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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201화 (201/230)

회귀한 탑 등반자 201화

201화 라그넬 (3)

촤르륵!

빛의 서를 공중에 띄우고서 각인된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rekobe. region…….”

주위로 모래시계 형상을 띤 빛의 구체가 하나둘씩 생겨난다.

등가교환.

동시에 상급 악마들의 위치를 파악하곤 한 손을 들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그잭트.

스앙! 스앙!

다섯 개의 구체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난 순간 멀리 떨어져 있던 상급 악마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응?”

“여긴…….”

강제로 전이된 악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다가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유희와 두 눈을 마주쳤다.

“크흐흐! 성녀가 직접 마중도 다 나와 주고,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성녀여. 내 밑으로 들어오라. 그럼 죽이지 않겠다 약속하마.”

“키히히. 귀엽게 생긴 게 딱 내 스타일이네~.”

강력한 힘을 지닌 녀석들답게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표정에서 한껏 여유로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의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슈아아아악!

유희가 내지른 일격에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달아나 버렸다.

그래도 상급 악마들인데, 너무 쉽게 제거되어 버렸다.

‘그새 또 몰라보게 강해졌어.’

나는 흐뭇한 얼굴로 유희를 바라보다가 곧 성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웅! 우웅!

상급 악마들을 베어 내며 어느 정도 힘을 회복했다.

검을 들고 있는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성검이 뿜어내고 있는 강렬한 기운 덕분에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김유희!”

“알고 있어!”

유희는 곧장 성검을 가지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획한대로 라그넬에게 성검을 건넸다.

철컥.

성검을 손에 쥔 라그넬은 곧 황금빛의 기운을 흩뿌리며 무기와 완전하게 동화되고 있었다.

성검의 크기가 어느덧 네, 다섯 배로 커졌다.

라그넬의 두 눈에는 광채가 돌았다.

사아아아!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눈부신 빛이 신전을 뒤덮는다.

이윽고.

[라그넬이 진 라그넬로 진화하였습니다.]

‘진 라그넬?’

변경된 명칭은 처음 들어 봤지만 그런 게 무엇이 중요하랴.

“라그넬, 동료들을 부활시켜.”

다른 라그넬들을 기동시키는 것.

그것이 놈에게 성검을 쥐어 준 유일한 이유였다.

쿵! 쿵!

진 라그넬이 파편 조각이 되어 버린 동료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스응-

이내 진 라그넬은 머리 위로 성검을 쳐들어 손잡이를 돌렸다.

칼끝은 땅을 향했고, 진 라그넬이 두 팔을 움직이는 순간 신전에는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

콰아앙! 콰아앙! 쾅!

‘뭐 하는 거야?’

동료를 살리라고 보냈더니 진 라그넬은 반복해서 땅을 내리찍고 있었다.

혹시 명령을 잘못 알아들은 건가 싶어 다시 입을 떼려는 그때.

난도질을 당하던 파편 조각 테두리에 빛이 생겨났다.

우우우웅!

파편 조각들이 공중에 뜨더니 이내 빛의 입자가 되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아직 완벽하게 완성이 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라그넬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연달아 메시지가 떴다.

[고대 신성병기 라그넬이 부활하였습니다.]

[고대 신성병기 라그넬이 부활하였습니다.]

[고대 신성병기 라그넬이 부활하였습니다.]

[고대 신성병기 라그넬이 부활하였습니다.]

…….

…….

총 7기의 라그넬이 진 라그넬 앞에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오와 열을 맞췄다.

보고 있으면 듬직한 느낌이었다.

‘근데, 에너지원인 구슬 없이도 움직이다니. 성검의 영향인가.’

“오오~ 이렇게 세워 놓고 보니 멋진데? 그리고 하나하나 기세가 만만치가 않은 게 도움 좀 되겠어.”

옆에 선 유희가 감탄을 하며 진 라그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유희가 성검을 회수하려고 하니 진 라그넬이 무기를 건네주길 거부하고 있었다.

“이…… 무기… 나의…… 것.”

성검의 힘 덕분인지 진 라그넬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언어 구사력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 거야! 내놔!”

“줄 수…… 없다. 이건 나의…… 물건.”

유희가 말을 해도 소용없자, 결국에는 내가 직접 나섰다.

“라그넬, 그만 성검을 돌려줘.”

“주인의 말…… 거부…… 한다.”

‘어쭈? 내 말까지 무시해?’

아무래도 진 라그넬로 진화하며 자아를 얻은 것과 동시에 고집도 세진 듯했다.

참다 못한 유희가 팔을 걷어부치곤 말을 이었다.

“나 말리지 마.”

딱 보아도 무력을 사용할 생각이다.

“유희야, 살살해. 살살.”

까아앙!

유희는 진 라그넬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콰아아앙-!

여파로 진 라그넬이 단숨에 쓰러져 버렸다.

유희는 바닥에 떨어진 성검을 손에 쥐며 진 라그넬을 바라봤다.

“흥!”

“무, 무서운…… 여자…….”

한동안 진 라그넬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런데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성검을 잃었어도 진화가 유지되고 있어.’

아무래도 성검의 힘 일부가 라그넬에게 흡수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진 라그넬을 비롯해 7기의 라그넬을 데리고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각자 둘씩 흩어져서 도시를 비호한다.”

펄럭!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7기의 라그넬이 한 쌍으로 이루어진 백색의 날개와 빛의 무기를 소환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화아악-

진 라그넬은 두 쌍으로 이루어진 백색의 날개와 빛의 대검을 소환하며 뒤늦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잔챙이들 소탕은 저놈들에게 맡기고…… 난.’

곧 대악마들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한 놈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질 않고, 나머지 셋은 이쪽을 주시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 노리는 게 확실하군.’

그저 이쪽을 바라본 것만으로 그런 결론을 내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확신을 가진 이유는 그들이 내뿜는 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살기가 너무 노골적이라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저들이 무엇 때문에 날 노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중층부에 등장하지 말아야 할 놈들이 연속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탑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로썬 그 원인을 알아낼 방법은 저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물론 물어본다고 친절히 대답을 해 줄 리는 만무하고, 조금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만 등가교환으로 녀석들의 기억을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다만 로라를 상대했을 때처럼 뒤늦게 탑이 개입한다면 다시 정답을 찾기 어려워지겠지만.

나는 그러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대악마들이 나타난지도 며칠이 지났는데 탑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니 저들과 충돌을 일으킨다고 해도 달라질 게 있을까?

툭!

“아우우우우-!”

곧 다칼이 내 어깨를 벗어나 포효를 내질렀다. 몸집이 커진 다칼은 서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한 놈은 내가 맡지.

지금의 다칼이라면 충분히 대악마 한 명을 상대하고도 남으리라.

“조심해.”

-그대도 조심해라.

타닷!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다칼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들 틈에 대악마가 있다고 했지?’

유희가 먼곳을 응시하며 물어 왔다.

“총 네 명, 그런데 하나가 안 보여.”

“그럼 그놈은 내가 잡을 게.”

“괜찮겠…….”

잠깐 예전의 유희를 떠올려 버렸다.

“응?”

“아니야. 놈은 너한테 맡길 게.”

“그럼, 나머지 둘은 어떻게 하려고?”

“내가 상대해야지.”

“괜찮겠어?”

되레 내게 괜찮냐고 물어 오는 유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조심해.”

“나야 늘 조심하지. 네가 강한 건 알지만 방심은 하지 마.”

“그래.”

“그럼, 난 사라진 녀석을 찾으러 가 볼 게. 나중에 봐.”

유희는 말을 마친 뒤 근처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녀석도 중층부의 수준은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어. 그리고 성복에 성검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대악마라고 해도 쉽게 지진 않겠지.’

뿐만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예전의 유희가 아니었다.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예전같이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나도 슬슬 손님맞이를 해야겠군.’

붉은 눈 세 개를 가진 녹색 피부의 대악마 바논과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돋아나 있는 대악마 레나.

두 놈이 내 상대였다.

쿵!

코뿔소처럼 단단하고 큰 몸집을 가진 바논이 신전 입구에 착지하며 내게 돌덩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어.’

곧바로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로라 때와는 달랐다.

다크퍼드.

챙강!

바위를 두 쪽 내 버리곤 곧바로 위를 쳐다봤다.

스륵-

어느새 가까이 접근해 온 레나가 화려한 공중제비를 하며 발끝에 있는 가시로 내 심장을 노렸다.

지이잉!

그때 내 등 뒤에 있던 별의 정수가 접근을 막으며 둘에게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별의 정수로는 녀석들을 위협할 수가 없었다.

리치네스, 엘리렌스.

마나 그릇을 확장하고 속성 공격과 내성을 높였다.

직후 아공간에서 전장의 광휘 토템을 꺼내 땅에 박아넣는다.

[전장의 광휘 토템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사용자가 유리한 쪽으로 주변 환경이 새로 조성됩니다.]

순식간에 주변은 순백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공간에 빛이 크게 확대됩니다.]

“……?!”

녀석들이 당황한 틈을 타서 곧장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fkro, glsori…….”

빛의 서에 주문을 외우면서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의 힘을 발동시켰다.

[탐욕의 반지 효과가 발동합니다!]

[빛의 서에 각인된 ‘퍼니시먼트’ 마법에 탐욕의 힘을 불어넣습니다.]

퍼니시먼트는 빛의 서에 있는 마법들 중에 가장 파괴적인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린 것이 크나큰 단점.

치지지지짓!

곧 압도적인 크기의 빛의 검 두 개가 하늘에 소환되어 각각 대상에게 심판을 내리듯 밑으로 낙하했다.

“이런 느려터진 공격 따위!”

레나는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이동했다. 반면 바논은 땅에 썩은 나무들을 소환해 자신을 보호했다.

그때.

[퍼니시먼트가 초월적인 형태로 변화합니다.]

나는 탐욕의 반지 효과를 이용해 레나에게 떨어지던 빛의 검을 수천 여 개로 나뉜 빛의 검으로 바꾸었다.

시시시싯!

크기가 작아진 만큼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바논에게 떨어지던 빛의 검은 아예 형상을 없애고 땅속으로 이동시켰다.

잠시 후.

스어어억-!

땅속에서 치솟은 빛의 검이 바논의 육신을 무자비하게 갈랐다.

“끼아아아!”

뒤이어 레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칼날의 비를 맞은 레나가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내게 접근해 오지만 얼마 가지 못해 쓰러졌다.

“으어어어…….”

바논 역시 뛰어난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쪽으로 갈라진 몸을 붙이지 못한 채 애를 먹고 있었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있지만 솔직히 속으론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빛의 서에 각인된 마법이 강하다고는 하나, 두 명의 대악마를 완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압도하는 수준을 넘어 차이를 보여 주었다.

‘이번에 얻은 탐욕의 반지 효과 덕분인가.’

초월적인 형태로 변화시킨 것도 모자라 마법에 다른 변화를 준 것 같았다.

‘맞다.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들이 왜 날 노리는지 그리고 탑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어봐야만 한다.

“끄으으…….”

“으으…….”

나는 다 죽어 가고 있는 둘을 한곳으로 모아 놓고선, 그들의 기억을 훔쳐보기 위해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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