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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81화 (181/230)

회귀한 탑 등반자 181화

181화 성녀 (2)

타닥, 타닥-

골목에 자리한 한적한 식당의 마나 전구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굳이 이 새벽에 부르고. 할 말이란 게 뭐죠?”

편복을 입은 엘리자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다 나온 듯 눈꺼풀이 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교황에 대한 소식을 전하려는 거면 늦었어요. 이미 전해 들어서 알고 있거든요. 애초에 왕성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돈데.”

“그런 걸로 부를 거였음 이 새벽에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따로 해 줘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엘리자는 문 쪽에서 난 사소한 바람 소리에 힐끗 고개를 돌린다.

“해 보세요.”

등가교환.

소리 차단 마법을 펼치곤 말을 이었다.

“교단에 악마와 손을 잡은 놈들이 있습니다.”

엘리자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미꾸라지 녀석들은 이전부터 존재했어요. 교단 측에서 놈들을 꾸준히 잡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있죠. 그런데 미꾸라지 얘기하려고 절 부른 거예요?”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단순히 미꾸라지 얘기하려고 그쪽을 불렀겠습니까? 잠투정을 부릴 거면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십시오. 저도 대화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하곤 말 안 합니다.”

이 자리에 카일이 있었다면 내게 추기경께 무슨 말버릇이라며 소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난 지금이라면, 나는 카일을 때렸을지도 모른다.

“하아~.”

엘리자는 자세를 고쳐 잡더니 한층 뚜렷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요. 며칠째 잠을 못 자서 저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했나 봐요. 이제 말해 보세요. 절 왜 불렀는지.”

이제야 제대로 대화가 될 듯싶다.

“악마와 손을 잡은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시해도 놈들의 짓이고. 사뮤엘을 범인으로 몰아 처단하려고 했던 것 또한 놈들의 짓입니다. 아마 다른 교단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해서 잡아들이려고 할 겁니다.”

“사뮤엘? 사뮤엘 주교를 말하는 건가요?”

“네.”

“그분은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닌데…….”

그녀가 사뮤엘을 알고 있다면 훨씬 얘기하기가 수월해진다.

“위에 있는 누군가가 사뮤엘을 잡아들이라 명령했답니다. 아마 추기경들 중 한 명이겠죠. 제가 보기에 추기경들 중에 악마와 손을 잡은 놈이 있습니다. 그 아래 직급 중에도 상당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곳에 오기 전에 기사단장을 포함해 기사 몇 명을 처단하고 오는 길입니다.”

“예, 예……!? 뭐라고요!?”

엘리자는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기사단장을 포함해 기사 몇 명을 처단했다고요.”

“당신!”

그녀는 내게 몸을 가까이 붙이더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속삭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 있어요? 자칫 반역으로 몰릴 수 있다고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편하게 말해도 됩니다. 소리 차단 마법을 걸었거든요.”

엘리자는 내 말을 듣곤 몸을 뒤로 빼며 얘기했다.

“하아~ 지금 엄청 큰 실수를 하신 거예요. 설사 그들이 악마와 손을 잡았다고 해도 처단하는 일은 일반 사도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그런 일은 이단심판관들이 할 일이지.”

나는 곧바로 이단심판관이 가진 배지를 보여 주었다.

본래는 이리 쉽게 보여 주면 안 되는 물건이지만 이미 기사들 눈에 들어간 이상 빠르게 소문이 퍼질 것이다.

하지만 소문이 퍼져도 상관없었다.

이단심판관이라는 직위는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큰 힘을 발휘하지만.

남들에게 알려졌다고 하여 가진 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교황이 죽기 전에 저한테 준 배지입니다.”

그제야 엘리자는 내 행동이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단심판관이라 즉결 처형을 했다고 해도 기사단장을 해치운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증거는 없지만 증인들은 널렸죠.”

“아!”

그것을 목격한 기사들이 한 트럭이나 있었다.

그들이 한 번에 배신을 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엘리자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뭐죠?”

“저쪽에서 칼을 뽑아 들었으니 이대로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러니 먼저 치는 겁니다. 저들이 움직이기 전에. 그쪽은 교단에 발을 뻗고 있는 모든 인맥을 이용해 악마와 손을 잡은 놈들이 제때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아 주세요.”

엘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악마랑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막으라는 거예요?”

“그건 제가 알아서 파악하고 말해 줄 겁니다. 다만 그때까지는 의심 가는 자들 위주로 발목을 잡아 주세요. 그리고 카일 경을 만나 기사단 내부도 의심 가는 자들을 색출해 리스트를 간추려 달라 말하십시오. 아, 제가 해 달라고 말했다고 하지 마시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황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세력다툼이 일어나겠죠. 악마와 손을 잡은 놈들은 그 틈을 노려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시키려고 할 겁니다. 최종적으론 자신의 우두머리를 교황에 앉히려고 하겠죠.”

“으음.”

엘리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상념에 잠겼다.

이내 나를 쳐다봤다.

“여전히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거죠?”

교황이 될 거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즉답했다.

“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좋아. 그쪽이 하자는 대로 할 게요. 단 저도 부탁이 있어요.”

“뭐죠?”

“우선 그쪽이 짠 계획이 뭔지 듣고 말해 줄게요.”

“뭐. 좋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고,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솔직히 계획은 좋은데 그게 말처럼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네요.”

반신반의하는 그녀에게 장담하듯이 얘기했다.

“어떻게든 이루어지게 만들 겁니다.”

여전히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엘리자와 대화를 끝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서로 가는 길이 달랐다.

작별 인사로 고개만 살짝 숙인 나는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았다.

“준석 씨!”

부름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엘리자가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쪽은 뭘 할지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나는 조용히 웃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라자 주교를 파 볼 생각입니다.”

현재로서 가장 구린내가 진동하는 자이다.

엘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라자 주교라면 교황 옆에 있던 수행원 아닌가요? 듣기로 교황이 죽었을 때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하던데. 아!”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더는 질문할 것이 없어 보였기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걷다가 바닥에 비친 달빛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크릉, 크릉.”

달빛의 기운을 받는 다칼은 기분 좋게 그르렁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던 나는 저 멀리 번쩍이는 빛을 발견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빛기둥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끝에 생겨난 문양을 보곤, 저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곧장 알아챘다.

‘역삼각형의 빛.’

유희가 시험을 통과하고 무사히 성녀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회귀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성녀.

그리고 예상치 못한 교황의 죽음.

‘큰 이변이 생기겠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층 더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했다.

유희가 성녀가 된 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 * *

“호외요! 호외!”

한 청년은 사람들에게 신문을 건네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어제, 교황이 시해됐다는 비보를 전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새로운 소식을 접한 사람들 또한 표정이 밝아 보였다.

“성녀가 탄생했대!”

“성녀? 이게 몇백 년 만이야?”

“대체 누구지?”

“드디어 에페르 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뻗으신 거야!”

대체로 성녀의 탄생을 축복하고 있었다.

에펠 왕국의 백성들 입장에서는 성녀가 탄생할 때마다 평화와 번영이 깃들고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 그 녀석 곧 바쁜 몸이 되겠네.”

지금이야 유희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곧 교단이 나서서 그녀를 찾아 나설 것이다.

아님 유희가 직접 그들을 찾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으아~.”

창문 밖을 내다보던 나는 피곤에 절은 목소리에 반응했다.

오진하가 다크서클이 짙은 얼굴로 나타나 입을 열었다.

“부탁하신 물건들 다 완성했습니다.”

“수고했어.”

그가 만든 위치 추적기들은 교단 내에 수뇌부들에게 쓰일 예정이었다.

“그럼 저는 한숨 자러 가겠습니다.”

“그래.”

나는 오진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곤 다시 창문을 밖을 내다보다 슬슬 나갈 채비를 했다.

악마와 손을 잡은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중층부에서 벌어질 대전쟁도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 전에 준비를 해 둬야지.’

“다칼, 따라와.”

콰당탕!

“캬하앙?”

음식에 파묻혀 있던 다칼이 고개만 쏙 내밀었다.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건만. 대체 어딜 가려는 거지?

“히든피스 찾으러.”

-그대 혼자 가도…….

다칼의 목을 붙잡아 위로 끌어올렸다.

“잔말 말고 따라와.”

-놔! 놔라!

나는 음식에 찌든 다칼을 질질 끌고 나왔다.

다칼을 데리고 향한 곳은 왕성 밖이었다.

악마들과 전투를 벌이는 지역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완전 외곽으로 이동했다.

메마른 토지와 가지 밖에 없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이내 특이한 광경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있어야 할 하얀 뭉게구름이 정면을 막아서고 있었다.

“캬항, 컁.”

-온다는 곳이 이곳이었나.

다칼은 와 본 적이 있는 듯하다.

나는 뭉게구름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름이 안개처럼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약 십여 미터를 지나, 앞서 있던 곳과는 다른 새로운 풍경과 마주했다.

마치 천국에 온 듯 바닥은 투명한 물로 되어 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다.

그리고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매우 가까이 붙어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윽고.

코앞에는 뭉게구름으로 된 계단이 생겨났다.

어서 빨리 올라타라는 듯, 뭉게구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내 등을 살짝 밀친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 재촉을 들어주었다.

계단에 올라타자, 침대에 안착한 것처럼 푹신한 감각이 발을 통해 느껴졌다.

그리고 신고 있던 신발의 날개는 뭉게구름과 상호작용을 하듯 크게 반응을 보였다.

치익! 펄럭!

조그맣던 날개가 거대해졌다.

목동의 날개 달린 신발은 거대해진 날개로 나를 계단 위로 인도했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태양과 가까워져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불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금방 몸이 타 버렸을 것이다.

점차 온도가 올라간다.

엘리렌스

불의 내성을 높였다.

그리고 속도를 내기 위해 신발의 기능을 사용했다.

[목동의 날개 달린 신발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효과 증폭’이 발동합니다!]

[효과: 이동 방해 면역, 이동 속도 600%증가, 민첩x6]

“크릉.”

눈치껏 다칼은 내 목을 꽉 붙잡았다.

이내 지면을 발로 디뎠다.

콰아아아아앙!

찰나, 수백 미터를 이동할 만큼 폭발적인 힘이 터져 나왔다.

발을 디딘 자리에는 뭉게구름 계단이 풀썩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휙! 휙!

풍경이 빠르게 지나친다.

조금만 더 있으면 태양과 닿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한 인영이 앞을 가로막았다.

탓! 쾅!

나는 급히 발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서 있는 인영을 바라봤다.

뭉게구름으로 나체를 가린 남성이 사파이어 지팡이를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나타나셨군.’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저 남자는 상급 신좌들 중에 하나인 ‘자유를 추구하는 자’라는 이명을 가진 이카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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