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195화 (195/230)

회귀한 탑 등반자 195화

195화 교황 선출식 (1)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더 얘기했다.

“교황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웅성웅성-

조용하던 회의실이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쾅!

추기경 한 명이 주먹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곳이 장난하는 자리인 줄 압니까!?”

나는 추기경의 얼굴을 확인하며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아렌 추기경은 제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이나 봅니다?”

뚫어지게 쳐다보니 아렌은 살짝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설사 장난이 아니더라도 주교가 곧바로 교황이 된다는 얘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옳소! 규율과 절차라는 게 있는 법! 애초에 교황이 될 자격은 추기경급에게만 주어진다는 걸 모른다 말입니까?”

“압니다.”

“안다면 사람이!…….”.

“단! 규율에 이런 말도 쓰여 있죠. 공적치 50만을 달성할 경우에 교황 선출식에 참여할 권한을 얻는다.”

“음. 확실히 그런 규율이 있긴 했지.”

조용히 있던 알베스토가 입을 열자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공적치 50만을 달성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 그렇기 때문에 역대 교황 중에 공적치로 자격을 얻어 교황이 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 앞으로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알베스토가 나를 바라봤다.

“우선 하신 말씀을 증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공적치 50만을 달성했는지 달성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워볼을 꺼냈다.

그리고 워볼에 적힌 숫자를 추기경들에게 보여 주었다.

“말, 말도 안 되는……!”

“이럴 수가!”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510,459]

공적치 51만은 이곳에서 수십 년을 지내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였다.

이들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놀라는 것이었다.

나도 대마물을 잡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른 시일 내 50만을 넘기지 못했으리라.

워볼을 보고서 곧바로 수긍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건 가짜입니다! 공적치를 조작하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아시오!”

아렌 추기경이 워볼에 대해서 부정하고 나서자 알베스토가 인상을 구기며 그를 째려본다.

“아렌 추기경, 적당히 하시오. 워볼을 조작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대도 잘 알 텐데?”

“하지만!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자가 교단이 들어온 지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공적치 50만을 넘겼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냐고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엘리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충분히 가능하다니. 그게 무슨…….”

“아렌 추기경, 준석 주교가 교단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때 회의에 참여했으니 당연히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준석 주교가 50만을 달성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준석 주교는 대악마를 처치한 공으로 사제를 건너뛰고 주교가 됐어요. 그리고 이번에 에펠 왕국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큰 활약을 했죠. 덕분에 백성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아렌은 그녀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성녀님께서 가장 큰 활약을 보이셨죠. 지금 저희가 이곳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분의 은혜 덕분 아닙니까!”

나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유희가 없었다면 아직까지 피 튀기는 전쟁을 이어 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성녀님께서 활약하신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다만 준석 주교가 대마물을 처치해 왕성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엘리자는 확실하게 나를 밀어주고 있었다.

자기도 교황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서로에게 투표하기로 했던 것치고는 상당한 호의를 보여 주었다.

“아무튼.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도 인정 못 합니다!”

아렌 추기경과 함께 대여섯 명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안 되겠군.’

드르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종알종알, 말이 많네.”

“뭣이!? 준석 주교! 그게 무슨 무례한 말인가!”

“왜 교단의 규율도 지키지 않는 놈에게 내가 굳이 예의를 차려야 하나?”

내가 강하게 나가자 아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자격은 증명했고. 더 이상 이걸로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교황 선출식은 오늘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성녀님 덕분에 시간을 벌었지만 끝끝내 전투가 치러지겠지. 분명 수많은 희생이 따를 걸세. 그런 혼돈의 시기에 만일 교황 자리가 비어 있다면 백성들이 큰 불안에 떨지 않겠나.”

알베스토가 내 말에 찬성하자, 이어서 십수 명이 넘는 추기경들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외에 반대 의사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찬성표가 다수를 이루었다.

“찬성이 많으니, 그럼 곧바로 선출식을 진행하도록 하죠.”

교황 선출식은 투표를 통해 진행되며 가장 많은 표를 가진 자가 교황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내 나는 추기경들과 함께 회의실을 벗어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투표는 신전 안에 있는 거룩한 방에서 치러졌다.

쿠웅-

거룩한 방은 교황 선출식이 치러질 때를 제외하곤 개방되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방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신자들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투표가 치러지기 전.

“준석 주교, 잠깐만 이리 와 보게.”

알베스토가 따로 나를 호출했다.

안 그래도 알베스토에게 할 말이 있던 참인데.

잘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편히 말씀하십시오.”

“흐음.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질문이 있네.”

“어떤?”

“그대는 교황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뭔가?”

내 의중을 듣고 싶은 건가.

여전히 알베스토는 교단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를 등에 업는 건 교단을 등에 업는 것과도 같다.

‘이 자의 뜻에 따라서 내 미래가 바뀌겠지.’

알베스토는 등반자가 아닌 에펠 왕국의 한 백성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게 등반자가 원하는 것과는 상반되거나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는 그것에 맞춰서 이유를 말할 수도 있었지만 끝내 그러지 않았다.

“얻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얻고자 하는 것? 그게 무엇인지 물어도 되나?”

“빛의 서.”

알베스토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대가 어떻게 빛의 서를 알지?”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빛의 서에 대해서 아는 인물은 극히 드물 텐데.”

나 또한 회귀 전에 교황이 되고 점지 스킬 덕분에 알게 된 것이지 그 존재에 대해서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허허. 나도 그저 듣기만 했을 뿐이네. 에펠 왕국 어디엔가 빛의 서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빛의 서가 있으면 사람이 하지 못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지.”

기적이라…….

얼추 맞는 말이다.

빛의 서에 담긴 마법들은 하나같이 기적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빛의 서를 얻기 위해선 교황이 되야 한다라…… 그럼 자네는 빛의 서를 얻고 나면 무얼 할 생각이지?”

“전쟁에서 이겨야겠죠.”

“만일 자네가 교황이 되면 바로 다음 층으로 향할 수 있을 터인데. 굳이 전쟁을 치르겠다고?”

“예. 다만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저는 저를 위해서 전쟁에 참여할 겁니다.”

전쟁 얘기가 나오고 나서부터 그의 낯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알베스토가 내게 물었다.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가?”

“피해가 있겠지만 반드시 막아 낼 겁니다.”

그래야 빛의 서 말고도 다른 히든피스를 얻어 낼 수가 있었다.

“음. 내 질문은 여기서 끝이네. 혹시 따로 할 말이 있음 하게나.”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만일 제가 아닌 그쪽이 교황이 된다면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교단의 성기사들을 최대한 중앙에 모아 주십시오.”

“중앙 말인가? 왜지?”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흠…… 알겠네.”

다행히 금방 수락을 해 주었다.

“다들 모여 주십시오!”

투표를 진행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알베스토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습니까?”

“사뮤엘이 자네한테 고맙다고 전달 좀 해 달라더군. 덕분에 오해가 풀려 다행이라고.”

“그냥 돕고 싶어서 도왔을 뿐입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 당시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나도 자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네. 악마와 계약을 맺은 놈들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전부 자네가 나서준 덕분이야.”

“알베스토 추기경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그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녀석들을 소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자, 투표를 시작합니다!”

나와 알베스토는 부름 소리에 발걸음을 뗐다.

이내 한 명씩 투표함에 들어가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함과 투표지에는 특별한 각인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스킬사용 및 조작이 불가능했다.

이내 옆에서 같이 대기 중이던 엘리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희가 한 약속 잊지 않았죠?”

“덕분에 원하던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동맹을 맺었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어차피 자신한테는 투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표를 진심으로 도와준 그녀에게 줄 생각이었다.

“다음 사람!”

곧 내 차례가 다가왔다.

투표함 안으로 들어가 예정대로 엘리자의 이름을 새겨 넣고 나왔다.

이후 다른 사람들의 투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나 흘렀을까?

“투표를 종료하겠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투표를 마치고 나오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서 유일하게 회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을 쳐다봤다.

곧 투표함에 넣은 결과물이 벽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띄워지고 그 옆에 표수가 나온다.

그러나 표수는 차례대로 공개되기 때문에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맨 아래에 위치해 있어 가장 뒤늦게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개되기 전에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앞서 공개된 자들의 표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궁금한 표수는 알베스토의 표수였다.

교황 후보 중에 가장 유력한 후보인 만큼 그의 표수에 따라서 희비가 갈린다.

‘드디어 알베스토 차례다.’

“어?”

정말로 예상외에 결과가 나와 버렸다.

웅성웅성.

결과를 보고 믿지 못하는 건 다른 추기경들도 마찬가지였다.

‘알베스토가 0표라고?’

아무리 못해도 10표 이상은 받아야 할 사내가 1표도 받질 못했으니 커다란 변수가 발생한 셈이다.

‘받지 못한 게 아니야. 스스로 교황이 되길 포기한 거지.’

알베스토를 따르는 자들은 알베스토의 말이라면 뭐든 따르는 인간들이다.

만일 그중 몇 명이 배신을 했다면 저런 표수가 나올 리가 없다.

‘그리됐다면 애매한 숫자가 나왔겠지.’

그런데 0표가 나왔다는 것은 알베스토가 자기 대신 다른 누군가를 찍었다는 뜻이었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표수가 공개된다.

점점 웅성거림은 커져 갔다.

알베스토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그의 추종자들의 표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끝에 이르러.

꿀꺽.

드디어 나의 표수가 공개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