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93화
193화 대전쟁 (5)
라자는 에페르 신전 기도실에 있는 성검을 흘끔 내려다봤다.
그녀가 손을 뻗자, 성검은 그 손길을 거부하듯 강한 진동을 일으키며 신성력을 내뿜었다.
푸시이익!
손끝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쯧. 그까짓 성녀가 뭐라고.”
라자는 인상을 구긴 채로 화상을 입은 손을 거두었다.
이내 등에서는 악령이 튀어나와, 그녀에게 무언가를 속삭인다.
“이런 같잖은 것들이 정말!”
교단에 숨어 있는 악령 계약자들이 소탕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녀는 곧장 대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끼이익-
누군가가 먼저 기도실의 문을 열었다.
“라자 주교.”
“라오그! 네놈이 여긴 무슨 일로…….”
“이젠 예법도 신경 쓰지 않는 건가. 하긴. 악령과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들켜 버렸으니 뭔들 중요하겠어.”
라자는 굳은 얼굴로 입을 뗐다.
“악령과 계약?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금 제게 앙갚음을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건가요?”
“수작?”
스릉!
라오그는 검을 뽑아 들어 그녀의 목을 노렸다.
사아악!
라자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신성 마법으로 반격을 가했다.
여섯 갈래로 나눠진 빛줄기가 라오그에게 향했다.
콰가가강!
라오그는 날아든 공격을 모두 받아치며 그녀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역겹군. 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뭐를 말인가요?”
“그만 연기하시지. 어차피 네놈이 악령 계약자라는 사실은 이미 증거로 밝혀졌다. 여기서 도망쳐 봐야 소용없다는 의미야.”
“…….”
그 말을 듣곤 라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왜. 이제라도 참회할 생각이 드나?”
“참회? 푸훕……! 흐하하핫! 하하하하하하!”
라오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드디어 미치기라도 했나.”
한참을 웃던 라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라오그를 바라봤다.
“참회는 얼어 죽을.”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내는군.”
“라오그 경, 당신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뭐?”
“내가 보기에 교단은 썩었어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의를 외쳐 대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 자기들 욕심 때문에 움직이는 놈들뿐이지. 그런 그들과 내가 대체 뭐가 다른 거죠? 말씀해 보세요, 라오그 경.”
라오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의 소신을 얘기했다.
“그쪽 말대로 사람은 정의라는 말 뒤에 욕심으로 움직이는 존재이지. 그러나 행동에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 정의 뒤에 숨어 욕심을 채우는 인간도 좋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말 못하지만. 악마와 손을 잡아 에펠 왕국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네년보다는 그래도 그들이 낫다고 보는데.”
“흐응~ 뭐. 결국에는 자기합리화인가요? 좋아요. 어차피 그냥 보내 줄 것 같진 않으니 소원대로 이 자리서 죽여 드리죠.”
더 이상 라자는 악령을 숨기지 않고 힘을 드러냈다.
“……!?”
콰앙!
무언가 묵직한 것에 맞은 라오그가 기도실 밖으로 날아갔다.
“쿠흡……!”
라오그는 복부를 움켜잡은 채 피를 토했다.
휘리리릭!
라자가 한 손으로 철퇴를 돌리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이내.
스아앗!
순식간에 라오그 앞으로 이동한 그녀가 머리 위로 철퇴를 휘둘렀다.
‘몸이 움직이질 않아!’
처음 맞은 공격이 타격이 컸다.
그때.
칭!
갑자기 끼어든 할버드가 날아드는 철퇴를 막아 냈다.
“휘우~ 손이 다 얼얼하네.”
“당신은!”
할버드에서 레드 드래곤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 거센 불꽃이 철퇴를 들고 있는 그녀에게 들이닥쳤다.
화아아악-
“끄읏!”
오진하의 힘에 밀린 라자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우측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오진하는 접근을 허용치 않았다.
그가 내지른 일격 하나하나에 묵직한 힘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할버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가까이만 있어도 녹아내릴 듯했다.
“치잇!”
이곳에서 전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오진하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괜히 누군가가 더 합세하면 골치만 아파질 거야. 두 놈을 빨리 정리하자.’
라자는 힘을 전력까지 끌어 올리며 철퇴를 꽉 잡았다.
등 뒤로 보이는 어둠은 새하얗게 번쩍이는 철퇴와 대비되었다.
그녀에게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오진하 또한 공격을 받아 내기 위해 필살기를 준비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새 정신을 차린 라오그도 그에게 힘을 보탰다.
“갑니다.”
오진하가 먼저 할버드로 일격을 날렸다.
드래곤 프라이드!
무기에서 드래곤 형상이 튀어나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하아아!”
섬광과도 같은 날카로운 검기가 뒤따랐다.
“어리석은 놈들.”
그리고 라자가 혼잣말을 지껄이며 철퇴를 크게 휘둘렀다.
콰가가가강!
두 간격 사이에 강렬한 충돌이 벌어진다.
쿠구구……
폭발 먼지로 인해 복도가 어두컴컴해졌다.
“쿨럭, 쿨럭!”
라오그가 기침을 하며 빛으로 주변을 밝혔다.
옆에는 켁켁 대는 오진하가 서 있었다.
“괜찮습니까?”
“아, 예.”
이내 둘은 맞은편을 쳐다봤다.
먼지가 걷히자, 드디어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쿠웩……!”
진득한 피를 입에서 토해 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라자는 구멍이 나 버린 왼쪽 가슴을 꼭 부여잡은 채, 독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노려봤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크흐흐…….”
어느새 바닥 아래로 마법진이 생겨나 있었다
“이건!…….”
마법진의 정체를 알아본 라오그가 다급하게 라자에게 달려갔다.
푸욱!
그러나 이미 늦었다.
라자는 스스로 소환 마법진에 희생양이 되었다.
“젠장!”
라오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여전히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오진하가 그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마법진이 뭐 길래.”
“소환 마법진입니다. 곧 이곳에 마물이 들이닥칠 겁니다.”
“그럼, 소환된 마물을 처리하면 그만 아닙니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소환 마법진에서 나오는 마물은 희생의 가치에 따라 변하거든요. 특히 라자 주교 같은 경우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직급은 주교에 불과하나, 신성력이 어마어마했다.
수치로만 따졌을 때는 교단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 신성력 전부가 마물을 소환하는 마법진에 쓰인다면 어떤 괴물 녀석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라오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단언하듯 얘기했다.
“신전에 재앙이 들이닥칠 겁니다.”
“아뇨.”
익숙한 목소리에 둘은 고개를 돌렸다.
신전의 입구에서 유희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유희 씨!”
“둘이 고생했어요. 지금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앞을 나서는 그녀를 보며 라오그가 말했다.
“아무리 성녀님이라고 해도 이미 발동한 마법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희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마법진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아크레이느, 프리바사.”
마치 주문을 외우듯한 그녀가 검을 뽑아 들어 땅에 내리찍었다.
시이이이잉-
그러자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마법진이 새하얗게 정화가 되더니 이내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쨍그랑!
완벽하게 소환 마법진을 파훼한 유희는 뒤로 돌아 말했다.
“아까 뭐라고 하셨죠?”
“…….”
유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자, 라오그는 벙찐 얼굴로 서 있었다.
“역시 사장님 친구답네. 평범하지가 않아. 평범하지가.”
이내 오진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한두 놈 제외하곤 전부 잡아들였어요.”
“혼자서…… 대단하네요.”
“아니에요. 길드원들이 도와준 덕분에 가능했던 거죠. 진하 씨 일행분들도 있었고.”
“후~ 그럼 이걸로 소탕 작전은 끝난 건가.”
계속 긴장해 있던 오진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라오그와 유희도 상황을 마무리하자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를 문득 떠올린 듯 라오그는 유희에게 말을 걸었다.
“성녀님.”
“네?”
“잠깐만 따라와 보십시오.”
유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라오그를 뒤따랐다.
기도실에 들어선 유희는 그에게 물었다.
“뭐. 따로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성녀님께 드릴 것이 있어 이곳에 안내를 한 겁니다.”
“이건…….”
라오그가 그녀에게 보인 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뭔가 아름다운 검이네요.”
“성검입니다.”
“네……? 성검이요?”
“예. 몇백 년 전에 사용되곤 쭉 이곳에 보관되어 왔죠.”
몇백 년 동안 방치되어 온 검 치고는 상태는 매우 깔끔하고 날도 살아 있었다.
‘나도 저런 검 하나쯤 있었으면…….’
성검은 누구라도 탐을 낼 만한 물건으로 보였다.
그런데 라오그가 내뱉은 말은 매우 뜻밖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이제 이 검은 성녀님 거라고 했습니다.”
“이게 제 거라고요?”
“네. 성검은 성녀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 다른 사람들은 이 무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예를 보여 주듯 라오그는 거침없이 성검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성검이 그의 손을 튕겨 내 버렸다.
“보다시피 무기가 접근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성녀는 다르죠. 성녀로서 자격을 갖췄다면 이 무기를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왠지 유희는 시험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만약 이 검을 손에 쥐지 못한다면 자신이 성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선뜻 손이 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피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맞이할 순간이라면 차라리 미리 매를 맞는 것이 나았다.
유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을 뻗었다.
튕겨져 나올 거란 생각과 달리 그녀에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성검에 손이 닿아 있었다.
손으로 검을 집는 순간.
사하아아아!
기도실에 빛이 번졌다.
[위대하고 고결한 성검을 획득하였습니다.]
[성검의 힘이 성녀의 육신에 깃들기 시작합니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고유 스킬 ‘성역’이 강화됩니다!]
…….
…….
…….
무수한 메시지들이 시야를 가렸다.
유희는 메시지에 시선을 두기보다 성검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력한 힘을 전신으로 느꼈다.
‘힘이 넘쳐흘러.’
마치 무적이 된 것처럼 강인해진 느낌이다.
그때.
“성녀님!”
콰가가가강!
기도실 안으로 벼락이 내려쳤다.
라오그는 재빨리 유희에게 몸을 던졌다.
파지지짓!
가까스로 피해 낸 둘은 뚫린 천장을 올려다봤다.
“웬 번개가…….”
콰르르릉-
구멍으로 보이는 하늘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보이고 있었다.
콰가가가가!
그 순간 하늘에서 눈에 보이지 않던 보호막이 깨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리둥절하게 서 있던 유희는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에펠 왕국을 보호하던 결계가 파괴되었습니다.]
[에펠 왕국에 악마 군단이 침습하기 시작합니다!]
‘악마 군단이 침습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메시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유 미션이 주어집니다.]
[에펠 왕국에 침습하는 악마 군단을 어떻게든 막아 내십시오.]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고유 미션? 나 혼자에게만 주어지는 미션인가.’
틀림없었다.
성녀가 되기 전이라면 몰라도 성녀가 된 이후에는 등반자들과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었다.
유희는 그것이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왔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회라고 생각했다.
차이가 벌어져 있는 준석을 따라잡을 기회.
“라오그 경.”
“네, 성녀님.”
“오진하 씨한테 전해 주세요. 뒷일을 부탁한다고.”
그 말을 마치곤 유희는 구멍을 통해 신전 위로 올라갔다.
밑에서 라오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유희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검은 무리가 물결치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면 그것이 악마 군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걸 다 막으라고……?”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미션에 악마들을 전부 처단하라는 말은 없었어.’
그저 막으라는 말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유희는 아까 전에 떴던 메시지를 다시 되돌려보았다.
메시지 중 하나가 고유 스킬 ‘성역’을 강화해 준다는 문구가 있었다.
얼마나 강화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창을 열어 본 유희는 신성력 수치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유희는 굳게 마음을 먹은 표정으로 성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곧 그녀는 전신에 퍼져 있는 신성력을 성검에 전부 쏟아부었다.
츠즈즈즈즛!
주체하기 어려운 정도의 거대한 신성력이 성검에 깃든 신성력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성검 주위로 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유희의 두 눈은 어느새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준비가 끝난 순간, 신성한 보호막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성역!
슈아아아아악!
성검에서 방출된 빛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우산을 펴듯 보호막을 만들어 나갔다.
성역은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자신을 강화시켜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들의 침입을 막아 낼 수도 있었다.
‘엄청나.’
유희는 광활한 크기의 성역을 보며 새삼 성검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일 자신의 힘으로만 성역을 펼치려고 했다면 이 정도 크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성역 레벨이 올랐습니다!]
[성역 레벨이 올랐습니다!]
[성역 레벨이 올랐습니다!]
[성역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
…….
성역 레벨이 무려 9레벨이나 상승했다.
그리고.
[단신의 힘으로 악마 군단을 막아 내는데 성공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웁니다!]
[고유 미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50층 클리어 조건까지 한 번에 충족됩니다.]
[이명의 격이 대폭 오릅니다.]
[고유 미션은 기존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명단에서 제외됩니다.]
[고유 미션은 혼자 진행하는 것으로 순위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보상이 개별로 지급됩니다.]
[클리어 보상이 누적되었습니다.]
[누적된 보상을 지금 당장 지급받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