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74화
174화 주교 회의 (3)
[누락된 보상을 하나로 묶는다면 기대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누락된 보상을 하나로?’
회귀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단서가 주어졌다.
‘점지 레벨이 올라서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거야.’
그런데 보상을 하나로 묶으라는 게 보상을 받고 그 아이템들을 하나로 묶어 보라는 것일까?
아님 보상을 받기 전에 하나로 묶으라는 것일까?
‘만일 보상을 받고 그 아이템들을 하나로 묶는 거면 그때 점지가 발동했겠지. 지금이 아니라.’
나는 시스템에게 얘기했다.
“누락된 보상을 하나로 묶어 줘.”
[누락된 보상을 하나로 묶게 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묶으시겠습니까?]
마치 하나로 묶지 말라는 듯 시스템이 경고를 건넸다.
경고 표시를 보곤 불안감을 얻기보다는 되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묶어 줘.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 이대로 보상을 누락시킨 채로 55층까지 오르고 그 보상들을 전부 묶는다면 더 대단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만일 그랬다면 점지가 따로 말해 주지 않았을까?
말해 주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괜히 지금이 아닌 나중에 보상을 묶었다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보상이 떨어진다면 이는 엄청난 손해였다.
‘현재로는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워.’
“……주교. 준석 주교!”
“어, 예?”
교황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보상에 정신이 팔려 잠시 잊고 있었다.
“무슨 문제 있나요? 계속 불렀는데 대답도 하지 않고.”
교황의 눈빛이 차가웠다.
내가 말을 무시한 것으로 판단해 화가 났을 수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주교가 된 것이 믿겨지지 않아 잠시 넋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자 교황의 눈빛이 다시 너그러워졌다.
“그럴 법도 할 겁니다. 신자가 사제를 건너뛰어 주교가 된 경우는 에페르교가 탄생한 이래 이번이 두 번째이니까요.”
“두 번째?”
“왜 첫 번째가 아니라서 아쉽나요?”
“아, 아뇨.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에펠 왕국에 살아가는 백성들이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죠.”
나직이 말을 이었다.
“베라토.”
“아…….”
누구인가 했더니 그 남자였나.
베라토는 에펠 왕국을 건국한 자로 한 나라의 왕이자 동시에 교황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 그가 어떠한 일대기를 그렸는지는 모른다.
하나, 그가 나처럼 곧바로 주교가 됐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에 이어서 두 번째가 된 것은 크나큰 영광입니다.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옆에 서 있는 오진하는 내게 슬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대체 베라토가 누굽니까?”
교황이 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 말해 주기가 난감했다.
“뭐. 궁금하신 거라도 있나요? 진하 사제.”
“크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두 분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쿵!
신전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이쪽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복장을 보니 교황의 업무를 돕는 수행원이었다.
수행원은 교황에게 귓속말로 말을 전달했다.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
교황은 우리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돌아가는 길은 여기 라자 주교가 안내해 줄 겁니다.”
교황이 물러나고 라자라 불린 여성이 우리들 앞으로 다가왔다.
“따라오시지요.”
차분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라자는 우리가 들어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대교회와 신전을 잇는 틈에 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출구로 나와, 라자가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복장은 며칠 뒤에 집으로 배송될 겁니다. 정식 활동도 그때 안내를 하게 될 테니 그간 사고 치지 말고 몸을 추스르고 계십시오.”
“감사합…….”
오진하가 감사 표현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녀는 몸을 홱 돌려 신전으로 되돌아갔다.
“후~ 저 여자도 참 박하네. 응? 자기야. 그런 말하면 못써. 싸가지 없는 년이라니…….”
오진하는 아내와 대화를 나눈 후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근데 정말 베라토가 누굽니까?”
“건국왕. 왕이자 교황이었지.”
“건국왕이라면 에펠 왕국을 건국한 사람이요?”
“그래.”
“와. 누가 준석 씨보다 먼저 사제를 건너뛰고 주교가 됐나 했더니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등반자로는 내가 최초지.”
“네?”
“아냐. 아무것도.”
베라토는 등반자가 아닌 미션의 시작점이 된 일부일 뿐이었다.
‘그보다…….’
나는 아까 전에 마저 하지 못했던 일을 했다.
“보상을 하나로 묶어 줘.”
[누락된 보상을 하나로 묶습니다.]
[통합 보상이 지급됩니다.]
[카오스 스트림이 지급되었습니다.]
‘뭐지. 이건.’
손에는 보랏빛 구슬을 품은 큐브가 떨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질적인 촉감이 느껴졌다.
정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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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 카오스 스트림
내용: 언제 비틀릴지 모르는 혼돈의 조각이 큐브에 갇혀 있다.
효과: 찰나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넘어선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끝내 최종을 맞이한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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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을 끌어 올려 주는 아이템이라…….’
회귀 전에 비슷한 아이템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일시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힘들이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효과는 상당했지만 이후에 찾아온 부작용으로 며칠을 고생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물건은 그보다 더 불길한 예고를 하고 있었다.
‘끝내 최종을 맞이한다고?’
최종이라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아이템을 쓰고서 죽어야 한다면 대체 그 아이템을 누가 사용하려고 할까?
다만 정말로 최종이 죽음을 뜻한다면 아이템에는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결국 최후에나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이네.’
나는 카오스 스트림을 조심히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옆을 보자 오진하도 보상을 지급받고 있었다.
‘급하기는.’
보상을 묶어서 받으라고 말해 주려고 했건만, 이미 늦었다.
오진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준석 씨도 보상 받으셨어요?”
“받았지.”
“와. 미션 공유, 이거 대박이던데요? 준석 씨 덕분에 한꺼번에 여러 층이 클리어가 됐어요.”
미션 공유는 파티가 미션을 깨면 그걸 충족하지 못한 파티원들도 같이 미션을 깬 것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션을 충족하지 못한 자도 층을 오를 수 있으며 층의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다만 파티장과 파티원이 받는 보상은 달랐다.
파티장은 파티원들이 내준 기여도로 인해 기존보다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파티원 같은 경우는 기여도를 내준 만큼 기존보다 나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층을 오르기 위해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파티를 꾸린다.
오진하도 그들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순위.
파티가 기여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면 그 밑에 파티원들도 충분히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진하는 자신이 받은 보상에 아주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집? 아님 다시 전장? 그것도 아님 미션?”
그러고 보니 48층의 미션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여태껏 미션 내용은 항상 회귀 전과 비슷했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제대로 확인했다.
[주교 활동을 지속하여 교단에 자기만의 세력을 형성하십시오.]
[시간 제한은 없습니다.]
‘별반 달라지지 않았어.’
자기만의 세력을 형성하라는 뜻은 말 그대로 교단에 집단을 형성하라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파벌을 만들라는 뜻인데.
에페르교에서는 주교부터 자기만의 세력을 만들 수 있었다.
주교급이 자기 아래로 소속시킬 수 있는 인원은 열 명. 그 이상을 소속시키려면 계급을 올려야만 한다.
또한 소속되는 인원은 자신과 동급 아님 아래 계급만 가능했다.
나는 오진하를 바라봤다.
‘일단 한 명은 확정이고.’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아홉 명을 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명예의 증표와 대악마를 처치한 공을 인정받아 단숨에 주교 자리까지 올랐으니.
곧 내 아래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때 사람을 선별해서 소속을 시키면 미션은 완수된다.
‘굳이 찾아 나설 필요는 없지.’
다만 개인적으로 소속시키고 싶은 사람은 있었다.
‘사뮤엘.’
그가 내 밑에 소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은근히 속을 알기 어려운 남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어들이고 싶은 이유는 그가 가진 영향력 때문이었다.
에페르교의 상징적인 교회를 도맡고 있는 그는 내가 예상한 대로 수많은 주교들에게 지지를 받고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를 품기만 한다면 분명 뒤따라오는 인재도 있을 터다.
‘쉽지는 않겠지.’
사뮤엘을 보러 가는 건 나중으로 미루었다.
47층까지 뚫렸으니 이제 못 가던 장소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먼저 히든피스부터 챙겨야지.’
하나 그 장소로 향하기 전에.
“우선 집으로 가지.”
“예. 그러시죠.”
오진하는 즉답했다.
아마 집에서 물건을 만들 생각에 신이 나 있을 것이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다칼을 데리고 가야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걷는 거리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미 대교회에서는 한참 벗어났는데.’
사람이 있어야 될 거리에도 한산함이 돌자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준석 씨,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원래 이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나?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오진하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내 나는 발길을 멈추고 주변 건물의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 어두운 골목을 노려봤다.
‘살기다.’
한둘이 아니었다.
열, 스물, 서른…….
숫자를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적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놈들이군.’
인듀어.
한동안 모습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더니 이번엔 아주 작정한 듯했다.
그들은 기습을 취할 생각인지 여전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먼저 선공을 취하기 위해 음영 바다의 팔찌의 힘을 방출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극한의 공포’를 부여합니다!]
[불특정 일부가 ‘극한의 공포’를 튕겨 냈습니다!]
일부는 공격을 튕겨 냈지만 대다수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리라.
이어서 마법을 시전했다.
일루전!
저들에게 환각을 부여하려면 적용되는 범위가 더욱 커야 했다.
등가교환!
[일루전의 적용 범위가 크게 증폭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등가교환을 사용했다.
[일루전의 환각 효과가 대폭 강화됩니다!]
일부가 극한의 공포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환각 속에서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독 안에 든 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