하는 것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그랬다면 애초에 귀한 치료약을 건네주지도 않았으리라.

내심 둘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그녀는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어 그들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목소리를 듣고 제자리에 멈춘 두 사내와 눈을 마주친 세포네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서넛 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멈춰 섰으나,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오르질 않았다.

‘침착해.’

“후우~.”

천천히 심호흡을 하자 그제야 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꺼냈다.

“같이 파티 맺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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