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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213화 (213/230)

회귀한 탑 등반자 213화

213화 하데스의 여인 (2)

“네. 괜찮아요.”

세포네는 그가 외부인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카락의 주민들은 구릿빛 피부를 가진 것이 특징인데 반해 그는 피부가 새하얗다.

그리고 저런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진작에 그의 신상이 알려졌을 터다.

카락의 주민이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던전을 드나드는 것 방법뿐이니까 말이다.

세포네는 외부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감사인사를 표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별일 아닌데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

칼로드를 대신 처치해 주고 별일이 아니라고 말하니, 그 무리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처럼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을 불태웠다.

“허억, 허억!”

이내 뒤에서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아~ 힘들어 죽겠네.”

그의 일행인 듯했다.

“두 분이서 던전에 온 건가요?”

“보다시피.”

“캬하악!”

“꺅!”

어디선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새끼 늑대 한 마리가 남자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세포네는 본능적으로 돕기 위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남자는 침착한 태도로 괜찮다고 말하곤 목덜미를 물었던 새끼 늑대를 손으로 떼어 냈다.

분명히 세게 물었던 것 같은데 그의 목은 멀쩡하기만 했다.

“제가 데리고 다니는 소환수입니다.”

“아…….”

그제야 남자의 행동을 이해한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포네라고 해요.”

굳이 풀네임을 얘기하지는 않았다.

괜히 알려 봐야 선입견만 생겨나고 혹시라도 주변에 소문이 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주가 계속해서 던전에 드나든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하리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죽어도 싫은 그녀였다.

“이준석입니다.”

“오진하라고 합니다.”

“두 분 다 한국인이시네요.”

준석과 오진하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저희가 한국인인 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름이요. 예전에 한국인을 만나서 그 나라 이름의 특징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아.”

그녀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유일하게 외부인 중에 한국인만은 좋은 인상이 남아 있었다.

이내 준석은 그녀에게 은색 액체가 담긴 병 하나를 던졌다.

얼떨결에 병을 받은 세포네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게 뭐죠?”

“치료약입니다. 상처에 그걸 부으세요.”

한눈에 봐도 귀해 보이는 치료약을 거절하려고 다시 그를 바라봤을 땐 이미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어……?”

그녀는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준석과 그 일행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저기요! 전 괜찮으니 이거 도로 가져가세요!”

그러자 준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손만 흔들며 말했다.

“이미 준 거는 안 받습니다. 그냥 쓰거나 아님 버리세요.”

“쓰거나 버리라니…….”

뒤늦게 그녀는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둘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곳은 클로드보다 무서운 정령들이 자리를 튼 장소였다.

“하아~.”

결국 따라가길 포기한 그녀가 치료약을 쳐다봤다.

은색 액체에서 영롱한 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걸 어떻게 버려…….”

나중에 다시 만나면 돌려줄 생각으로 주머니에 넣으려던 세포네는 순간 멈칫했다.

“그래도 준 사람 성의를 봐서 한 방울만 부어 볼까?”

똑!

이내 병뚜껑을 열고 액체 한 방울을 손등에 난 상처에 부어 보았다.

“쓰으…….”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었다.

“뭐, 뭐야?”

좋은 치료약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실제로 체감해 본 효능은 좋다는 개념을 뛰어넘었다.

몇 주는 보내야 아물 상처가 순식간에 다 나아 버렸다.

세포네는 멍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남자, 대체 뭘 주고 간 거야.”

그러더니 이내.

“몇 방울 더 쓴다고 티가 나진 않겠지……?”

그녀는 여기저기 다친 곳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 * *

던전의 땅끝.

“준석 씨, 그 여자한테 볼일이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찾아 놓고 왜 그냥 헤어집니까? 물론 다 계획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알지만. 저도 대략적인 건 알고 있어야 호흡을 맞추죠.”

오진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나라고 그냥 헤어지고 싶었을까.

세포네는 외부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딱히 그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괜히 그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가 오히려 경계를 살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조금은 조심히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오진하에게도 어느 정도 계획을 설명해 줘야 할 듯싶다.

“앞으로 그녀와 파티를 맺을 거야.”

“예? 파티를요?”

“그래. 당장에 얘기를 꺼내지 않은 건 경계심 때문이야. 뭔가 바로 파티를 맺자고 하면 목적이 있는 것 같이 보이잖아. 그러니 천천히 거리를 두면서 안면을 튼 뒤에 말해 볼 생각이다.”

“아…….”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오진하가 입을 열었다.

“종합해 보자면 신좌와의 거래를 이행하려면 준석 씨는 그녀와 가까워져야 한다는 거죠?”

“맞아.”

나는 세포네에게 거래를 제안할 생각이다.

물론 거래를 하는 형식이 아닌, 강제로 그녀를 죽은 자들의 세계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그 방식은 내가 원하지 않았다.

끝내 안 된다면 그렇게라도 할 마음은 있지만 어지간하면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결과를 원했다.

“그런데. 아까 전부터 저희는 어디에 가는 거예요?”

참 빨리도 물어본다.

“진짜 인도자를 만나러.”

“인도자는 그 클리드란 놈 아니었습니까?”

“말했잖아. 그놈은 바지사장에 불과하다고. 진짜 인도자는 따로 있어.”

곧 좁은 통로를 지나 거대 공동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출입하지 않은 듯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는 파란 불꽃을 몸에 두른 여우 한 마리가 중앙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여우 뒤에는 족쇄를 찬 거석이 하얗게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거석에 다가서려고 하자, 가만히 누워 있던 여우가 눈을 떴다.

“어디서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나 했더니.”

자그만 크기였던 여우는 곧 커다란 몸집으로 변했다.

“이곳은 인간들 따위가 범접할 곳이 아니다! 육신을 태워 버리기 전에 당장 떠나라!”

화아아아악!

여우의 몸에서 빛이 방출하며 곧 푸른 불의 폭풍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뒤에 서 있는 오진하 역시 잘 견뎌 내고 있었다.

“네놈들……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구나.”

안색이 굳어진 여우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째려본다.

“그러나 그대들이 하찮은 미물인 것임에도 변함이 없다!”

“크르르르…….”

-미물? 감히 이 몸을 미물이라 표현하다니! 건방진 것!

어느새 어깨 위에서 떠난 다칼이 여우 앞에 섰다.

스아아아-

다칼은 어둠을 가득 내뿌리며 단숨에 이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우우우우-.”

“이 기운은……!”

여우가 다칼의 정체를 눈치챈 듯했다.

그러나 정체를 알아채도 여우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키이이아!”

여우의 머리를 발밑에 둔 다칼이 근엄한 표정으로 콧김을 내뿜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오진하가 말했다.

“처음엔 웬 굉장한 녀석인가 했더니,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네요.”

보이기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저 여우는 최상급 정령인 웨시폭스였다.

워낙 다칼이 강해 비교적 약하게 보였을 뿐. 웨시폭스 한 마리면 상급 정령을 천 마리도 넘게 상대할 수 있었다.

“께엥, 껭!”

제압당한 웨시폭스가 몸부림을 쳐댄다.

쿵!

그러자 다칼이 녀석의 몸을 앞발로 강하게 짓눌렀다.

“그만! 그만해……!”

“다칼, 이만 풀어 줘.”

“크릉?”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 녀석은 우리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살의까지 드러냈다. 그런데 풀어 주다니!

나는 똑같이 텔레파시로 말을 전달했다.

-그 녀석이 죽으면 내 계획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

-겨우 이 녀석 하나 죽인다고 계획이 틀어지진 않을 거다!

-아니, 틀어져. 그 녀석은 정령왕을 봉인에서 풀어 줄 유일한 키. 녀석이 없다면 정령왕을 영영 만날 수 없겠지.

-정령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정령왕이라면 탑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다칼이 말한 대로 정령왕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래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정령왕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나는 정면에 있는 거석을 가리켰다.

-저 돌, 어딘가 낯이 익지 않아?

따라서 거석을 본 다칼이 곧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것은 봉인석!

-그래. 그냥 봉인석도 아니고 신수급 이상의 존재를 봉인할 수 있는 특별한 돌이지.

“크르르르!”

다칼은 그 돌을 보며 크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저리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눈앞에 거석은 크기는 다르지만 다칼을 가두었던 돌과 비슷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흥분해 있는 다칼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키곤 말을 이었다.

-저건, 너를 가둔 봉인석과는 달라.

-다르다니. 완전히 똑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아니,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진짜 봉인석을 흉내 낸 가짜 봉인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일반 봉인석과 차이점이 있다면 저것은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가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봉인됐지.’

“불의 정령왕 살라만드라.”

웨시폭스가 그 이름에 반응을 보였다.

나는 웨시폭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놈의 역할은 정령왕이 영체를 회복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웨시폭스는 당황을 넘어 숨을 멈췄다.

“지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저 인간이 어떻게 알았지?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근데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어. 그러니 이해할 생각은 말고 이제 그만 왕이나 깨워.”

다칼에게 눈짓하자, 웨시폭스를 풀어 주었다.

자유로워진 웨시폭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다칼에게 받은 충격 때문인지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다칼이 아닌, 나는 손댈 수 있을 거라 여겼는지 몰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헛짓거리를 할 생각이거든. 접는 게 좋아.”

“흐읏!”

내가 살기를 내뿜자, 웨시폭스는 사시나무 떨듯 떨어 댔다.

“만일 순순히 내 말을 따르면 살려 주지. 하지만 따르지 않겠다면…….”

“죽일 거라고? 차라리 날 죽이거라! 살라만드라 님을 배신하느니 죽어 버리고 말지!”

“아니, 난 널 죽이지 않아.”

“뭐?”

“대신 네가 정령왕을 깨우지 않겠다면 저 봉인석을 사우즈아이 속에 집어넣어 버릴 거다. 너라면 사우즈아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웃기는 소리! 신좌도 아닌 인간 따위가 어떻게 사우즈아이를 소환한다는 거지?”

“보통은 못하겠지. 그런데 정말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아무래도 맛보기를 보여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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