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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89화 (189/230)

회귀한 탑 등반자 189화

189화 대전쟁 (1)

거무레한 털과 사납게 생긴 금색 눈동자.

곰의 체형을 닮은 마물의 이마에는 피로 각인된 동그라미 표식이 존재했다.

자세히 보면 동그라미 안에 열 개의 다이아몬드와 십자 문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틀림없이 악령 계약자가 소환한 마물이었다.

“빨라.”

전조 현상이 있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빨리 등장했다.

“쿠허어어어!”

눈앞에 있는 마물을 처리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왕성에 마물이 소환되었다는 것은 대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하아~ 소탕을 끝낸 뒤에 나타나던가.”

마침 악령 계약자들을 색출해 내 전부 잡아들이려는 참이었다.

한데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일단 처리하고 보자.”

마물이 더 난리를 피우기 전에 나는 손끝에 마나를 응집시켰다.

다크볼트.

스아아악! 콰앙!

고요하고 빠른 속도로 날아든 구체가 마물 얼굴에 직격했다.

그다지 폭발력은 크지 않았지만 파괴력은 어마 무시했다.

지름 3미터가 넘는 머리가 단숨에 소멸해 버린 것도 모자라 어지간한 공격으론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육신도 절반이 날아갔다.

도망을 치던 사람들이 멍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남아 있는 육신에서 촉수가 꿈틀거리며 재생을 시도하고 있었다.

“추르읍.”

타앗!

그때 다칼이 커진 몸집으로 하늘로 뛰어올라 마물에게 접근한다.

“캬하아!”

육신을 이빨로 거침없이 물어뜯더니 몸에서 어둠을 끄집어냈다.

수아악!

튀어나온 어둠은 순식간에 마물을 에워쌌다.

꿀럭! 꿀럭!

그렇게 마물을 집어삼킨 어둠은 부피를 조금씩 줄여 나가더니 이내 사람만 한 공 크기로 만들어 버렸다.

“카햐압!”

다칼은 그것을 한입에 털어 넣고 오징어를 씹듯이 잘근잘근 씹었다.

“꺼억.”

거하게 트림까지 마친 다칼은 유유히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방금 전에 다칼이 보여 준 힘은 최근에 태양의 일부를 집어삼키며 새로 얻어 낸 능력 중에 하나였다.

처음에는 싸움에 도움이 될까 고개를 갸웃했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럭저럭 쓸 만한 편이었다.

나는 다칼을 힐끗 보곤 다시 현장을 쳐다봤다.

마물을 처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마물을 소환한 악령 계약자를 찾아 추적기를 달아야 한다.

악령 계약자는 교단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왕성 곳곳에 썩은 뿌리가 내리듯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 악령 계약자들끼리는 연락을 주고받을 터.

추적기를 달아 녀석들까지 찾아낼 심산이었다.

등가교환.

악령을 쫓는 마법을 사용하자, 근처에 붉은빛을 띠는 인간들이 서너 명은 존재했다.

‘한둘 정도일 줄 알았는데. 네 명이라…….’

추적기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주머니를 뒤져 확인했다.

오진하가 급할 때 쓰라고 준 건 다섯 개.

하지만 추적기는 한 명한테만 달아 두었다.

같이 일을 저질렀다는 뜻은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네 명을 추적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다시 만날 테니 말이다.

“다칼.”

“캬항?”

“방금 전에 추적기 달았던 놈, 냄새 기억해 둬.”

“킁킁!”

-기억은 해 뒀다만. 추적기를 달았는데 굳이 맡을 필요가 있나?

“암, 있지.”

나는 추적기에 달린 음성장치를 들을 수 있는 물건을 건네며 말했다.

“기다렸다가 무리와 만나는 것 같으면 쫓아가서 처리해. 물론 증거품들을 가지고 오는 것도 잊지 말고.”

-그댄 무얼 할 생각이지?

“대전쟁이 시작됐어.”

-전에 얘기했던 그 일 말인가?

“그래.”

다칼에게는 미리 얘기를 해 둔 적이 있다.

자세하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바빠지겠군.

“바빠지겠지.”

“준석 씨!”

뒤늦게 오진하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교회에 가기로 해 놓고 여기엔 왜 와 계십니까?”

“처리할 일이 좀 있었거든. 그보다 부탁할 게 좀 있어.”

“예?”

나는 오진하가 건네줬던 명단 리스트와 증거품을 다시 돌려주었다.

“이걸 왜 다시 제게 줍니까?”

“너도 이단심판관이잖아.”

“예. 그렇긴 하죠.”

“나 없어도, 소탕할 수 있겠지?”

“예, 예……!? 저 혼자 소탕하라뇨?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까 전까지만 해도 같이 가기로 해 놓고.”

“말했잖아. 일이 생겼다고.”

“이 일보다 중요한 일입니까?”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일이지.”

“후~ 솔직하게 수적으로 한참 불리한 상황에 저 혼자 소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진하의 어깨에 손을 올려 두며 말했다.

“널 믿어. 할 수 있어.”

성장한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으니,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오진하도 나름대로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 결실이 나타나는 중이었다.

“그래도 전력이 부족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칼이 맡은 일만 끝내고 널 도와주러 갈 거야.”

“아우우~.”

오진하가 다칼을 쳐다보며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걱정 없겠네요. 그런데 준석 씨는 대체 어디에 가는 겁니까?”

“서쪽 광장.”

“서쪽 광장이요? 거긴 왜…….”

회귀 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떠올렸다.

비록 이지 난이도였기 때문에 하드와 상황이 다를 수는 있지만 비슷한 사건이 이지. 노말. 하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지금 마물의 등장이 앞당겨진 상태에서 서쪽 광장에서 벌어졌던 일도 연달아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확인할 필요성은 있었다.

아니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테니까 말이다.

“대마물이 소환될 거야.”

굳어진 표정으로 얘기하자, 오진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마물은 알겠는데. 대마물이 뭡니까?”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마물 천 마리가 와도 이기지 못할 강한 놈이란 뜻이지.”

“아~ 잠깐! 그런 놈이 서쪽 광장에서 나타난다고요!?”

“그래.”

나는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계속 설명만 하고 있다가는 시간이 지나 버리겠어.’

더는 어물쩍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시기를 놓치지 전에 움직여야 한다.

“잡담은 나중에 떠들고, 너는 서둘러 대교회에 가 봐.”

“으음…… 알겠습니다.”

오진하는 상황이 긴박하다는 걸 눈치챈 것인지 더는 질문을 해 오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예.”

오진하가 대교회로 향하고, 나는 곧장 서쪽 광장으로 향했다.

다칼은 예정대로 자리에 남아 잔챙이들 정리를 맡았다.

* * *

왕성에서 핫플레이스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쪽 광장에는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그들은 다른 목적이 아닌 경제적 혹은 정치적. 친목 교류를 맺기 위해 나온 이들이었다.

그래서 서쪽 광장을 교류 장터라고도 불렀다.

웅성웅성.

근처 교회 꼭대기에서 차가운 미소로 이들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웃고 있긴. 멍청한 것들.”

그의 이름은 루시펠.

악령 계약자들 중 하나였으나 그는 신분부터 남달랐다.

왕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으며 계약자로서 최적화된 능력과 타고난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에펠 왕국이 교단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긴 하나, 국정을 운영하는 왕족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왕족들의 권한이 미미해 그 존재가 부각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주 철저하게 부숴 주지.”

어렸을 적부터 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루시펠은 교단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왕권을 강화할 속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악마와 손을 잡은 것이다.

서쪽 광장에는 이미 대규모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fkslgjvb,zl…….”

루시펠은 대마물을 소환하기 위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선 대마물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 번째, 수많은 희생양이 필요하다.

두 번째, 마법진이 무사히 발동될 수 있도록 신좌 에페르의 힘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왕성 내부에 악마들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에페르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에페르의 힘이 악마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소환 마법도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아니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악령 계약자들은 어느 신좌의 도움을 받아 에페르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나갔다.

그리고 왕성에 악령 계약자들이 늘어나며 만인에게 사랑을 받던 에페르의 힘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주문을 끝마친 루시펠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늘로써 교단은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땅에 설치된 마법진이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동시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응?”

“뭐야? 이건.”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법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크허어억!”

“으윽!”

마법진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괴로움을 호소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크흐흐, 크하하하!”

그 모습을 본 루시펠은 호탕하게 웃었다.

광장에 있던 이들이 절반 가까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마법진 안에서는 어둠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오오오오-

대마물의 등장이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응?”

루시펠은 고개를 갸웃했다.

머리를 드러냈던 대마물이 다시 마법진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아아아아!

아니.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대체…….”

분명히 소환 마법은 성공적이었다.

아니었으면 대마물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리된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교단 놈들!”

계획을 어떻게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단에서 방해를 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마법진이 발동한 이상 교황이 온다고 해도 취소할 수 없을 텐데…….”

“간단한 문제지.”

목소리에 놀란 루시펠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웬 정체불명의 남자가 지팡이를 든 채로 서 있었다.

“마법진과 연결된 매개체를 끊어 내 버리면 되는 거지.”

“매개체와의 연결을 끊어? 웃기는 소리. 그런 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대비를 했을 거다.”

“보통은 불가능하지. 근데 안 되는 것도 아니야.”

루시펠은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어둠의 기운이.

“네놈, 누구냐?”

그는 대답 대신에 마법을 시전했다.

구우우우웅-

머리 위로 지는 그림자를 느낀 루시펠은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는 전기를 머금은 거대한 발이 떨어지고 있었다.

“젠장!”

다가오는 속도가 워낙 빨라 그는 피하길 포기하고 급히 손을 들었다.

우웅!

어둠의 장막이 루시펠을 보호한다.

그러나.

채앵! 쿠과아아아앙!

“으아아악!”

발은 장막을 부수고 루시펠에게 직격했다.

정면으로 맞은 그는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쿠확!”

땅에 처박힌 루시펠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는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위를 보자 이번에는 전류가 흐르는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치지지지직!

“끄아아아!”

고통에 울부짖던 그의 앞으로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너의 계획은 실패다.”

“크흑, 크흐흐…….”

루시펠은 정체불명의 남자의 말에 낄낄 웃어댔다.

“뭐가 웃기지?”

“실패? 내가 이런 변수도 생각지 않고 움직였을 것 같아?”

루시펠의 몸에서 검게 빛나는 알갱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루시펠은 끊어진 매개체 대신 자신을 매개체로 삼았다.

정체불명의 남자, 아니 준석은 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루시펠이 매개체가 되며 사라졌던 마법진이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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