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73화
173화 주교 회의 (2)
주변이 크게 술렁였다.
놀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속으로 더 놀라고 있었다.
‘주교로 승격을 하겠다고!?’
이야기의 흐름상 내게 어떤 보상이 주어질 것이란 사실은 눈치가 없더라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보상이 사제로 승격하는 것도 아니고, 그 위에 있는 주교로 승격시키자는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사제로 승격만 해 줘도 상당한 수혜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여전히 기본 절차를 밟고 사제가 되려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한데 더 이상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층을 클리어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표에 누구보다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었다.
쾅!
그때 누군가가 원탁에 주먹을 내려쳤다.
“교단에는 절차와 법도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대악마를 처치했다고 해도 일반 신자를 곧바로 주교로 승격시키는 건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나는 주먹을 내리친 남자를 바라봤다.
얼굴과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증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확한 확인도 하지 않고, 증표자라 칭하는 것은 교단에 속한 자로서 보기가 거북하군요.”
날 주교로 승격시키려고 했던 알베스토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제가 거짓이라도 고했다 이겁니까?”
“왜 찔리기라도 하십니까?”
“아렌 추기경!”
알베스토가 노한 표정으로 아렌을 노려보았다.
아렌 또한 물러서지 않고 알베스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두 분 다 그쯤하세요.”
조용히 듣기만 하던 교황이 직접 나서서 둘을 만류했다.
알베스토와 아렌은 교황에게 고개를 숙였다. 교황은 둘에게 번갈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알베스토 추기경, 아렌 추기경.”
“예. 교황 성하.”
둘이 동시에 응답했다.
“두 분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 보는 앞에서 더 이상 추태를 부리는 짓은 자제했으면 합니다.”
알베스토가 말했다.
“깊이 헤아리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아렌 또한 반성의 뜻을 드러냈다.
“무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두 분이 그리 말씀하시니. 더는 묻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보다…… 두 신자와 관련된 안건은 아무래도 제가 끼어들어야 할 듯싶군요.”
교황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준석 신자.”
“예, 교황 성하.”
“혹시 명예의 증표를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입을 여는 대신에 손등으로 증표를 보여 주었다.
“오오!”
“명예의 증표가 확실하군!”
증표에 대해서 부정하던 아렌의 표정만 일그러졌다.
반면 알베스토는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황은 내 증표를 확인하더니 이내 회의에 참석한 대주교와 추기경들에게 제안 하나를 했다.
그것은 투표를 통해 나랑 오진하를 승격할지 말지 결정하자는 의견이었다.
“좋습니다!”
“저도 그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공정한 방식인 것 같군요.”
그들은 교황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 대주교 한 명이 투표함을 가지고 와서 용지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후 각자 표를 던졌다.
투표함에 넣은 용지를 꺼내 결과를 발표하는 것 또한 대주교들의 일이었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발표자가 말을 잇는다.
“찬성표가 우세하므로 준석 신자는 주교로 승격! 진하 신자는 사제로 승격하는 걸로 확정!”
나는 환호성 대신 기쁨을 주먹을 꽉 쥐어 표현했다.
오진하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슬쩍 다가와 물었다.
“그럼 이제 매일 교회에 출석 안 해도 되는 거죠?”
“그게 중요해?”
“저한테는 제일 중요합니다. 은근 가는 거 귀찮았거든요.”
“귀찮은 게 아니고 그 시간에 물건이나 만들고 싶은 거겠지.”
“너무 정곡을 찌르시네. 아무튼. 지금처럼 똑같이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 건 아닌 거죠?”
“당분간은 안 가도 돼.”
“예스……!”
오진하는 뒷말은 듣지도 않고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사제가 되고 나면 교회에 매일 출석할 일은 없어지지만 대신 사제로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히려 교회에 출석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도 같이 해 주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잠깐 기분 전환 좀 하라지.’
굳이 지금 알게 한다고 해서 딱히 이득을 볼일도 없고 말이다.
얼마 가지 않아 오진하는 인상을 구겼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사제로 승격했다면서 왜 미션은 안 깨지는 거지.”
이내 날 바라보며 묻는다.
“준석 씨는 미션 깨졌어요?”
“아니. 지금은 말로만 승격을 한 거고. 정식으로 승격되려면 교단의 서에 이름이 새겨져야 되지.”
“교단의 서? 그게 뭡니까?”
“교단의 이정표 같은 거지.”
“저…….”
오진하는 내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 다시 입을 뗐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준석 신자, 진하 신자.”
교황이 우리를 부른 것이다.
“예.”
“예! 교황 성하!”
“두 분은 절 따라오세요.”
교황은 우리를 데리고 금색 문 안으로 출입했다.
금색 문을 지나자 붉은 카펫이 깔린 통로가 이어졌다.
양옆의 벽에는 예술성이 가미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윽고 통로를 벗어나자 거대한 석상이 세워져 있는 신전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금 전에 지났던 통로는 대교회와 신전을 잇는 장소.
나는 거대한 석상을 올려다보았다.
석상에 새겨진 위용이 넘치는 자세로 서 있는 남성은 신좌 에페르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것이었다.
그것에 한눈을 팔던 것도 잠시.
오진하가 빨리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곧장 교황을 뒤따라갔다.
지이잉!
그때. 거대한 장막이 내 앞을 막아섰다.
[층을 클리어하지 않아 출입할 수 없습니다.]
‘역시 안 되나.’
내가 출입할 수 있는 곳은 대교회가 끼치는 영역 안까지였다.
“뭐, 뭐야?”
오진하도 출입이 불가능했다.
뒤늦게 교황은 우리들이 신전에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오진하는 교황이 간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교황이 따로 저흴 왜 부른 걸까요?”
우리들을 데리고 신전에 왔다는 것은 한 가지를 뜻한다.
“교단의 서.”
“예?”
“교단의 서에 우리들의 이름을 새기려는 거야.”
교단의 서에 이름을 새길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는 단 두 명이었다.
교황 그리고 교황 대리인.
물론 예외인 경우가 있다.
정식 절차를 밟았을 경우이다.
사제가 되기 위한 정식 절차를 밟았을 때 그자의 이름이 교단의 서에 자동으로 새겨진다.
물론 절차상 문제가 생기면 영영 교단의 서에 이름이 새겨지지 않기도 한다.
그럴 경우 그는 스스로 층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누군가의 파티에 속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유일하게 층을 오를 수 있는 방법이다.
잠시 후, 교황이 책 한 권을 가지고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오진하가 감탄사를 흘렸다.
그가 감탄을 보인 건 교황의 외모가 아닌 그 옆에 공중에 떠 있는 책의 모습 때문이었다.
책에서는 천상에서 내려보낸 듯한 광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빛의 사슬로 감겨져 있는 책은 길이만 해도 1미터가 넘었다.
교황이 눈웃음을 지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아닙니다.”
“주변 광경이 워낙 좋아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긴장을 한 것인지.
오진하가 호들갑을 떨었다.
“후훗. 그럼 예법에 따라 수여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촤르륵!
교황이 허공에 손짓하자 책이 펼쳐졌다.
종이에 새겨진 이름들이 공중에 휘날린다.
교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준석 신자.”
“예, 교황 성하.”
“진하 신자.”
“예! 교황 성하!”
그녀는 빛이 깃든 하얀 깃털 펜을 꺼내 들었다.
“수여식을 진행할 때는 교황 성하라는 말은 빼도 됩니다.”
“예.”
“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교황의 두 눈이 하얀빛으로 일렁였다.
“신좌 에페르 님의 뜻을 이어받아 악을 규탄하고 처단할 것을 약속합니까?”
“예.”
“예!”
교황이 펜으로 책에 이름을 새겨 넣고 있었다.
“에페르교의 율법과 규율을 지킬 것 약속합니까?”
“예.”
“예!”
아무래도 에펠 왕국의 백성이 수여식을 하는 것이라 그런지 정석에 가까운 수여식이었다.
등반자가 교황이었더라면 이런 절차는 밟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신선하네.’
그저 층을 오르려고 역할놀이를 하는 것일 뿐인데.
정석으로 수여식을 치르니 이상하게 몰입이 되는 것도 있었다.
스스슥.
이내 움직이던 펜을 멈춘 그녀는 끝말을 나지막이 말했다.
“이것으로 준석 신자와 진하 신자는 정식으로 주교와 사제가 되었음을 알립니다.”
마치 에페르가 수여식을 축복하듯 석상에서 빛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에페르교의 수여식을 무사히 치렀습니다!]
[에페르교의 정식 주교가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웁니다!]
[등반자들 중 최초로 최단기간 안에 주교가 되었습니다!]
[미션 기여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41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42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43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
…….
…….
[47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업적을 세웁니다!]
[다층의 조건을 한 번에 충족하였습니다.]
[이명의 격이 오릅니다.]
[미션 기여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순위에 진입했습니다.]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명단에 이명을 공개하겠습니까?]
“아니.”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명단에 이명이 비공개 처리됩니다.]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 순위가 공개됩니다.]
(((((((((((((((((((((((((((((((((((((((()
[41~55층]
1위) 천공을 뚫은 자 – 55층, 125,400점
2위) 고귀한 섬멸자 – 55층, 110,994점
3위) 그늘 속에 묻혀 버린 칼잡이 – 55층, 100,019점
4위) 비공개 – 55층, 100,000점
5위) 비공개 – 55층, 99,932점
…….
…….
…….
…….
…….
…….
…….
…….
64위) 마안의 저격수 – 55층, 54,481점
65위) 비공개 – 47층, 54,500점
65위) 비공개 – 55층, 53,760점
…….
…….
…….
…….
100위) 노력에 찌든 자 - 55층, 45,772점
(((((((((((((((((((((((((((((((((((((((()
[메인 미션 누적 기여도에서 65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중층부부터는 기여도 순위 자체도 메인과 서브가 따로 존재했다.
그리고 중층부부터는 여태 탑을 올랐던 모든 등반자들이 명단 안에 들어가 있었다.
47층에서 65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업적이었다.
회귀 전에는 50층에 가서야 겨우겨우 100위권에 안착했다.
끝끝내 55층에 도달했을 때는 1위를 차지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지 난이도에서의 순위.
방금 보여 준 것은 하드 난이도의 명단이다.
이미 주어진 점수부터가 이지 난이도와는 두, 세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메인이 공개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서브 미션에 관한 순위 명단이 공개됐다.
(((((((((((((((((((((((((((((((((((((((()
[41층]
1위) 비공개 – 10,500점
2위) 그늘 속에 묻혀 버린 칼잡이 – 8,916점
3위) 비공개 – 7,288점
4위) 천공을 뚫은 자 – 7,100점
5위) 고귀한 섬멸자 – 6,680점
(((((((((((((((((((((((((((((((((((((((()
나는 순위만 확인하고, 나머지 층들도 빠르게 넘겨 결과만 확인했다.
모든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전부 1위를 차지했군.’
[누락된 보상을 지금 당장 지급받으시겠습니까?]
이제 각 층의 1위 보상을 받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동안 조용했던 점지 스킬이 발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