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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99화 (199/230)

회귀한 탑 등반자 199화

199화 라그넬 (1)

대악마 로라에 이어서 다른 놈들까지 중층부로 내려왔다는 것은 탑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로라, 그 여자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날 노렸어. 혹시 저놈들도 날 노리고……?’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직접 마주하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성역의 상태를 다시금 체크하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길어 봐야 사흘.’

곧 지상으로 내려와 기사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기사단장을 호출해 주십시오.”

“예!”

기사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단장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근방에 있었나 보군.’

“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사단장으로 새로 부임된 라오그가 내게 예를 취해 왔다.

“라오그 경.”

“예, 교황 성하.”

“성역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방금 전에 금이 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오는 참입니다.”

“아마 길어야 사흘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지금부터 기사단 전체는 전시에 돌입합니다.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경계근무를 풀가동시키세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병력의 일부는 중앙에 집결시켜 놓으십시오.”

“일부라면 얼마나…….”

“한 이백여 명쯤 배치시키면 될 겁니다.”

라오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교황 성하,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해 보세요.”

“솔직히 이백 명은 너무 과한 인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로 전투가 벌어지는 외곽에 병력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중앙에는 병력을 배치해 봐야 집지키기를 할 뿐, 사실상 자원을 낭비할 뿐입니다. 물론 소수의 적이 중앙을 노릴 수도 있지만 도중에 아군에게 걸릴 확률이 높아 그 가능성마저도 낮습니다.”

“저도 외곽에 가장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가 이동수단이 없을 때나 그렇고. 만일 저쪽에서 이동마법을 사용해 온다면 왕성의 중심 역할을 하는 중앙이 쉽게 무너져 버릴 겁니다.”

“그럼, 정예를 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뇨. 계획대로 이백 명 정도를 배치하세요. 알다시피 중앙에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적이 어디서 올지 알고 있다면 정예가 낫겠지만 광범위한 지역에 적이 어디로 들어올지 모른다면 최대한 보는 눈이 많아야 합니다.”

라오그는 내 말을 듣곤 일리가 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궁금한 게 없으면 어서 가 보세요.”

“하!”

그가 물러나는 모습을 확인하곤, 잠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전력으로는 부족해. 대악마 넷과 군단을 상대하려면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해.’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군단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대악마 넷을 소환하는 과정에 동족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면 저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판을 다시 이쪽으로 기울일 수 있을까…….’

“아!’

그때 신전을 바라보며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려 냈다.

‘그게 있었어.’

우선은 방금 떠올린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오진하부터 만나 봐야 했다.

다크웨스트림.

망설일 것 없이 나는 곧장 집으로 이동했다.

* * *

“캬하아아암~.”

집문을 열자, 다칼이 하품을 하며 복도를 지나는 중이었다.

“컁.”

-왔나?

“왔나? 누군 밖에서 쌔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나는 다칼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녀석의 머리를 조였다.

“누군 한가하게 집에서 쉬기나 하고 있고!”

“크아아으!”

-아프다! 놔라!

소란을 일으키자, 2층에서 오진하가 내려왔다.

“오셨어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웠지만 나는 반가움을 표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상태가 멀쩡했던 그는 방구석 폐인이 되어 있었다.

“넌 몰골이 왜 그래?”

“하하. 며칠 동안 밤을 새느라고.”

“또 잠도 안자고 물건을 만들어 댔구만. 그러다 객사하는 수가 있어.”

등반자는 인간의 범주를 초월했지만 그렇다고 육체의 피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탑에서 잠을 자지 않고 층을 오르던 등반자가 과로사로 죽는 경우도 있었다.

“저도 자제하려고 했는데. 간만에 개인시간이 생긴 거라서. 아! 그보다 이것 보세요! 사장님 주려고 장갑 하나를 만들어 봤습니다.”

“장갑?”

따로 부탁한 적도 없건만, 그는 내게 장갑 하나를 건넸다.

붉은색 무늬와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장갑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촉감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기운은 심상치가 않았다.

정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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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혼이 깃든 보호 장갑

효과: 일부 마법 반사, 배지의 유대

조건부 효과: 배지 아이템과 유대를 맺을 시 배지의 능력을 한 단계 위로 상승시켜 준다.

인챈트 효과: 일부 물리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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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장갑의 성능이 생각이상으로 좋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일부 물리. 마법 반사만 해도 쓸 만한데. 배지의 유대? 이런 건 처음 보는군.’

마침 메나이어 배지를 가지고 있었다.

장갑에 배지를 가까이 대자 가느다란 실이 둘을 이으며 메시지를 띄웠다.

[장인의 혼이 깃든 보호 장갑이 메나이어 배지와 유대를 맺으려고 합니다.]

[유대를 허락하겠습니까?]

“허락한다.”

우우우웅-

가느다란 실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장인의 혼이 깃든 보호 장갑이 메나이어 배지와 유대를 맺습니다.]

장갑의 빈 소켓에 배지가 자리를 잡아간다.

[메나이어 배지가 장인의 혼이 깃든 보호 장갑과 유대를 맺으며 성능이 강화됩니다.]

배지의 강화된 성능을 보여 주듯 관련된 정보창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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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나이어 배지

효과: 상태 이상 저항(저주, 속박)

조건부 효과: 자동으로 소지자의 소량의 마나를 이용해 메나이어 형상을 띤 강력한 보호막이 형성한다.

그리고 보호막이 파괴될 시 자동으로 재생성된다.

조건부 효과: 소지자 의지에 따라 타인에게 메나이어 형상을 띤 강력한 보호막을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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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메나이어 배지의 성능이 같은 배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탈바꿈되었다.

우선 효과에 상태 이상 저항에 일부가 사라지고 완전 저항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직접 마나를 불어넣어야만 생성되던 보호막이 이젠 자동으로 소량의 마나를 통해 보호막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보호막이 파괴되고 재생성된다는 문구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유대감이 있어야만 타인에게 줄 수 있던 보호막도 이제는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에게든 보호막을 줄 수 있었다.

오진하는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전에 쓰던 장갑보다는 안 좋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만들었으니 일단은 그걸로 만족해 주세요. 나중에 더 좋은 재료가 생기면 제대로 만들어 드릴 테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이렇게 좋은 걸 만들어 줘놓고 안 좋다니. 난 이전에 쓰던 것보다 이게 더 마음에 드는데?”

“에이, 무슨!”

“정말이야. 자신감을 가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진하의 대장장이 기술 능력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무엇보다 인챈트 스킬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역시 데리고 오길 잘했어.’

오진하는 내 칭찬이 쑥스러운지 애써 두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만족한다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동안 이걸 만드느라고 잠을 못 잔 거야?”

“뭐. 그것도 있고. 이번에 계약자들을 소탕하면서 사용하던 갑옷이 깨져 버렸거든요. 그래서 갑옷 수리도 하고 다른 장비들도 한 번씩 손을 좀 봤죠.”

“잘했네.”

곧 대전쟁을 치르게 될 텐데 장비 정비는 필수였다.

“그런데 인계 때문에 며칠은 못 들어온다고 하더니. 전부 다 마친 거예요?”

“다 끝냈지.”

오진하의 말에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보다 물어볼 게 있어.”

“물어볼 거요?”

“혹시 신성력을 보관할 수 있는 구슬을 만들 수 있나?”

“뭐. 재료만 있다면 만들 수야 있긴 한데…….”

“근데 구슬 부피량보다 신성력을 많이 보관할 수 있어야 해.”

“얼마큼이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마법으로 빛의 구체를 띄워 보여 주었다.

“기본 크기는 이 정도로, 물론 이건 압축한 크기이고. 실제로 들어가야 하는 신성력의 양은 대략…….”

구우우웅-

엄청난 크기에 빛의 구체가 복도에 번쩍였다. 다만 부피가 워낙 커 둘이 서 있기도 불편했다.

“크르릉.”

다칼은 눈을 찌푸리더니 거실로 자리를 이동한다.

하지만 이전처럼 빛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평생 빛을 거부해 왔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일 뿐.

이전에 태양의 일부를 집어삼키며 다칼은 빛의 내성도 일부 얻은 상태였다.

스아아-

소환했던 빛의 구체를 없애곤 말을 이었다.

“최소한 내가 보여 준 정도는 구슬 안에 들어가야 해. 쉽게 배터리를 만든다고 생각해.”

“음. 방금 보여 준 양을 버틸 수 있는 자그만 구슬을 만들려면 재료비가 장난이 아닐 텐데. 일단 몇 개가 필요한대요.”

“우선은 한 개. 실제로 작동이 되는지 확인해 봐야 되거든.”

“작동? 대체 또 뭘 하시려고…….”

나는 곧바로 거래 큐브를 꺼내 그에게 오백만 포인트를 건네주었다.

“그 정도면 재료값으로 충분하겠지?”

오진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오히려 재료값치곤 많은데요……?”

“나머지는 수고비니까 가져.”

그에게 장갑도 선물 받았기 때문에 일이백만 포인트를 더 얹어 준다고 해서 전혀 아깝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지?”

“음. 일단 재료만 있으면 얼추 한두 시간이면 만들 걸요.”

“으음.”

오진하의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고 일어나서 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한 시가 급했다.

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뗐다.

“급한 일 같은데.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밤을 새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조금 더 늦게 잔다고 해서 죽거나 하진 않으니까.”

“그럼, 부탁하지.”

“아. 근데 우선은 한 개부터 만든다고 하는 걸 보니 여러 개를 만들 심산 같은데. 구슬이야 만든다치고 신성력은 전부 어디서 채우려고요?”

나는 그에게 씨익 웃으며 답했다.

“다 방법이 있지.”

* * *

오진하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필요한 재료들을 금방 사 오더니 내가 원하는 물건을 뚝딱 만들어 냈다.

우웅, 우웅-

나는 신성력이 비어 있는 구슬을 가지고 다시 밖을 나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오진하가 뒤를 따라나섰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던 다칼도 바깥에 산책을 나오고 싶었던 것인지 나와 동행을 했다.

뚜벅, 뚜벅, 뚜벅.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그때.

“신전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여기로 가면 성기사들 훈련장이 나올 텐데. 설마 구슬을 그 사람들한테 쓰려고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오진하가 여러 개 질문을 해 왔다.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입을 뗐다.

“금방 알게 될 테니 조용히 하고 따라와.”

“예.”

곧 훈련장에 도착한 나는 남아서 훈련을 하고 있는 성기사들을 집합시켰다.

그중에 최고참인 성기사가 나와 내게 묻는다.

“교황 성하께서 이곳에는 무슨 연유로…….”

“내가 와서 불편합니까?”

“아, 전혀 아닙니다!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역대 교황님들 중에 훈련장을 직접 찾아오신 분은 없거든요.”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저희들의 도움이요? 설마 성역이 뚫린 겁니까……?”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이내 최고참 성기사가 나서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황 성하, 뭐든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악마 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단하겟나이다.”

“아직 쳐들어오지 않았으니 일어나세요.”

“그럼……?”

나는 최고참 성기사에게 오진하가 만들어 준 구슬을 건넸다.

“그것 좀 충전해 주십시오.”

“예……? 그게 무슨.”

이해를 하지 못한 그에게 다시 한번 더 얘기했다.

“그 안에 신성력을 넣어 달라 이 말입니다.”

“아…… 그것 때문에.”

“악마들을 벌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런 거라면.”

그는 악마라는 말에 크게 반응을 보이며 구슬을 손에 꽉 쥐었다.

“흐흡!”

최고참 성기사가 먼저 신성력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비어 있던 구슬에 점점 빛이 차오르는 중이었다.

잠시 후, 그는 지친 기색으로 구슬을 건넸다.

“하아~.”

털썩!

그는 신성력을 전부 쏟아부은 것인지 풀썩 주저앉았다.

“그 정도면 됐습니까?”

구슬을 확인한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다른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뒤에 있는 분들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성기사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왔다.

…….

…….

…….

…….

훈련장에 있던 여덟 명의 성기사들이 땅에 드러누운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완벽하게 완성된 구슬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오진하가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신성력을 어떻게 채울까 생각했는데. 역시 준석 씨답습니다.”

“나답다고? 그거 왠지 욕같이 들리는데.”

“아, 아뇨! 욕이라뇨. 칭찬입니다. 칭찬! 하하하.”

왠지 욕을 하는 것으로 들렸지만 그냥 넘어갔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완성된 구슬을 테스트해 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내 나는 훈련장 앞에 있는 신전으로 이동했다.

신전 안에 들어서자, 그 앞에 거대한 석상이 눈에 띈다.

석상은 신좌 에페르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

겉보기엔 전시용으로 세워진 석상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실 이 석상은 단순한 전시용이 아니었다.

고대 신성병기 라그넬.

본래 왕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병기.

하나, 오랜 세월 그 존재가 잊혀 이것이 라그넬인지 아는 사람조차 적었다.

무엇보다 라그넬을 움직이려면 거대한 에너지원이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바닥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거라면…….’

나는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구슬을 가지고서 석상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구슬이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곧 구멍에 손을 넣어 구슬을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딸각!

안에 있는 어떤 장치가 구슬을 고정하고 놓아주질 않았다.

몇 초 뒤.

지잉, 쿠구구구-

오랜 세월 굳은 채로 잠들어 있던 라그넬이 두 눈에 광채를 빛내며, 몸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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