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06화
206화 파트너 제안
아무튼 초월종이 되며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사용해야 할 비약이 남아 있었다.
고대 마나수와 천 년 묵은 만드라고라다.
더 강해져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섭취해도 상관없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일부 능력치가 최대치로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1만을 넘기지 못한 수치가 내가 강해질 수 있는 한계치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비약을 가져와 사용해도 무의미한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그러한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다.
현재 마나량을 체크한 후 고대 마나수를 복용해 마나량이 늘었는지 안 늘었는지 살펴보면 그저 1만 이상의 능력치가 표기만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한계치에 도달한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근데 테스트로 써먹기에는 고대 마나수가 아까운데.’
아무래도 등급이 낮은 마나수 하나를 구해다가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럼, 일단 이 두 개는 넣어 둘까.’
대충 미션 보상에 대한 정리를 끝내고 뒤늦게 라에프를 죽이고 얻은 십멸장과 소울 일루전이라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새로 얻은 십멸장은 기존의 것과 합쳤다.
[십멸장에 작은 변화가 생겨납니다.]
정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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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된 십멸장 (5)
내용: 대악마들의 기운이 가득 스며들어 있다.
효과: 악마계열 피해감소, 악마계열 지배력 강화, 십멸장의 압도하는 기운
추가 효과: 악마계열 피해증가, 악마계열 피해반사
조건부 효과: 소지자의 지배하에 놓인 악마들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
조건부 효과: 십멸선에 새겨진 대악마의 기운을 소모할 경우, 소지자는 일시적으로 마나가 두 배로 증가하고 마법능력이 크게 상승한다. 적이 악마계열일 경우 증가의 폭은 더욱 커진다.
조건부 스킬 습득: 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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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되어 있던 추가 효과가 풀렸다.’
쭈욱!
그때 다칼이 바지를 물고 늘어졌다.
아래를 흘깃 쳐다보니 다칼이 꼬리로 무언가를 건넸다.
-대악마를 죽이고 얻은 거다.
건네받은 것은 다름 아닌 십멸장이었다.
[십멸장에 작은 변화가 생겨납니다.]
‘이걸로 총 여섯 개다.’
상층부에는 가야 구경할 수 있는 십멸장을 중층부에서 무려 여섯 개나 얻었다는 것은 매우 큰 성과였다.
아쉽게도 조건부 스킬에 걸려 있는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
이후 소울 일루전에 대해서 살폈지만 이것은 내게 딱히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마침 이 물건의 적임자가 오는군.’
“준석 씨!”
오진하가 꼴이 엉망인 채로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의 시커메진 얼굴을 보며 말했다.
“어디 석탄 공장이라도 다녀왔냐?”
“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아무래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등가교환.
나는 거울을 형성해 녀석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뭐, 뭐야!? 얼굴이 왜 이래!”
“대체 뭘 하고 다녔기에 얼굴이 그 꼴이야.”
“에이씨. 누가 이랬어! 아! 그놈이구나!”
“그놈?”
“아, 제가 상대하던 놈 중에 검은 연기를 내뿜던 녀석이 있거든요. 아마 그때 묻은 것 같은데요?”
오진하는 시커먼 흔적을 없애기 위해 얼굴에 손을 댔다.
하지만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시커멓게 얼룩이 졌다.
녀석의 바보 같은 얼굴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굴 그만 만지고 이거나 받아.”
“예?”
툭!
오진하는 물건을 건네받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뭡니까?”
“나한텐 필요 없는 거, 정보창을 열어서 확인해 봐.”
“으음.”
고개를 갸웃한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막대기처럼 생겼기 때문에 별로 흥미를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정보창을 열어 본 그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그거면 잠깐이나마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소울 일루전.
원하는 영혼을 끌어와 생전의 모습을 형상화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1회성이고 유지시간도 그다지 길지 않아 효용성은 떨어졌다.
하지만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그에겐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최고의 아이템이 되어 줄 것이다.
오진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애절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며 천천히 다가온다.
“뭐, 뭐야!”
“형!”
“떨어져! 징그럽게 왜이래!”
“혀어엉!”
그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질 않았다.
남자끼리 껴안는 것은 딱 질색인지라, 계속해서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정말로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하아~.”
결국에는 체념했다.
그래도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런 귀한 걸…….”
“해 준 게 왜 없어. 장갑 만들어 줬잖아. 그리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라고 준 거니까,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한 몸 바쳐!”
“오버는 하지 말고.”
“예.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나는 왕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감사인사는 그쯤하고, 뒷정리나 도우러 가자고.”
“네!”
유희가 열심히 뛰면서 많이 진압된 것 같지만 왕성 내부에는 여전히 불길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 잔챙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 안정화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암~.”
‘그보다 신체 변화를 겪어서 그런가. 무진장 졸리네. 빨리 끝내고 쉬어야지.’
정신에 피로를 가져오는 마검을 아공간에 집어넣고선 지팡이만 든 채로 안으로 입성했다.
* * *
대전쟁을 치른 직후,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창문 밖을 내다보면 여전히 엉망진창인 도시가 그대로이지만 하나둘 고쳐 나가며 점차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교단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교황 성하, 신전 벽과 바닥 타일 수리 건은 어떻게…… 아, 그리고 여전히 서쪽 교회에 지원이 닿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떻게든 인력을 뽑아…….”
아침 댓바람부터 보고를 해 오는 라일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또…….”
“라일 추기경.”
“예.”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아픈 신음을 냈다.
“제가 아직 대전쟁 때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니 부디.”
“교황 성하, 어제까지만 하셔도 멀쩡하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 오전에도 신전 뒷마당에서 혼자 훈련하신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또 언제 보셨습니까? 혹시 신전 내에 스파이라도 심어 두신 겁니까?”
“굳이 스파이를 심어 두지 않아도 훈련하실 때 그렇게 요란하게 소란을 일으키시면 길을 걸어가는 아무개한테 물어도 알 겁니다.”
“말이 심하십니다. 지금 반항하는 겁니까?”
“아뇨. 저는 그저 교황 성하께서 하셔야 할 일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 뿐입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 라일을 보며 한숨이 또 터져 나왔다.
‘이 자한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어.’
일을 열심히 해도 너무 열심히 한다.
탁!
나는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일은 라일 추기경이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저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만!”
“중요한 일이요? 민생을 신경 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입니까?”
“예.”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라일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무엇입니까. 그 중요한 일이라는 게.”
“그러고 보니 라일 추기경과도 연관이 있는 사항입니다. 따라오세요.”
“저하고도 연관이 있다고요?”
“그래요.”
“대체 어떤.”
“따라와 보시면 압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여긴…… 거룩한 방이 아닙니까?”
“네.”
문을 열자 그 안에는 다른 추기경들이 대기하는 중이었다.
“이게 대체…….”
알베스토가 마중을 나왔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하하, 업무 보고를 듣다 보니 좀 늦었습니다. 그럼 다들 모이신 겁니까?”
“네. 라일 추기경까지 해서 전부 모였습니다.”
“그럼, 바로 선출식을 시작하도록 하죠.”
라일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 앞을 막아섰다.
“교황 성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선출식이라뇨. 이렇게 빤히 교황 성하께서 계시는데 또 누굴 뽑겠다는 겁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부로 교황을 그만둘 생각이니까요.”
“그만둔다니! 교황이란 자리는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이십니다!”
어울리지 않게 라일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나는 라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라일 추기경, 이리 될 줄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저는 등반자입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왜 그가 이리도 격하게 화를 내는지 알 것 같았다.
“이리 그만두시면 저는…….”
눈망울이 살짝 젖은 그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군.’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은 짧지만 항상 붙어 있다시피 했다 보니 다른 이들에 비해 빨리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이 들었다고 하여 가고자 하는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애초에 가는 길이 달라.’
“자, 그럼 투표 진행합시다!”
라일을 끝까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선출식은 진행됐다.
그 결과 알베스토가 압도적 표 차이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
그가 뽑히자 박수 소리가 끊기질 않았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번에도 뽑히지 못한 엘리자는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아, 준석 씨.”
다행히 상태가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전 끝까지 약속 지켰습니다.”
“근데 교황이 그래도 돼요?”
“교황이 투표하지 말라는 법은 없거든요.”
“고마워요. 하아~ 그래도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마음이 후련하네요.”
“그런 것치곤 매우 진심이던데.”
“뽑히기 전까지는 누가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근데 이젠 결과가 나왔으니 승복한 거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음. 알베스토 추기경이 교황 자리에 올랐으니 아마 문제가 없으면 1년간은 그 자리를 유지하겠죠.”
“성격 급한 등반자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전 그가 죽지 않게 도우려고요.”
“돕는다고요? 그쪽 입장에선 오히려…….”
“아뇨.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어요. 준비가 되지 않으면 교황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그의 곁에서 인맥을 착실히 쌓으려고요.”
“으음.”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교단은 알베스토가 꽉 쥐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는 준석 씨는 언제 올라가려고요?”
층을 언제 오를지 묻는 것이었다.
“아마, 축하연이 끝나면 곧장 올라갈 생각입니다.”
축하연은 오늘 저녁에 열린다.
악마들에게 승리하고 나서 사태를 수습하느라고 다들 축하나 위로를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교황으로서 축하연을 지시한 상태였다.
물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아 화려하게 잔치를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조촐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쉽네요.”
“예? 뭐가 말입니까?”
“준석 씨와 은근히 잘 맞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떠난다니까, 솔직하게 붙잡고 심정이랄까.”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엘리자는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근데 축하연 때 파트너는 구하셨어요?”
“파트너……? 그런 게 필요합니까?’
“필요하죠! 모르셨어요?”
금시초문인데.
“없으시면 저랑 파트너 하실래요?”
내게 손을 뻗는 그녀.
잠깐 고민을 하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