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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70화 (170/230)

회귀한 탑 등반자 170화

170화 옛 인연들과의 만남 (1)

“언제 그러고 있을 거야? 우는 척 좀 그만해라.”

하성태는 내 말을 듣자마자 손으로 눈물을 닦아 내곤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형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지.”

탑에서는 안 죽은 것만으로도 잘 지냈다고 볼 수 있었다.

“하나도 안 바뀌셨습니다.”

“그러는 너는 머리 스타일이 왜 그래?”

차분한 귀공자 머리 스타일이던 하성태는 락커 같은 머리 스타일로 변해 있었다.

마치 고슴도치 털을 보는 듯하다.

“아, 이거요. 30층에서 벼락 맞고 이렇게 된 거예요. 다시 원래 스타일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는데. 벼락 맞고 체질이 변했나 안 바뀌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개성 없던 얼굴에 개성을 부여해 줬으니 벼락이 아주 큰일을 해 줬네.”

“예? 제가 개성이 없어요? 형님, 살면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탑에 들어오기 전에 사람들이 저보고 개성 넘친다고 얼마나 말을 많이 했는데.”

“그건 4차원적인 너를 개성이란 표현으로 돌려 말한 거겠지.”

“저기요. 여러분?”

현관 앞에 서 있던 유희가 우리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랑 하성태는 말을 하다 말고 현관 앞을 쳐다봤다.

너무 우리 둘만 대화하느라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유희는 어제 먼저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에 서로 고개만 까닥여 간단히 아는 체만 했다.

유희가 안으로 들어와 비켜서자 양옆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서 있었다.

같이 다니는 것이 민폐라고 여겼던 박자린과 11층 마을에서 잠시 마주쳤던 에레나였다.

둘은 팔짱을 낀 채로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에레나가 옆에서 박자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박자린이 내게 다가와 입을 벌렸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답답함이 들어 먼저 물어보았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있, 있어요!”

박자린은 굳게 마음을 먹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그 말! ……사과하세요!”

“무슨 말?”

“저한테 기생충처럼 딱 붙어 있다고 말한 거! 무능하다고 했던 거! 사과해요!”

박자린은 말을 하며 두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떨고 있는 이유는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박자린이 숨을 길게 들이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당시 저는 누구에게 기대기만 하고 무능함을 드러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길드원들한테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저를 믿고 기다려 줬던 길드원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누구나 부족한 시절이 있잖아요.”

에레나를 비롯해 뒤에 서 있는 길드원들이 그녀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석 씨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나요?”

왜 없겠는가,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부족해서, 데카인에게 패배한 순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솔직히…… 준석 씨가 그때 한 말들 전부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준석 씨한테 도움을 받아서 유희 언니를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었어요.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그렇다고 해서 준석 씨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민폐를 끼쳤다고 해서,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상대를 욕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 그런 권리가 없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좋아. 확인해 보지.”

“예?”

“그저 말뿐인 것인지. 아님 정말로 변한 것인지.”

조용히 손을 뻗어 마법을 시전했다.

윈드퍼드.

휘우우웅!

허공에 생겨난 바람 칼날이 곧장 박자린에게로 날아갔다.

만일 이 정도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여태 그녀가 한 말들은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공격을 막아 낸다면 최소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은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쉽지는 않을 거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공격인 데다가 윈드퍼드는 매우 재빠른 공격이었다.

‘오.’

공격을 인지한 박자린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인지조차 못할 줄 알았는데, 반응은 있었다.

지이이잉!

박자린은 손끝에 보호막을 형성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보호막이었다.

채채챙!

박자린은 윈드퍼드를 완벽하게 막아 낸 것도 모자라 반격까지 시도했다.

내게 십자가 지팡이를 겨누어 엄청난 양의 빛줄기를 뿜어냈다.

그 빛줄기를 맨손으로 움켜잡으며 광염을 시전했다.

기이이이잉-

빛의 충돌로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등가교환.

그녀가 시전하고 있는 마법을 완전히 상쇄시켜 버렸다.

박자린은 갑자기 자신이 시전한 마법이 사라져 버리자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금세 냉정함을 되찾고 다시 빛줄기로 공격을 시도하려고 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길드원들은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앞을 막아선다.

“그만!”

나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두 손을 머리 근처까지 들어 올렸다.

“아저씨!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에레나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준석아, 아무리 자린이가 마음에 안 들어도 갑자기 공격을 하면 어떻게 해.”

유희도 당황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박자린을 바라봤다.

“갑자기 공격을 한 건 사과하지. 그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쪽 말처럼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결과. 박자린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성장해 있었다.

저층부에서 보았던 그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공격을 막고 반격까지 가했다. 그리고 내가 공격을 끊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공격을 시도했어.’

그것으로 동료들을 등에 업고 이곳까지 올라온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나는 박자린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때 네게 무례하게 말했던 것들. 사과한다.”

박자린이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저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녀는 눈물을 드러내고 있었다.

“흑흑…….”

‘눈물이 많은 건 여전하네.’

에레나가 박자린을 손으로 토닥여 주었다.

“잘했어. 잘했어…….”

나는 어렴풋이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간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갖은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쌓이고 쌓였다가 이제야 터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내 유희가 옆으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고마워.”

“뭐가?”

“알면서 굳이 묻긴.”

우리는 서로 마주 본 채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 *

조촐하게 먹으려던 아침 식사는 유희 일행이 찾아오며 푸짐한 만찬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대가족이 모인 것처럼 시끌벅적했다.

회귀 전에는 꿈에도 꾸지 못할 광경이다.

유희는 자기만의 동료를 일곱 명이나 만들었다.

물론 내가 옆에서 동료가 되도록 도와준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들을 품고서 여기까지 끌어온 건 전부 유희가 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조언을 건넨 것에 불과했다.

“피이이…….”

한편 에레나가 데리고 있던 새.

피아가 기가 죽은 채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크르르.”

그 옆에서 다칼이 눈치를 주는 중이었다.

“야! 너! 우리 피아 그만 괴롭혀!”

그때 에레나가 나서서 다칼에게 꿀밤을 먹였다.

“캬항!”

“구르륵!”

다칼이 에레나에게 덤벼들려고 하자 피아가 온몸으로 막아선다.

“다칼, 적당히 해.”

내 말에 다칼이 이빨을 드러내다가 말았다.

“크릉~.”

-또 기어오르기 전에 찍어 눌러 준 것뿐이다.

“이미 충분하다 못해 과해.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

피아가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다칼을 막아서긴 했지만 얼마나 겁을 주었으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피아 건 뺏어먹을 생각하지 마.”

“캬하앙?”

-지금 저 녀석 편을 드는 거냐?

“그런 게 아니고, 네가 다 처먹어서 쟤는 거의 먹지도 못했잖아.”

나는 다칼에게 단단히 경고를 준 후 마저 식사를 이어 나갔다.

모두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가 생각날 때쯤.

“짜잔!”

에레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케이크와 커피를 꺼냈다.

케이크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커피에는 관심이 쏠렸다.

내가 커피에 손을 대려고 하자, 에레나가 커피를 훽 뺏어가며 말했다.

“아저씨한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안 주고 싶은데. 유희랑 가장 친한 친구라니까, 양보한다. 내가.”

그녀는 선심쓰듯 다시 내게 건네주었다.

유치하게 구는 게 귀여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눈앞에 있는 커피를 들이켰다.

‘역시 이 맛이야.’

맛을 음미하며 느긋이 주변을 둘러본다.

다행히 오진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잘 섞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외에 구면인 카를로는 다시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서로 마주 보며 고개만 까닥인 게 전부이다.

원래 그다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해는 됐다.

유희 일행 중에는 내가 아예 처음 보는 인물들도 있었다.

브루스와 에린.

남녀 둘은 카를로처럼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어떤 성격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유희가 선택한 사람들이니.

분명히 괜찮은 사람들이리라.

잠시 자리를 비웠던 유희가 내 옆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뭘 봐.”

“어때?”

“뭐가?”

“새로운 동료들 말이야.”

“아직은 대화를 많이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첫인상들은 좋네.”

“분명 너하고도 잘 맞을 거야.”

“보면 알게 되겠지.”

유희는 금방 화제를 바꾸었다.

“맞다. 따로 물어볼 게 있었는데. 어제는 갑자기 만났던 터라 묻지 못했네.”

“뭐?”

“이곳에 올라와 미션을 받았거든? 근데 통합 미션은 다른 사람이랑 똑같은데, 서브 미션이 다른 사람이랑 다른 거 있지.”

서브 미션이라면 41층의 미션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르다고?”

“어.”

“사제가 되라고 나와 있을 텐데.”

“아니. 나는 교단의 신성한 시험을 치르라고 나와 있어. 혹시 이거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만을 떠올렸다.

성녀.

선택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지위.

교황은 항상 존재해도 성녀가 탄생하는 경우는 수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현재 에펠 왕국에는 성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희가 성녀가 되는 미션을 받았다고?’

교단의 신성한 시험을 치르라는 것은 곧 성녀가 될 자격을 갖추라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성녀가 되는 미션이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회귀한 나조차도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에펠 왕국의 도서관, 템플에 기록되어 있는 문장 몇 개뿐이었다.

그중에 문장 한두 개는 기억이 난다.

교단의 신성한 시험을 치르는 자, 하늘의 뜻을 이어 줄 성녀가 되리라.

성녀가 되는 자가 곧 왕국의 모든 권위를 거머쥐리라.

“야. 야! 내 말 들었어?”

생각에 잠겼던 나는 고개를 들어 유희를 바라봤다.

“어. 들었어.”

“그럼 말을 해야지. 아무튼. 딱히 물어볼 때가 없어서 미션을 보고 헤매는 중이야. 어디서 시험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건 내가 알아.”

“뭐? 그게 정말이야?”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나는 유희에게 시험 위치뿐만 아니라 미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를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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