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98화
198화 빛의 서 (2)
탓, 치이익!
빛의 서를 손으로 잡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동시에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에서 어둠이 튀어나와 빛의 서를 노렸다.
“그만!”
빛의 서에 접근하던 어둠이 멈췄다.
그러나 여전히 기회를 노린다.
“당장 있던 곳으로 돌아가.”
명령에도 들어먹질 않자 지배력을 높여 다시 한번 얘기했다.
“돌아가라.”
스르륵-
그제야 어둠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방금 전에 나타났던 어둠은 수많은 영혼을 흡수하고 반지를 지배하는 본연의 자아였다.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본연의 자아이건만.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그만큼 빛의 서가 가진 힘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어둠과 빛은 도저히 상생할 수 없는 관계.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비단 반지만이 아니었다.
치이이-
아까 전부터 손에 열기가 피어나고 있는 것은 어둠에 적응한 몸이 빛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빛의 서가 품고 있는 빛이 평범했다면 아무런 해가 되지 않겠지만, 태초의 빛 일부가 그 안에 스며들어 있어 매우 강력하고 특별했다.
‘S급 성약을 복용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빛의 서가 뿜어내는 힘을 더 큰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유지 중인 어둠의 구체를 바라봤다. 마나를 떠올리자 어둠은 사라지고 다시 푸른빛을 띠는 구체로 돌아왔다.
정확하게는 근원의 힘과 섞인 마나였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군. 다만 조금씩 입자가 대기에 흩어지고 있어.’
전부 힘을 잃기 전에 행동에 옮겨야만 했다.
사아악-
곧장 구체를 움직이며 손에 쥐고 있는 빛의 서를 공중에 내던졌다.
이내 그 자리를 지나던 구체가 괴물처럼 입을 벌려 빛의 서를 삼켜 버렸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파짓! 파지짓!
구체가 떠 있던 대기에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근원의 힘과 섞인 마나가 빛의 서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쾅!
순간 둘 사이에 큰 폭발이 일어나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쩌저적-
마법 폭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단단한 벽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버렸다.
그런 일이 한 번에 그쳤으면 모를까.
이후에도 연달아 충격파가 터지며 이젠 땅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 신경전을 벌였다가는 주변이 남아나질 않겠어!’
자칫 보물고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둘의 힘 싸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신경전에서 승리하여 빛의 서가 당신을 인정하였습니다.]
“후우~.”
나는 다 갈라진 천장을 올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충격이 가해졌다면 이곳부터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근원의 힘이 섞인 마나와 빛의 서를 떼어 내곤 공중에 떠 있던 빛의 서를 손으로 끌어왔다.
더 이상 열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빛의 서를 얻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회귀 전에도 자주 애용했던 물건이기 때문에 사실 반가운 마음도 컸다.
빛의 서는 난이도를 불문하고 획득할 수 있었다.
다만 누군가가 그것을 얻게 된 순간 다른 난이도에서는 빛의 서를 얻을 기회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결국엔 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물건이란 소리였다.
‘그나저나 저건 어떻게 처리하지?’
나는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마나 구체를 쳐다봤다.
빛의 서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힘이 남아 있었다.
‘희한하군. 보통 이쯤 되면 마나가 다 흩어져 버려야 하는데. 근원의 힘이 섞여서 그런가? 유지력이 좋아.’
이대로 대기에 흘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기껏 근원의 힘을 끌어와 놓고 없애기에는 아쉬웠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근원의 힘을 불러오는데 성공했지만 만일 다음에 시도했을 때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럼,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근원의 힘을 불러오기 위해 무한정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자리걸음을 걷게 되는 것.
‘이 순간을 후회할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근원의 힘을 직접 흡수하는 건 어떨까.
그럼 굳이 근원의 힘을 불러오기 위해서 무식하게 마나를 끄집어낼 필요도 없고 곧바로 그 힘을 가져다 쓸 수 있었다.
근원의 힘이 섞인 마나를 아주 잠깐 사용한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근원의 힘이 섞인 마나는 세상 그 무엇으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등가교환처럼 말이지.’
또한 그 무언가로 변화시켰을 때 마치 본연의 힘을 다루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까 전에 구체를 어둠으로 바꾸었을 당시.
평소와 똑같은 어둠을 다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둠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더 무겁고 짙은 느낌이었지.’
착각인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기 위해 구체를 다른 것으로도 바꾸어 보았다.
화아악! 쩌저적!
불과 얼음으로 변화시켰다가 이내 빛과 바람으로도 변화시켜 보았다.
그러며 확신했다.
‘근원의 힘은 본연을 끌어온다.’
여태껏 내가 사용해 왔던 힘들은 본연이 아닌 비슷한 것을 흉내 내었을 뿐이다.
만일 이 힘만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데카인을 처단하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아니. 이것만 있으면 데카인을 반드시 처단할 수 있으리라.
‘그러려면 이 힘을 지배해야 돼.’
우선 힘을 흡수해 사용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
외부로 끄집어냈던 마나를 다시 육체 속으로 집어넣는 짓은 회귀 전에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애초에 보통이라면 시도할 생각조차 못할 거야. 대기에 떠도는 마나는 곧바로 다른 물질들과 섞여 오염되기 마련이니까.’
그런 마나를 다시 흡수했다가는 체내에 있는 마나 그릇이 크게 불안정해질 수도 있었다.
물론 자의적으로 정화 작업을 거치면 되겠지만 그동안 마법 운용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정화 과정에 따로 분리한 불순물을 안에서 제거하거나 밖으로 배출해 내야 하는데 그 마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점을 알면서도 흡수를 시도하려는 것은 그만큼 근원의 힘이 탐나기 때문이었다.
‘영 아닌 것 같으면 바로 배출해 내면 돼. 시간이야 좀 걸리긴 하겠지만. 시도해 보는 거야.’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서 남아 있는 구체에 손을 댔다.
이내 체내 속에 있는 마나 통로로 흡수를 시도했다.
츠즈즛!
“크윽!”
손끝에서 바늘을 찌른 것처럼 알싸한 고통을 느꼈다.
통로로 천천히 들어오던 힘이 크게 반발을 일으켜 다시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범접할 수 없는 힘을 흡수하려고 했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스읍…….”
손끝이 따가운 느낌이 쉽사리 가시질 않는다.
“역시 안 되나…….”
결국 근원의 힘을 흡수하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대신 내게 다른 보상이 주어졌다.
[잠깐이지만 근원의 힘을 끌어다 사용하였습니다.]
[진리의 일부를 쫓았습니다.]
[길(道)의 특성이 발동합니다.]
[대량의 마나가 올랐습니다!]
그냥 마나를 얻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 온 목적은 빛의 서를 얻는 것이었지, 깨달음을 얻어 근원의 힘을 흡수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니까.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구체는 아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만 나가 볼까.”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유유히 방을 빠져나갔다.
* * *
신전의 지하에서 올라온 직후.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아까 전에 미뤄 뒀던 일을 떠올리곤 다시 교황실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괜히 일을 내일로 미루어 두었다가는 더 귀찮아지기 만하지.’
빨리 끝낼 생각으로 교황실의 책상에 앉은 지 30분.
“으으읏!”
나는 뒷정리를 끝내자마자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마침 공중에 떠 있는 빛의 서에 머리를 살짝 부딪쳤다.
“그러고 보니…… 책을 얻고 나서 한 번도 안 열어 봤네.”
회귀 전에 얻었던 빛의 서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을 보면 분명히 알지 못할 새로운 힘이 깃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내 빛의 서를 가슴 높이로 내려 책장을 펼쳤다.
화려하게 빛나는 겉표지와 다르게 속은 빛나지 않고 대신에 빼곡하게 글씨가 채워져 있었다.
빛의 서는 최상위 빛마법이 각인되어 있는 일종의 마법책이다.
하지만 보통 마법책과 달리 내가 그것을 직접 배우는 것이 아니고 책에 있는 마법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느낌이었다.
책이 없으면 스킬도 사용할 수 없다.
스킬에 정해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빛의 서에 각인된 마법은 총 다섯 개.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괴력을 담고 있는 만큼 쉬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얻은 빛의 서에는 그런 마법이 일곱 개나 존재했다.
‘두 개가 추가됐어. 그런데 적힌 문장을 전혀 읽을 수가 없단 말이지.’
빛의 서의 새겨진 마법은 책에 적힌 문장을 주문의 형태로 끝까지 외워야만 발동이 된다.
본래라면 새로 생겨난 마법들 말고도 나머지 마법들 또한 적혀 있는 문장을 읽을 수 없어야 했다.
빛의 서에 적힌 글씨는 천사들도 읽을 수 없는 빛의 언어.
회귀 전에는 상층부에 존재하는 만물의 해석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빛의 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전에 사용했던 마법들의 문장은 자연스럽게 읽을 수가 있었다.
‘애초에 달달 외워서 안 보고도 주문을 외울 수 있긴 하지만…… 저절로 눈으로 인식되다니. 회귀 전의 기억이 영향을 끼친 건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짚이는 점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마법들이 추가된 거지?’
당장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등가교환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됐어.’
하지만 빛의 언어를 읽으려면 상당한 마나가 소모될 것으로 추측되는 만큼 그릇이 충분히 채워졌을 때 시도하기로 했다.
‘집에나 가자.’
나갈 채비를 마치고 문을 열려는 순간.
똑똑똑!
먼저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철컥-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문을 열자 기사 한 명이 다급해 보이는 표정으로 교황인 나를 향해 예를 취해 왔다.
“무슨 일이죠?”
곧 고개를 치켜든 기사가 말을 이었다.
“큰일입니다! 성녀님께서 펼쳐 뒀던 성역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금이 가고 있다고요?”
“예!”
어제만 해도 멀쩡했건만, 무슨 변화가 생겨난 것이 틀림없었다.
“외부에 어떤 변화라도 있었습니까? 아니, 직접 내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기사를 대동한 채 서둘러 밖으로 나가 보았다.
“보십시오! 곳곳에 금이 가 있습니다!”
“…….”
기사의 말대로 성역이 불안정해져 있었다.
‘그냥 금이 갔을 리는 없어.’
펄럭!
타엘의 날개를 사용해 하늘로 날아오르자 건물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확 트인다.
이내 동서남북 방향의 성곽을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변화가 생겼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눈앞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층부에 대악마가 넷이나 나타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