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76화
176화 인듀어 길드와의 혈투 (2)
“낄낄낄.”
김동혁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듯 희희낙락거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나도 무작정 폭탄을 터트릴 생각은 없으니까. 선택지를 주지.”
김동혁은 오른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네놈만 죽거나 아님 수천 명이 죽거나. 어때? 선택하기 쉽지? 킥킥킥.”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녀석은 달라지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면 수상한 짓거리를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리 폭탄까지 설치해 두는 정성을 들일 줄이야.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그가 자신의 패배를 예상하고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캬하아아악!”
다칼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워어~ 펫은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본데. 그렇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 폭탄을 터트릴지도 모른다고?”
-거짓말이 아닌 듯한데. 어떻게 할 셈이지?
나는 등가교환을 사용해 텔레파시를 전달했다.
-녀석이 알아채지 못하게 폭탄을 찾아 제거해야지. 그동안에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어.
사실 말이야 쉽다.
드넓은 왕성에서 폭탄만 찾아낸다는 것은 사막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은 등가교환으로 범위를 설정하고 그 안에 폭탄이 있는지 추격하는 거야. 그리고 찾아내는 순간 원격으로 제거하는 거지.’
그리하면 상당량의 마나가 소모될 것이다.
안 그래도 마나가 절반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바닥까지 드러내면 전투의 양상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와드로 추적하기에는 폭탄 개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어.’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래 봐야 답이 없다는 건 너도 알 텐데. 좋아. 친히 빠르게 답을 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정해 주지.”
그는 양손을 펼쳤다.
“10초. 그 안에 선택하라고.”
곧바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준석 씨, 저희…… 어떻게 합니까?”
오진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의중을 물어보았다.
“정말로 폭탄이 있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준석 씨랑 제 목숨을 주기에도 좀…… 애초에 저흴 죽인 다음에 폭탄을 터트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의 눈빛에는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느껴졌다.
비록 영혼뿐이지만 다시 아내를 얻은 그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이 귀한 건 당연했다.
“5. 4…….”
시간은 흘러간다.
“하아~.”
나는 선택했다.
등가교환.
왕성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폭탄은 경계가 삼엄한 곳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곳은 출입하기가 쉽지도 않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범위를 한정시킨다.’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 수색 범위를 좁혀야 했다.
그리고 마나를 아끼려면 효율을 추구해야 한다.
머릿속에 왕성의 모습을 그리고 경계가 심한 곳은 모두 배제하고 폭탄을 찾아나섰다.
‘찾았다!’
폭탄은 총 세 개.
다른 폭탄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1.”
김동혁이 손가락 하나만 남겨 두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컷 웃어 둬라.’
곧 여유로움 따윈 사라질 테니.
‘제거.’
폭탄 세 개를 동시에 부식시켜 사용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김동혁이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이며 말했다.
“쯧쯧. 선택할 시간을 충분히 줬는데도 결정을 못 내리다니. 그렇다면 대신 내가 선택해 주지.”
그는 주머니에서 기폭장치를 꺼내 들었다.
오진하는 기폭장치를 보자마자 저걸 빼앗자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오진하가 다가서는 것보다 김동혁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 더욱 빨랐다.
“안 돼에!”
오진하는 다급하게 할버드를 집어 던졌다.
캬하아아아앙!
할버드에서 드래곤 형상이 튀어나와 주변 분위기를 압도했다.
김동혁은 메타로스로 방패를 형성했다.
태앵!
할버드가 방패에 부딪치며 붉은 파동이 물결쳤다.
휘리릭!
“……!?”
막으면 멈춰서 떨어질 줄 알았던 할버드는 위로 상승해 방패를 뛰어넘었다.
방심하고 있던 김동혁이 옆으로 몸을 비틀었으나 이미 할버드는 그의 어깨에 도달해 있었다.
“큭!”
다크웨스트림.
이것으로 마나는 바닥이었다.
생각보다 폭탄을 제거하는데 마나가 많이 소모됐다.
하지만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진하의 공격이 뜻밖에 치명상을 입히며 녀석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등 뒤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반응이 없었다.
형태 변화.
[신체적 변화로 인해 골드 블러드로 얻은 능력치가 본래대로 돌아옵니다.]
에이사의 모습을 한 나는 주피로의 단검을 손에 쥐고 삼신용의 반지의 힘을 끌어 올렸다.
[뇌룡이 당신에게 힘을 빌려줍니다.]
파짓! 파지지지!
공기가 떨릴 정도로 살벌한 전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
김동혁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도망치기 위해 두 발을 움직였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르르르.”
다칼의 어둠이 그를 속박하고 있었다.
파지지짓!
전신에 퍼졌던 뇌룡의 힘이 곧 단검으로 모여들었다.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합쳐져 붉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준비가 끝나자마자 녀석을 향해 단검을 올려 쳤다.
뇌격.
파자자자자잣! 쾅!
칼날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실선이 하나의 번개가 되어 녀석의 몸을 두 쪽으로 갈랐다.
“커헉……!”
김동혁은 고유 스킬을 이용해 회복을 시도했다.
‘어림도 없지.’
연뇌격.
대폭 신체 능력이 상승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모든 동작이 가볍고 빨랐다.
하지만 손끝에 모인 힘은 태산처럼 거대하고 해일처럼 강력했다.
쿠콰가가가가!!
검격을 휘두를 때마다 주위에는 거센 풍압이 일었다.
찰나 수백 개의 붉은 실선이 그의 몸에 새겨졌다.
“으어어…….”
푸확!
짓이겨진 고깃덩이처럼 조각난 몸둥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녀석이 또다시 부활할지 모르기에 주피로의 단검에 깃든 다른 속성의 힘을 밖으로 끌어냈다.
화르륵!
칼날에 홍염의 불꽃이 타올랐다.
삼신용의 반지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룡이 당신에게 힘을 빌려줍니다.]
이내 불꽃이 전신을 휘감았다.
나는 화룡이 빌려준 힘을 손끝에 모아 바닥에 방출했다.
화아아아악!
바람이 불어와도 꺼지지 않을 불꽃이 남아 있는 잔해를 전부 태워 버렸다.
그리고 형태 변화를 풀고서, 조금은 회복된 마나로 소울브링을 시전했다.
촤르르!
허공에 차원의 공간이 열리며 끝이 뾰족한 쇠사슬이 튀어나왔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쇠사슬은 김동혁이 남긴 잔해를 겉돌았다.
잠시 후.
그오오오-
쇠사슬에 이어 차원의 공간에서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망령이 나타났다.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망령은 손을 뻗어 잔해에 있던 김동혁의 영혼을 끄집어 냈다.
“폭탄이 터지지 않았어? 대체 언제 폭탄을 제거한 거지? 내가 졌다고? 정말로 진 거야?”
영혼만 남은 그는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으어어어-
“뭐, 뭐야?!”
망령과 마주한 김동혁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망령의 손에 붙잡혀 되돌아왔다.
김동혁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놈만 아니면 내가 이렇게 될 일은……!”
내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망령은 그를 다시 잡아끌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긴. 보면 몰라? 어딜 가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제불능을 재활용해 주려는 거지.”
우우우웅! 우우우웅!
아까 전부터 어둠의 반지가 진동을 보내오고 있었다.
어서 빨리 자기에게 먹잇감을 달라고 보채는 것이었다.
‘그럼 소원을 들어줘야지.’
“먹어 치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둠의 반지는 김동혁에게 죽음의 손길을 내뻗었다.
“으으, 으아아악!”
생전에 두려움이 없던 그조차도 지금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저리가! 저리 가라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 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 해 보지만 결국에는 무기력하게 어둠의 반지에게 먹혀 버렸다.
그는 다신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헤매다 끝내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버리게 되리라.
[어둠의 반지에 변화가 생깁니다.]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 ‘고속캐스팅’이 강화됩니다.]
[효과가 강화됨에 따라 명칭이 ‘초고속캐스팅’으로 변경됩니다.]
‘초고속캐스팅?’
이전보다 캐스팅을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뜻인가?
‘나중에 사용해 봐야겠군.’
우선은 뒷수습이 먼저다.
나는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인듀어 길드원들과 싸우며 건물과 도로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이 교단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피곤해질 수 있었다.
‘주교가 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어.’
한데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교단에 전해져 봐라.
건물과 도로를 보상하라는 말만 나오면 오히려 다행이고 그보다 더 심한 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다행히 목격자는 없다.’
오진하가 땅에 떨어져 있던 할버드를 주워 들고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후아~ 녀석이 버튼을 눌렀을 땐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근데 폭탄. 안 터지게 한 거 준석 씨가 한 거죠?”
“제거하느라 애 좀 썼지.”
그 말을 듣곤 오진하는 고개를 숙였다.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뭐라도 도움이 됐어야 했는데…….”
“아니야. 충분히 도움이 됐어.”
방금 한 말은 진심이었다.
오진하가 할버드를 던져 녀석의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조금 더 수월히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되긴요. 다칼 씨랑 준석 씨가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저는 옆에서 살짝 끼어든 것밖에 안 됩니다.”
“애초에 널 데리고 다니는 건 싸움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가진 제작 능력과 인챈트 능력 때문이야.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도움이 됐다는 말은 진심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언제 없는 말 지어내는 거 봤어?”
“하긴. 아니면 아니라고 하시는 분이죠.”
“그보다 누군가가 우릴 보기 전에 자리를 뜨자고.”
“예?”
“교단에 이 일이 알려져 봐. 어떻게 될 거 같아?”
“아…….”
나는 자리를 뜨기 전에 김동혁은 죽었던 자리를 내려다봤다.
시커먼 잔해 속에 파랗게 반짝이는 반지가 있었다.
곧바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마나 이터를 얻었습니다.]
회귀 전에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고대 반지를 이렇게 손에 얻다니.
마나가 바닥나는 바람에 삭신이 쑤셔 짜증이 났지만 그 덕분에 귀한 아이템을 얻어 냈으니.
썩 나쁘지 않은 교환이었다.
“가지.”
오진하와 함께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
“이게 대체 무슨…….”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왜 저 여자가 여기에 있어?’
지금쯤 신전에 있어야 할 교황의 수행원 라자 주교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