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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203화 (203/230)

회귀한 탑 등반자 203화

203화 라에프 (1)

유희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내려다봤다.

수만에 이르는 악마 군단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준석은 한순간에 전장의 판도를 뒤바꾸었다.

그가 한번 손짓할 때마다 수십 명의 악마가 얼어붙고 불타올랐으며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이내 하늘에서는 커다란 운석 두 개가 떨어졌다.

쿠아아아아앙!

모든 것을 증발시켜 버릴 뜨거운 열기와 먼지 하나 남기지 않을 강력한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크읏!”

유희는 방패로 몸을 보호했다.

치익, 치이익……!

두 발에 힘을 줘서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파는 그녀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폭발로 인한 섬광이 시들어 갈 때 즈음. 유희는 방패를 내리고 메테오가 휩쓸고 간 풍경을 목격했다.

수백여 명이 넘는 악마들이 소각되었고 전장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유희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괴물이 따로 없네.”

자신이 발전한 만큼 준석도 발전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것은 예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그저 악마 군단만 상대했으면 모를까.

앞서 홀로 대악마 둘을 처리한 뒤 자신이 있던 곳으로 와서 또 하나를 처치하는 걸 도와주었다.

대악마는 성복과 성검을 지니고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그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대악마를 잡기는 했을 것 같지만 지금처럼 멀쩡한 상태로는 서 있을 수 없었으리라.

“이제 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언젠가 힘으로 추월하게 되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기에 빠져 있는 그를 구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까지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살짝 속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속이 후련했다.

쫓아가려는 욕심 때문에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완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곧 유희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나 좀 살려 줘!”

전장의 파도에 휩쓸려 부상을 당한 왕국의 백성들은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유희는 성녀가 되며 얻은 광역 회복 스킬을 시전했다.

쏴아아아!

거리에 황금빛 오로라가 형성되었다.

용처럼 움직이는 오로라가 길을 지나치자 부상을 입은 백성들의 상처가 아물어 갔다.

“성녀님이 나타나셨다!”

“성녀님! 제 아이도 좀 살려 주십시오!”

그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사삿!

지척에 모습을 드러낸 하성태가 다가왔다.

그의 몸에는 고된 혈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성태 씨, 서쪽의 입구는 어떻게 하고, 이곳에 왔어요?”

“형님이 부활시킨 라그넬 덕분에 그쪽은 금방 정리가 끝났습니다.”

“아…….”

“뭐, 따로 도움이 필요한 거 있어요?’

“건물 파편에 몸이 깔려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성태 씨가 그 사람들을 좀 구해 주세요.”

자신은 광역 회복 스킬을 사용하는 중이기 때문에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케이!”

하성태가 그녀의 오더를 받자마자 행동에 옮겼다.

배트 섀도.

수백 마리의 그림자 박쥐가 도심에 흩어져 파편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기 시작한다.

“언니! 저도 도울게요!”

어느새 박자린도 나타나 그녀의 손을 거들었다.

우웅!

유희가 가지고 있는 회복 스킬만큼은 아니었지만 박자린이 시전한 회복 스킬도 10미터 내에 있는 부상자들을 회복시켰다.

다만 중상자는 유희의 손길을 거쳐야만 했다.

“키에에에!”

그런데 전선에서 이탈한 악마 녀석들이 방해를 해 왔다.

스아아아앙!

그녀에게 다가가던 악마에게 창격이 날아들었다.

“내가 엄호하지.”

“카를로 씨.”

제때 등장한 카를로가 유희에게 접근하는 악마들을 처단했다.

그녀는 하나둘씩 길드원들이 모여드니 듬직한 기분이 들었다.

곧 유희는 도시 중앙으로 이동했다.

“윽…… 피 냄새.”

코를 틀어막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준석이 말했던 대로 중앙은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중앙에 침투한 악마 무리들이 기사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서로 물러서지 않는 싸움은 부상자보다 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크으으으…….”

“으으윽…….”

일부 기사들이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우선 살아 있는 기사들이라도!’

새크리파이스!

신성력을 희생해 상처를 회복시키는 마법을 사용하자 다 죽어 가던 기사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에페르 님께 감사를!”

“성녀 님께서 오셨다! 악마놈들 따위 전부 밟아 버려!”

“우와아아아!”

기사들은 회복되자마자 다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유희의 등장에 기사들의 사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스릉!

“흐아압!”

기사들의 회복을 끝낸 유희는 성검을 가슴 위로 치켜들고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크헤에엑! 퇴각하라!”

대치전을 벌이던 악마들이 도망을 시도했다.

“한 놈도 빼놓지 말고 잡아!”

하지만 기사들은 그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전부 잡아들였다.

어느덧 중앙의 정리가 끝나간다.

“후우~.”

한숨을 돌린 유희는 고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상황을 체크했다.

‘악마들이 물러나고 있어.’

기사들을 비롯해 지원 병력이 악마들을 쫓고 있다.

상당수는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저들이 살아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왕성에 쳐들어올 생각은 하지 못하리라.

유희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쳐다봤다.

아직 대악마를 상대했을 때의 충격이 회복되지 않았다.

‘아슬아슬했어.’

만일 이보다 전쟁이 길어졌다면 몸이 버티질 못했을 것이다.

하나 안심하고 있는 찰나.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불그스름하게 변한 하늘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죽은 시신들에서는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웅성웅성.

살아남은 기사들이 경계의 눈빛을 띠며 검과 방패를 쳐들었다.

유희 역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순간.

쿠그그그그그그그!

저 멀리서 하얀빛의 드높은 장벽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희는 다급히 몸을 틀며 다가오는 장벽을 피해 냈다.

피슛!

반응이 늦어 팔뚝에 피가 흘러내렸다.

뭔가 벽이라고 하기에는 단면이 제법 날카로웠다.

뒤를 쳐다보니 장벽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쿠광!

장벽이 왕성의 끝에 도달한 순간 땅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기사들은 몸의 중심을 잡느라 바빴다.

한편 유희는 어두운 표정으로 장벽. 아니, 거대한 검기가 날아들었던 곳을 쳐다봤다.

피 냄새가 아닌 다른 지독한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찔렀다.

‘어마어마한 악의 기운이 느껴져.’

화아아악!

검기가 지나친 자리에 불기둥이 치솟으며 도심이 붉게 물들었다.

워낙 불기둥이 거세서 쉽사리 꺼트릴 수 없을 것 같다.

유희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이리 무난하게 끝날 리가 없지.”

탑은 항상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이곳까지 올라오면서도,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손의 떨림 증세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적이 나타난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쾅!

유희는 새로운 적이 나타난 방향으로 크게 도약했다.

탓!

목적지에 다다른 그녀는 한 쌍의 검은색 날개와 다른 한 쌍의 하얀색 날개를 지닌 한 남자를 발견했다.

적안을 지닌 그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장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에엑!

날쌘 소용돌이가 건물들을 부수며 날아간다.

단순한 동작과는 다르게 검에서 뻗어 나온 힘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뚝, 뚝……

“…….”

찰나, 날아든 공격을 막는다고 막았는데.

방패 테두리가 종이가 찢겨져 나가듯 찢긴 것뿐만 아니라 손목이 날아가 버렸다.

새크리파이스.

“크으으.”

그녀는 날아간 손목을 회복하는 동안 그와 마주하고 있는 준석을 바라봤다.

악마 군단을 상대할 때도 여유로움이 넘치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김유희, 뒤로 물러나 있어.”

준석은 유희가 나서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도울 게.”

“죽을 수 있어.”

“언제는 안전했나. 항상 위험했지.”

탑에서도, 지구에서도.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

준석이 유희를 바라본다.

그녀와 두 눈을 마주친 그는 이내 정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마음대로 해.”

준석이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유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방패를 치켜세우고 옆으로 검을 비스듬히 붙였다.

화우우우웅-

적이 날갯짓을 하자 주변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아무것도 안 보여!’

유희는 서둘러 검을 이용해 돌풍을 일으켰다.

시야를 회복한 그때.

“……!?”

푸욱!

가슴 정중앙에 어둠의 창이 꽂혔다.

“끄억……!”

워낙 빨라, 공격을 감지조차 하지 못한 그녀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김유희!”

“오지 마!”

‘언제까지고 도움을 받을 수는 없어.’

유희는 성검으로 몸을 지탱해 겨우 일어섰다.

그러고는 머리끈을 풀어헤친다.

위이잉!

머리끈에서 바람에 의해 공중에 휘날리며 곧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푸악!

그녀는 어둠의 창을 직접 손으로 뽑아내곤.

[기사회생(Lv10)이 발동합니다.]

스킬 발동으로 빠르게 몸을 치유해 나갔다.

그리고.

등에서는 두 쌍의 새하얀 날개가 꽃을 피우듯 활짝 펼쳐졌다.

곧 전신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은 순백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두 눈은 광명처럼 빛이 났다.

[대천사의 강대한 기운을 품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발동합니다!]

어느덧 그녀의 머리 위로 성검이 곧게 뻗어 올라가 있었다.

그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왕성은 신성한 빛으로 감싸였다.

* * *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십멸의 대악마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라에프.

놈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유희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크으…….”

라에프가 신체의 오른쪽 일부를 잃어버리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감히 성녀 따위가……!”

하지만 괜히 십멸의 대장격이 아니었다.

스르륵!

순식간에 파손된 신체를 회복한 후 유희에게 반격을 가했다.

차앙! 콰가가가가!

하지만 그의 검격을 튕겨 낸 유희가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뿜어내며 라에프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으아아아아!”

라에프는 대지를 가를 정도의 흉악한 공격을 마구 퍼붓는다.

그것을 전부 튕겨 내는 유희는 아직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아까 전에 날렸던 일격을 다시 한번 더 날려 보냈다.

“똑같은 공격을 당할 성싶은가!”

일격이 날아들기 직전에 라에프가 하늘 위로 순간이동했다.

유희는 일격을 날린 직후 힘을 다 소비한 것인지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죽어라!”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 라에프가 공중에서 그녀를 향해 검은 고리를 두른 빛줄기를 방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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