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82화
182화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우려가 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멈췄던 발을 움직이자,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더 나아가다가는 태양에 몸이 녹아내릴 거다.”
보통은 그렇겠지.
나는 듣는 체하지 않고 그를 지나쳤다.
그러자 뒤에서 이카루스가 말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나?”
‘아니.’
이미 한 번 죽었던 몸.
애초에 죽음이 두려웠으면 목숨을 걸고서 탑을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치이이이…….
잠시 후 발끝부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내성조차 뚫고 뜨거운 열기가 엄습해 왔다.
그저 달리는 것으로는 안 된다.
이내 타엘의 날개를 펼쳤다.
펄럭!
등에 마나를 집중시키고 날개에 힘을 주었다.
파아아앙-
한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수십, 수백 미터 거리를 나아갔다.
동시에 빠르게 주변의 열도 올라갔다.
옆에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뒤따라온 이카루스였다.
그는 위아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헤르메스의 신발과 타엘의 날개…… 범상치 않은 것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몸이 버티질 못하겠지.”
치이이이……!
그의 말대로 온몸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엘의 날개에 마나를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마나를 쏟아부을 여력이 없었다.
만일 등가교환으로 주변의 열을 막아 낸다면 상당량의 마나가 줄어들 것이고.
그리하면 끝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따로 열을 막아 낼 방법이 있었다.
마치 열기에 반응하는 듯한 헬라의 불꽃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헬라의 불꽃 목걸이의 ‘조건부 효과’가 발동합니다!]
화아악!
[불의 장막을 만들어 냅니다!]
[장막 안에서는 적에게 받는 물리. 마법 피해를 모두 무효화시킵니다.]
[장막을 유지하기 위해 마나를 영구로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때론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희생이 따라야 한다.
가지고 있는 마나가 소멸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사히 돌파할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한층 더 태양과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경험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더욱 속도를 높이는 거야.’
우웅!
방대한 양의 마나를 한순간에 방출하여 날개의 성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파아아아앙!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
…….
…….
워낙 속도가 빨라, 시야도 제한적이었다.
더 이상 이카루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말을 전하듯 귓가로 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저 위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오르는 것인가? 괜히 쓸모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이만 포기해라.”
그는 끝까지 포기를 권유하고 멈추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고 해도 끝내 그대가 원하는 자유를 거머쥘 수 없으리라.”
이카루스는 모든 걸 안다는 듯이 지껄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소리쳤다.
“속단하지 말라고!”
변치 않을 거라 생각되는 정해진 운명을 걷는 것 또한 자신이고. 비틀어진 운명을 걷는 것 또한 자신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은 바뀐다.
어느덧 마나가 다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쿵!
그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들이박는 소리가 들렸다.
해머를 맞은 듯 머리가 띵했지만 크게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내 떨구고 있던 고개를 쳐들었다.
“…….”
새로운 풍경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하늘은 우주에 닿을 듯 수많은 별빛이 떠 있고.
시야로도 크기를 담아내기 어려운 거대한 태양이 오래된 돌기둥에 올려 있었다.
돌기둥은 태양의 열기와 빛을 흡수해 테두리에 있는 문양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아름답군.’
저것을 보는 건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푸하아~.”
내내 목을 붙잡고 있던 다칼이 크게 숨을 토해 내며 뭉게구름으로 된 바닥에 착지했다.
다칼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곳이 썬즈 섬인가.
정확하게는 부유섬이었다.
몸에 두르고 있던 불의 장막을 걷어 냈다.
더 이상 뜨겁지 않기 때문에 굳이 유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기어코 도달했군.”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카루스는 내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라.”
나는 조용히 이카루스를 바라봤다.
그를 볼 때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등반자가 여기까지 도달한 일은 없었지. 그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고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딱 그뿐이다. 결국에는 날개가 꺾이고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이카루스.”
이명을 부르자, 그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를 알고 있는가? 남다른 자질을 지녔다는 건 어렴풋이 느껴 알고 있었지만. 이거 놀랍군.”
“전 당신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카루스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를 능멸하는 건가?”
“아뇨. 더 이상 제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건방지구나.”
자유를 추구하는 자 이카루스.
그는 상급 신좌이면서도 자유를 얻지 못한 불행한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카루스는 태양의 신이자 달의 신이 된 르켈라에게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영혼을 속박당하고 영원히 그의 밑에서 일해야 하는 처절한 신세였다.
인간이 우러러보는 신좌라고 해도 다 자유로운 것은 아니란 소리다.
화가 난 듯한 이카루스는 잠시 침묵을 하며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나를 꿰뚫어 보듯 말했다.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있군.”
이카루스는 옆으로 물러서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뜻을 존중하지. 대신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앞을 걸어 나가는 순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자유를 쫓다가 자유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여전히 그는 다가올 위험에 경고를 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러더니 여태와는 달리 조언까지 해 주었다.
“태양을 품고 있는 사자를 조심해라. 특히 사자의 앞발톱에 할퀴면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을 다칠 수 있으니 앞발을 들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곤 피식 웃었다.
이카루스는 인상을 구겼다.
“내 조언이 웃긴가?”
“아뇨. 그저 옛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
“옛 생각?”
“네.”
회귀 전에 이카루스도 저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덕분에 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나는 돌기둥 앞으로 이동했다.
“동행은 여기까지군.”
조용히 뒤따르던 이카루스가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곧 정면부를 지나 뒤로 이동하니 기둥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존재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주홍빛 갈기를 지닌 사자가 팔베개를 한 채로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갈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불꽃은 마치 태양을 연상케 했다.
이카루스가 경고했던 사자가 바로 저 사자였다.
이름은 샤이어.
녀석은 평범한 마물이 아니었다.
르켈라의 힘이 담긴 태양의 일부를 집어삼킨 상위 마물이었다.
힘으로만 따졌을 때는 상층부에 있는 마물들과도 맞먹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크르르…….”
다칼이 녀석을 보며 경계를 했다.
“추릅.”
동시에 입맛을 다졌다.
‘응?’
-저 녀석에게 맛있는 냄새가 난다. 생긴 것도 맛있게 생겼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어딜 봐서 맛있게 생겼다는 거지?’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잔뜩 주름진 얼굴과 온통 근육덩어리로만 이루어진 몸뚱이.
그리고 그 몸뚱이를 뒤덮고 있는 털 갈기와 가까이만 다가가도 입이 데일 것 같은 시뻘건 불꽃은 전혀 맛있겠다는 생각과 연결되기 어려웠다.
-저 녀석은 내게 맡겨라.
먼저 다칼이 싸움을 자처했다.
안 그래도 다칼에게 맡길 참이었는데 말을 아낀 셈이다.
“아까 이카루스가 한 말 들었지? 앞발 공격을 조심해.”
“캬앙!”
-걱정 붙들어 매라!
다칼도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몸집을 최대로 키웠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샤이어에게 기습적으로 어둠을 쏘아 보냈다.
바닥에 있는 뭉게구름을 타고 날아간 어둠이 해일처럼 녀석을 덮쳤다.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샤이어가 몸을 움직였다.
화아아아악!
전신으로 불을 뿜어 둥근 장막을 만들어 냈다.
푸푸푹!
하지만 해일의 형태를 유지하던 어둠이 뾰족한 가시로 변하며 장막을 뚫어 냈다.
“캬하아아아응!”
샤이어가 크게 울부짖는다.
다칼이 속도를 내어 다가갔다.
쿠쾅-!
거구들끼리 부딪치자 충돌음에 이어서 대기에 충격파가 발생했다.
쾅! 콰앙!
불과 어둠이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지지지짓!
찰나, 발생한 스파크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허공에 잔류해 여기저기로 뻗어 나갔다.
파직!
이쪽으로도 스파크 한 개가 튀어 내 앞을 지나쳤다.
다칼과 샤이어의 충돌은 계속됐다.
나는 대체 몇 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근접전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쿵! 콰아아앙!
힘의 여파로 주변의 환경마저도 변화시키고 있었다.
한쪽은 불바다이고 한쪽은 새카만 어둠으로 변질했다.
둘은 대등한 승부를 펼치고 있는 듯 보였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다칼은 마물들 위에 군림하는 신수.
거기다 죽지도 않는 불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승부와 별개로 다칼이 너무 지쳐서도 안 되기에 녀석이 전력을 낼 수 있도록 간접적인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아공간에서 전장의 광휘 토템을 꺼내 다칼에게 던졌다.
“그걸 사용해!”
다칼은 싸우다가 말고 입으로 토템을 받았다.
전장의 광휘 토템은 사용자가 유리한 쪽으로 환경을 바꿔 준다.
그리고 다칼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캄캄한 어둠과 달이 뜬 하늘이었다.
토템의 힘이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시도를 안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잠시 후.
“아우우우우-!”
토템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이 변해 가고 있었다.
토템의 힘은 샤이어 와 다칼이 싸우는 진영뿐만 아니라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끼쳤다.
밝은 빛으로 가득했던 곳이 어두컴컴해지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차올랐다.
“아우우우!”
다칼은 다시 한번 하울링 소리를 내며 입고 있던 만월의 갑주 힘을 외부로 드러냈다.
[동행자가 만월의 갑주 조건부 효과 ‘만월’을 발동합니다!]
만월이 발동되자 다칼의 전신에는 변화가 생겼다.
털 갈기는 더욱 윤기가 반짝였고 몸을 지탱하는 근육도 조금 더 정교해진 느낌이 났다.
무엇보다 가슴에 보름달 문양이 뚜렷이 빛나고 있었다.
[동행자가 ‘만월’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월등히 상승합니다!]
신체 능력이 몇 배로 상승했는지 자세한 수치를 알 수 없었지만.
파삿!
‘사라졌어?’
민첩이 높은 편인 나조차도 순간 시야를 놓칠 정도로 다칼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캬하아앙!”
다칼은 샤이어 뒤에 나타나 짧게 점프를 하더니 앞으로 한 바퀴 회전을 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저건…….’
초승달 형태의 어둠이 칼날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동행자가 조건부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동행자가 만월초식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